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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리포트 동향리포트
노화(Ageing)와 장수(longevity)의 멀티오믹스적 변화 및 최신 연구 동향
이혜연(인하대학교 생명과학과)
목 차
1. 서론
2. 본론
2.1. 유전체 변화: 유전적 요인과 돌연변이 축적
2.2. 전사체 변화: 유전자 발현 프로그램의 노화 양상
2.3. 단백체 변화: 단백질항상성의 상실과 바이오마커 단백질
2.4. 대사체 변화: 대사 경로의 재편성과 노화 바이오마커
2.5. 후성유전체 변화: 에피제네틱 드리프트와 시계
2.6. 마이크로바이옴 변화: 장내 미생물군과 노화의 상호작용
3. 첨단 오믹스 기술의 활용 사례
3.1. 단일세포 멀티오믹스에 의한 세포 이질성 분석
3.2. 공간 오믹스에 의한 조직 미세환경 분석
3.3. 멀티오믹스 데이터 통합과 시스템 생물학
4. 노화 억제 및 장수 유도 전략의 최신 동향
4.1. 유전자 및 분자적 조절 전략
4.2. 약물 및 화합물에 의한 노화 완화
4.3. 식이요법 및 생활습관 개입
4.4. 노화 특화 치료와 복합 전략
5. 미래 전망
6. 결론
7. 참고 문헌
1. 서론
“시간은 모든 것을 바꾼다.” — 생명체에게 시간은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잔인한 변수이다. 노화(Ageing)는 피할 수 없는 생물학적 사실이자, 인간 존재의 핵심 질문인 ‘왜 늙는가’, ‘어떻게 하면 더 오래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의 중심에 있다. 최근 10년, 생명과학은 노화 연구의 판을 바꿀 만한 기술들을 손에 넣었다. 유전체(Genome)를 넘어 전사체(Transcriptome), 단백체(Proteome), 대사체(Metabolome), 후성유전체(Epigenome), 그리고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까지, 다양한 ‘오믹스(omics)’ 정보들을 통합해 생명현상을 다층적으로 이해하려는 멀티오믹스(multi-omics) 접근이 등장한 것이다. 이 기술들은 마치 구글어스(Google Earth)처럼, 우리 몸 안에서 시간에 따라 일어나는 변화들을 입체적으로 그려낼 수 있게 해 주었다. 노화는 유전자 하나, 세포 한 종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마치 잘 짜여진 오케스트라가 조금씩 음을 잃어가듯, 생체 내 여러 계층의 조율이 점차 흐트러지는 과정이다. 따라서 노화를 이해하려면 유전자에서 세균까지, 세포에서 미세환경까지 모두를 아우르는 통합적 시각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특히 장내 미생물과 대사체는 최근 노화 연구의 핵심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장수하는 사람들의 장내 미생물 구성은 일반인과 뚜렷하게 다르며, 이들이 생성하는 대사산물이 면역과 염증, 노화, 그리고 심지어 뇌기능까지 조절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본 리포트에서는 유전체부터 마이크로바이옴까지, 각 오믹스 층위에서 노화와 장수가 어떻게 드러나는지 살펴보고, 최신 멀티오믹스 연구를 통해 노화의 생물학을 어떻게 해독하고 있는지를 정리한다.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한 노화 속도 측정 바이오마커 개발과 노화 제어 전략(유전자 조절, 약물 및 식이요법 등)의 최신 동향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노화는 더 이상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노화를 측정하고, 예측하고, 개입할 수 있는 기술을 손에 넣고 있다. 그 최전선에 있는 것이 바로 멀티오믹스 기반의 노화 연구이다.
2. 본론
노화 과정에서는 유전체에서 마이크로바이옴까지 거의 모든 분자적 계층에서 변화가 일어난다. 예컨대 100세 이상 장수인(centenarian, 센테네리안)들은 유전체의 안정성, 대사체 조성, 심지어 장내 미생물 생태계에 이르기까지, 일반적인 노화와는 다르게 흐르는 생물학적 신호를 보인다. 이는 그들이 노화에 대한 내재적 저항성 또는 보호적 특성을 지녔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본 단락에서는 유전체부터 마이크로바이옴에 이르기까지, 각 오믹스 층위에서 노화와 장수의 주요 변화를 따라가며, 노화라는 퍼즐의 조각들을 하나씩 맞춰보고자 한다.
2.1. 유전체 변화: 유전적 요인과 돌연변이 축적
노화와 수명에는 유전적 요인이 많은 부분 기여하며, 장수와 관련한 유전자도 일부 밝혀져 있다 [1].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수록 신체 세포에 체세포 돌연변이가 축적되며 게놈 불안정성이 증가하는데, 이는 암 발생 위험을 높이고 노화 표현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2, 3]. 하지만 체세포 돌연변이 축적이 노화의 원인인지 결과인지는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다. 한편, 센테네리안의 유전체를 분석한 최근 연구에서는 흥미롭게도 이들이 일반인 대비 기능상실 돌연변이(loss-of-function mutation)가 현저히 낮다는 것을 보고했다 [4]. 센테네리안에서는 기능상실 돌연변이의 축적이 대조군보다 11~22% 적으며, 이러한 특징이 자손에게도 부분적으로 이어짐을 밝혔다. 이 연구에서는 나아가 장수인에서 돌연변이가 유의하게 적은 35개 유전자를 동정하고, 이 중 다수가 노화 관련 형질에 인과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제시되었다. 이는 장수인이 유해한 유전변이 부담이 적은 보호적 유전체 배경을 가져 장수에 기여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고전적으로 여러 인구에서도 확인된 장수 연관 유전자들도 존재한다 [1, 5]. 예컨대 FOXO3 유전자 다형성(rs2802292의 G 대립유전자)은 미국, 유럽, 아시아 등 다양한 집단의 노인 및 센테네리안에서 장수와의 연관성이 꾸준히 보고되었으며 심혈관질환 및 암 등 노화 관련 질환의 위험을 낮추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6]. FOXO3 외에도 시르투인(SIRT)은 중요한 신호 경로에 관여하는 중요한 히스톤 탈아세틸화 효소이며, 주로 SIRT1은 에너지 대사, 염증, DNA 복구 및 세포 노화를 조절하는 데 관여한다 [7]. 나아가 SIRT1 유전자에서 가장 빈번한 다형성 중 하나인 rs7895833은 건강한 노년층에서 유의미하게 증가하였다 [8]. FOXO3는 SIRT1의 표적이며, 산화 스트레스 조건에서 이러한 상호 작용은 세포 사멸을 방지하고 스트레스 저항을 유도하여 활성 산소 종(ROS)의 노화 촉진 효과에 대응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9]. ApoE 유전자 역시 거의 모든 연구에서 장수와 유의한 연관을 보인다. ApoE는 간과 뇌에서 주로 발현되어 신경 퇴행성 및 심혈관 질환을 조절할 수 있는 지질 대사에 관여하는 단백질을 암호화한다 [10]. ApoE 유전자는 ApoE ε2, ApoE ε3, ApoE ε4의 세 가지 이소폼을 보이며, 각각 건강과 수명에 뚜렷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죽상동맥경화증을 촉진하는 것으로 알려진 ApoE ε4 대립유전자는 장수인에게서 빈도가 낮은 반면, 심혈관 및 신경 퇴행성 질환의 발생률을 낮출 수 있는 ApoE ε2 대립유전자는 100세 노인에게서 더 높은 빈도를 보인다는 점에서 수명 연장과 관련이 있다 [11].
