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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후과작] 논문은 왜 형식적이어야 할까?
Bio통신원(알후과작)
들어가며
김영하 작가는 ‘형식은 굉장히 아름다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그림1. KBS 프로그램 ‘대화의 희열2’ 중). 형식이 아름다운 이유는 창작물들이 자신의 목적에 부합하기 위한 결과가 형식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단백질의 구조와 기능의 관계(Structure determines function)가 이와 유사하다 할 것입니다[1]. 창작물의 범위를 글로 제한하면 소설, 시, 수필, 기사, 시나리오, 연설문, 사설, 평론 등 목적과 이에 부합하기 위해 갖추게 된 개별 형식들을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이 중 과학논문은 다른 글들과는 구별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고유 형식을 갖춘 글입니다. 과학논문의 형식은 목적 달성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역시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과학논문 작성 실전에 앞서 과학논문의 아름다움을 이해하는 것, 즉 과학논문의 목적과 이를 반영하는 형식을 이해하는 것이 알아두면 후회 없을 과학논문 작성법(알후과작)의 핵심을 관통하는 시작점이 될 것입니다.
그림1. 김영하 작가의 말(KBS 대화의 희열2 중)
형식의 목적 - 연구 결과물의 증명수단이자 소통수단
과학논문은 형식이 강조된 보수적인 글입니다[2]. 이 보수적인 형식이 강화된 이유는 연구 결과물의 증명수단이자 소통수단이라는 과학논문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함입니다.
과학논문을 통해 연구자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주장하고 이를 증명합니다. 아직 정답이 없는 문제에 대하여 질문하고 그에 대한 자신의 답을 증명하는 글이라는 점에서 과학 논문은 증명수단입니다. 과학논문을 통해 연구자는 자신의 질문과 그 배경을 제시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과학적 방법론을 설명하며, 그 결과와 이에 대한 연구자의 해석을 주장합니다. 증명수단이라는 점에서 과학논문은 연구자의 주장과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를 쉽고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형식을 갖게 됩니다.
한편, 과학논문은 소통수단입니다. 연구자의 질문과 답을 타인들에게 전달되기 위해 작성되기 때문입니다. 소통수단이라는 점에서 과학논문은 접근하기 쉽고, 신뢰성 있으며, 기억하기 쉬운 특성을 담는 형식을 갖게 됩니다.
종합하면, 과학논문의 형식은 증명수단이라는 점에서 객관적인 과학적 방법론에 기반한 질문에 대한 저자의 주장을 증명하고, 소통수단이라는 점에서 저자의 주장을 독자들에게 전파하기 위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고도화된 결과물입니다. 그 결과 현재의 IMRaD(Introduction, Method, Result, and Discussion) 형식을 갖게 된 것입니다.
과학논문의 형식, 연구 결과의 쉬운 전달과 접근을 위한 장치
과학논문은 소통수단으로서 연구 결과의 효과적인 정보전달을 위해 형식을 고도화시켰습니다. 과학논문의 보수적인 형식에 의해 정해진 몇 가지 규정들은 초보자에게 진입장벽이 될 수도 있습니다. 논문을 처음 작성하는 사람에게 이 형식적 보수성은 낯설고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두려움은 언제나 무지에서 샘솟는다”는 말처럼(미국의 철학자 Ralph Waldo Emerson) 낯섦이 공포감으로 다가와 논문 작성을 유달리 어렵게 느껴지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규정이 있다는 점은 논문 작성을 쉽게 만들어주기 위한 장치입니다. 과학논문에서는 정해진 형식과 규칙을 준수하면 작성법으로서는 그 이상 요구하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문학에서는 다른 작가의 문체나 형식을 답습하는 것에 대하여 진부하다거나 몰개성하다는 냉랭한 비판이 따릅니다. 시청률이 높다고 하여도 클리셰(cliché)를 따른다는 비판이 익숙한 이유입니다. 심지어 문학에서는 대중적 성과가 적더라도 대담한 형식적 파괴가 예술적 찬사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과학논문에서 대담한 형식적 파괴는 출판 거절 통보로 돌아올 뿐입니다. 논문에서는 정해진 형식과 규칙만 준수한다면 더 이상의 요구가 없을뿐더러 앞서 출판된 논문들에서 수십 년간 반복된 문장, 형식, 표현, 문체를 답습하는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형식의 답습이 사람들을 위해 유익하다면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것입니다. 반면 문학 작가들은 타인뿐만 아니라 계속 자신의 앞선 문장, 형식, 표현, 문체를 뛰어넘기를 요구받습니다. 문학 작가들은 쓸 내용이 준비되어도 그 이상을 요구하는 문화로 인해 머리를 싸매겠지만, 과학자들은 ‘쓸 내용이 준비되어 있다면’* 주말 2일만 있어도 하나의 논문을 쓸 수 있기도 한 것입니다[3].
