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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 제약업계 직장인의 고군분투] 직장 상사 어떤 분까지 만나 봤니?
Bio통신원(김루이(필명))
회사 생활을 하면서 아주 많은 상사들을 만나게 된다. 이번 편에서는 회사에서 만났던 전형적인 패턴의 두 상사를 소개하도록 하겠다.
A 제약회사에 근무했을 때, “이 상무님”이 있었다.
그분의 특징은 보고시간에 매번 졸음이 오시는지, 보고하고 있는 사람 앞에서 민망하게도 고개가 뚝뚝 떨어지신다. 그리고 스르르 잠이 든다.
처음에는 그 모습을 보고, 고등학교 때 여러 선생님께 참 많이 미안했다.
“교단 앞에서 조는 학생을 보는 기분이 이런 느낌이겠구나” 싶다. 앞에서 보고를 드리는 나는, 내 눈을 어디로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가고 잠이 깨시길 바랄 뿐이다.
이 상무님은 아침에 매우 일찍 출근을 하시는데, 이렇게 근무시간에 졸면, 아침 일찍 나오시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참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 상무님의 또 다른 특징은 의사결정을 직접 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항상 방대한 정보와 자료를 요구하셨고, 그것은 아랫사람에게 고스란히 “삽질”이라는 형태로 내려오게 된다. 그렇게 방대한 자료를 정리하게 한 후, 그는 심사숙고하시기만 하시고, 결국 아무 말씀이 없다. 본인 스스로 결정하지 않는 것이, 어쩌면 그분의 생존전략일 지도 모른다. 최대한 몸을 아끼고 항상 방어자세를 취하며 risk-taking을 하지 않는 그는, 공격적인 다른 임원들에게 경쟁상대로 보이지 않았다. “모난 놈이 정 맞는다”라고, 이 분은 절대 모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매년 인사 칼바람에서도 무사히 아주 오랫동안 임원자리를 지키셨다.
그렇다면, 이 상무님은 주로 어떤 일에 집중하시는가? 그는 연구소의 “큰 그림”을 그리시고, “스토리텔링”에 집중하는 편이다. “삽질” 속에서 나오는 힌트들을 가지고, 큰 그림과 스토리를 만드는데 그게 잘 안 나오면 아랫사람을 달달 볶으신다. 본인이 생각했던 이야기를 만들어내려고 하신다. 실제 필드에서 일어나는 일을 잘 모르시기 때문에 “스토리”는 자주 “소설”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반전은 이 상무님은 “나와 꽤 잘 맞는 상사였다”는 것이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여기서 양해를 구할 것은 상사와 “잘 맞았다”라는 것은 단지 “참을 만했다”라는 의미로 해석해주시길 바란다. 한국사회에서 어느 상사가 부하직원과 잘 맞겠는가, 그것은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이다. 아니면 위아래 서열이 없는 서양에서나 가능한 이야기 일지도 모른다.
이분이 꽤 참을 만했던(나와 잘 맞았던)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역량이 “별로”였고, 그분의 역량도 “별로”였기 때문이다. 아주 우수한 상사와 일하면 많은 것을 배웠겠지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아주 우수한 사람들 앞에서는 주눅이 드는 경향이 있었다. 유능한 상사와 업무를 하게 되면, 스스로 바보 같아 보이고, 나의 단점만 두드러져 보였다. 그래서 나는 적당히 무능한 상사와 잘 맞는 사람임을 스스로 알고 있다.
사실 이 상무님의 삽질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백과사전을 다 가져다 요약 정리해야 하는 수준인데, 나는 그것이 그리 싫지만은 않았다. 이렇게 삽질과 “상사 과외 수업”만 하고도 월급이 꼬박꼬박 나온다는 생각에 “이런 꿀보직이 또 어디 있겠나”라는 생각마저 했었다. 나는 유능하고 강한 상사보다는 어쩌면 우유부단하고 모나지 않고 부드러운 상사가 잘 맞았다. 하지만, 이런 분 밑에서는 역량이 개발될 리가 만무하다. 그냥 그의 밑에서 삽질에 길들여져 안락했고, 편안했다. 나는 이분과 오랫동안 함께 직장생활을 했는데, 이분이 결국 회사와 재계약이 안되면서, 퇴사하셨고, 나는 지붕이 사라진 “고아”가 되어 매서운 한파를 맞게 된다. (이 이야기는 다음 편에 이어짐)
사실, 이분 때문에 이직을 한 동료들도 상당히 많았다. 그런 분들 중에는 “이 상무님은 너무 답답하다. 백과사전 요약은 이제 그만하고 싶다. 일 다운 일을 찾아 떠난다. 필드에서 필요한 일을 하고 싶다” 등등 하소연들이 다양했다.