이 외에도 많은 장수 관련 유전체들을 밝혀 내고 증명하는 연구는 여전히 활발하게 진행이 되고 있다. 이처럼 장수인에서 관찰되는 유전체는 일반인과 구별되는 보호적 대립유전자의 빈도가 높고, 노화를 지연시키는 경로(예: IGF-1/인슐린 신호, 면역 반응, 스트레스 저항성 등)에 관여하는 유전변이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한편 텔로미어의 길이도 유전체 수준 노화 지표로 잘 알려져 있다. 세포 분열 횟수에 따라 텔로미어가 점진적으로 짧아져 한계에 도달하면 세포노화가 유발되는데, 선천적으로 텔로미어가 긴 사람이나 텔로머레이스 활성에 영향을 주는 변이가 있는 경우 수명이 연장되는 경향이 보고되기도 한다 [12]. 흥미롭게도, 텔로미어의 길이는 환경적인 조절을 통하여 짧아지는 속도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란성 및 일란성의 쌍둥이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비만이나 흡연 여부에 따라 텔로미어의 길이는 유의적을 짧았으며 [13], 운동을 꾸준히 하거나 식이제한을 한 경우에는 텔로미어의 길이가 길게 유지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14]. 종합하면, 노화에 따른 유전체 손상과 불안정성은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장수인은 돌연변이 축적이 적고 보호적인 유전형을 갖는 경향이 있으며, 일부 유전 특성은 환경적 개입에 의해 조절 가능하다는 점에서 유전체는 노화 저항성의 중요한 기전을 제공한다.
2.2. 전사체 변화: 유전자 발현 프로그램의 노화 양상
노화 조직에서는 전사체(Transcriptome) 수준에서도 광범위한 변화가 일어난다. 많은 연구에서 노화 시 염증 관련 유전자 발현 증가(이른바 염증성 노화, inflammaging)와 조직특이적 기능 유전자 발현 감소가 관찰되었다. 예를 들어 노화한 면역세포나 조직세포들은 IL-6, TNF-α와 같은 염증성 사이토카인을 더 많이 발현하고, 반면에 조직 재생이나 스트레스 저항성과 관련된 유전자들은 발현이 떨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발현 변화는 조직별로 상이하며, 어떤 조직은 노화 시 주로 발현이 증가하는 유전자군이 있고 다른 조직은 감소하는 군이 있다는 메타분석 결과도 있다 [15]. 전사체 수준 노화 변화를 이해하는 데 최근 특히 기여하고 있는 것은 단일세포 전사체 분석(Single-Cell Transcriptome Analysis) 기술이다. 과거에는 조직 전체의 평균적인 발현 변화만 볼 수 있었다면, 이제는 개별 세포들의 발현 변화를 분석하여 노화에 따른 세포 구성의 변화와 세포 유형별 변화를 모두 파악할 수 있다. 이를 활용한 대표적 성과로 2020년 발표된 Tabula Muris Senis가 있다. 이 연구는 생쥐의 평생에 걸쳐 23개 조직에서 35만 개 이상의 세포를 단일세포 RNA 시퀀싱 하여 노화에 따른 세포별 전사체 지도를 작성하였다 [16]. 그 결과, 거의 모든 장기에서 노화와 함께 특정 세포 유형의 비율 변화가 일어남을 보였고, 같은 세포 유형이라도 노화 시 발현이 달라지는 세포특이적 발현 변화가 광범위하게 존재함을 밝혔다. 예컨대, 면역계 B 세포의 경우 노화하면서 여러 조직에서 공통으로 발현 패턴이 변화하여 염증 및 면역 반응 관련 유전자가 높아지는 것이 관찰되었고, 간이나 신장 등의 대사조직 세포들에서는 대사경로 유전자들의 발현 조절 이상이 발견되었다 [17, 18]. 또한 단일세포 수준에서 ‘노화의 주요 분자적 특징(노화의 hallmarks)’인 세포노화(senescence) 표지 유전자나 DNA 손상 반응 유전자의 발현을 추적하여, 어떤 세포가 노화의 특정 특징을 더 많이 나타내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접근은 노화 연구에 중요한데, 노화 조직은 젊은 조직에 비해 세포 간 이질성이 크게 증가하며, 소수의 문제 세포가 조직 기능에 큰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노화에 따라 전사체 프로그램이 전반적으로 재편성되며, 그 양상은 조직 및 세포 유형에 따라 다르다. 최근 단일세포 전사체와 같은 첨단 기술은 이러한 변화를 더 정밀하게 파악하게 해 주었고, 이를 통해 노화 조직 내 특정 세포의 역할을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지식은 향후 노화로 인한 조직 손상을 세포타입 특이적으로 완화하는 표적을 찾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2.3. 단백체 변화: 단백질항상성의 상실과 바이오마커 단백질
단백체(Proteome)는 한 생물이나 조직, 세포 내의 모든 단백질의 총합으로, 노화에 따라 단백질 수준에서도 뚜렷한 변화들이 일어난다. 우선 노화의 한 중요한 특징은 단백질 항상성(proteostasis)의 상실이다 [19]. 세포 내 단백질 품질관리 기작(샤페론, 프로테아좀, 자가포식 등)이 나이가 들수록 저하되어 잘못 접힌 단백질이나 응집체가 축적되기 쉽다. 실제로 알츠하이머병 등의 퇴행성 질환에서는 베타아밀로이드, 타우 등 단백질 응집체가 노년에 주로 발생하며, 이는 노화에 따른 단백질 처리 능력 저하와 연관된다. 뿐만 아니라 혈액이나 조직액에 분비되는 사이토카인, 호르몬, 성장인자 등 단백질 조성도 노화 시 변화한다. 예를 들어, 노인성 염증(inflammaging) 환경에서는 IL-6, TNF-α, CRP 등의 염증성 단백질이 만성적으로 상승해 있는 반면, 조직 재생에 필요한 성장인자는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20, 21]. 이러한 단백질 변화는 최근 대규모 단백질 분광 기술과 머신러닝의 결합으로 노화 속도 측정에도 활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2020년대에 들어 혈장 또는 혈청 내 수백~수천 개의 단백질 농도를 한꺼번에 측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생물학적 나이를 예측하는 단백체 노화 시계(proteomic aging clock)들이 개발되었다 [22, 23].
