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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 No. 긍정? Yes!] 연구비
Bio통신원(워킹맘닥터리(필명))
4-1.
한국연구재단에서 1억 5천의 연구비를 지원받았다.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다.
기초 연구를 위해서는 다양한 장비와 실험 재료들이 필요한데, 실험에 필요한 돈이 만만치 않았던 터에 연구비 지원은 가뭄에 단비 같았다.
연구비 지원이 확정되었다는 것을 확인한 날에는 너무 기뻐 소리를 하도 질러, 옆 연구실의 교수님이 무슨 일이 있냐고 뛰어올 정도였다.
곧바로 실험에 필요해서 구매하고 싶었지만, 상상만 해오던 장비 2개를 구매 신청을 해두고, 필요했던 각종 실험 재료들을 장바구니에 넣었다 뺐다 반복하기만 했던 것들을 바로 주문하고는 주문한 재료들이 언제 배송될지만 손꼽아 기다렸다.
갑자기 하루 일정에 실험 일정을 추가하다 보니 출근 시간은 예전보다 조금 빨라졌고, 퇴근 시간은 조금 더 늦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랩실에서 밤샘하며 실험하던 추억이 떠오르기도 하고 오랜만에 만져보는 표본 샘플과 현미경 버튼은 나를 설레게 했으며, 한창 글러브를 끼고 실험을 하는 날에는, 밥도 먹지 않고 실험하는 데에 빠져있었다.
작년 대비 게재 완료된 논문의 수가 늘었고, 덕분에 교수업적평가의 연구 부분 점수도 올랐다. 학교에 간접비가 들어가니, 간접비 창출 항목 점수도 받아, 업적평가를 잘 받을 수 있었다. 여러모로 유독 즐거웠던 기간이 지속되었다.
4-2.
기쁨과 슬픔은 항상 공존하는 것일까?
교수가 연구비를 지원받은 것이 왜 그리 도마 위에 올라갈 일이 된 걸까?
교수의 연구비 지원을 통한 학교로의 간접비 수익 창출은 학교 입장에서도 이득이다. 그러니 교수업적평가 항목에도 들어가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연구비를 지원받아서 본인이 원하는 것들도 사고 논문도 게재되어 연구 부분 점수도 올라가는데, 간접비 창출 항목까지 만들어 교수업적평가 점수를 올려줄 필요가 뭐가 있냐는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었다.
개인 연구를 하느라 학교나 학과의 일은 뒷전이라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 입시, 취업, 사업 운영 등 학교에서 필요한 일들의 대부분을 참여했고 심지어, 매번 참여하는 사람들만 하게 된다는 각종 사업 보고서 작업까지도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개인 연구 때문에 학교 일을 하지 않았다는 말은 너무한다 싶었다.
누가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다녔을지는 예상은 가지만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는 데다가, 막상 싸우러 간다 한들 어떻게 싸워야 할지를 모르겠다. 더욱 솔직하게 말하자면, 사실은 싸울 용기가 없다. 사람들과 싸워본 적이 많이 없기도 할뿐더러, 터무니없는 말을 하는 사람들과 대응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그냥, 연구나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4-3.
우리 학교는 매년 교내 연구비를 지원한다.
먼저 연구비를 지원받고, 논문을 게재하여 후에 결과를 보고하는 교내 연구비와 논문을 먼저 게재하고 후에 연구비를 지원받는 인센티브로 구분되어 있다.
교내 연구비는 1회만 신청할 수 있고 300만 원을 지원하고, 인센티브는 2회까지 신청 가능한데, 1편당 200만 원을 지원한다. 즉, 400만 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교내 연구비의 편당 지원 금액이 더 높다 보니, 연구비 지원을 받고 싶은 경우에는 교내 연구비를 신청한다.
열심히 연구 계획서를 작성하고 교내 연구비를 지원했다.
떨어졌다.
후에 교내 연구비 선정 회의에 있던 일을 전해 듣게 되었다.
개인 연구비가 있으니 다른 교수에게 연구비 지원 기회를 주어야 한다며 교내 연구비 선정에서 탈락시켜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다른 교수에게 연구비 지원 기회를 주는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그 과정에서 개인 연구비가 있다는 이유로 선정을 탈락시키는 것은 이해되지 않았다.
이해하려고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논문을 써서 400만원의 인센티브를 지원받아야겠다고 다짐했다.
4-4.
연구비는 실험에 필요한 각종 재료를 구매할 수 있는 연구재료비와 실험 데이터 분석비, 회의비 등 연구운영비로 지출할 수 있는 항목으로 나누어져 있다.
연구비를 지원받은 후로 다양한 말을 듣는데, 대표적인 예로는 ‘회의비로 쓸 수 있는 게 많아서 여유로워졌겠다. 재료비로 재료 사면 수업에 필요한 것들도 구매할 수 있으니, 학교에서 지원하는 재료비는 안 써도 되겠다.’ 등이 있다. 차라리 이런 말들은 직접 해주시니 오히려 괜찮다.
내가 없는 자리에서는 ‘OOO 교수가 연구비 얼마 지원받았다고 하던데, 그거 알고 있었어요?’ ‘그런 게 있으면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다 같이 해야지, 그런 건 왜 혼자 한 대요?’ 등의 말들도 오간다고 한다. 교수임에도 불구하고 타 기관에서 연구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어떤 분은 나에게 와서 이렇게 말씀하고 가셨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좀 그럴 수도 있으니까, 연구비는 지금 하는 것 하나 정도만 하는 게 좋겠어요. 혹시 다음번에도 연구비 지원 신청할 건가요? 고민해 보고 결정하면 어때요?’
교수라는 직업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연구비 지원이 이렇게나 말이 많이 오가는 일인 줄 이제 알게 되었다. 연구비 지원 못 받았으면 큰일이 날 뻔했다. 아니, 오히려 연구비를 지원받아서 이런 일들이 계속 일어나나 보다.
다음번에는 3억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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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생활을 하며 겪는 일들에 대해,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긍정적인 면을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시각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제 인생이 더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리고 저와 같은 혹은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는 분이 계시다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글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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