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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리포트 동향리포트
바이오안보 연구 동향 및 팬데믹 전후 변화
김재호(교수신문)
목 차
1.서론: 세 가지 장면
2.바이오안보의 정의
2.1. 바이오안보 개념의 진화
2.2. 실험실 사고와 바이오안전-바이오안보
2.3. 생물학적 위협과 생물테러리즘
3. 생물무기의 규제와 관리
4. 질병 X와 바이오안보의 현대화
4.1. 기괴한 미지의 병원체 탄생
4.2. 바이오안보의 현대화: 인실리코와 바이오컨테인먼트
5.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의 바이오안보
5.1. 제국의학과 제국 그리고 식민지
5.2. 광의의 의미와 외교 차원
5.3. 뉴질랜드: 최초의 바이오안보법과 바이오안보 2025
6.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의 바이오안보
6.1. 바이오안보 언급 횟수의 변화: 펍메드
6.2. 바이오안보 유형과 위험요인
6.3. 항균제 내성과 팬데믹 조약
6.4. 백신 민족주의와 기술 독점
6.5. 바이오안보 인식 조사
7. 바이오안보의 격차 줄이기
8. 결론
9. 참고문헌
그림과 표
그림 1. 「일상 위협하는 바이오안보」
그림 2. 「바이오안보의 개념 층위별 구분」
그림 3. 「전통적·현대적 의미의 바이오안보」
그림 4. 「총체적 바이오안보 접근」
그림 5. 「세계보건기구 ‘실험실 바이오안전 매뉴얼 제4판’의 표지」
그림 6. 「조류인플루엔자로 인한 닮의 폐사와 살처분」
그림 7. 「생물테러리즘을 다룬 영화 포스터」
그림 8. 「4가지 방식으로 인체에 해를 끼치는 화학무기」
그림 9. 「국내에서 운영 중인 생물무기금지협약 정보망」
그림 10. 「‘감염병 인류: 균은 어떻게 인류를 변화시켜 왔나’의 표지」
그림 11.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현미경 사진」
그림 12. 「인실리코 알고리즘의 적용」
그림 13. 「고대 도시(아테네)의 역병」
그림 14. 「코로나19 이전에 정의된 바이오안보」
그림 15. 「뉴질랜드의 바이오안보 2025」
그림 16. 「연도별 바이오안보의 언급 횟수」
그림 17. 「2020년 이후 펍메드에서 ‘바이오안보(biosecurity)’가 언급된 횟수」
그림 18. 「항균제 내성과 바이오안보」
그림 19. 「백신 자국 중심주의와 불평등」
그림 20. 「바이오안보 인식 조사 결과」
그림 21. 「주요 키워드 워드 클라우드」
표 1. 「바이오안보에 대한 다양한 정의」
표 2. 「사고 발생 가능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표 3. 「바이오안보의 기본 도구와 목적 그리고 주요 내용」
표 4. 「생물학적 작용제에 대한 세계보건기구의 권고 사항들」
표 5. 「각각의 다른 바이오안보 분야들에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유형의 위험요소의 예」
표 6. 「바이오안보 격차를 줄이기 위한 도구들」
1. 서론: 세 가지 장면
#1. 최근 정체를 알 수 없는 국제우편물이 생물테러 대응에 경종을 울렸다. 국내 한 장애인시설에 도착한 우편물을 열어본 3명은 어지럼증을 느껴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후 추가로 괴소포가 전국에 3,604건 배달되면서 바이오안보에 비상등이 켜졌다. 다행히 경찰은 국방과학연구소의 화학·생물·방사능 조사 결과를 토대로 국제우편물에 위험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1, 2].
#2. 2023년 7월 24일, 서울시 용산구 고양이 보호시설에서 38마리가 집단 폐사했다. 두 마리의 고양이는 조류인플루엔자 확진 판정을 받았다. 서울시 관악구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고양이한테서 조류인플루엔자가 확진되는 사례는 매우 드문 일이다. 다행히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고양이로부터 사람에게 감염될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분석됐다 [3].
