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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리포트 동향리포트
고DNA 연구의 역사와 현재
홍종하(경희대학교 한국고대사·고고학연구소)
목 차
1. 서론
2. 본론
2.1. 초기 고DNA 연구
2.2. 고DNA 연구의 특성
2.3. 고DNA 연구에서 지켜야 할 조건들
3. 고유전체학 연구의 활용
3.1. 포유류(인류)에 관한 연구
3.2. 고DNA 분석을 활용한 고병리학 연구
4. 결론
5. 참고문헌
1. 서론
고고학 분야에는 최근 수십 년 간 발굴현장에서 수집된 다양한 생물학적 시료를 대상으로 과학적 연구를 수행하여 과거 인류사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정보들을 얻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다. 인류의 건강 및 영양상태, 사육 동물에 대한 생물학적 정보, 감염성 인자에 대한 생물학적 정보 등은 과거에 기록을 남길만한 가치가 있다고 간주되지 않았기 때문에(혹은 문자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문화권의 역사 기록에서 공백 상태로 남겨져 있었다. 때문에 고고학 발굴현장에서 획득한 생물 시료를 연구자가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은 문헌사적 또는 고고학적 연구만으로는 알 수 없는, 옛 사회상에 대한 다양한 사실들을 밝혀내어 과거 사람과 그들이 살았던 사회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이러한 생물고고학(bioarchaeology) 연구는 최근 수십 년 간 인류의 진화와 이동, 고대 인류의 건강 및 질병 양상의 역사적 변천 등 많은 인문학적 주제에 대한 학술적 이해를 가능하게 하였는데, 지난 202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Svante Pääbo 박사의 고인류 유전서열 연구 역시 이러한 연구 발전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생물고고학은 전술하였듯 고고학 발굴현장에서 발견된 생물학적 시료(이하 고 시료)들을 연구 대상으로 하는데, 이러한 고 시료들은 현대 시료와는 달리 필요한 시료를 원하는 만큼 원하는 때에 구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어렵다. 또한 파괴분석을 거쳐 사라지게 된 시료는 동일한 것을 다시는 구할 수 없기 때문에, 부득이한 상황을 제외한 대부분의 경우 적용가능한 모든 방법들 중 가장 최신의 분석방법을 선택하고자 하는 특성이 있다. 따라서 고 시료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필연적으로 유전학, 법의학, 병리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와의 협력을 통해 최대한의 성과를 얻고자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협력 분야 중에서도 최근 들어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 고고유전학 분야이다.
고고학 유적에서 수집한 사람, 동물 혹은 유기물 시료 안에 남아있는 고DNA(ancient DNA)를 분석하여 과거 사람 및 동물의 건강 및 질병 상태, 유전적 특징, 인류의 기원과 이동, 가축의 사육 등, 고고학 및 역사학적 연구로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가설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한 연구를 수행하는 학문 분야를 고고유전학(archaeogenetics)이라 한다. 이는 고유전체학(paleogenomics)과는 유사하면서도 상당 부분 차이를 보이는데, 고유전체학이 주로 종의 역사와 유전학적 형질에 대해 연구하는 것을 주 임무로 한다면, 고고유전학은 옛 인간 사회를 해석하기 위한 증거 수집을 목적으로 유전체 연구를 수행하기 때문에 주된 연구 대상이 인간 혹은 인간과 관계를 맺고 있었던 가축, 감염성 병원체, 농작물 등으로 한정된다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넓은 범위에서 본다면 고고유전학 또한 고유전체학의 일부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둘의 개념을 따로 분리하여 작성하지는 않기로 한다.