2024년 Nature Medicine에 보고된 한 연구에서는 머신러닝을 이용해 혈중 200여 종의 단백질 패널로 구성된 프로테오믹 시계를 개발하였고, 이를 통해 개인의 생물학적 노화 속도를 평가하여 18가지 주요 노화 관련 질환 발생 위험과 사망 위험까지 예측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22]. 이 연구는 다양한 인종의 코호트에서 해당 단백질 시계의 질병 예측력을 검증함으로써, 혈중 단백체가 세포 기능적 나이를 가늠하는 유용한 지표임을 입증했다. 또한 다른 연구들에서도 노화 속도가 느린 사람—혹은 유산소 운동을 한 사람—은 혈중 단백질 프로필이 실제 나이에 비해 더 젊게 나타나고, 이는 인지기능이나 신체기능이 양호한 것과 연관됨이 관찰되었다 [24, 25]. 특히 단백질 중에는 노화와 밀접히 연관된 경로(예: 염증, 대사조절, 세포간 신호 등)에 속한 것들이 많아, 단백체 분석을 통해 노화 조절 인자를 찾고자 하는 연구가 활발하다. 예를 들어 단백체 기반 연구에서 GDF15 같은 호르몬 및 CXCL9 같은 면역 인자가 나이와 높은 상관을 보여 새로운 노화 바이오마커로 보고되었으며, 단백질 네트워크 분석을 통해 노화 조절 허브로 작용하는 단백질군을 추출하기도 한다 [26, 27]. 종합하면, 노화가 진행됨에 따라 단백질 수준에서는 단백질 접힘 이상과 응집체 축적이 증가하고, 체내 분비 단백질의 구성 또한 염증 중심으로 변화하는 특징이 나타난다. 이러한 변화는 단백체 분석을 통해 광범위하게 관찰 가능하며, 생물학적 노화 정도를 정량화하거나 장수 관련 경로를 규명하는 데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다. 나아가 단백체 기반 바이오마커는 향후 노화 완화 치료의 표적이자 임상 모니터링 수단으로서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2.4. 대사체 변화: 대사 경로의 재편성과 노화 바이오마커
대사체(Metabolome)는 세포나 생체 내의 모든 대사산물(대사물질)을 일컫는 용어로, 노화 과정에서 대사체 프로필도 상당한 변화를 겪는다. 나이가 들면서 체내 포도당, 지질, 아미노산, 대사 조절 호르몬 등의 항상성이 교란되고, 이로 인해 대사성 질환 위험이 증가하는 것이 잘 알려져 있다 [28-30]. 이러한 변화는 혈액 등의 대사체 조성으로도 드러나는데, 최근 대규모 코호트의 혈장 대사체 분석 연구들은 수백 종 이상의 대사물질 농도가 연령과 유의한 상관관계를 가짐을 보고하고 있다 [31]. 2024년 Sebastiani 등 연구진은 250,000명 이상의 혈장 대사체 데이터를 메타분석하여, 연령과 상관된 대사물질 308종과 노화 진행에 따라 변화하는 대사물질 258종을 동정했고, 장수군(장수 내력의 가족과 센테네리안)에 특이적으로 연관된 대사물질도 230종 확인하였다. 동시에 사망률과 연관된 대사물질 152종도 밝혀냈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지질 대사와 아미노산 대사 경로에 속해 있어, 노화 과정에서 이러한 경로가 중요함을 시사하였다. 특히 필수 지방산(essential fatty acids) 대사산물이 노화 관련 대사 네트워크의 중심에 있음이 드러났는데, 이는 식이와 영양 상태가 노화에 미치는 영향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해당 연구에서는 이렇게 얻어진 정보를 활용해 대사체 노화 시계(metabolomic aging clock)를 개발하고 검증하기도 했다.
한편, 대표적인 노화 관련 대사 변화로는 인슐린-IGF 신호 경로(Insulin-Insulin-like growth factor signaling pathway, IIS pathway)가 있다 [32]. 여러 모델 동물들에서 칼로리 섭취가 많고 인슐린 분비가 높은 상태에서는 성장과 번식에 유리하지만 오래 살지는 못하는 경향이 있으며, 반대로 영양 신호가 낮아지거나 인슐린 신호전달 체계가 억제되면 수명이 연장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영양감지 경로(nutrient-sensing pathway)의 변화는 혈중 포도당, 아미노산, 인슐린/IGF-1 농도로도 반영되는데, 노화 시 인슐린 저항성이 증가하고 IGF-1 신호가 변화하여 대사 항상성이 무너진다 [33, 34]. 또한 NAD+ 대사도 노화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세포 에너지 대사와 DNA 수리에 필수적인 보조인자인 NAD+의 체내 수준은 나이가 들면서 감소하고, SIRT1 등 노화 조절 효소의 활성이 떨어지게 된다 [35]. 이러한 이유로 최근 NAD+ 전구체 보충(NMN, NR 등) 전략이 항노화 시도로 연구되고 있다 [36]. 이 밖에도 노화된 개체(혹은 센테네리안)에서는 아미노산 대사산물, 지방산 프로필, 장쇄 지질 복합체 등의 균형이 달라지며, 아세틸카르니틴과 같은 일부 대사산물은 노화 속도가 느린 장수 개체에서 더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37, 38]. 장수 지역 코호트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혈중 가지사슬 아미노산(Branched chain amino acid, BCAA) 수치가 말초 혈액 내 텔로미어 길이 및 노쇠 지표와 유의한 상관을 보여, BCAA가 건강한 노화에 보호적인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이는 특정 아미노산 대사 경로의 조절이 장수에 기여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39]. 이처럼 대사체 분석은 노화가 진행되면서 변화하는 체내 대사 흐름을 잘 보여줄 뿐 아니라, 노화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바이오마커를 찾아내는 데에도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실제로 혈중 대사물질 조합으로 예측한 대사 나이가 높은 사람은 만성질환 위험이 높다는 연구들이 나오고 있고 [40], 대사체 데이터를 다른 오믹스(예: 전사체, 후성유전체)와 통합해 노화 메커니즘의 인과관계를 밝히려는 접근도 시도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노화 동안 체내 대사 프로그램은 변화하며, 이러한 변화를 읽어내는 대사체 프로파일은 노화 정도를 평가하거나 개입 타깃을 찾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41]. 또한 대사체 변화는 식이 및 약물 개입으로 비교적 쉽게 조절할 수 있는 영역이므로, 향후 노화 완화 전략 개발에 핵심 단서들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2.5. 후성유전체 변화: 에피제네틱 드리프트와 시계