‘27.5%’ 이 수치는 향후 10년 내에 코로나19와 같은 역대급 팬데믹이 다시 발생할 수 있는 확률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만, 영국 의료조사업체 에어피니티는 기후변화, 인구·해외여행객 증가, 인수공통감염병의 위협을 원인으로 꼽으며 이 같은 전망을 내놓았다. 코로나19 다음으로 무서운 건 조류인플루엔자(Avian Infuenza) 변이이다. 만약 조류인플루엔자가 사람 간 전염되면, 영국에서만 하루에 1만 5천 명이 사망할 것으로 예측됐다 [4].
이제껏 조류인플루엔자로 인해 약 2억 800만 마리의 조류가 사라졌다. 현재 맹위를 떨치는 조류인플루엔자는 야생 조류에서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H5N1형 감염으로 인해 나타난다. 조류인플루엔자는 ‘H(헤마글로티닌: hemagglutinin)’ 단백질과 ‘N(뉴라미니다아제: neuraminidase)’ 단백질이 각각 16개X9개여서 이론상으로 총 144개의 새로운 형태를 만들 수 있다. 특히 H5N1은 RNA로만 이뤄져 변이의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를 발생시킨 사스코로나바이러스-2 역시 RNA 바이러스다. H5N1은 조류의 배설물에서 3개월 이상 살아남는데, 닭똥 1g으로 닭 1백만 마리를 감염시킬 수 있어 주의를 요망한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감염병으로 기록된 1918년의 스페인 독감 역시 이 H5N1의 돌연변이일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이다 [5-7].
조류인플루엔자가 확산되면서 포유류에게까지 전염되고 있다. 그 사례는 최소로 잡아도 200건 정도다. 더욱 무서운 건 조류인플루엔자가 인간한테 옮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00년 초부터 20년이 지나는 동안 인간한테서 발생한 868건의 H5N1의 감염 사례 중 457명이 사망했다 [5]. 가금류나 야생 조류는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다. 그래서 조류인플루엔자는 더욱 무섭다. 특히 닭은 인간한테 필수인 가금류이다. 인간과 접촉이 많을 수 있다는 점에서 경종을 울리고 있다. 아울러, 야생 조류는 언제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특징을 지니고 있어 감염 경로 파악 등에서 어려움을 배가시킨다. 인간이 조류를 식량으로 만들기 위해 개량화한 게 가금류인데, 오히려 가금류로 인해 인간이 역습을 당하는 형국이다. 특히 인간과 함께 사는 반려동물인 고양이 등도 조류인플루엔자에 노출돼 있고, 조류인플루엔자로 인해 사람이 사망하는 사례도 발생해 사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3. 코로나19 확산이 심상치 않다. 일일 확진자 수가 5만 명에 육박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종식에 따른 방역정책 완화, 지속되는 변이의 출현과 면역력 약화 등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특히 실내 활동이 늘어나는 겨울이 되면,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8].
지구 위 모든 생물의 바이오안보(Biosecurity)에 빨간불이 켜졌다. 바이오안보는 간단히 말해, 코로나19나 조류인플루엔자와 같은 전염병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인간을 포함한 동물·식물을 위협할 수 있는 바이러스나 세균이 유입되거나 확산되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다.
인류를 위해 개발하고 변형시킨 지구 환경이 더욱 바이오안보를 위협하는 형국이다. 자연적인 바이러스 돌연변이의 증가, 실험실에서 만들어내는 미지의 바이러스, 인구 폭발, 지구 온난화와 이상 기후, 무분별한 생태계 파괴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복잡계 시스템에서는 작은 행동 하나가 엄청난 규모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간주한다. 바이오안보를 위해서 고려해야 할 요소는 많은데, 인류가 대응하고 있는 지점은 적다. 그렇다면 결과는 뻔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팬데믹의 등장이다.
인류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준 교훈을 반드시 유념해야 한다. 우리는 사스코로나바이러스-2가 살아 있는 동물들을 바로 도축해서 파는 웻 마켓(wet market)에서 시작했는지 혹은 실험실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여전히 모른다. 다만, 수많은 작은 가능성들 중 하나가 그 모든 것의 시작을 알렸다는 점은 분명하다.