2. 고유전체 연구의 역사
2.1. 초기 고DNA 연구
1984년, Higuchi 등[4]은 1883년에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얼룩말(아종)인 quagga (Equus quagga quagga)의 말라붙은 근육에서 DNA를 추출하여 서열결정(sequencing) 하는 데 성공하였다[4]. 이어 Pääbo가 대략 2,400년 전에 사망한 이집트 미라에서 DNA를 추출하는 데 성공하면서 [15], DNA 분석기법이 고 시료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초창기의 고DNA 분석은 상당히 낭만적인 경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새로이 접목된 이 기법으로 멸종된 동물 종의 복원부터 인간의 역사를 밝히는 데 까지, 고DNA 속에 숨겨져 있는 수많은 비밀들을 파헤쳐 알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향은 대중매체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이후 1993년에 개봉하여 전 세계적으로 흥행한 쥬라기 공원과 같은 영화는(비록 사실과는 다르지만) 고DNA 분석을 통해 공룡을 재창조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환상을 심어주게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에 학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1980년대 후반, 적은 양의 DNA를 증폭하기에 용이한 PCR(중합효소연쇄반응; polymerase chain reaction) 기법이 성공적으로 고 시료에 적용된 사례가 보고된 이후부터 수많은 유전학 연구자들이 고유전체 연구에 뛰어들었다 [3, 18-20, 22]. 당시 박물관에는 공룡 화석이나 매머드부터 시작하여 미라와 인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료들이 보관되어 있었고, 이러한 시료들은 실력 있는 유전학자들에겐 마치 흥미로운 장난감들이 가득 찬 상자와도 같았다. 때문에 수많은 연구들이 수행되고 이에 따라 그 결과물로 논문들이 쏟아져 나오게 되었다. 어쨌든 새로운, 그리고 효과적인 유전자증폭기법의 도입으로 과거 사람, 동물, 그리고 박테리아에 이르기까지 생명체의 유전정보를 쉽게 분석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 기법만 있으면 생명체 진화에 관련된 중요한 정보를 얻는 것은 매우 쉽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정말로 시간만 충분하다면 곧 그럴 것처럼 보였다 [26].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러한 전망은 너무 낙관적이었음이 드러났다. PCR 기법은 분명 소량의 고DNA도 다량으로 증폭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기법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문제는 샘플이 현대 DNA에 의해 오염되어 있을 경우 오염된 DNA 역시 증폭되어, 잘못된 결과를 보고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었다 [25]. 사실 일반적인 생물학 실험을 수행할 때는 이러한 정도의 오염 DNA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초기 고DNA 연구자들은 이러한 점을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 [26]. 문제는 고DNA의 보존상태가 현대 DNA와는 크게 달랐다는 점이었다.
2.2. 고DNA 연구의 특성
4개의 염기 즉 아데닌(adenine; A), 티민(thymine; T), 구아닌(guanine; G), 시토신(cytosine; C)으로 구성되어 있는 DNA는 유기체가 생명활동을 멈춘 시점부터 다양한 원인(환경적 원인 및 문화적 원인 등을 포함)에 의해 손상되기 시작한다. 여기서 손상이라 함은 산화 또는 가수분해(oxidative or hydrolytic) 반응으로 인해 DNA가 파편화되거나, 시토신이 가수분해에 의해 탈아미노화(deamination) 되어 우라실(uracil; U)로 치환되기도 하며, 보다 일반적으로는 시료 내 DNA 총량 자체가 줄어드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PCR을 통해 고DNA를 증폭할 경우 일반적인 생물학 실험에서 시도하는 것보다 반복 횟수(cycle)를 늘려야 정상적으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경우가 많은데1, 이 과정에서(상대적으로 보존상태가 좋은) 오염된 DNA 또한 뜻하지 않게 증폭되어 나와 고DNA 대신 검출되는 상황이 생기게 될 가능성이 있다.