후성유전체란 DNA 서열 변화 없이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메커니즘으로, 대표적으로 DNA 메틸화, 히스톤 수식, 염색질 재편성 등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후성유전적 변화(Epigenetic alterations)’가 축적되며 이를 ‘에피제네틱 드리프트(epigenetic drift)’라고 부른다 [42, 43]. 예를 들어, DNA 전반의 메틸화 수준은 노화와 함께 변동하여 특정 부위에서는 메틸화가 감소(유전자 불활성화 해제)하고 다른 부위에서는 증가하는 양상이 나타난다. 이러한 변화 패턴을 정량화한 것이 ‘DNA 메틸화 시계(DNA methylation clock)’로, 한 개인의 생물학적 나이를 예측할 수 있는 노화 바이오마커로 각광받고 있다 [44]. Horvath와 Hannum 등이 개발한 1세대 후성유전체 시계 지표부터 최근의 GrimAge, PhenoAge 등 개선된 지표에 이르기까지, 수만 개 메틸화 좌표의 패턴을 머신러닝으로 학습하여 ‘개인의 노화 정도(예상 연령)’를 예측하는 모델들이 제시되었다 [45-47]. 흥미롭게도 이러한 후성유전체 시계를 적용한 연구들에서는 예측된 나이(후성유전적 나이)가 실제 연령보다 높은 사람일수록 사망률이나 질병 위험이 높다는 상관관계가 관찰되었다 [48]. 예를 들어, 미국 여성 코호트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네 가지 DNA 메틸화 시계로 계산한 에피제네틱 나이 가속(Epigenetic Age Acceleration, EAA) 지표가 높을수록 90세까지 생존할 확률이 유의하게 낮았고, 특히 건강한 상태(인지기능과 보행능력 유지)로 90세를 넘길 확률도 크게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49]. 즉 후성유전체 시계의 진행 속도는 인간의 건강장수와 밀접한 연관을 보인다. 노화한 세포에서는 히스톤 H3K9이나 H3K27 등의 메틸화 패턴이 흐트러지고, 이와 함께 이질염색질(heterochromatin)의 구조가 약해지며 유전자 발현의 균형도 무너지는 양상이 자주 관찰된다 [42]. 이러한 후성유전적 변화들은 유전자 발현의 '잡음'을 늘리고, 결국 조직 기능 저하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후성유전체 변화는 단순 지표를 넘어서 노화의 인과적 역할을 할 가능성도 제기되어 왔다. 2016년 Ocampo 등 연구진이 노화한 생쥐에 야마나카 리프로그래밍 인자(Oct4, Sox2, Klf4, c-Myc)를 부분적으로 발현시켜 세포 운명을 초기화하지 않고도 후성유전적 표지를 재구성하는 ‘부분적 세포 리프로그래밍(partial cellular reprogramming)’을 시도한 결과, 노화 표지(markers)가 감소하고 생체기능이 개선되는 놀라운 결과를 얻었다 [50-52]. 이후 여러 후속 연구에서 에피제네틱 시계의 가역성이 확인되었고, 후성유전적 변형을 통해 노화를 되돌리는 전략이 가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53]. 이는 후성유전체 변화가 노화의 결과인 동시에 원인적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시사하며, 현재 후성유전체 표적 치료는 유망한 노화 개입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53, 54]. 요약하자면, 노화에 따라 나타나는 후성유전적 변화는 ‘노화 시계’라는 정량적 지표로 활용될 수 있으며, 이를 되돌리려는 리프로그래밍 연구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2.6. 마이크로바이옴 변화: 장내 미생물군과 노화의 상호작용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 특히 장내 미생물군은 숙주의 대사 및 면역에 깊이 관여하여 노화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젊은 성인과 노인을 비교하면 장내 미생물 다양성이 감소하고 유익균이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는 보고가 있지만 [55, 56], 센테네리안의 경우 오히려 특이한 마이크로바이옴 구성을 유지하는 사례가 관찰된다 [57]. 2021년 일본과 MIT Broad연구소의 공동 연구는 100세 이상 일본인 센테네리안 160명의 장내균을 분석하여, 이들이 젊은 성인 대비 특정 세균종이 풍부하며 이들 세균이 2차 담즙산(secondary bile acids)을 많이 생산함을 발견했다. 센테네리안 장내에서 높은 수준을 보인 담즙산 중 isoalloLCA라는 분자는 대표적인 병원성 세균인 Clostridioides difficile의 성장을 강하게 억제하였고, 이를 노화한 생쥐에 투여하자 장내 C. difficile 증식이 억제되고 염증이 감소하는 효과를 보였다 [57]. 즉 장수인의 장내미생물이 만들어내는 대사물이 병원균 억제 및 항염증 효과를 가져와 숙주의 건강 유지에 기여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실제로 100세 이상 노인은 감염질환에 대한 저항력이 상대적으로 높고, 만성염증 수준도 낮은 경향이 있다는 관찰과 부합하는 결과이다 [57].
노화와 마이크로바이옴의 인과관계를 직접 증명한 흥미로운 연구들도 있다. 여러 모델 동물에서 젊은 개체의 장내 미생물군을 노쇠한 개체에 이식하면 수명이 연장되고 건강지표가 개선되는 반면, 늙은 개체의 미생물을 젊은 개체에 이식하면 노화 현상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보고가 나왔다. 예를 들어, 무균의 초파리에 노령 개체의 장내미생물을 이식한 경우 젊은 개체의 장내미생물을 이식한 그룹보다 수명이 단축되었으며 [58], 단명 어류인 킬리피시에 대한 한 연구는 어린 물고기의 장내미생물을 노년 물고기에 이식했을 때 수명 연장과 운동능력 향상이 나타났다 [59]. 또한 쥐 모델에서도 어린 쥐의 장내 세균을 늙은 쥐에 이식하면 장내 염증이 감소하고 신경기능이 개선되는 등 노화의 여러 지표가 역전됨을 보였다 [2]. 이러한 결과는 장내 미생물이 노화 속도를 조절할 수 있음을 강력히 시사합니다. 노화에 따라 장 점막의 투과성 증가와 유해균 증식이 만성 전신염증(inflammaging)을 유발하는 한 요인이라는 가설도 있다 [60-63]. 따라서 장내 환경을 개선하여 장 장벽 기능과 미생물 균형을 유지하면 노화를 늦출 수 있다는 것이며, 실제로 프로바이오틱스 섭취, 식이섬유 증가 등이 장내 미생물 균총의 변화와 함께 수명 연장 효과를 나타냈다는 초기 연구들도 보고되고 있다 [64-67]. 예를 들어, 인간 모유에서 분리된 Limosilactobacillus reuteri의 섭취는 인슐린/IGF-1 신호 경로를 억제하고, 이를 통해 수명 연장에 기여하는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66]. 흥미롭게도, 장내 미생물은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등 노화에 따라 증가한다고 알려진 퇴행성 뇌질환과의 연관성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일부 연구에서는 노화에 따라 증가한 장내 유해균이 장-뇌 축(gut–brain axis)을 통해 염증성 사이토카인 및 독성 대사산물의 전달을 촉진하고, 이는 신경 염증과 인지기능 저하로 이어질 수 있음이 보고되었다 [68]. 반대로 특정 유익균 또는 그 대사산물이 뇌신경세포의 산화 스트레스를 완화하거나 시냅스 기능을 보호하는 효과도 제시되고 있다 [69]. 이러한 장내 미생물 조성 정보를 기반으로 개인의 생물학적 노화 정도를 예측하는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노화 시계(microbiome-based aging clock)' 모델도 개발되고 있다. 이는 특정 미생물의 풍부도 변화와 연령 간의 상관관계를 학습하여 노화 진행도를 정량화하는 방식으로, 후성유전적 시계나 대사체 시계와 함께 유망한 노화 바이오마커로 주목받는다 [70]. 요약하면, 노화에 따라 마이크로바이옴 구성과 기능이 변화하여 숙주의 노화에 영향을 미치며, 마이크로바이옴은 앞서 살펴본 오믹스 계측 중에서 비교적 외부 개입이 용이한 요소이므로(식단, 프로바이오틱스, 미생물 이식 등), 노화 연구에서 특히 주목받는 분야이다. 앞으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장내미생물 조작 임상 연구들이 진행된다면, 대사체와 마이크로바이옴을 표적으로 한 노화 완화 전략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다.
3. 첨단 오믹스 기술의 활용 사례
앞서 살펴본 오믹스 변화들은 주로 조직 또는 생체 유체 단위의 평균적 변화를 다루지만, 노화는 세포마다 진행 속도가 다르고 국소 조직 미세환경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최근 등장한 단일세포(single-cell) 및 공간(spatial) 오믹스 기술들은 이러한 이질성을 포착함으로써 노화 생물학 연구를 한층 심화시키고 있다.