“시스템에 생긴 겉으로 보기에 작은 균열이 큰 규모의 사태를 촉발할 수 있다.” “시스템이 임계상태에 들어서기만 하면 하찮은 행동마저도 큰 규모의 변화를 촉발할 수 있는데, 그 결과를 우리는 이제 겨우 이해하기 시작했을 뿐이다.” - 『전체를 보는 방법』 11장 ‘자기조직화 임계성―돌부터 모래까지’ 중에서 [9]
2. 바이오안보의 정의
2.1. 바이오안보 개념의 진화
아주 쉽게 보자면, 병원균의 차단과 봉쇄가 바로 바이오안보이다. 바이오안보는 병원균의 유입을 방지하고, 병원균의 확산을 줄이기 위한 모든 조치를 포함한다. 전자는 ‘바이오-차단(bio-exclusion)’, 후자는 ‘바이오-봉쇄(bio-containment)’라 부를 수 있다 [10].
바이오안보는 지구상 모든 생물에 위험한 유기체, 즉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곰팡이 등 미생물이 유입되고 확산하는 것을 막으려는 노력을 의미한다. 특히 인간에서 인간, 인간과 동물 사이에 감염성 질병이 전파하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이다. 바이오안보는 저 바깥세상인 야생뿐만 아니라, 군사시설이나 대학 내 연구실험실에서도 적용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11].
바이오안보에 대한 논의는 1980년대에 농업 부문에서 “생물학적 위협을 방어하기 위한 위험 관리 실천들(practices)의 총합”으로 처음 사용했다. 현재는 동물과 공중 보건의 두 차원에서 바이오안보가 고려된다. 생물학 실험실과 전염병 예방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바이오안보라는 개념이 사용된다 [10].
바이오안보는 원래 한정된 의미에서 생물학 무기(biological weapons)와 생물 테러리즘(bio-terrorism)을 뜻했다. 그런데 코로나19 이후 바이오안보에 대한 개념은 더욱 확장되고 다층화했다. 바이오안보는 농가에서 키우는 닭장에서부터 대학의 실험실과 군사시설의 극비 연구실까지 다양해졌다. 특히 웻 마켓과 매일 우리의 일상을 지키는 식탁과 출처를 알 수 없는 괴소포 등까지 바이오안보는 우리 주변과 연결돼 있다.
1960년대 의료와 공중 보건 전문가들은 전염병이 “위생, 항생제 및 백신의 결합된 영향으로 점차 사라질 것”으로 확신했다. 하지만 그러한 예측은 빗나갔다. 지난 10년 동안 전염병이 (재)출현했는데, 그중 61%는 인수공통감염병이었다. 특히 새로운 인간 병원체의 75%가 동물에서 비롯됐다 [10].
좁게는 실험실부터 넓게는 국경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안보 개념으로 바이오안보가 떠오르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국경이 폐쇄되고 집단 격리가 발생했다. 아울러, 생물학적 무기로서 바이러스와 세균 등 질병 발생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심미랑 한국지식재산연구원 박사도 “바이오안보는 보건, 농업 또는 환경 분야뿐만 아니라 병원균이 생물학적 무기로 사용되는 안보적 위협에 대응하는 생물방어(biodefense), 생물전(biologicial warfare) 또는 바이오테러 차원까지 포함한다”라고 강조했다 [12].
요컨대, 바이오안보는 △생물학 무기와 생물 테러리즘에 대한 대응 △농업 분야에서 위험 관리를 위한 실천들 △대학 실험실과 군사 극비 연구실에서의 위협 요소 사전 대응 △코로나19 재확산과 제2의 팬데믹 우려 등 인수공통감염병 극복 △식품 안전성 확보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소포 유출에 대한 조사와 대응 등을 뜻한다. 앞의 세 가지는 전통적 의미가 뚜렷하고, 뒤의 세 가지는 현대적 의미가 강하다. 특히 코로나19를 전후해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그리고 향후 필요한 과제는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벨기에 바이오안전 서버(the Belgian biosafety server)는 바이오안보를 “병원체, 독소 및 기타 생물학적 물질의 분실, 도난, 우회 또는 의도적인 방출을 통한 오용 방지”로 정의한다. 미국 주정부 농무부협회(NASDA)는 “생물학적 위협으로부터 인간-동물-환경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전략, 노력, 계획의 중요한 작업”으로 간주했다 [10]. 둘 다 사전 예방을 강조하고 있다.