초기 고유전학 연구자들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명확히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이미 발표된 상당수의 연구성과에 대한 신뢰성 논란이 불거지게 되었으며, 다수의 논문이 철회되는 사태로까지 번지게 되었다 [19]. 당시 보고되었던 논문 중에는 발굴된 지 오래 지난 상태로 박물관에 보관되었던 것들을 시료로서 활용한 것들이 많았다. 따라서 현대 DNA에 의한 시료 오염에 인식이 없었던 상태로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연구자의 손을 거쳤을 시료(특히 인골이나 미라)들이 얼마만큼 오염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는 그 누구도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고DNA 연구 결과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현대 DNA에 의한 오염 증폭을 가능한 배제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에 동의하게 되었다. 특히 고DNA 분석 연구의 경우 시료의 양에 따라서는 재검증조차 불가능한 상황이 있었기 때문에, 당시 학계에 있었던 많은 연구자들은 고유전학 연구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연구 기준(criteria of authenticity)을 확립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2.3. 고DNA 연구에서 지켜야 할 조건들
이러한 연구 기준은 서로 다른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 학계에 제안되었는데 [5, 13, 19, 25], 대부분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어 당시 연구자들의 의견이 대부분 일치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기준은 학계에 널리 받아들여져 현재까지도 통용되고 있어 이 기준을 따르지 않은 연구결과물의 경우 정상적으로 학술지에 출판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는 전술하였듯 매우 한정적인 양의 시료가 존재하는(따라서 재검증이 어려운 상황이 다수 존재하는) 고유전학 연구의 특성상, 상대적으로 많은 부분을 연구자의 양심에 의존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까지도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고DNA 연구기준은 표 1과 같으며, 착용하는 복장 및 연구실 구조는 그림 1 및 그림 2와 같다 [19].
3. 고유전체학 연구의 활용
3.1. 포유류(인류)에 관한 연구
전술하였듯 고유전체학 연구는 여러 과정을 거쳐 현재의 분야를 확립하였다. 어떻게 보면 다소 깐깐해 보이는 연구 기준이 확립되면서 초기 생물학 연구자들이 상당수 이탈하는 등의 사태가 있었으나(특히 고DNA 실험실에서 현대 DNA 실험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고유전체 분석만을 전문으로 하는 실험실들이 생겨났다), 결국 고DNA 분석 결과의 신뢰성을 높이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면서 현재 DNA 분석기법은 고 시료를 연구하는 데 있어 빠질 수 없는 기술로 자리하게 되었다.
고DNA는 현대 DNA에 비해 상대적으로 손상이 심한 상태로 수습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초기의 고유전체학 연구는 이를 감안하여 상대적으로 제한된 영역 내에서 수행되었다. 특히 수량이 제한적인 고 시료의 특성상 실패율이 낮으면서도 유의미한 결과를 얻어낼 수 있는 영역에 대한 분석을 진행하고자 했기 때문에, 이는 사람이나 가축, 기생충 등에 이르기까지 많은 연구가 미토콘드리아 DNA 영역에 집중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 내 소기관으로서 일반적인 핵 DNA와는 구별되는 독자적인 유전 체계(모계유전)를 가지고 있는데, 종이나 개체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길이는 대략 16,000bp 전후(사람: 16,569bp; 소: 16338bp; 말: 16660bp 등)로 그리 길지 않으며, 둥근 이중나선형 구조를 하고 있다. 미토콘드리아 DNA는 핵 DNA에 비해 함량이 높으며 돌연변이율이 6~7배가량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매우 심한 다양성(polymorphism)을 띄는데, 이러한 현상은 1.2kb에 달하는 과변이부위(D-loop or hypervariable region)에서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난다 [26]. 고DNA의 경우 분절이 심해 일반적인 생물학 실험에서와 같이 긴 증폭산물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2, 많은 고DNA 연구가 미토콘드리아 DNA의 과변이부위에 대하여 수행되었는데, 이를 통해 여성을 중심으로 한, 옛사람들의 이주 경로를 밝히는 연구가 활발히 보고되었다.
