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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밖 하늘을 찾아서] 2017년 SUHF 선정자 최규하 교수 인터뷰
Bio통신원(서경배과학재단)
안녕하세요. 포항공대 생명과학과의 최규하입니다. 식물의 감수분열 중 유전체 재조합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연구합니다. 2017년 2월에 시작해서 4년이 다 되어 가네요.
연구 분야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저는 감수분열과 유전체 재조합(genomic recombination)을 연구합니다. 원하는 식물 품종을 육종하는 데 필요한 연구입니다. 성이 있는 생명체는 모두 부모의 유전체가 섞여서 태어납니다. 자손을 만들 때는 감수분열을 통해 유전체 절반을 전달합니다. 감수분열 과정 중 부모에게 받은 유전체가 섞입니다. 식물도 똑같습니다. 식물의 꽃에 있는 알세포와 꽃가루가 감수분열로 만들어집니다. 감수분열 때 유전체가 어떻게 섞이는지에 따라 다음 세대에 식물에 나오는 형질이 결정됩니다.
감수분열 중 유전체 (genome: 생물체의 유전 물질 일체) 가 섞일 때 부모의 유전자 (gene: 형질을 전달하는 기본 단위)가 많이 섞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큰 유전체 하나에 달랑 한 두 지점만 섞입니다. 그래서 육종을 해도 원하는 형질이 나오기까지 오래 걸립니다. 제 목표는 어쩌다 한 번 일어나는 재조합을 여러 번으로 늘려 육종의 효율을 높이는 것입니다.
연구실에서 재조합이 많이 일어난 돌연변이체를 확보했습니다. 이제는 어떤 유전자가 재조합을 일으키는지 연구하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재조합이 염색체 상 원하는 위치에 일어나도록 응용하고 싶습니다.
연구를 실생활에 적용한다면?
육종은 이미 생활입니다. 우리가 먹는 모든 음식은 식물에서 나옵니다. 고기도 식물을 먹어서 나오니까요. 지금 먹는 음식물은 모두 현대 기술이 만든 최고의 육종 결과입니다. 과학자, 농부, 종묘 회사들이 길게는 수백 년, 짧게는 수십 년, 적어도 10년은 걸려서 하나의 작물 품종을 만듭니다. 원하는 형질, 생산성이 높거나 병해에 강한 형질 등이 나올 때까지 교배를 반복합니다.
제가 하는 연구는 미래에 품종을 만들 기술입니다. 현대 품종은 대부분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배고픈 시절이었잖아요. 이제는 생산성보다는 맛이 좋고, 영양분도 높은 편으로 육종하는 추세입니다. 좋은 형질을 지닌 품종을 빠르게 만들기 위해서는 유전체 재조합이 한두 번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원하는 위치에 많이 일어나야 합니다. 유전체 재조합을 제어하게 된다면 품종을 만들지 못한 작물, 맛도 좋고 병충해에도 강한 농작물을 얻을 겁니다.
연구를 하며 보람을 느끼는 순간
연구의 보상은 논문이라지만, 저는 결과보다는 사소한 실험 하나하나가 잘 될 때 과학하기 잘 했다고 느낍니다. 학생들이 조그마한 데이터를 만들어서 “교수님, 결과 나왔어요!’ 하며 들고 올 때나 제 손으로 한 실험이 성공하면 기분이 좋습니다. 안 될 때는 안 됐다고 실망도 하고요. 작은 과정 하나하나가 참 좋아요.
연구 중 에피소드
과학자는 하고싶은 일을 하는 직업입니다. 스스로 만족하더라도 주변 사람들은 힘들죠. 제게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은 아내입니다. 아내를 지인 소개로 만났는데, 저에게 ‘지금 하는 연구를 좋아하냐’고 물어봤어요. 연구하면서 어떻게 먹고 살 거냐는 말이 아니라요.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저를 너무 잘 알아주어서 항상 고맙습니다.
제가 영국에서 박사 후 연구원을 6년 했습니다. 연구실과 집 사이 거리가 멀어서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했습니다. 10월이 되면 날씨가 추워서 손이 시려웠습니다. 아내가 검은 가죽장갑을 하나 사주었어요. 장갑이 생긴 다음에는 자전거를 타고도 잘 다녔습니다. 그 즈음에 실험실에서 액체질소에 식물을 넣고 갈아 DNA나 핵을 추출하는 실험을 많이 했습니다. 보통은 목장갑을 끼고 실험하는데, 아내가 사준 가죽장갑이 좋아 보여서 쓰기 시작했습니다. 보온이 잘 되었거든요. 실험을 잘 하려다 보니 막자사발을 두 번이나 깨트렸습니다. 액체 질소가 튀어도 장갑이 손을 보호해줬어요. 선물 받은 지도 10년이 다 되어갑니다. 장갑 덕분에 좋은 논문도 많이 썼어요.
지난 여름에도 그 장갑을 끼고 학생들에게 실험을 가르쳐주었습니다. 10년동안 액체질소에 닿았는데도 괜찮은 장갑이라며 자랑을 했죠. 그 때 처음으로 내피를 뒤집어봤는데, 장갑이 명품이었어요. 내가 아내가 사준 명품 장갑을 실험용으로 썼구나. 그날 밤 고해성사를 했죠. ‘네가 사준 장갑을 실험용으로 썼다. 그래도 그 장갑 덕분에 논문도 많이 쓰고 막자사발 깨졌을 때도 다치지 않았다.’ 그랬더니 아내가 퉁명스럽게 잘했다고 하더라고요.
서경배과학재단 지원 당시의 기억
박사 후 연구원 과정을 오래 하면서 늦은 나이에 교수가 되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시간이 더 오래 걸리고, 유전체 전체를 분석하기에 비용도 많이 드는 분야입니다. 이제는 제가 해내고 있으니 힘든 분야라고는 못하겠지만, 심사 받는 중에는 지원 없이는 고생할 모습이 불 보듯 뻔했어요. 발표를 하면서 제 연구는 지원 없이는 한국에선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제 딴에는 절박한 마음을 말씀드린 건데 다행히 잘 이해해주셨습니다.
재단에 하고싶은 말
서경배과학재단은 선정된 이후 지금까지 한결같이 잘해주셨습니다. 젊은 학자들이 걱정 없이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지금처럼 쭉 지원해주시길 바랍니다.
최규하교수님의 연구는 교수님(https://www.pgr.postech.ac.kr)과 서경배과학재단 홈페이지(https://www.suhf.org)에서 더 자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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