3.1. 단일세포 멀티오믹스에 의한 세포 이질성 분석
단일세포 멀티오믹스(Single cell multi-omics)는 단일 세포 단위로 유전체, 전사체, 후성유전체 등을 분석하는 기술로, 노화 연구에 적극 도입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Tabula Muris Senis 단일세포 전사체 지도가 그 대표 예(2.2 전사체 변화: 유전자 발현 프로그램의 노화 양상 참고)이며, 이외에도 단일세포 RNA-seq으로 특정 장기의 노화 변화를 정밀 분석한 연구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예컨대 뇌 조직의 경우 단일세포 전사체 분석을 통해 신경세포, 교세포, 면역세포 등 세포 종류별로 노화에 따라 달라지는 발현 패턴이 규명되었고, 면역 T세포가 나이가 들수록 뇌조직에 더 많이 침투하여 주변 미세아교세포 등에 국지적 노화 촉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71]. 이처럼 단일세포 수준에서 보면, 노화 조직 내에서는 어떤 세포는 이미 노화 특성을 강하게 띠지만 다른 세포는 비교적 젊은 상태를 유지하는 등 세포 간 노화 정도의 이질성이 드러난다. 즉, 하나의 조직에서도 세포들의 시간은 다르게 흐르고 있다. 이러한 지식을 활용하면 향후 표적치료 시 전체 장기가 아닌 문제 되는 세포군만 선별적으로 조절하는 전략도 가능해질 것이다. 더 나아가, 최근에는 단일 세포 수준에서 멀티오믹스의 동시 측정도 이루어지고 있다. 예를 들면 단일 세포에서 전사체와 염색질 접근성(ATAC-seq, Assay for Transposase-Accesible Chromatin using sequencing)을 함께 측정하여 노화에 따른 유전자 발현 변화와 그 조절 기전을 한꺼번에 파악하거나 [72], 단일세포 수준에서 유전체 돌연변이와 전사체 변화를 연계 분석하여 체세포 돌연변이가 세포 기능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연구들도 진행되고 있다 [73]. 이러한 연구들이 진행되면서 Scomatic —단일 세포 전사체 및 ATAC-seq데이터 세트에서 체세포 돌연변이를 직접 검출하도록 설계된 알고리즘—과 같은 여러 유용한 알고리즘도 확립되어 가고 있다. 따라서, 단일세포 오믹스는 노화 연구에서 세포 수준의 정밀도를 제공하여, 노화 현상의 미시적인 양상을 이해하고 세포 이질성(cellular heterogeneity)을 고려한 새로운 가설을 제시하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3.2. 공간 오믹스에 의한 조직 미세환경 분석
공간 오믹스(Spatial omics)는 조직 내 분자 지표의 공간적인 분포를 보존한 채로 분석하는 기술로, 대표적으로 공간 전사체 분석(spatial transcriptomics)이 있다 [74]. 이 기술은 얇게 자른 조직 슬라이드에서 위치 정보를 가지는 RNA 발현 데이터를 얻어, 조직 구조와 분자 프로파일을 연계한다 (그림 1) [75].
노화한 조직에 공간 전사체 분석을 적용한 연구들을 통하여 나이가 들면서 조직의 구조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리고 조직 안에서 노화가 특히 많이 일어나는 부분이 어디인지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2024년 발표된 한 연구에서는 노화한 생쥐의 9개의 핵심 조직을 공간 전사체 방식으로 분석하여, 노화 조직의 구조는 젊은 조직보다 무질서해지고(entropy 증가) 곳곳에 노화 관련 유전자들이 높은 발현을 보이는 “senescence-sensitive spots (SSSs)”이 존재함을 발견했다 [76]. 이러한 국소 부위는 주변보다 면역 관련 인자의 발현이 높고 염증성 특징을 보여, 노화 세포들이 국소적으로 군집을 이루며 미세환경을 교란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또 다른 공간전사체 연구에서는 뇌조직에 주목하여, 노화한 생쥐 뇌에서 T세포가 침투한 주변 영역에서 특히 노화 표지가 높아지는 “노화 근접 효과(pro-ageing proximity effects)”를 규명하였다 [71]. 이는 노화 조직의 면역세포의 침투가 국소적으로 주변 세포의 노화를 촉진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최근에는 공간 전사체 분석에서 나아가 공간 단백체나 공간 멀티오믹스도 등장하여, 조직 내 특정 단백질 또는 대사체의 분포와 전사체 데이터를 함께 시각화하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77]. 공간 오믹스 기술은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노화 연구에서 “어디에서” 노화가 먼저 혹은 심하게 일어나는지를 밝혀주어 노화의 공간적 양상을 이해하게 해 준다. 장차 이 기술을 통해 노화의 시작점(예: 조직 내 취약 영역)을 찾고, 그 부위를 집중적으로 치료하거나 모니터링하는 전략도 가능해질 것이다. 예를 들어, 동맥경화나 치매처럼 국소 조직의 변화로 발병하는 노화 관련 질환의 경우, 공간 오믹스 기술로 찾아낸 병든 부위의 특징적인 분자 정보를 바탕으로 특이 분자표적을 조준하는 정밀의학적 접근이 기대된다.
3.3. 멀티오믹스 데이터 통합과 시스템 생물학
첨단 오믹스 기술의 발전으로 각 계층의 데이터를 풍부하게 얻을 수 있게 되면서, 이제는 여러 오믹스 데이터를 통합(integration)하여 노화 네트워크 전반의 상호작용을 규명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이를 위해 통합형 유전체(integromics), 시스템 생물학 기법이 활용된다 [78, 79]. 앞서 소개했던 센테네리안 대상의 한 연구는 동일한 개인에서 얻은 유전체-후성유전체-전사체-대사체 데이터를 통합 분석하여, 어떤 유전변이가 후성유전적 변화를 통해 전사체와 대사체에 영향을 미쳐 노화 관련 형질을 좌우하는지 파악하였다 [4]. 최근 한 연구진은 서로 다른 종 혹은 집단에서 공통으로 관찰되는 노화 변화들을 AgeAnnoMO(https://relab.xidian.edu.cn/AgeAnnoMO/#/)라는 멀티오믹스 지식베이스로 구축하여, 노화 조절에 보편적인 경로와 종특이 경로를 구분하는 시도를 했다 [80].
이런 통합 분석을 통해, 단일 오믹스 층위만 봐서는 놓칠 수 있는 분자 간 연결고리들이 드러나고 있다. 한 멀티오믹스 네트워크 분석 연구는 여러 조직에서 얻은 전사체, 단백체, 대사체 데이터를 통합하여 노화 과정이 몇 개의 단계(Stage)로 구분될 수 있음을 보이고, 각 단계마다 키 플레이어 분자(transcription factor 등)가 다름을 보고했다 (그림 2) [81].
또 다른 연구에서는 후성유전학적 노화를 결정하는 요인을 찾기 위해 유전체, 전사체, 대사체를 통합한 결과, 후성유적학적 노화속도와 밀접한 대사 경로를 밝혀내기도 했다 [82]. 이렇듯 멀티오믹스 통합은 방대한 데이터 처리가 필요하므로, 인공지능(AI)과 기계학습(machine-learning) 기법이 적극 동원되고 있다 [83]. 중요한 점은, 통합 분석을 통해 노화는 하나의 경로가 아닌 복합 네트워크의 변화라는 인식을 구체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스템 수준에서 보면, 노화한 생물은 유전정보 손상, 후성유전학적 조절 이상, 단백질 항상성 붕괴, 대사 불균형, 미생물군 변화 등이 서로 피드백 루프로 얽혀 노화를 증폭시킨다 [84]. 따라서 멀티오믹스 데이터로 구축한 네트워크 모델은 어떤 요소를 건드렸을 때 그 연쇄효과가 어떻게 전파되는지 시뮬레이션할 수 있게 해 주며, 이는 가장 효과적인 개입점(target) 선정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러한 노화 네트워크 모델을 이용해 다약제 병용 조합이나 다중표적 작용 약물을 설계하는 것은 매우 기대되는 분야이다.
