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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생물학을 만나다] 원시 지구는 초록색이 아닌 보라색이었다?
Bio통신원(김동석)
그림 1. 현재 지구의 모습 (출처: Pixabay)과 원시 지구의 예상 모습
1977년 태양계의 행성들을 탐사하기 위해 발사된 보이저 1호는 태양계의 궤도에서 벗어나기 직전, 칼 세이건의 아이디어로 마지막으로 고개를 돌려 지구의 모습을 촬영하였습니다. 그리고 칼 세이건은 그러한 지구의 모습을 보며, “창백한 푸른 점 (Pale Blue Dot)”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득 드는 궁금증이 있었습니다. 혹시 원시 지구도 지금과 같은 색깔이었을까요?
지구의 모습을 떠올려보라고 하면, 보통 푸른색의 바다와 흰색의 구름, 그리고 녹색을 띠는 대륙으로 이루어진 정말 아름다운 모습을 떠올릴 것입니다 (그림 1, 왼쪽 그림). 하지만,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아주 먼 옛날, 원시 지구는 녹색이 아닌 보라색이었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이번 연재에서는 저명한 우주생물학자인 Shiladitya Dassarma가 제시한 보라색 지구 가설 (Purple Earth Hypothesis)에 대해서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림 2. 빛의 파장과 에너지
오늘날 지구의 환경에서는 바다에서 육지로 갈수록 녹색을 띠는 광합성 생물들이 주된 분포를 이룹니다. 이러한 생물들이 가진 엽록소라는 광합성 색소가 청색광과 적색광을 흡수하여 광합성에 이용하고 녹색광을 반사하기 때문에 녹색을 띠게 되는 것이죠.
중고등학교 과학 시간에 배운 내용을 다시 기억해 봅시다. 빛은 파장이 짧아질수록 에너지가 커지고, 반대로 파장이 길어질수록 에너지가 작아집니다 (그림 2). 즉, 우리가 눈으로 인지할 수 있는 가시광선의 영역에서는 파장이 가장 짧은 보라색 빛이 가장 강한 에너지를 가지고, 파장이 가장 긴 빨간색 빛이 가장 약한 에너지를 가진다고 할 수 있죠. 또한, 눈으로 인지할 수 없는 가시광선 바깥의 빛 중에서는 감마선-헐크를 탄생시킨 빛-이 가장 파장이 짧고, 에너지가 높습니다. 그렇다면, 에너지의 측면에서만 보자면, 에너지가 약한 빛은 반사하고, 에너지가 강한 빛을 광합성에 쓰는 게 좋지 않을까요? 청색광보다 자색광이, 가시광선보다 자외선이, 자외선보다 X선이 더 강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데 왜 그런 빛을 광합성에 사용하지 않고, 엽록소는 적색광과 청색광 위주로 흡수하게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그 에너지가 식물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강하기 때문입니다. 에너지가 강한 만큼 방출되는 열도 많아지는데, 이러한 열이 식물의 단백질 혹은 유전물질을 변성시켜 생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파장이 짧은 청색광과 파장이 긴 적색광의 조합이 현재 지구의 환경에서 광합성에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에 이에 맞는 광합성 색소를 가진 종들만 현재 살아남았을 수도 있습니다. 엽록소가 왜 청색광을 흡수하는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초기 광합성 생물들은 모두 바다에 있었는데, 어떠한 빛이 든 잘 투과되는 얕은 바닷가와는 달리, 깊은 바다에서는 에너지가 낮은 적색광은 투과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깊은 바다에 사는 광합성 생물들은 청색광(엽록소가 흡수)과 녹색광(피코에리트린이 흡수)을 흡수하는 색소를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육지와 달리 바다에서는 녹색 광합성 색소인 엽록소와 적색 광합성 색소인 피코에리트린을 모두 가지고 있는 시아노박테리아와 홍조류가 대부분의 생태계를 차지합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엽록소는 녹색을 반사하는 것일까요? 여기에서 앞에서 언급한 보라색 지구 가설(Purple earth hypothesis)이 등장합니다. 지구상에 엽록소를 가진 광합성 생물들이 등장하기 이전에, 녹색광을 주로 흡수하고 청색광과 적색광을 반사해 보라색을 띠는 광합성 생물들이 있었을 것이라는 가설입니다. 이 가설에 따르면, 이러한 보라색 광합성 생물들은 엽록소나 카로티노이드가 아닌 보라색을 띠는 레티날(retinal)을 이용했을 것이라 추측되고 있습니다. 레티날은 엽록소와는 달리 무산소 조건에서도 합성이 가능하고, 구조가 단순하여 산소가 존재하지 않던 원시 지구에 최초로 등장한 광합성 색소로 여겨집니다. 현재도 염분이 매우 높거나 무산소 환경과 같이 대부분의 생물이 살 수 없는 지역에서 발견되는 세균 중에는 이러한 레티날에 의해 보라색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이 존재합니다 (그림 3).
그림 3. 보라색 미생물에 의해 보랏빛을 띠는 고염도의 호수 (출처: Shiladitya et al., 2018)
이러한 보라색 지구 가설이 정말 맞는다면, 보라색 세균 이후에 발생하여 이들과 경쟁해야 했을 호기성 광합성 생물은 기존의 세균과 다른 파장의 빛을 흡수하는 개체들이 경쟁 및 생존에 유리했고, 진화에서 살아남았을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경쟁을 피해, 서로 다른 파장의 빛이 투과되는 수심에 터전을 잡았을 수도 있습니다. 즉, 보라색 세균은 주로 녹색광을 흡수했으니 엽록소는 녹색광을 피해 청색광과 적색광을 흡수하는 방향으로 진화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호기성 광합성 생물들이 번성하여 지구에 산소가 많아지고, 그에 따라 보라색 세균보다 초록색 생물이 훨씬 많아지게 되어 지금의 녹색 지구가 되었을 것이라는 것이 이 가설에서 주장하는 내용입니다. 이 보라색 지구는 현재 완벽하게 검증되지는 않은 가설 단계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여러 극한 환경에서 발견되는 보라색 세균과 그리고 원시 지구가 혐기성 조건이었다는 사실은 이러한 가설이 제시하는 이야기가 충분히 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주생물학에서 이 보라색 지구 가설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우주에서 생명체를 찾을 때 행성의 색깔도 보기 때문입니다. 우주생물학에는, 우주 탐사선 및 우주 망원경의 고성능 센서를 이용하여 행성의 특성을 분석하는 분야가 있습니다. 이 분야가 분석하는 행성의 특성 중 하나는 행성이 반사하는 빛의 파장대, 즉 행성이 어떤 색을 띠는가입니다. 보라색 지구 가설이 맞는다면 우리는 앞으로 이 가설에서 제시한 가능성을 토대로, 생명체가 존재할 수도 있는 행성을 찾을 때 청색, 녹색뿐 아니라 보라색도 추가해야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혹시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서는, 또 다른 칼 세이건이 자신이 사는 행성을 보며, 이렇게 말했을 수도 있습니다.
"저 창백한 보라색 점이 우리가 살고 있는 행성입니다!”
[출처]
1. DasSarma, Shiladitya, and Edward W. Schwieterman. "Early evolution of purple retinal pigments on Earth and implications for exoplanet biosignatures." International Journal of Astrobiology 20.3 (2021): 24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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