세계동물보건기구에 따르면, 동물 보건과 동물 관련 생산 부문에서 바이오안보는 “동물 개체군 내에서 동물 질병의 도입, 발발(establishment)의 위험을 줄이고 동물 개체군 내로 감염, 침입되는 걸 줄이기 위해 고안된 일련의 관리 및 물리적 조치”로 정의된다. 이 정의는 EU의 「동물 건강법」 규정에서도 언급된다. 이 때문에 바이오안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통일된 정의를 내리고자 시도한다. “감염성 질병, 검역병해충, 침입외래종, 유전자변형생물체(LMO), 생물학적 무기의 위험을 평가하고 관리하기 위한 전략.” [10]
유엔(UN)의 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보건기구(WHO)는 바이오안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바이오안보는 관련된 환경 위험을 포함하여, 식품 안전-공중 보건-동식물 생명과 건강의 위험을 분석하고 관리하는 정책 및 규제 프레임워크(도구와 활동이 포함됨)를 포괄하는 전략적이고 통합된 개념이다.” 2007년부터 바이오안보는 유엔의 동물 건강 전략과 유럽질병예방통제센터(ECDC)의 국가 대비 계획의 핵심 요소로 포함됐다. 앞서 세계보건기구는 2005년에 채택한 국제보건규칙(IHR)에 바이오안보를 포함시켰다 [10].
바이오안보는 원 헬스(One Health) 개념의 일부로서 인간-동물-식물-환경으로의 병원체 확산 방지를 포함하므로 매우 중요하다. 바이오안보는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부문 간의 상호 작용을 고려하는 총체적·통합적인 접근 방식이다. 이에 따라 ‘원-바이오안보(One biosecurity)’의 개념도 제시된다 [10].
2.2. 실험실 사고와 바이오안전-바이오안보
실험실에서 발생하는 생물학 관련 사고는 의도적이지 않고 우연적인 경우가 많았다. 1903년, 실험실에 있던 한 과학자가 비저균에 감염되는 일이 있었다. 그는 기니피그를 부검하다가 손가락이 다쳤다. 기니피그를 이미 접종해 둔 상황이었지만, 사람이 감염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다행히 그 과학자는 죽지 않았다. 비저균은 전염성 질환을 유발하는 병원균으로서 말이나 당나귀에서 발생하고 사람한테까지 옮는다 [11].
1967년, 마르부르크 바이러스 감염사고는 7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 당시 서독의 한 연구실에서 아프리카 녹색 원숭이를 연구하고 있었다. 그런데 실험실 연구원 31명이 원숭이의 피부조직에 노출되면서 마르부르크 출혈열이 발병하고 말았다 [11].
전쟁이 파괴한 실험실은 바이오안보를 더욱 어렵고 두렵게 한다. 수단에선 교전하던 한 집단이 하르툼의 국립 공중보건연구소를 점령했다. 이 연구소는 소아마비·콜레라 등 다수의 병원균 샘플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관련 기술자들이 모두 쫓겨났다. 특히 14군데 의료시설이 공격당하면서 수단 국민들은 뎅기열, 콜레라, 말라리아 등에 노출될 위험이 높아졌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던 시기에도 공공·동물보건연구소가 군인들에 의해 장악돼 의도적인 병원균 유출이 심히 우려된 적이 있다. [11]
바이오안전(biosafety)은 바이오안보(biosecurity)와 질적으로 다른 개념이다. 바이오안전은 실험실이나 연구실 등에 국한된 반면, 바이오안보는 공간적 제약 없이 적용되는 개념이다.