4. 노화 억제 및 장수 유도 전략의 최신 동향
노화 생물학에 대한 이해가 깊어짐에 따라, 축적된 지식을 활용하여 노화를 늦추거나 건강수명을 늘리는 개입 전략들이 모색되고 있다. 이러한 전략은 유전적/분자적 조절부터 약물 치료, 식이조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최근에는 노화의 특징적 경로(hallmarks, 그림 3)를 겨냥한 표적 치료 개념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번 파트에서는 주요 접근법과 최신 동향을 정리하였다.
4.1. 유전자 및 분자적 조절 전략
유전적 조절을 통해 노화 속도를 늦추는 접근은 주로 모델생물에서 검증되어 왔다. 예를 들어 예쁜꼬마선충, 초파리, 생쥐 등에서 IGF-1/인슐린 신호경로를 억제하는 돌연변이는 수명을 연장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인간에서도 해당 경로의 조절 유전자인 FOXO3, IGF-1 수용체 등의 다형성이 장수와 연관됨을 앞서 소개했다. 이러한 결과는 특정 유전자 또는 경로의 발현/활성을 조절하면 노화를 늦출 수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생쥐 실험에서 유전자 조작으로 노화 억제 효과를 보인 사례들이 다수 있다. 예컨대 텔로머레이스 활성 증가 시 수명 연장, 노화세포 제거 유전자(knockout) 도입 시 조직기능 개선 등이 보고되었다 [85, 86]. 나아가 최근에는 유전자치료(gene therapy) 방식을 노화억제에 응용하려는 시도가 있다. 한 연구에서는 SIRT6의 활성화가 인간 및 생쥐 연골세포에서 축적된 DNA 손상을 감소시키고, 노화에 따른 DNA 손상 복구 능력의 저하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보고하였다 [87]. 이 SIRT6 유전자에는 장수인에게서 발견된 변이가 포함되어 있었고, 이 변이가 효소 활성을 높여 노화 억제 효과를 강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88]. 이는 향후 인간에서도 유전자치료를 통한 노화 속도 제어 가능성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결과이다.
또 다른 혁신적 접근은 앞서 언급한 부분적 세포 리프로그래밍이다. 세포에 Yamanaka 인자(4개의 초기화 전사인자, Oct3/4, Sox2, Klf4, c-Myc)를 짧게 발현시켜 세포의 후성유전체 수준을 리셋하면, 노화로 인한 발현 변화와 기능 저하를 되돌릴 수 있음이 동물 모델에서 증명되었다 [89, 90]. 다만 이 접근은 전신에 적용할 경우 암 발생 위험 등의 부작용을 우려해야 하므로, 현재는 특정 조직(예: 시신경 손상 모델에서 시력회복을 위한 국소적 적용 등)에 제한적으로 연구되고 있다 [91-93]. 그럼에도 후성유전 프로그램을 되돌리는 방법으로서 부분 리프로그래밍은 노화 자체를 근본적으로 되돌리는 잠재력으로 인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이 기술이 더욱 안전하고 정밀하게 조절된다면, 향후 유전자 수준에서 노화를 리셋하는 혁신적 치료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외에도 노화를 억제하는 유전자 타깃으로 p53, mTOR, AMPK, NF-κB 등 다양한 분자들이 연구되었지만 이들은 항상성과 종양억제 등 필수기능과도 연관되어 있어 완전히 억제하거나 활성화할 경우 부작용 위험이 있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유전자 하나보다는 여러 경로를 부분 조절하거나, 앞서 언급한 유해한 노화인자(예: 노화세포)만 선택 제거하는 쪽으로 무게가 실리고 있다.
4.2. 약물 및 화합물에 의한 노화 완화
약물을 이용해 노화를 늦추는 연구는 노화치료제(senotherapeutics, gerotherapeutics) 개발이라는 큰 흐름을 만들고 있다 [94]. 노화 세포를 타깃하는 노화치료제 전략에는 세놀리틱스(senolytics)과 세노모픽(senomorphic) 두 분야를 소개할 수 있다. 세놀리틱스는 노화(senescence) 세포를 제거(lytic)한다는 의미의 합성어에서 유래했으며, 최근 각광받는 노화세포 제거 약물이다. 노화세포(senescent cell)란 더 이상 분열하지 않지만 대사적으로 활발하고 주변에 해로운 염증물질 등을 분비하는 세포로, 나이가 들수록 조직 내에 축적되어 만성염증과 조직기능 저하를 유발한다 [95]. ABT263(navitoclax)와 다사티닙(dasatinib) + 쿠르세틴(quercetin) 조합이 선택적으로 노화세포를 제거하는 세놀리틱 효과를 보인 이후, 수십 종의 후보 세놀리틱스가 개발되었다 [96, 97]. 생쥐 실험에서 세놀리틱스를 투여하면 노화세포 축적이 감소하고 여러 장기 기능이 개선되며 수명이 연장되는 등 일관된 결과가 나왔다. 특히 이미 노쇠한 노인 생쥐에 투여해도 근력, 활동성이 좋아지는 등 회춘(rejuvenation) 효과를 보여 주목받았다. 현재 인간에서도 초기 임상시험들이 시작되어, 특발성 폐섬유증 환자에게 D+Q를 3개월간 간헐적 투여한 1상 시험에서 염증 및 섬유화 지표가 개선되고 안전성이 확인되었으며 [98], 골관절염, 당뇨병성 신증 등 여러 적응증에서 20여 개 이상의 세놀리틱 임상이 진행 중이다 [99]. 궁극적으로는 비교적 젊은 고위험군에게 예방적으로 세놀리틱스를 사용해 노화세포 축적을 늦추는 방향도 제시되고 있으나, 이는 장기 안전성 검증이 더 필요하다.
