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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박사 일지] #05. 석박통합 3년 차 - 논문은 무엇으로 쓰는가
Bio통신원(만다린)
논문은 연구자라면 피할 수 없는 과업이지만, 많은 연구자들의 기여와 시행착오가 없다면 만들어질 수 없는 실험실의 진주와도 같은 것이다. 만일 논문이라는 형식이 없었다면 많은 과학적 발견들은 세상으로 나오지 못하고 실험실에만 갇혀있었을 것이고, 필연적으로 과학의 발전은 더딜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문명이 지금처럼 발달하기 이전에도 연구자들은 있었다. 아마 당시 연구자들은 논문 한 편을 읽기 위하여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했을 것이다. 현재 우리는 지구 반대편에서 진행되고 있는 수많은 연구 결과들을 담은 논문을 실시간으로, 그것도 앉은자리에서 클릭 한 번으로 손쉽게 찾아 다운로드해 읽어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덕분에 이공계 연구자들은 본인의 분야에서 현안이 되고 있는 과학적 궁금증과 연구의 필요성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이전보다 더 쉽게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이공계 종사자가 아닌 일반인들에게도 논문에 대한 접근성이 매우 높아졌다. 뉴스나 건강 프로그램에서도 논문 내용을 제시하며 정보 전달의 신뢰성을 확보하고, 유투버들 또한 이러한 목적으로 자신의 영상 내용을 뒷받침할 수 있는 논문을 발췌하여 영상에 담아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는’ 논문을 써내는 것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연구자들이 반드시 갖춰야 할 직업의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문명 발달의 혜택으로 인하여 연구자들은 논문을 쉽게 접할 수 있을 뿐 만 아니라, 논문을 쉽게 쓰는 방법에 대한 다양한 노하우들을 쉽게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많은 연구자들은 자신이 겪은 시행착오로 만들어낸 논문 작성에 대한 노하우들을 글, 영상 등의 매체를 통해 기꺼이 주고받으며 선순환을 만들어내고 있다. (1-7)
나 또한 이전 연재에서 논문을 잘 쓰기 위해서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들에 대한 견해를 공유하기도 했다. (8) 이 글에서 마치 처음부터 논문을 쉽게 썼던 것처럼 조언을 늘어놓았지만, 나의 첫 논문은 3년 차가 되어서야 빛을 보았다. 물론, 분야의 특성이나 연구의 규모에 따라서 어떤 이들은 1년 만에도 논문을 투고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4년이 넘도록 데이터를 모아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나의 첫 논문이 늦은 성과였는지를 가리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일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2년 차가 되어서야 첫 논문을 위한 나의 실험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연구실의 특성상, 입학 후 저년 차에는 교수님께서 할당해 주시는 연구과제를 선배님, 또는 박사 후 연구원님과 함께 수행하며 배우는 시간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독립적인 연구과제를 진행할 수 있었다.
당시 나는 함께 입학한 다른 연구실 동기들이 자신의 연구과제를 시작하는 모습을 보며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박사 후 연구원으로 연구하고 있는 지금 돌이켜보면, 실험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논문을 게재할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긴 훈련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배웠기에 늦은 출발이었지만 빠른 마무리를 할 수 있었을까?
► 논문의 육하원칙
Image by Gerd Altmann from Pixabay
본격적인 나의 연구를 계획하기 전에 가졌던 많은 시간 동안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가능한 많은 논문들을 읽는 것이었다. 많은 연구실에서 처음 입학한 신입생에게 강조되는 것은 논문을 많이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일이다. 수많은 논문들을 읽은 덕분에 나는 논문의 짜임새를 익힐 수 있었고, 논문의 육하원칙을 배웠다. 흔히 기사 작성의 6가지 필수 조건으로 언급되는 육하원칙은 논문 작성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기사가 사실 전달을 위해서 작성된다는 점에서 논문과 작성 목적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왜. 그중 “누가, 언제, 어디서”는 각각 “저자, 발간일/시료수집일, 소속기관”으로 대응시킬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논문 안에 남은 세 가지인 “무엇을, 어떻게, 왜”에 대한 답을 담아야 한다. 흔히 ‘무엇을’에 해당하는 연구 대상과 ‘어떻게’에 해당하는 실험 방법, 그리고 그로 인한 결과를 서술하는 것은 비교적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왜’에 대한 내용은 논문 작성과정에서 간과하기 쉬우며, 논문을 작성하기 전 실험 계획 단계에서부터 염두해 두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일련의 실험과정과 결과를 토대로 검증하고자 하는 주장, 가설이 바로 ‘왜’에 해당하는 것이다. 가설이 튼튼하게 세워져야 그에 대한 검증도 튼튼하게 쌓아 올릴 수 있다.