바이오안전은 바이오안보를 보완하는 측면이 강하다. 바이오안전은 “감염 가능성이 있는 미생물 및 기타 생물학적 위험을 떠안고 작업을 진행할 때, 실험실 관행과 절차, 실험실 시설의 특정 구조가 지닌 특징들, 안전 장비와 적절한 산업 보건프로그램의 구현”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벨기에에서는 바이오안전을 “유전자변형작물(GMO)·유전자변형미생물(GMM)을 사용하거나, 인간을 위해 병원(病原)성 유기체를 밀폐 이용하는 경우, 생물다양성을 포함한 인류 보건과 환경의 안전”이라고 정의한다 [10].
마찬가지로 바이오안전은 병원체로부터 연구자, 접촉자 등 주변의 환경을 보호하는 반면, 바이오안보는 병원체의 독성이나 숙주의 범위와 전염성 등 예민한 정보에 대한 접근에 무게를 둔다는 분석도 있다 [12].
이에 따라 ‘실험실 바이오안전’과 ‘실험실 바이오안보’라는 개념도 제시된다. 실험실 바이오안전은 “감염병 질병 인자의 우발적 창출 또는 노출 위험을 줄이기 위해 취하는 조치”, 실험실 바이오안보는 “위험한 생물학적 제제가 악의적으로 사용될 위험을 줄이기 위해 합법적인 생명과학 시설에서 사용되는 일련의 시스템 및 관행”을 뜻한다. 실험실 바이오안보는 △물리적 안보(CCTV 감시, 출입 통제 등) △인사 안보(Personnel security) △자재 관리 및 책임 △운송 안보 △정보 안보 △프로그램 관리 △생물학적 안보로 구성된다 [12].
실험실이 문제가 되는 건 좋은 의도로 연구를 했더라도 의도와 상관없이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2004년 미국은 ‘바이오안보에 관한 국립과학자문위원회(NSABB: National Science Advisory Board on Biosecurity)’를 설립했다. 여기서 이중용도 연구를 “공중보건 및 국가보안에 생물학적 위협을 가하기 위해 오용될 수 있는 정당한 과학적 목적을 가진 생물학적 연구”로 정의했다 [12].
실험실은 유전자 변형과 같은 작용제(agents)와 실험의 이중용도 특성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특히 승인되지 않은 접근, 분실, 도난, 오용, 유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적절한 차단방역 조치를 채택하기로 결정한 국가 지침을 따라야 한다. 생명과학의 잠재적인 오용은 실험실 바이오안보에 대한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한 세계적인 위협이다. 이럴 경우에만, 중요한 연구와 임상 재료들에 대한 합법적 접근이 유지될 수 있다 [13].
2020년 12월, 세계보건기구는 「실험실 바이오안전 매뉴얼 제4판」을 발행했다. 초판은 1983년 나왔다. 매뉴얼은 전 세계적으로 모든 수준의 임상과 공중 보건 실험실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돼 왔다. 여러 생물의학 부문도 포함해서 말이다. 매뉴얼은 바이오안전의 모범 사례를 제시하면서 글로벌 표준 역할을 한다. 특히 매뉴얼은 개별 국가들이 바이오안전에 대한 기본 개념을 수용·구현하고 생물학적 작용제(agents)를 안전하게 취급하기 위한 국가 실천 코드를 개발하도록 장려한다 [13]. 2023년 5월 2일, 강원대의 한 실험실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났다. 실험실 멸균작업대 안에 토치로 불을 붙이던 중 가스가 폭발해 한 대학원생이 중상을 입었다. 실험실 내 아주 큰 사고는 아주 적은 양의 생물학적 작용제로도 발생할 수 있다. 어떤 실험을 하느냐에 따라 관련 요소는 달라진다. 사고는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아래는 세계보건기구에서 사고 발생 가능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정리한 것이다 [13, 14].
