벨기에는 한국과 다르게 따로 대체공휴일이라는 개념이 정부 차원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공휴일이 주말에 겹쳤다고 해서, 따로 한국처럼 그다음 평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해주지 않는다. 따라서 공휴일이 어느 요일에 오는 가에 따라서, 사기업들의 경우에는 매년 며칠을 쉬는지가 달라지게 된다. 하지만 지금 일하는 학교의 경우에는 학사팀에서 자체적으로 대체공휴일 제도를 적용하는데, 주로 주말에 겹친 공휴일들을 모두 모아 크리스마스 이후부터 새해 사이에 있는 평일에 대체공휴일을 적용해 버리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모든 대체공휴일을 평일에 붙인 후, 1월 1일까지 평일이 남은 경우에는 학교에서 자체 휴일을 지정해 버리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 그 말인즉슨, 크리스마스부터 1월 첫 주말까지는 쭉 쉬라는 의미다.
이 대체공휴일에 대한 계획은 학년도가 시작하기 전 여름방학 중에 교직원 포탈을 통해 공시가 된다. 벨기에의 학년도는 9월 중순에 시작하는데, 이 휴가 기간은 7월 초순쯤이면 그다음 해 휴일에 대한 안내를 받아볼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아예 대놓고 아래처럼 표를 만들어서 교직원들에게 공개를 한다. Jour에 Samedi (토요일) 혹은 Dimanche (일요일)이라고 된 경우에는, Fixé le (조정된)에 어느 날로 조정이 된다고 안내가 되어있다. 이뿐 아니라, 모든 휴일을 붙인 뒤에도 평일이 남은 경우, 2번 항목인 Deux jours de congé fixés (이틀의 휴가를 조정한)라고 해서 1월 1일 전에 남은 모든 평일을 학교 자체 휴무로 처리를 해 버린다.
이 덕분에 교내 구성원들은 직책에 상관없이 크리스마스부터 새해까지 쉬게 되는데, 이 기간 전후로 연차를 붙여 아예 3주 가까이를 쉬는 경우도 정말 많다. 특히나 유럽권 국가 대다수가 크리스마스는 꼭 가족들과 보내야 하는 일종의 명절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기간이 되면 유럽 내 타 국가 출신의 직원들의 경우에는 해당 기간을 이용해 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보내고 돌아온다. 그뿐 아니라 이 기간만큼은 연구와 논문에 미쳐 있던 교수님들 마저도 본인의 가족들과 함께하기 위해, 아예 대놓고 메일함에 자동 답장을 설정해 놓고 일주일 가까이 일에는 손도 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교수님들이 대놓고 ‘이 시즌에는 제발 좀 쉬고, 즐거운 크리스마스 연휴 보내고 내년에 봅시다’라고 할 정도로, 정말 급한 논문 리비전이 겹치지 않는 이상은 오히려 일을 하지 말고 즐겁게 휴가를 보내라는 권유를 할 정도로 이 연말 휴가가 정말 중요한 기간이 된다.
나의 경우에는 이 연말 휴가에 대해 정확한 일정이 나오면, 연말에 어디를 놀러 가야 잘 놀러 갔단 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그동안 가고 싶었지만 일정을 비롯해 온갖 핑계로 선뜻 가지 못 한 여행지를 모두 모아 놓고, 고민을 했던 기억이 난다. 특히 크리스마스부터 12월 31일 사이에는 대다수의 유럽 도시들에 위치한 크리스마스 마켓이 피크를 달릴 때일 뿐 아니라, 1월 1일이 되는 자정에 강을 끼고 불꽃놀이를 하는 곳도 많기 때문에 더 여행에 대한 욕구가 올라오지 않았나 싶다.

벨기에에 온 첫 해인 2018년에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예쁜 동네들이 있다는 소리에 혹해, 약 10일에 걸쳐 헝가리 – 슬로바키아 – 체코 구간을 기차로 여행을 했었다 (위에 첨부한 사진이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기차역이다). 2019년에는 덴마크 코펜하겐과 스웨덴 말뫼에서 원 없이 박물관을 돌아다녔던 기억이 난다. 특히나 노트북이며 아이패드를 다 집에 두고 떠날 수 있었기에, 일 생각은 하나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너무 마음에 들었었다. 특히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논문을 볼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조차 행복할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한참이었던 기간에도, 이 휴가 기간은 그대로였다. 코로나는 코로나고, 그동안 쌓인 주말 공휴일을 대체 공휴일로 만드는 건 돌고 도는 역병과는 관련이 없다는 게 학교의 입장이었다. 이 때는 국적과 본가의 위치에 상관없이 여행이 어려웠던 시점이라, 벨기에에 남은 외국인들끼리 만나 각자가 만들 줄 아는 출신 국가의 음식을 만들어 나눠먹곤 했었다. 그뿐 아니라, 나의 경우에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 2년 사이에 이 기간이 매우 특별하게 다가왔는데, 벨기에에서 역도를 배우며 친해진 친구들의 가족들과 스스럼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을 통해 내가 타지에서 혼자 연말을 보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크리스마스와 연말 저녁 식사에 초대를 받기도 했었다.
2024년에는 이 연말 휴가가 약 10일 정도로, 다른 해들에 비해서 상당히 길었다. 이유라면 부활절 월요일이나 재의 월요일 등, 월요일에 고정된 공휴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토요일 혹은 일요일에 공휴일이 겹쳤기 때문이다. 심지어 학교 설립자를 기념하는 Saint-V라는 날도 토요일에 겹쳤던 터라, 결국 이것저것 다 연말에 붙여보니 12월 25일부터 1월 5일까지 쭉 쉬게 되는 셈이 되었다. 이 넉넉하다 못해 넘쳐나는 휴가가 공지사항으로 내려온 날, 나는 그 시점부터 뭘 해야 잘했다고 할까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12월 25일은 벨기에에 있는 가족들과 함께 보내고, 12월 26일부터 1월 3일까지는 2년 만에 친정이 있는 한국에 다녀왔다.
2025년 연말과 2026년 연초에는 이 휴가가 정확히 12월 25일부터 1월 1일 까지라, 아마도 내가 가진 연차를 조금 붙여야 그나마 좀 어디를 갈 수 있겠다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중이다.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그래도 연말연시에 내 연차를 쓰지 않고 며칠이라도 더 쉴 수 있는 건 즐거운 일이니까 좋게 생각해야지 싶다. 그러니까 올해 말에는 어디를 가야 잘 갔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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