► 논문은 퇴고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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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서사를 담은 문학이나 역사, 방대한 정보를 담는 이론서적, 사회현상들과 그에 대한 비판들을 담아낸 비문학 서적과는 다르게, 논문은 단 몇 장의 종이 안에 담겨있다. 하지만 논문의 분량이 적다고 해서 연구자들의 노력도 적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한 가지 현상을 발견하기 위해 거쳐온 기나긴 과정을 모두 담아낼 수 있다면 책 한 권도 쓸 수 있겠지만, 논문에는 분량의 제한이 존재하기 때문에, 수많은 과정들 중 뼈대를 이루는 핵심 결과들만을 뽑아내어 간결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작성해야 한다. 즉, 제한된 분량 안에서 연구 과정과 결과를 풀어내고 정리하여 독자들을 설득하는 것이 논문의 목적이다. 때문에 논문을 작성할 때에는 많은 부분이 생략되고 함축되어 쓰이기 때문에 지식의 저주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자신이 써 내려간 내용을 읽어 내려가며 논문을 읽는 과정에서 독자가 길을 잃어버리지는 않을지, 의문을 가질만한 부분은 없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며 퇴고에 퇴고를 거듭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발견된 논리적 비약이나 허점을 채우기 위한 새로운 실험을 디자인하고 결과를 내기도 한다. 논문 투고 후 거치게 되는 Peer review 과정도 이러한 퇴고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의 입장에서 놓칠 수 있는 논리적 비약을 첫 독자들인 리뷰어로부터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이처럼 논문은 모든 글이 그러하듯 퇴고하는 과정에서 더욱 탄탄해진다.
► 논문은 무엇으로 쓰는가? (What is the paper written in)
논문은 열정만으로는 쓸 수 없다. 넘치는 열정으로 연구에 임하더라도 예상했던 결과와 정 반대되는 결과가 나와 당황스러워질 때도 많고, 수년동안 공들여서 진행해 온 프로젝트가 다양한 외부요인으로 인하여 무산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논문은 무엇으로 쓰는가? 나의 지도 교수님께서는 논문은 엉덩이로 쓰는 것이라고 말씀하시곤 하셨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몰입하는 것이 가설에 대한 답을 찾게 도와준다는 의미이다. 논문은 아마도 열정에 끈기와 몰입이 더해져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아직 풀리지 않은 많은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엉덩이를 뗄 새 없이 실험하고 논문을 쓰는 많은 연구자들의 노력으로 오늘도 과학은 발전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전 세계의 수많은 연구자들과 나란히 앉아 과학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논문은 수많은 실패를 밑거름으로 키워낸 성공이 잘 그려진 밑그림 안에 아름답게 채색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린아이들이 색칠공부를 하는 모습을 떠올려보자. 아이들은 ‘색칠하는 법’에 대한 수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인쇄된 밑그림에 색칠을 하며 손의 힘을 기르고 색감을 경험적으로 배운다. 그 과정이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은 선 밖으로 튀어나가게 색을 칠하면서도 정말 즐거워한다. 색칠을 하기 전에 몹시 긴장하거나 잘못 칠해서 그림을 망칠까 망설이지 않는다. 우리가 논문을 작성할 때도 색칠공부를 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임해 보면 어떨까. 처음에는 누구나 서툴기 때문에 자신이 세운 가설을 검증하기에는 빈틈이 많은 실험을 계획하고 정말 최선을 다해 임할 수도 있고, 결국 그 실험 결과를 논문에 사용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행착오를 거치며 점점 튼튼한 가설을 세우고 튼튼한 실험을 구상하는 방법을 배우고 논문을 쓰는 힘을 기를 수 있게 될 것이다. 색칠에도 ‘공부’가 필요한데 하물며 논문을 쓰는 것 또한 그렇지 않겠는가.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기 마련이니 하루하루 성공적인 논문을 만들기 위한 실패를 쌓아보자.
<참고자료>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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