2.3. 생물학적 위협과 생물테러리즘
인수공통감염병인 조류인플루엔자가 사람에게까지 감염되고 사망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올해 초 칠레에선 처음으로 50대 남성이 조류인플루엔자에 확진된 바 있다. 중국에서는 50대 여성이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H3N8)에 감염돼 사망했다. H3N8형 조류인플루엔자 사망 사례는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중국이 세계보건기구에 늦장 보고해 비난의 여론이 일었다. 일본은 사상 최악의 조류인플루엔자 확산으로 인해 닭을 대대적으로 살처분했는데, 사체 묻을 땅이 부족할 지경이다 [11, 15].
한때 제2의 팬데믹이 될까 우려했던 인수공통감염병 엠폭스(MPOX·원숭이두창)의 국내 확진은 점차 안정세를 찾고 있다. 2023년 7월 31일 질병관리청 발표에 따르면, 누적 확진환자는 129명에 달했다. 다행히 엠폭스 확진환자는 조금씩 줄고 있다. 엠폭스는 중앙아프리카·서아프리카 풍토병이다. 1958년, 실험실에서 사육되던 원숭이로부터 엠폭스가 처음 발견됐다. 1970년, 콩고민주공화국은 사람에게 감염된 사례를 최초로 보고했다 [11, 16].
바이오안보의 주요 목표는 질병과 유기체에 의해 야기되는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 [10]. 여기서 무엇을 보호하느냐는 질문이 제기된다. 그건 바로 ‘인간-동물-환경’이다. 인간만 보호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인간 중심주의의 동기가 현재의 팬데믹 위협을 낳았다. 앞으로 바이오안보의 주요 목표는 인간 중심주의를 벗어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인류세로 발생한 총체적 위험과 재난을 극복할 수 있다.
바이오안보의 기본 도구는 차단(exclusion), 근절(eradication), 통제(control)이다. 바이오안보는 전문가 시스템 관리, 실용적 프로토콜, 중요 정보의 신속하고 효율적인 보안과 공유에 의해 지원된다 [10]. 차단은 발생할 수 있는 전염병의 근원 요소들을 예방 차원에서 배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근절은 이미 발생한 병원체가 다시 나타나지 못하도록 사후 차원에서 대응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통제는 예방·사후 차원에서 가능성을 차단하고 병원체에 대응하기 위한 최선의 방어책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생물학·독소 무기(biological and toxin weapon)를 바이러스, 박테리아나 곰팡이와 같은 미생물이나 인간-동물-식물에 질병과 사망을 유발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생산·방출되는 독성 물질로 규정한다. 독성 물질은 살아있는 유기체에 의해 만들어진다 [17].
탄저균, 보툴리눔 독소(상한 고기와 연관이 있으며 마비성 질환을 촉발한다. 이른바 ‘보톡스’라고 불린다.), 페스트와 같은 생물학적 작용제(biological agents)는 심각한 공중 보건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수의 사망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2차 전파가 가능한 생물학적 작용제는 전염병을 일으킬 수 있다. 생물학적 작용제와 관련된 공격은 자연적 현상을 모방할 수 있는데, 공중보건 평가와 대응을 복잡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전쟁과 분쟁의 경우 위협이 높은 병원체 실험실이 표적이 될 수 있으며, 이는 심각한 공중 보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17].
생물학 무기는 비재래식 무기나 대량살상 무기의 하위 집합을 형성한다. 광대한 범위를 포괄하는 비재래식 무기나 대량살상 무기에는 화학, 핵, 방사능 무기가 포함된다. 생물학 작용제의 사용은 심각한 문제이며 이러한 작용제를 테러 공격에 사용할 위험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17].
현대의 생물학적 위협과 생물테러리즘은 그 수위를 전혀 예상할 수 없다. 특히 저비용·소량으로 정교하게 제조하고 쉽게 운반·이동이 가능해 대규모 인명 살상을 초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합성생물학, 유전자가위, 나노바이오기술 등이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해 하드웨어와 결합하는 것이다. 더욱이, 생물무기는 초기 감지와 치료가 힘들고, 스스로 진화하고 확산하는 경향마저 띨 수 있다 [18].