한편 세놀리틱스와 유사하게 노화세포의 분비작용(SASP)을 억제하는 세노모픽 약물들도 연구 중에 있다. 잘 알려진 항노화 효과 약물로 라파마이신(Rapamycin)이 있다. 라파마이신은 mTOR 신호를 억제하는 면역억제제로 개발되었으나, 예쁜꼬마선충부터 생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에서 수명 연장 효과가 반복 확인되었다. 생쥐에서는 중년기부터 저용량 라파마이신을 투여해도 수명이 연장되고, 노년기의 면역기능이 개선되는 등 건강수명 향상이 관찰되었다. 이는 mTOR 경로가 영양감지 및 단백질 합성을 조절하여 노화의 주요 길항 표지(antagonistic hallmark)인 영양과다 신호를 완화하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100]. 현재 라파마이신과 라파마이신 유사체(rapalog)는 노화 관련 질환인 암, 신경퇴행 등에 폭넓게 임상시험 중이며, 특히 Dog Aging Project 등을 통해 반려견에서의 항노화 효과도 시험되고 있다 [101, 102]. 다만 면역억제 부작용 등을 고려해 간헐적 투여 요법 등이 연구되고 있다. 또 다른 주목받는 약물은 메트포르민(Metformin)이다. 메트포르민은 제2형 당뇨병 치료제로 60년 넘게 사용되어 온 안전한 약물로, AMPK 활성화 및 간 당생산 억제를 통해 혈당을 조절한다 [103]. 메트포르민을 복용한 당뇨 환자들이 다양한 노화 관련 질환의 발생률이 낮고, 수명도 더 길다는 역학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메트포르민이 단순한 혈당 조절을 넘어 노화 억제 효과를 지닌 것이 아니냐는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104]. 실제로 메트포르민은 동물모델에서 암, 심혈관질환, 인지기능 저하 등을 늦추는 효과가 보고되었고, 노화의 거의 모든 주요 기전(영양감지, 염증, 세포대사, 줄기세포 노화 등)에 유리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다중 표적 효과 때문에 메트포르민은 세계 최초의 노화 임상시험인 TAME (Targeting Aging with Metformin)에 선정되어, 비당뇨 노인 3,000명을 대상으로 노화 관련 질병 발생 지연 여부를 시험하는 대규모 연구가 준비되고 있다. TAME 시험은 단일 질환이 아닌 “노화” 자체를 표적으로 하는 첫 임상으로서, 성공 시 노화를 질병으로 규정하고 약물로 관리하는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메트포르민의 항노화효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견해도 있고 [105], 인간 대상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신중해야 하지만, 비교적 부작용이 적은 경구용 약물로 노화를 지연시키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 외에도 다양한 항노화 후보 물질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NAD+ 부스터(니코티나마이드 리보사이드, 니코티나마이드 모노뉴클레오타이드 등)는 노화 동물에서 NAD+ 수준을 높여 미토콘드리아 기능을 개선하고 수명 연장 효과를 보였으며, 사람 대상 시험도 일부 진행되고 있다. 레즈베라트롤(resveratrol) 같은 폴리페놀은 sirtuin 경로를 활성화하여 한때 주목받았으나, 현재는 생체 이용률 등의 문제로 기대만큼의 효과를 보이지 못해 개량 형태(예: SRT2104 등)를 연구 중이다. FGF21 같은 호르몬을 주사하여 대사를 개선하고 노화를 늦추려는 시도, 프로바이오틱스나 소화성 미생물 유래 대사물(예: 장내 단쇄지방산) 투여를 통한 노화 조절 시도도 있다. 더 나아가, 최근에는 AI를 활용한 신약 개발로 수백만 개의 화합물 중 노화 경로에 맞는 약물을 설계하는 접근도 등장했다 [106]. 예컨대 Insilico Medicine 등의 기업에서는 딥러닝으로 노화 관련 표적 단백질에 결합할 최적 구조의 신약 후보를 설계하는 플랫폼을 선보이기도 했다 [107].
4.3. 식이요법 및 생활습관 개입
식이 및 생활습관 조절은 오래전부터 알려진 노화 속도 조절 인자이다. 그 중에서도 칼로리 제한(Calorie Restriction, CR)은 가장 강력하고 재현성 있는 수명 연장 방법으로, 효모에서 포유류까지 광범위한 종에서 영양 섭취를 20~40% 줄이면 수명이 유의하게 늘어나는 현상이 확인되었다 [108].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장기간의 칼로리 제한 실험에서도 대조군보다 대사 건강이 개선되고 질병이 적게 발생하여 수명이 연장되는 경향이 관찰되었다 [109]. 사람의 경우 윤리적 문제로 수명 시험은 불가능하지만, CALERIE 임상시험 등을 통해 1~2년간 15% 내외의 칼로리 제한을 시행하면 체중과 대사지표 개선은 물론, 생물학적 노화 지표(예: DNA 메틸화 시계의 노화 속도)가 유의하게 감소함이 보고되었다 [110]. 칼로리 제한은 다양한 노화 관련 경로에 동시에 작용하여, 인슐린/IGF 신호 감소, mTOR 억제, 자가포식 촉진, 염증 완화, 미토콘드리아 기능 향상 등 다방면에서 노화 억제 효과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111]. 그러나 장기간의 엄격한 칼로리 제한은 인간에게 실행 및 유지가 어려우므로, 현실적인 대안으로 단식 또는 단식 모방 식이가 제시된다. 간헐적 단식(Intermittent Fasting)이나 시간제한 식사(Time-restricted feeding)는 하루 중 일정 시간만 식사하고 나머지 시간은 금식하는 방식으로, 칼로리 총량을 크게 줄이지 않고도 칼로리 제한과 유사한 대사 이득을 볼 수 있다는 연구들이 있다 [112]. 이러한 식이 개입은 케톤체 증가, 인슐린 감수성 개선, 염증 감소 등을 유도하여 노화 관련 병리 위험을 낮추는 것으로 여겨진다.
식이제한(Dietary Restriction, DR)이라고도 불리는 개입으로써, 영양성분의 조절도 중요하다. 단백질 또는 특정 아미노산(예: 메티오닌) 제한 식이는 칼로리 제한과 비슷한 수명 연장 효과를 동물에서 보여주었으며, 특히 가지사슬 아미노산(BCAA) 섭취를 줄이는 것이 인슐린 신호를 낮추고 노화 관련 심혈관 대사 위험을 개선한다는 보고가 있다 [113-115]. 한편, 항산화 및 항염증 식품의 섭취(예: 채소, 과일의 폴리페놀, 오메가 3 지방산 등)는 만성염증을 줄여 건강수명에 기여할 수 있다 [116].
운동과 생활습관 역시 간과할 수 없다. 규칙적인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은 심혈관 건강 개선, 인슐린 감수성 증가, 항염 효과 등을 통해 생물학적 나이를 낮추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연구에서는 운동이 DNA 메틸화 연령을 개선하고 노화 관련 유전자 발현을 젊은 양상으로 유지시킨다는 결과도 나왔다 [117, 118]. 이외에 수면의 질 향상, 스트레스 관리 등 전반적인 생활습관 개선이 노화 억제에 중요하다.
전반적으로, 식이 및 생활습관 개입은 약물보다 안전하고 포괄적인 노화 억제 효과를 낼 수 있는 접근으로 평가된다. 다만 지나친 영양 제한은 근육량 손실이나 골밀도 저하 등을 유발할 수 있어, 인간에게 적용할 때는 적정 수준과 대상 선택이 중요하다. 향후에는 개인별 유전적/대사적 특성에 맞춘 맞춤형 식이요법이 노화 관리 전략으로 발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4.4. 노화 특화 치료와 복합 전략
위에서 살펴본 전략들은 각기 장단점을 지니므로, 최근에는 이들을 병용하거나 단계적으로 적용하는 복합 전략이 논의된다. 예를 들어, 중년기에는 식이조절과 가벼운 약물 개입으로 노화속도를 늦추다가 노년기에 접어들면 세놀리틱스나 유전자치료로 남은 노화손상을 제거하는 식의 구상이다. 또는, 노화의 서로 다른 표적(예: 염증 + 텔로미어 + 미토콘드리아)을 동시에 겨냥하는 콤보 요법도 동물시험에서 시도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노화가 다면적인 과정인 만큼 한 가지 접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다각도에서 노화에 대응하는 총체적 전략이 필요하며, 이는 임상적으로도 약물요법, 식이/운동 처방, 생활습관 교정이 통합된 노화 관리 프로그램의 형태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노화 억제 전략은 일반인 대상뿐 아니라, 특정 노인질환의 치료와 연계되고 있다. 가령 퇴행성 관절염이나 치매의 치료에 노화세포 제거제를 병용하거나, 항암치료 시 환자의 노쇠도를 낮추기 위해 메트포르민 등을 투여하는 임상 연구 등이 진행 중이다 [119]. 이러한 시도는 질환 자체만이 아니라 환자의 전신적인 건강상태를 개선하여 치료효과와 삶의 질을 높이려는 접근이다.
