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를 하기 위해 RFP를 작성해서 과제를 제출하고 최종 선정이 되었다면 이제 과제 내용 수행과 함께 연구비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2021년 국가연구개발혁신법이 시행되면서 연구비 행정 처리에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혁신법 제정 이전에는 연구비 집행 항목에 따라 예상 지출 내역을 작성할 때 필요한 시약 품목명이나 수량도 기입했었다. 과제 계획서에 없는 장비를 구입하는 것도 불가능했고, 시험 분석료 지급에 대한 기준도 모호했기 때문에 추후 정산 시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려면 과제 주관기관에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연구비 정산도 총 과제 기간과 상관없이 매년 실시됐고, 주관 기관별 전산 시스템도 달라서 여러 개의 과제를 진행하는 경우 소속 기관 연구 지원 시스템과 별도로 해당 시스템별로 업로드를 해왔다.
학교나 기관별로 연구 지원팀이 있기는 하지만 수시로 사용하는 소모품부터 시약까지 비교 견적을 받아서 랩 별로 주문하고 연구비 사용 내역을 일일이 입력하기엔 인력도 부족하고 효율도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각 구성원들이 나눠서 행정일을 떠맡아 왔다. 물론 많진 않지만 연구비가 넉넉한 랩에서는 행정만 하는 연구원을 따로 충원해서 운영하기도 하고 신생 랩에서는 책임 연구원이 연구비 관련 행정을 직접 하기도 했다. 책임 연구원이 해야 하는 주 업무가 연구 행정과 연구비 수주와 같은 연구 이외의 것이 되면서 연구에 집중할 수 없는 시스템이라는 불만도 있었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해 나가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현 직장에서 근무한 지 올해로 16년째지만 고작 4년 전에 혁신법이 시행되면서 신세계를 경험 중이니 말이다. 이제 연구비 항목은 크게 연구 장비재료비, 활동비, 인건비 등으로만 나누고 세부적인 항목은 필요에 따라 공문이나 내부 결재를 통해 집행할 수 있게 됐다. 비교적 금액이 큰 장비도 연구비만 넉넉하다면 연구 재료비에서 집행이 가능하고 총 연구 기간과 별도로 연단위로 책정된 연구비를 이월할 수 없었던 이전과 달리 다음 연도로 이월이 가능하게 된 것도 혁신적이다. 총연구비의 최소 인건비 책정 기준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연구비 항목별 부족하거나 남는 금액을 이동하는 것도 수월 해졌다. 기존에 흩어져 있던 연구비 관리 시스템도 범부처 연구비통합관리시스템 (GAIA)을 중심으로 17개 부처별로 운영하던 연구비관리시스템을 Ezbaro와 RCMS 2개로 통합하여 운영하는 체제로 바뀌었다.
최근에는 기관별 연구비 시스템을 통합 시스템과 바로 연결할 수 있도록 개편하는 추세이기도 하다. 시스템 개발에도 많은 돈이 들기 때문에 기껏 만들어서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하고 오히려 번거로워지는 불상사가 생겨서는 안 되기 때문에 시스템 전환 과정에서 실제 사용자들의 편의성과 기존 시스템과의 호환성을 반영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소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번 원고를 작성하면서 그동안 궁금했지만 제대로 찾아보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기관 내 연구비를 제외하고 수탁 과제 연구비에만 있는 간접비 항목의 용도에 대한 궁금증이 항상 있었다. 국가연구개발사업 연구개발비 사용 기준법에 보면 간접비의 용도가 설명되어 있는데, 간접비는 인력지원비, 연구지원비, 성과활용지원비로 사용할 수 있다고 되어있다. 간접비 비율은 각 기관이나 대학별로 다르지만 최소 직접비의 17%부터 25%까지 책정된다. 연구비 금액이 클수록 간접비 금액도 클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용도에 대해 궁금하기도 하고 연구비는 항상 빠듯하기 때문에 아깝기도 하고 그런 느낌이었다. 간접비는 각 과제에 대한 직접비의 일부분을 소속 기관에서 가져가기 때문에 실제 사용한 연구비 정산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과제 종료 시 간접비에 대한 결산 내역은 소속 기관에서 수탁기관에 제출하는 건지도 궁금해졌다.
국가연구개발사업 기관별 간접비 계상기준에 보면 ‘제5조(간접비 결산자료 요구 등)① 다음연도 연구기관별 간접비 비율 산출의 기초자료 등으로 활용하기 위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은 각 기관에 간접비 결산내역 자료를 요구할 수 있다. ②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은 다른 중앙행정기관의 장의 요구가 있는 경우 제1항에 따른 각 기관의 간접비 결산내역을 제공하여야 한다’고 되어있다. 실제 모든 간접비에 대한 결산내역이 주관 기관에 제공되는지는 알 수 없고, 용도대로 사용은 되고 있는지, 지급받은 간접비가 남았을 때는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지만 이번 기회에 어찌 됐는 용도에 대한 한 가지 궁금증은 해결되어서 나름 뿌듯하다.
혁신법이 시행된 이후로 많은 부분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보완되어야 하는 부분도 분명 있다. 비임상이나 임상 관련 과제의 경우 한 번에 지출되는 금액도 크고 과제 기간이 3년에서 5년 정도로 길기 때문에 연구비 정산을 과제 종료 시기에 맞춰 한꺼번에 하는 경우 어려움이 있다. 이 부분은 주관 기관에 따라 회계법인을 통해 중간 점검을 하는 보완책도 마련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최종 정산을 하는 회계법인에 따라 요구하는 내용도 다르기 때문에 연구비 정산하는 해는 항상 긴장의 연속이다. 또 연구비 집행에 있어서 큰 틀은 주관 기관의 규정을 따른다고 하지만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종종 내부 규정에 의해 집행 가능하다는 모호한 말은 연구 행정을 하는 입장에서는 참 난감하기만 하다 (규정집의 내용은 한글이지만 그 뜻을 헤아릴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 이월된 전년도 연구비 잔액을 당해 연구비와 합산하여 신청을 했는데 시스템 문제로 이월금만큼 초과 사용되었던 경우가 있었다. 다행히 계속 과제라 당해연도 재료비에서 충당할 수는 있었지만 여러 부서에서 이 문제를 서로 떠넘기느라 수습하기 힘들었던 기억도 있다.
최근에 국가연구개발혁신법에 관한 인식 설문조사를 시행했는데 나름 성심껏 설문에 답을 했다. 아주 미약하나마 분명히 좋아지고 있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대부분 일들이 그렇겠지만 효율적인 시스템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가면서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실무자들의 의견을 가장 많이 듣고 최대한 반영하는 것이다. 시스템을 만드는 사람들과 실제 사용하는 사람들 간의 소통을 통해 간극을 줄여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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