이러한 비교를 통해서, 과학논문의 보수적인 형식과 규칙은 과학논문 작성을 쉽게 만들어주는 장치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과학논문 작성에서 형식적인 것은 진부하고 나쁜 것이 아니라 아름답고 좋은 것이며, 지식의 전달을 용이하게 하고 촉진하는 유용한 장치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과학자에게 새로운 창작에 대한 고통과 부담은 ‘논문의 형식’에 있지는 않지만 대신 ‘논문의 내용’에 집중되어 있을 것입니다. ‘과학논문을 만들어 내어야 하는 고통’[4]을 담은 글에서 이 고통은 형식이 아닌 내용에 있듯이[5], 과학논문을 생산하는 고통은 실재하지만, 형식보다는 쓸 내용을 준비하는데 있다는 점을 이야기합니다.
과학논문 작성에 대한 오해 – 작가적인 부담감은 필요 없습니다
우수한 과학논문을 작성하기 위하여 우수한 문학 작가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그림2)[6]. 과학논문 작성 역시 글쓰기의 하나이기에 첫 논문 작성 전 작가적인 부담을 느낄 수 있습니다. 흔히 작가에게 요구되는 유려하고 재치 있는 문체, 언어의 맛을 살리는 표현, 창의적인 문장에 대한 부담 같은 것들입니다. 한때 글쓰기는 문과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바람이 불며 ‘이공계인들의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을 강조하고 ‘이공계 몰락의 이유를 글쓰기’에서 찾았던 이야기들은 논문에 대한 막연한 부담을 더 하기도 합니다[7]. 창의성은 연구의 내용으로서 중요한 요소이지만 과학논문 작성법, 형식 자체로서는 창의적이고 작가적인 글쓰기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림2. 과학논문에 작가적인 부담감은 필요 없습니다.
출처: 창작의 고통을 아십니까' 공모전 포스터. <칠십이초>, 시사위크
과학논문에서의 우선순위는 타인에게 연구 결과를 명료하고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과학논문 작성법에 있어서 창의성이나 개성은 오히려 방해가 될 것입니다. 과학논문의 내용이 흥미로워야 할 것이며, 형식이 흥미로워서는 곤란할 것입니다. 형식적인 개성까지도 중시하는 문학 및 다른 글들과 달리 보수적인 형식이 존재하는 과학논문은 작성하기가 훨씬 쉽다는 점을 기억하면 부담을 덜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과학논문은 접근과 전달을 쉽게 하는 방향으로 그 형식을 발전시켜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학논문의 보수적인 형식은 논문 작성을 오히려 쉽게 만들어주는 수단입니다.
과학논문, 엘리트를 위한 형식? 모두를 위한 형식?
학문적 글쓰기의 궁극적 목표가 논문 작성이고 논문의 생산과 소비가 엘리트들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은 과학논문이 어렵게 쓰여져야 될 것처럼 느껴지게 합니다. 과학논문은 권위적이고 소수 학식이 높은 엘리트들을 위한 글로 생각되어 왔고 여전히 그런 인식이 남아있기도 합니다. 최초의 과학 학술지로 알려진 ‘Philosophical Transactions of the Royal Society’는 영국과학학회에서 1665년부터 발행하기 시작하였는데, 이 학회는 소수의 귀족들로 구성된 모임이었습니다[8-9]. 초기 과학 학술지에 논문 출판을 하는 저자(Author)와 이를 읽는 독자(Reader)는 귀족이었고, 이러한 학술 행위는 귀족들의 문화생활에 해당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시대는 변하고 엘리트를 위한 학술 활동에서 모두를 위한 학술 활동으로 변하고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할 것입니다.
귀족의 시대에서 대중의 시대가 되고, 귀족들이 즐기던 문화가 대중의 문화가 되어가는 것이 시대의 흐름입니다[10]. 예술에 대하여 "예술은 대중을 위해서 만들어지지 않았다"라는 벨기에 상징주의 시인 조르주 로덴바흐의 엘리트주의적 주장[11]은 더는 유효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술의 대중화에 이어 학문의 대중화가 진행되고 있고, 최근에는 과학 대중화에 대한 논의가 증가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12-13]. 이에 과학자사회 바깥에서 과학과 과학문화를 소비하기 원하는 욕구가 강해지고 있습니다. 과학 유튜버, 과학 팟캐스트, 과학 토크쇼, 과학 시민 강좌 같은 기획이 점차 증가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14].