그중 한 동료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에서 이분을 맞출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어?”, “우리 김연구원님은 인성이 갑이야. 어쩜 그렇게 저분을 잘 맞춰”
떠나는 동료는 나에게 농담 반, 진담 반 이런 말씀을 하셨고, 이 말이 칭찬인지 욕인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자! 이제, 두 번째 상사를 소개하겠다. 이 분은 B 제약 회사의 김 전무 님이시다. 이분은 신약분야에 대해서는 유능한 분이고, 아침 일찍 또는 저녁 늦게까지 회사에 있으면서 시차가 다른 미국의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현재의 연구 동향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는 일도 자주 하셨다.
이분은 사람들을 장악하는 성격이었고, 말을 잘 안 듣는 아랫사람을 어떻게 굴복시키는지 매우 잘 알고 계셨다. 말을 매우 거칠게 하시고, 상대방 신상을 털어 약점을 알아내고, 이를 이용하여 인신공격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소위 말하는 “카리스마가 철철 넘치는 스타일”이었다. 나는 이분 앞에만 서면, 사자 앞에 토끼가 되어 버린다. 면담을 하는 날이면, 이분이 나를 잡아먹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항상 나의 생각이나 행동에 대해서 비난을 했기 때문에, 나는 자존감이 무너졌고, 스스로에 대한 확신도 떨어졌다. 그분의 기준에 맞추려고 노력하였으나 도저히 도달할 수 없었다.
한 번은 아이디어 미팅을 하는데, 연구원들끼리 돌아가면서 발표할 일이 있었다. 대뜸 발표자에게 욕을 섞어하던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아니 저 Shake-it는 지금까지 한 건도 아이디어가 없었다가, 오늘 4개나 발표를 한다고, 근데 저 아이디어가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이 Shake-it야”
나는 그 순간, 정신적인 충격에, 말문이 막혔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앗! 여긴 지옥이야.”
“학교에서 호랑이 같던 교수님을 피해서 회사에 왔건만, 회사에는 저 저승사자가 있구나”
매일매일이 살얼음판 걷는 기분이거나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으로 출근을 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
이런 계속된 힘든 시간들 속에서 행운은 갑자기 찾아왔다. 이 분이 너무 유능하다 보니, 승진을 하셔서 부사장님이 되셨다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연구소와의 접점이 없어졌다. 나는 드디어 이 지옥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대부분의 연구원들은 환호했다. 화장실에 다 같이 조용히 숨어서 서로를 위로하며 행복해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너무나 신기하게도 이분을 따라간 연구원이 꽤 많았다는 것이다!!!
이분이랑 잘 맞았던 동료들이 있다니, 좀 놀라웠다. 그 이후로도 부사장님은 나날이 승승장구하셨고, 회사에 사장님이 되어, 여전히 잘 지내고 계신다. 그분을 따라갔던 동료들도 대부분 임원 승진을 했다. 역시, 보스 기질이 어디로 가겠는가? 본인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성과를 몰아주고, 승진을 시켜 주셨다. 이 분에게 “욕은 곧 사랑의 언어”일지도 모르겠다. 사장님이 되신 후, 비영리 활동도 많이 하시고 인터뷰도 많이 하시며, 언론에서도 자주 나가신다. 아무쪼록 국내 바이오 업계가 발전될 수 있도록 많은 기여를 기대해 본다.
결론은 간단하다. 결국 “자기와 맞는 보스는 각자 다르다”는 것이다.
직장인들은 일 때문에 퇴사하기보다는 인간관계 때문에 퇴사한다는 말이 있다. 그 인간관계 중 대부분이 상사와의 관계이다. 나는 여러 상사들을 만나다 보니, 이제 어떤 성격이 나와 맞을지 판단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설사 나와 잘 안 맞더라도 크게 자존감이 무너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 관계의 문제가 내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좋은 상사, 나쁜 상사가 있다기보다는, 나와 잘 맞느냐 내가 참을 만하느냐가 기준이 아닐까 한다.
아무쪼록 독자분들도 잘 맞는 상사를 만나, 즐거운 직장생활을 해 가길 바란다. 앞으로도 쭉~~.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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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대부분 박사와 Post-doc을 마치고, 대학에서 자리를 잡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산업계로의 진출하려는 사람이 별로 많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 교수 임용이 매우 어려워졌고, 그래서 그런지 산업계로도 진출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산업계 입장에서는 좋은 인력이 많이 유입되는 것은 상당히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국내 바이오 제약 분야가 워낙 Job market 이 작고, 업계 종사자 수가 적은 분야라서, 진입장벽이 상당히 크다. 또한, 진입을 했더라도, 연구단계에서부터 제품생산까지 기간이 매우 오래 걸리기 때문에, 전체 업무사이클에 대한 역량을 쌓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필자가 실제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도움이 될 만한 선배를 찾기가 쉽지 않았고,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혼자서 고군분투했던 것 같다. 이 글은 직장 내에서 겪었던 크고 작은 에피소드로 구성되었다. 성취했던 일들과 힘들었던 일들을 모두 포함시켰다. 아직 취업을 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회사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대략적으로 알 수 있을 것이고, 업계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에게는 본인의 회사에서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을지도 모른다. 아무쪼록 이글이 많은 바이오 제약 업계 관련인들에게 간접적으로 경력 개발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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