미토콘드리아 DNA는 모계를 따라 유전되는 과정에서 염기서열 변이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데 비해 치유는 느리게 진행되어 변이가 계속 축적되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변이 과정을 추적하면 인구의 이동을 밝히는 증거를 획득할 수 있다. 미토콘드리아 DNA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많은 연구성과가 축적되면서 비슷한 유형의 유전체를 가진 사람/동물 등을 하나의 haplogroup으로 묶게 되었는데 [24], 이는 하나의 미토콘드리아3 DNA에 기원을 두고, 동일한 하나의 계통에서 뻗어 나온 염기서열의 집합을 의미한다 [26]. 일반적으로 haplogroup은 과변이부위 혹은 미토콘드리아 DNA 서열 전체를 포함한 모티프(motif)에 의해 분류되지만, 고 시료가 가진 제약 때문에 고유전학에서는 지금까지의 연구 중 상당수가 과변이부위에 대해 수행되어 왔다4.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을 통해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가장 오래된 계통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에서 발견된 haplogroup L이며, 이 가운데 haplogroup L3의 경우 다시 두 개의 sub-haplogroup으로 나뉘는데, 아시아 및 유럽의 macrohaplogroup인 M과 N으로 나뉜다고 본다 [1]. Macrohaplogroup인 M은 대부분 동아시아 haplogroup의 기원이 되고, 다시 D, E, G, Q, CZ 등으로 나뉜다. Haplogroup N은 sub-haplogroup인 R로 분화되고 동서부 유라시아 대륙으로 확장되어 유럽인 미토콘드리아 DNA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비록 시기와 경로에 대한 논의-인류가 아프리카에서 나가기 시작한 시점과 haplogroup L3 그룹의 이동경로 등-에 대해서는 아직 완전한 결론이 나오지 않은 상태로 학계의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1], 이와 같은 연구성과들은 고DNA 분석기법이 고고학 또는 생물학적 연구로는 명확히 밝히기 힘든 기설을 보완해 주는 근거자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유용성을 확인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인류의 기원을 밝히기 위한 작업 외에도, 고유전체학 연구는 생물고고학 내 다양한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활약하기 시작하였다. 우선 법의유전학(forensic genomics) 분야에서 널리 사용되는 Y-STR이나 autosomal STR 분석을 고 시료 분석에 활용하여 오래전 사망한 개인에 대한 신원확인을 시도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러시아 마지막 왕가인 로마노프(Romanov) 왕조의 마지막 황제(차르; Tsar)인 니콜라이 2세와 그의 일가족은 1918년 볼셰비키들에게 의해 살해당한 후 암매장되었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시신들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황제를 제외한 가족들은 어딘가에 살아있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었다(로마노프 왕조의 혈통임을 주장하는 사칭범들도 있었다). 이후 아마추어 고고학자에 의해 니콜라이 2세와 그의 가족들(및 수행원들)로 추정되는 인골이 발견되었으나 손상이 심하여 명확한 판정이 불가능한 상태였기 때문에, 미토콘드리아 DNA 및 autosomal STR genotype 분석을 통하여 이들이 실제 니콜라이 2세와 그의 가족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2].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같은 연구가 수행된 바 있는데, 한국 천주교 최초 순교자로 알려진 윤지충, 권상연, 윤지헌에 대한 연구다. 첫 순교자인 윤지충과 권상연의 경우 1791년 신해박해 때 순교하였고, 윤지헌의 경우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지난 2021년 완주 초남이 성지 무연분묘 10기 중 두 기의 무덤에서 윤지충과 권상연의 이름이 적힌 백자사발이 발견되었는데, 근처에 있는 다른 하나의 무덤에서 나온 시신의 경우 윤지충의 동생인 윤지헌으로 추정되었으나 신원을 증명할 단서가 없어 이를 확인하는 것이 어려웠다. 이에 Y-STR 기법을 활용, 해당 인골과 그 후손들의 Y 유전형을 비교하였는데, 이를 통해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던 인골이 윤지헌이 맞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27].