역사적으로 생물테러리즘은 꾸준히 발생해 왔다. 1984년 미국에서 발생한 라즈니쉬 집단의 살모넬라균 테러(751명 중독), 1993년 옴진리교 탄저균 테러 미수 사건, 1995년 옴진리교의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테러(14명 사망, 약 6,300명 부상), 2001년 뉴욕에서 발생한 탄저균 테러(상원의원에서 탄저균 포자 우편물이 배달돼 5명이 사망) 등은 정말 끔찍하다 [19-21].
영화에서도 생물테러리즘은 단골 소재로 활용돼 왔다. 주한미군이 한강에 정체불명의 독극물을 뿌려 괴물을 만들었다는 내용의 「괴물」(봉준호 감독, 2006), 도심에 유포된 의문의 가스를 피해 탈출하는 「엑시트」(이상근 감독, 2019), 바이오기업에서 일하던 한 개인이 증오심에 불타 꾸민 비행기 생물테러 「비상선언」(한재림 감독, 2022) 등이 일상을 다시 돌아보게끔 했다.
고의적 행위이든 자연적으로 발생한 사건이든 관계없이 생물학적 작용제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공중보건의 문제점들에 대해 집중할 필요가 있다. 생물학적 작용제에 대해 우려하는 경우, 더욱 잘 대비하기 위해 세계보건기구는 다음을 권고한다 [17].
효과적인 국제적 봉쇄 노력에는 세계보건기구의 글로벌 경보 및 대응 활동과 국제유행경보대응네트워크(GOARN: Global Outbreak Alert and Response Network)가 필수다. 이 두 가지는 전염병의 탐지, 확인, 억제를 목표로 하는 글로벌 보건 안보의 두 축이다 [17].
국제유행경보대응네트워크는 △유행경보 및 위험평가 △공중보건 신속대응 역량 △유행 현장대응 훈련 △현장 대응 관련 연구개발 △운영체계 마련의 업무를 하고 있다. 전 세계 90개 국 이상, 3천 명에 가까운 전문가가 150개가 넘은 감염병 유행상황을 대응했다 [22].
국제유행경보대응네트워크는 약 20명의 조정위원들을 두고 1년에 2차례 회의를 개최한다. 주요 파트너 기관은 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 캐나다 공중보건국, 국경 없는 의사회, 파스퇴르 연구소, 한국의 질병관리본부, 서울대 이종욱글로벌의학센터 등이 있다 [22].
3. 생물무기의 규제와 관리
국내에는 약칭 「생화학무기법」(화학무기·생물무기의 금지와 특정화학물질·생물작용제 등의 제조·수출입 규제 등에 관한 법률)이 있다. 이에 따르면, 생물무기는 생물작용제 또는 독소이다. 단, 질병 치료나 평화의 목적으로 생물작용제나 독소가 사용되는 경우는 예외다 [23].
생화학무기법은 화학·세균·생물·독소 무기 등에 관한 국제적 협약이나 의무 이행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이 법이 명시한 두 가지 협약은 「화학무기의 개발·생산·비축·사용 금지 및 폐기에 관한 협약」(The Convention on the Prohibition of the Development, Production, Stockpiling and Use of Chemical Weapons and on their Destruction: the Chemical Weapons Convention or CWC: 줄여서 화학무기금지조약)과 「세균무기(생물무기) 및 독소무기의 개발·생산 및 비축의 금지와 그 폐기에 관한 협약」(The Convention on the Prohibition of the Development Production and Stockpiling of Bacteriological(Biological) and Toxin Weapons and on Their Destruction: the Biological Weapons Convention or BWC: 줄여서 생물무기금지협약)이다 [23].
