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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지 못한 과학자의 삶] 혼자 일하는 건 예상외로 어렵다
Bio통신원(암바사맨(필명))
예비 창업 패키지 최종보고 발표를 하고 왔다. 매출이나 고용 등의 성과가 전무했기 때문에 쓴소리를 들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예상외로 분위기가 좋았다. ‘예비’ 창업 단계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성과보다는, 내년부터 어떻게 사업을 이끌어 갈 것인지, 이를 위해서 본 사업 단계에서 목표했던 바를 얼마나 달성했는지가 주요 평가 지표였던 것 같다. 앱 기획에 대해서 좋은 평가를 받은 것 외에, 내가 계획한 사업 전반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보이는 평가위원이 있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 번 보자는 이야기를 듣고 발표 장소를 나왔다.
그리고 몇 주 뒤에 정말 연락이 왔다. 유선 상으로 간단한 소개가 오갔고, 몇 주 뒤, 소셜 벤처를 대상으로 한 투자사의 임원이라는 그분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내 사업에 대해 간단히 소개를 하고, 초대해 주신 투자사의 사업에 대한 소개를 들었다. 스타트업의 인큐베이션과 더불어 창업자들의 멘털 케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꽤 독특한 사업 아이템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어찌 보면 당연히 필요한 일인데 왜 아직 아무도 하고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사업을 준비하는 동안 초기 창업자나 소규모 자영업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가 멘털 관리라는 사실을 이미 피부로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업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나는 내내 혼자 일했다. 이렇게 온전히 혼자가 되어 일을 하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랩에서도 연구 과제를 독립적으로 수행했지만, 그래도 정기적인 랩미팅과 잦은 디스커션이 있었다. 연구 내적이든, 외적이든, 막막하거나 답답할 때 물어보고 의견을 나눌 사람이 언제나 있었다. 전적으로 혼자서 사업을 준비하는 동안 느꼈던 외로움과 막막함은 학위 과정 동안 느꼈던 것과는 장르가 다른 느낌이었다. (어느 것이 더하고 덜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둘은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 없다.)
사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예비창업패키지에 함께 선정된 대표들과 다 같이 모이는 자리가 종종 생긴다. 거기서 알게 된 맘 맞는 대표 몇몇 과는 계속해서 연락을 하고 지냈다. 원래의 내 성격이면 하지 않을 일이었다. 만나면 지원 사업에 대한 이야기나 각자의 일에 대한 이야기가 대화의 대부분이다. 각자의 사업에 대한 조언도 받는다. 어느 정도는 위안이 되기도 하지만, 결국 한계가 있다. 같은 업계의 대표를 만난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회사를 다닐 때에 지겹도록 하던 ‘업무 디스커션’이 불가하다. 랩미팅이나 저널 미팅, 디스커션이 전혀 없이 전적으로 혼자서 논문 한 편을 써 나가는 것과 비슷한 막막함이랄까.
나는 이 문제를 외주 용역을 통해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다. 나의 경우에 있어서 외주의 존재는 마치 혼자서 운영하던 랩에 유능한 포닥들을 고용한 것과 비슷했다. 단순히 요청한 사항들을 처리하는 것이 그들의 일이었지만, 우리는 프로젝트 자체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기도 했다.
‘모바일 앱’이라는 사업 아이템에 있어서도 그들이 나보다 더 전문가였으며, 내 사업 전반의 주제가 ‘우울증’이라는 보편적인 감정이었기 때문에 외주를 진행한 업체의 직원들로부터 개발 외적인 부분에 대해서 각자의 경험이나 의견 등을 들을 수가 있었다. 한 번씩 일의 진행 상황에 대해서 공유하는 자리가 있었다. 끝나면 함께 식사를 했는데, 그 자리에서는 개발 외적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는지와는 별개로, 타깃을 정하고 홍보 마케팅 전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꽤 숨통이 트였다.
무엇보다도 내 머릿속에서 생각으로만 빙빙 돌고 있어서 제대로 형태를 파악할 수 없었던 아이디어들을 입 밖으로 꺼내서 타인에게 설명하고 이해시켜야 하는 상황이 된 덕분에 내가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게다가 그들은 지적과 질문을 통해서 나에게 숙제까지 내주었다. 그런 건 나 혼자서는 생각해내지 못했을 문제들이다.
일련의 이러한 경험들이 참 귀했다. 슬랙으로 업무의 진행 상황을 수시로 공유하던 것도, 또 그들에게 뭔가를 전달해야 하는 나의 마감일이 있었던 것도 일이 늘어지지 않도록 속도를 내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일방적으로 요구하고 서비스를 받기만 하는 입장이 아니라, 그들의 업무 진행을 위해서 내 쪽에서 제공해야 하는 요소들이 있었다. 그래서 일정을 함께 조율했다. 그리고는 일을 하기 싫어서 뭉그적거리다가, 약속한 날이 다가오면 부랴부랴 준비해서 보내기도 했다. 그런 한심한 상황에서도 나는 왠지 회사에 다닐 때 팀으로 일했던 때의 기분이 생각나서 그 은근한 긴장감, 심리적인 쪼임을 즐기기까지 했다.
외주 용역 업체를 선택하는 데에 있어서 고민하는 대표님들이 조언을 물어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나는 그럴 때, 업체 선정을 위한 기술적인 요소들과 더불어 이런 부분들을 더욱 강조해서 얘기했다. 예비 창업 단계의 대표들이란 대부분 혼자서 일하는 사람들이고 내가 느꼈던 어떤 외로움과 막막함을 비슷비슷하게 느끼고 있을 터였다. 그래서 외주 업체를 구할 때에, 잘 알려진 기준들 외에 고려해 봄직한 부분으로 이 이야기를 하면 대단히 반가워하면서 어디서 들어본 적 없는 조언이라고 기뻐했다.
내가 내내 실패의 경험이라고 생각했던 학위 과정 이후의 회사 생활이 결국은 나에게 전화위복이 된 것 같다. 특히나 B2B, B2C, 한국 회사, MNC 등 다양한 형태의 사업부에 대한 경험이 있었던 것이 사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사고의 틀을 넓히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박사 학위를 받고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친구들에게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사기업에서의 경험을 추천하기도 한다. 만약, 연구원으로 일을 하더라도, 연구부서 외의 타 부서 사람들과 교류를 하는 게 훗날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박사의 학문적 성취는 아주 좁고 깊다고들 하는데, 나는 그것이 비단 학문적인 부분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당장은 계속해서 연구에 매진하기로 마음을 먹었어도, 이따금은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사귀어 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앞으로의 계획이나 인생이 어떻게 바뀔지는 알 수 없고, 제아무리 유능한 사람이어도 혼자서 시장조사, 상품 기획, 연구 개발, 생산, 마케팅, 브랜딩, 영업, 물류, 수출 등의 과정을 다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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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생물을 좋아했습니다. 연구자가 되는 것이 평생의 꿈이었습니다. 목표로 하던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연구를 계속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던 상황에서 궁여지책으로 시작한 영업직이 의외로 적성에 잘 맞았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방향의 삶을 통해, 학위 기간의 상처를 회복해 가며 창업에까지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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