고유전체학 연구에 활용되는 또 다른 법의유전학적 연구기법은 SNP (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 genotyping을 들 수 있다. SNP는 사람에 따라 특정 부위 염기서열이 서로 다르게 분포되어 있는 것을 말하는데, 단백질 발현에 영향을 주는 것이 있고, 질병과 상관없는 것도 있으며, 특정 형질에 영향을 주는 다형성 SNP도 존재한다. 이를 이용하면 형질이나 인종을 구분하는 데 활용할 수 있으며, 피장자의 머리 색, 눈 색, 곱슬머리 여부 등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 과거 사람들의 생김새를 정밀하게 복원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21]. 이와 같은 SNP genotyping을 통한 고DNA 분석은 우리나라에서도 수행된 바 있으며, 지난 2018년 조선시대 미라 5구의 고DNA를 분석하여 해당 미라들의 머리카락 형태(곱슬/직모), 혈액형 및 액취증 여부와 같은 개인 형질을 밝혀내는 데 성공하였다 [14]. SNP genotyping은 또한 지역별 인구 집단 간 차이를 보는 데도 활용하고 있는데 [17], 아직 고 시료에 대한 분석성과는 많지 않으나 향후 고유전체학 연구에도 활용될 여지가 많은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3.2. 고DNA 분석을 활용한 고병리학 연구
전술하였듯 고유전체학은 사람(또는 동물)의 이동과 이주에서부터 개인식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활약하며 그간 명확히 알 수 없었던 다양한 고고학적 가설들에 대한 해답을 주고 있다. 이는 사람(또는 동물)이 아닌 발굴현장에서 나온 식물, 미생물, 기생충 등에도 널리 적용되고 있으며, 이로부터 유용한 정보들을 얻고 있다. 고병리학(paleopathology)이란 고고학 발굴현장에서 수집한 시료를 분석하여 옛사람들의 질병과 건강상태를 연구하는 분야인데, 해당 분야에서 고DNA 분석기법을 활용하는 방향을 보자면 사람이나 동물에게서 나타나는 선천적 질환을, DNA 분석을 통해 밝혀내는(검증하는) 방법이 있고, 미생물이나 기생충 등 다양한 감염성 질환을 일으키는 병원체에 대한 고DNA 분석을 통해 질병의 진단, 병원체 진화의 역사 등을 살펴보는 방법이 있다.
우선 전자에 대해 살펴보자면, 우리나라에서 수행된 연구를 예로 들 수 있겠다. 지난 2010년 경북 문경에서 발견된 17세기 여성 미라의 경우 CT 스캔을 통해 해당 미라가 죽상경화성심혈관질환(atherosclerotic cardiovascular disease)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11], 이에 대해 이어진 고유전학적 검사를 통하여 해당 미라가 실제 죽상경화성심혈관질환에 취약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23]. 후자의 경우는 고병리학적 연구에서 좀 더 많이 사용하는 방법인데, 주로 인간 역사에 많은 영향을 미쳤던 결핵(Mycobacterium tuberculosis), 흑사병(Yersinia pestis), 매독(Treponema pallidum) 등의 병원성 미생물과, 회충(Ascaris lumbricoides), 편충(Trichuris trichiura), 간흡충(Clonorchis sinensis) 등의 기생충에 대한 연구가 수행되고 있다. 고병리학적 연구에서 주로 분석되는 감염성 질환들은 현대에는 대부분 극복되어 찾아보기 힘든 것들이 대부분인 데다 기생충 또한 DNA 분석기법이 활발히 연구되기 시작한 1980년대에는 이미 우리나라를 포함한 다수 국가에서 찾아보기 힘든 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병원체에 대한 고DNA 분석은 고병리학뿐 아니라 의학이나 생물학에서도 매우 중요한 연구 주제가 되었다. 특히 많은 감염성 질환의 경우 발굴현장에서 발견되는 뼈나 미라 등에서 육안으로 발견하기 힘든 경우가 많아, 정확한 감별진단을 위해서는 고DNA 분석이 필수적으로 요구되게 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고대 감염성 질환에 대한 고유전체 분석이 수행되고 있으나, 이 글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수행된 몇 가지 사례를 예로 들고자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감염성 병원체 중 고기생충에 대한 DNA 분석이 다수 수행되었는데, 회충, 편충과 같은 토양매개성 기생충에서부터, 간흡충, 폐흡충, 요코가와흡충 등 흡충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생충 종의 고DNA를 15-18세기대 조선시대 미라 분변에서 검출하는 데 성공한 바 있다 [6-10]. 이와 같은 연구성과는 고대 감염성 병원체의 유전적 특징을 파악하고 그 진화과정을 밝히는 데에도 유용하게 사용되지만, 사람이 이동할 때 병원체도 같이 이동하였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해 보았을 때 인구의 이동이나 집단 간 교역과 같은 고대 생활상을 복원하는 데도 활용할 수 있는 기초자료가 된다.