시대의 흐름에 따라 학술지의 잠재적 수요자의 범위가 점차 넓어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해당 분야 또는 해당 주제의 전문가만을 독자로 좁게 설정하였다면, 점차 타 분야의 전문가층과 시민 과학자를 넘어서 언론과 SNS를 통해 접할 수 있는 더 넓은 독자층을 설정하고 있습니다[15]. 더 많은 이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학술지 편집인이 바라는 바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흐름은 과학논문을 전문가를 위한 것에서 점차 모두를 위한 것으로 변경하는 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계급에 따라 한자와 한글, 라틴어와 영어를 사용하던 시대에서는 고위 계급만을 위한 특별한 형식을 지켜 형식의 장벽을 유지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이제는 형식의 장벽이 불필요합니다. 더 많은 이들이 접근하기 쉽게 쓰여진 논문이 우수한 논문입니다. 다만 접근하기 쉽게 쓰여진 글이라는 의미나 어설프다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고색창연하고 권위주의적인 문장을 만들어야 할 것 같은 부담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시대의 요구에 따라 형식이 가변적이라는 점과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논문의 본질을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연재에서는 가급적 최근의 변화를 반영하는 의견을 받아들여 과학 논문 작성법을 소개할 예정임을 알립니다.
맺으며
이 글에서는 과학논문의 목적과 형식을 다루었습니다. 과학논문의 보수적인 형식은 증명수단이자 소통수단인 논문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발전되었고, 이 형식은 논문 작성과 읽기를 쉽게 만들어주는 핵심 장치입니다. 논문 작성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공포와 걱정을 덜어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한편, 과학논문의 형식은 과학논문 특유의 동료평가(Peer review) 방식의 출판 과정을 형성하며, 이 과정에 참여하는 이해관계자들의 동기와 우선순위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연구 결과의 증명과 소통이라는 점에 집중한 이 글에서는 과학 논문을 매개로 한 저자(Author)와 독자(Reader)를 중심으로 다루었습니다. 그러나 과학논문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는 저자(Author)와 독자(Reader)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논문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에 대해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참고자료
[1] Ahern et al., 2.3: Structure & Function - Proteins I. Biochemistry Free and Easy (2015)
[2] Mack et al., How to write a good scientific paper. SPIE (2018).
[3] Peter Carr. How to Write a Paper in a Weekend (By Prof. Pete Carr). Youtube. https://youtu.be/UY7sVKJPTMA
[4] 이상경. [제 19회 카이스트 문학상] 소설 부문 심사평 (2014). http://times.kaist.ac.kr/news/articleView.html?idxno=2512&fbclid=IwAR0MBauEr-yhLsQ350ghMP1Q5EBBaLsG2LnmPjefmy8WNNADQp_uP9m0vz4
[5] 김창대. 과학 논문 작성 과정에 관한 고찰 (2014). http://times.kaist.ac.kr/news/articleView.html?idxno=2507&fbclid=IwAR0MBauEr-yhLsQ350ghMP1Q5EBBaLsG2LnmPjefmy8WNNADQp_uP9m0vz4
[6] Mensh et al., Ten simple rules for structuring papers. Plos computational biology (2017)
[7] 임재춘. 한국의 이공계는 글쓰기가 두렵다. 마이넌 (2003)
[8] Royal Society celebrates 350 years of scientific publishing. The guardian (2015). https://www.theguardian.com/science/grrlscientist/2015/mar/06/royal-society-celebrates-350-years-of-scientific-publishing
[9] 최성우. 프로보다 위대했던 아마추어들. The Science Times (2016). https://www.sciencetimes.co.kr/news/%ED%94%84%EB%A1%9C%EB%B3%B4%EB%8B%A4-%EC%9C%84%EB%8C%80%ED%96%88%EB%8D%98-%EC%95%84%EB%A7%88%EC%B6%94%EC%96%B4%EB%93%A4/
[10] 조승연. 귀족의 시대에서 대중의 시대로... 유행과 디자인이 탄생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014).
[11] 최영주. 세계의 교양을 읽는다 - 2. 인문학편. 휴머니스트(2006)
[12] 원종우. 과학 대중화는 섬세한 유혹이다. HelloDD (2015).
[13] 정재승. 과학대중화의 현실. 중앙일보 (2019)
[14] 홍성욱. 과학의 대중화와 균형감. The Science Times (2015)
[15] Gewin et al., How to write a first-class paper. Nature (2018)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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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은 연구자가 되기 위한 진입장벽이자 연구자의 정체성을 규정합니다. 연구자의 존재에서 논문을 분리하는 것이 불가하기에, 대학의 학위과정은 논문 작성법을 충실하게 교육해야 하는 당위를 가집니다. 그러나 연구중심대학에서 학위를 한 작성자는 실용적이고 정립된 논문 작성법을 배울 수 없어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지도 교수님은 논문 작성을 요구하셨고, 작성 방법을 묻는 물음에 그건 알아서 하라는 한숨을 돌려주셨습니다. 논문 작성 경험이 없는 초보자가 우수한 논문을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내용을 중심으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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