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스토리를 담고 있는 연재를 만나보세요.
[부정? No. 긍정? Yes!] 장염
Bio통신원(워킹맘닥터리(필명))
12-1.
배가 슬슬 아파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향이 첨가된 닭꼬치의 유혹은 그냥 지나치기 힘들었다. 약간 탄 듯한 바삭거리는 껍질에 둘러싸인 매콤한 닭꼬치는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매콤함을 없애기 위해 커피우유 하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결국 장염이 도졌다. 약을 처방받아먹고 누워 쉬어도, 물 한 모금 삼키기도 쉽지 않았다. 하루 이상을 꼬박 굶고 난 뒤, 겨우 보리차를 한 모금 삼켜냈다. 지쳐 보이는 딸에게 우리 엄마는 말씀하셨다. “그래, 잘 됐다. 그 김에 살이나 빼라.”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12-2.
보고서 작업으로 약 한 달간의 마라톤이 시작되었다.
간식, 점심, 간식, 저녁, 또 간식. 사육당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맛있는 것들을 잘 챙겨준다. 풍족하게 먹는 것에 비해, 연이은 작업으로 자리에 앉아만 있으니 칼로리 소모가 되질 않는다. 소화가 안 되고 속이 더부룩하다.
초밥을 먹는 날엔 밥 위의 횟감만 먹고, 햄버거를 먹는 날엔 패티만 먹고, 도시락을 먹는 날엔 절반 이하만 먹는다. 봉지 과자 하나를 뜯으면 다 못 먹고 입구를 봉해두어야 한다. 맛만 보고 다 먹지 못한 과자 봉지들이 작업 테이블 위에 수북하게 쌓였다. 커피 한 잔을 내리면 2/3가 남는다. 이건 내가 아니다.
25분 정도의 짬을 내면, 학교 바로 옆 낮은 야산의 정상을 찍고 내려오기 충분하다. 하루에 2번씩 정상을 찍고 내려왔다. 계속되는 작업에 몸도 지치지만, 사실 마음도 편치 않다. 이래저래 살이 쭉쭉 빠지기 시작했다. 보고서 작업이 끝나고 나니 확실히 몸이 가벼워진 것이 느껴진다. 지인들이 묻는다. “살이 많이 빠졌네요~ 다이어트한 거에요?”
힘들었지만, 어찌 되었건 보고서 작업 일을 마무리했다. 몸도 마음도 홀가분해졌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내가 재직 중인 학교가 발전하는 데에 일조했으니 뿌듯하다. 살도 빠지니 일석이조다. 작업할 땐 힘들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다. 힘들었던 것도 이젠 생각나지 않는다.
12-3.
처음 석사 과정을 시작했을 때, 함께 입학한 동기가 1명 있었다. 각자 지도 교수님이 달라, 참여하는 프로젝트도 다르고 연구 주제, 실험 과정도 달랐다. 당연히 사수 선생님들도 각자 달랐다.
동기는 입학하자마자 실험을 배우기 시작했다. 매일 클린벤치에 앉아 세포를 배양하고, 시약을 만들고, 사수 선배에게 자료를 받아 무언가를 읽었다. 반면 나는 주제와 방향성이 잡히지 않아, 자리에 앉아 참고문헌 논문을 읽고 다른 선배들의 실험이 끝나면 실험에 사용했던 기구들을 설거지하고 멸균을 돌린 뒤 정리를 했다. 시약 칸을 정리하고, 동기가 하는 실험을 기웃거리며 나는 언제 실험을 배울지 궁금해하고 부러워했었다.
가장 부러웠던 것은 실험을 먼저 시작한 동기는 용돈을 받는다는 점이었다. 돈이 크진 않았지만, 실험하고 연구를 진행하며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면서 소정의 인건비를 받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직 돈을 벌지 못하는 대학원생으로서는, 대학을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께 의지해서 생활해야 했었는데, 출퇴근하며 드는 차비, 매일 사 먹어야 하는 점심과 저녁, 매월 지출되는 휴대전화 비용 등의 고정 지출 등의 필요한 돈을 연구실에서 받는 용돈으로 어느 정도 충당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큰 행운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실험을 시작하고 자신의 연구 주제를 정하고 방향성을 잡아나가는 것이 대학원 입학의 주목적인데, 동기는 중요한 목적 달성을 위해 먼저 앞서간 셈이었다.
동기와 달리 시간이 많이 남았던 나는 스스로 무언가를 찾아 행동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시간을 죽일 순 없어 1일 1개 논문 읽기 프로젝트를 혼자 계획하고 시작했고, 도움이 될 만한 학부 수업을 찾은 후, 교수님께 이메일을 보내어 대학원생인데 수업에 참관하게 해 주실 수 없냐고 부탁드려 학부생들과 함께 맨 뒷좌석에 앉아 청강하기도 했다.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중앙도서관에 슬쩍 가 이것저것 책을 꺼내어 읽다가 연구실로 복귀하기도 했다.
아마도 석사 1년 차 시절이, 스스로 무언가를 찾아 공부하던 처음이자 마지막 시기였던 것 같다. 동기와 비교해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에 부러웠지만, 그만큼 자기 주도적으로 무언갈 하며 나름의 연구를 위한 밑거름을 만들 수 있던 시기였던 것 같다.
12-4.
썩은 과일은 알아서 떨어진다. 유명한 글귀다.
인과응보의 법칙에 따라서 타인에게 상처 준 만큼 자신에게 돌아갈 테니, 굳이 내가 무얼 행하지 않아도 된다. 내게 대하는 말투나 행동이 내게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저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며 누구에게나 같은 말투와 행동으로 대할 것이다.
본인이 잘 보여야 하고, 본인보다 윗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상냥하고 다정할 수 있으나 그 사람들은 그보다 더 오랜 세월 더 많은 사람을 겪으며 경험치를 쌓아왔던 사람들이니 자신에게 대하는 태도와 다른 사람들에게 대하는 태도가 다르며, 그 속에서 피어나는 불씨의 씨앗이 있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을 터이다. 굳이 지적하지 않는 것이지, 언젠가는 불씨의 씨앗이 화근이 되어 팡하고 터질 때가 올 것이다. 그저 나에게 상처 주는 사람들의 말투나 행동을 눈여겨보고 그들과 같은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노력하는 것이 최선인 것 같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을 수도 있고, 그 과정에서 상대방의 배려로 그냥 넘어간 일들이 있을 것이다.
마음 그릇의 크기는 일정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채울 수 있는 용량의 한계도 정해져 있다. 부정적인 감정이 쌓이는 만큼 긍정적인 감정은 채워질 수 없다. 부정적인 감정을 없애면 그만큼 긍정적인 감정을 담을 수 있다. 굳이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나 상황 등 부정적인 생각을 덜어내고, 덜어낸 만큼 긍정적인 생각을 채워 넣는다면 인생이 조금 더 말랑말랑해지고 즐거워지지 않을까? 그저 나와 만난 사람들은 적어도 나 때문에 상처받거나 힘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기사 오류 신고하기]
교수 생활을 하며 겪는 일들에 대해,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긍정적인 면을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시각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제 인생이 더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리고 저와 같은 혹은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는 분이 계시다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글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연재기사 보기
전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