4. 결론
지금까지 고유전체학의 역사와 더불어, 고DNA 분석기법이 실제로 현장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았다. 최초의 성공 사례 이후 낙관적이었던 고유전체학에 대한 전망은, 연구의 신뢰도에 대한 의심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한 차례 위기를 맞았다. 이후 연구결과물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움직임이 학계 내부에서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고DNA 연구는 새로운 장을 열게 되었는데, 이와 더불어 지난 2006년부터는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Next generation sequencing; NGS) 기법을 활용하여 고 시료를 분석한 사례가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고유전체학 분야는 날이 갈수록 성장하는 추세이다 [12, 16]. 5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현상은 가축화된 동물들에게서 보여지는 유전학적 병목현상(domestication bottleneck)과 상당히 닮았는데, 초기 고유전체 연구자 풀의 다양성이 연구 신뢰도에 대한 논란을 겪으면서 크게 감소하게 되었으나, 이후 고유전체 분석을 전문으로 하는 연구자 그룹이 확립되고 새로운 기술이 속속 도입되면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상당한 성장을 이루었다는 점이 그렇다. 향후 새로운 기법이 지속적으로 개발되고, 이를 이용한 연구성과가 쌓여, 종국에는 과거 사람들의 생활상을 보다 높은 해상도로 복원하는 한편, 기존 고고학 및 역사학적 연구기법으로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아 가설의 영역으로 남아 있던 다양한 주제들에 대한 해답을 내놓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길 기대한다.
5. 참고문헌
==>첨부파일(PDF) 참조
1 일반적인 생물학 실험에서 대략 25-30회가량의 cycle의 염기서열 증폭을 시도한다고 한다면, 고 시료를 사용한 PCR cycle 수는 대략 35-42회가량으로 수행된다. Cycle 1회당 2배로 증폭되는 DNA의 양이 증가한다는 점을 고려해 보았을 때, 결과물의 총량 차이가 엄청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2 PCR을 통한 고DNA 증폭 시 일반적으로 250bp 가량(미만)의 짧은 토막을 증폭, sequencing 한 후, 이후 중첩하여 최종적으로 긴 서열을 얻는다(Hong et al., 2022)
3 Y-DNA를 활용한 Y-haplogroup도 존재한다. 부계유전하는 Y chromosome의 특성을 살려 부계유전에 의한 인구집단의 이동 등을 밝히는 데 활용된다.
4 일반적으로 PCR을 통해 과변이부위를 분석할 때 5쌍의 프라이머(PCR primer)가 사용된다. 이러한 방법으로 16,569bp 길이 전체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60-70쌍 이상의 프라이머를 활용하여 PCR을 진행해야 하는데, 이는 NGS 기법이 나오기 전 까지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5 다만 해당 기법을 활용할 수 있는 연구실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보았을 때에도 많지 않으며,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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