요약하면, 현대의 노화 억제 전략들은 유전자, 약물, 식이, 생활습관 등 다양한 수준에서 전개되고 있으며, 이들을 적절히 결합한 통합 전략이 부상하고 있다. 이는 질병 중심의 전통 의학 패러다임에서 노화 자체를 관리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며, 현재 진행 중인 다양한 연구와 임상시험들이 그 근거를 쌓아가고 있다.
5. 미래 전망
최근의 멀티오믹스 연구와 노화 억제 전략 개발은 “노화 혁신의 임상 번역”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향해 가고 있다. 과거에는 수명을 연장하는 것이 공상처럼 여겨졌지만, 이제는 노화를 수정가능한 생물학적 과정으로 보고 임상 개입을 모색하는 것이 과학적 타당성을 얻어가고 있다. 임상 적용 가능성 측면에서 먼저 언급해야 할 것은 노화 바이오마커의 활용이다. 개인의 노화 정도를 신뢰성 있게 측정할 수 있다면, 의사는 이를 토대로 질병 위험을 예측하거나 생활습관 교정 목표를 제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상용화된 DNA 메틸화 시계 검사가 이미 존재하여 소비자가 자신의 생물학적 나이를 알아볼 수 있게 되었고, 몇몇 회사에서는 혈액 검사로 노화 점수를 산출해 주는 서비스도 시작했다. 다만 이들 바이오마커는 아직 규제 승인을 받은 의료기기는 아니며 참고 지표 수준이다.
향후 대규모 검증을 거쳐 표준화된 노화 바이오마커가 승인된다면, 건강검진에 생물학적 나이 평가가 포함되고 이를 토대로 개인 맞춤 노화 관리 플랜을 수립하는 시대가 올 수 있다 [120]. 노화 억제 치료의 임상화도 서서히 가시화되고 있다. 2020년대 초반부터 노화 관련 임상시험들이 증가하고 있는데, 앞서 언급한 TAME 메트포르민 시험, 다양한 세놀리틱스 시험, NAD+ 보충제 시험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노화 자체를 타깃으로 한 치료제의 공식 승인은 이뤄지지 않았다. 규제 과학적인 장벽도 존재하는데, 현행 법제하에서는 “노화”는 질병으로 간주되지 않아 약품 승인 적응증으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자들과 단체들은 노화를 적응증으로 인정하도록 설득 중이며, 세계보건기구(WHO)는 2018년 국제질병분류 ICD-11에 노화 관련 코드(MG2A: Old Age) 신설을 결정하기도 했다.
미래 전망을 살펴보면, 향후 10~20년 내에 하나 혹은 그 이상의 노화 개입법이 인간에서 효과가 입증될 가능성이 있다. 만약 TAME 시험이 메트포르민의 효과를 보인다면 메트포르민은 최초의 항노화 처방약이 될 수 있다. 또는 특정 세놀리틱이 노인 질환에서 임상적 유익성을 보이면, 해당 질환 치료로서 사용되다가 점차 예방적 용도로 확대될 수 있다. 부분적 세포 리프로그래밍 기술도 안전성이 확보된다면, 국소조직 재생치료로 먼저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러한 혁신이 실제 수명 연장으로 이어지는지는 장기 관찰이 필요하며, 기대만큼 효과가 크지 않을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초고령 사회로 접어든 인류에게 노화 완화는 의학의 커다란 미션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나아가 “건강수명 연장”은 개인의 삶의 질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측면에서도 중요해졌다. 이에 전 세계적으로 Geroscience(노화과학) 이니셔티브들이 구성되고 정부 차원의 연구 투자도 증가하는 추세이다. 예컨대 미국 NIH는 노화생물학 및 노인의학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있고, 일본, EU 등도 국가 프로젝트로 장수과학 연구를 추진 중이다. 국내에서도 BRIC 등을 통해 노화 연구 정보 교류와 기술동향 파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지나친 기대와 과장에 대한 경계도 필요하다. 노화 연구가 발전하면서 항노화 상업화도 앞서가는 경향이 있어, 과학적으로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시술이나 보충제가 시장에 나오기도 한다. 이에 과학자들은 정확한 정보 전달과 함께, 근거 중심의 접근을 강조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칼로리 제한, 운동, 금연, 균형 잡힌 식습관 등 전통적으로 입증된 방법들이 가장 확실한 건강수명 연장법이며, 새로운 약물이나 기법은 임상시험을 통해 검증될 때까지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앞으로 멀티오믹스 데이터 축적과 AI 분석이 지속되면, 노화의 개별차이에 대한 이해가 높아져 개인화된 항노화 처방이 가능해질 것이다. 또한 시스템 생물학적 예측 모델은 노화 개입의 최적 시기와 지속 기간 등을 제안해 줄 수 있다. 궁극적으로, 노화 연구의 종착점은 “노화의 의료화(medicalization of aging)”일 것이다. 이는 노화를 병으로 간주한다는 뜻이 아니라, 노화를 관리하여 건강한 노년을 연장함으로써 삶의 질을 높이고 질병 부담을 줄이자는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연구들과 기술 발전은 이러한 미래에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으며, 머지않아 "노화를 치료한다"는 말이 과장이 아닌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6. 결론
한때 노화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자, 그저 견뎌야 하는 과정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오늘날 생명과학은 노화를 하나의 ‘해석 가능한 시스템’으로 바꾸고 있다. 멀티오믹스 기술은 시간의 흐름이 몸속에서 어떤 언어로 기록되는지를 읽어내는 열쇠가 되었고, 우리는 그 언어를 통해 노화를 정량화하고 예측하며, 나아가 되돌리는 시도까지 하고 있다. 각각의 오믹스 층위는 노화의 단면을 보여준다. (1) 유전체와 후성유전체는 수명과 건강을 가르는 유전적 코드와 시간의 흔적을, (2) 전사체와 단백체는 세포가 어떻게 기능을 잃어가는지를, (3) 대사체와 마이크로바이옴은 신체와 환경, 식이, 면역 사이의 숨겨진 대화를 드러낸다. 특히 마이크로바이옴과 대사체는 비교적 조절 가능하고, 역전 가능한 타깃이라는 점에서 ‘실천 가능한 노화 조절 전략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장내 미생물의 조성 하나가 염증, 대사, 심지어 뇌 기능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우리 몸이 ‘하나의 유전체를 지닌 존재’ 그 이상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데이터를 토대로 구축된 노화 시계, 바이오마커, 시스템 모델은 이제 개인별 맞춤형 개입 전략을 가능하게 하며, 일부는 임상시험과 실용화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물론 우리는 아직 “노화를 완전히 정복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노화를 이해하지 못해 손 쓸 수 없었던 시대’에서, ‘노화를 측정하고, 조절하고, 늦추는 기술이 현실이 되는 시대로 이행 중’이라는 사실이다. 멀티오믹스는 단순한 데이터 수집을 넘어, 노화라는 복잡한 지도를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 지도 위에는, 이미 길이 그어지고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길을 어떻게 걸어갈지, 누구와 함께 걸을지이다. 멀티오믹스는 이 과정에서 훌륭한 내비게이션이 되어줄 것이다.
7.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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