CWC는 1997년 4월 29일 발효되었으며, 현재 193개의 당사국이 있다. 이집트, 북한, 남수단은 서명이나 비준을 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서명했지만 비준은 하지 않았다. CWC는 서문, 24개의 조항과 3개의 부록으로 구성돼 있다. CWC의 목표는 당사국에 의한 화학무기의 개발, 생산, 획득, 비축, 보유, 이전 또는 사용을 금지함으로써 대량살상무기의 전체 범주를 제거하는 것이다. 모든 당사국은 보유하고 있을지 모르는 화학무기 비축물과 이를 생산한 시설 그리고 과거에 다른 당사국 영토에 버린 화학무기를 파괴함으로써 화학적 무장 해제에 동의했다. 아울러, 당사국은 특정 독성 화학물질과 그 전구체(precursor)에 대한 검증 체제를 만들어 해당 화학물질이 협약에서 금지하지 않는 목적으로만 사용되도록 하는 것에 동의했다 [24, 25].
CWC의 고유한 특징 중 하나는 다른 당사국의 준수 여부가 의심스러운 당사국이 기습 사찰을 요청할 수 있는 ‘도전 사찰’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CWC의 ‘도전 사찰’ 절차에 따라 당사국은 거부권 없이 ‘언제 어디서나’ 사찰의 원칙을 준수하기로 약속했다. 2023년 7월 7일, 화학무기금지기구(OPCW)는 성명을 통해 CWC 모든 당사국이 합의한 비축물 폐기의 마지막 이정표를 찍었다고 밝혔다. 마지막 화학무기의 폐기를 확인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화학무기금지기구는 전 세계 국가에 걸쳐 신고된 화학무기 관련 비축물 72,304톤의 폐기를 검증했다 [24-26]. 다만, 국가적 차원의 신고와 기구의 확인이 얼마큼 실효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최근에는 인공지능을 활용해 개인과 민간 영역에서도 충분히 화학무기를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화학 무기는 인체에 4가지 방식으로 주요한 문제를 일으킨다. 첫째, 질식은 폐를 통한 흡수로 발생한다. 염소(CI), 클로로피크린(PS), 다이포스젠(DP), 포스젠(CG) 등 화학 작용제가 가스로 확산돼 주로 호흡기에 손상을 입힌다. 둘째, 수포는 황 겨자(H, HD), 질소 겨자(HN), 루이사이트(L) 및 포스겐 옥심(CX) 등이 액체나 에어로졸, 증기나 먼지로 분산된다. 수포는 호흡기관이나 피부에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 셋째, 혈액에 영향일 끼치는 작용제는 사이안화수소(AC), 염화 사이아노젠(CK), 아르신(SA) 등이 가스로 확산된다. 혈액 작용제는 주로 세포가 산소를 사용하는 능력을 억제해 신체를 질식시킨다. 넷째, 신경이다. 타분(GA), 사린(GB), 소만(GD), 사이클로사린(GF), VX 등의 신경 작용제는 액체나 에어로졸, 증기나 먼지로 분산된다. 신경 작용제는 신경계에서 아세틸콜린에스테라아제(AChE)라는 효소를 차단한다. 이 효소는 신경 세포 사이 또는 시냅스를 가로지르는 신경 전달 물질의 축적을 유발함으로써 근육, 땀샘 및 기타 신경의 과도한 자극을 유발한다. 이외에도 최루 가스(CS), 페퍼 스프레이(OC) 등 폭동 진압제는 전투 수단으로 사용되는 경우 화학무기로 간주된다. 각 괄호는 분류에 따른 표기이다 [27].
BWC는 1975년 3월 26일 발효됐다. 현재 185개 국이 가입하고 비준했다. 우리나라는 1987년 6월 가입했다. 제10조 평화목적을 위한 설비, 물자 및 과학적, 기술적 정보의 교환, 국제협력에 따르면, “이 협약의 당사국은 세균성(생물성) 물체와 독소의 평화적 사용을 위한 설비, 물자 및 과학적, 기술적 정보를 최대한으로 교환하는데 편의를 제공하고 또한 교환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라며 “또한, 이러한 입장에 있는 협약당사국은 개별적으로 또는 다른 국가나 국제조직과 공동으로 질병의 예방이나 다른 평화적 목적을 위하여 세균학(생물학) 분야에 있어서 과학적 발견의 새로운 개발과 응용에 기여하는 데 있어서 협력한다”라고 명시돼 있다 [28].
국내 생물무기금지협약 정보망을 보면, 생물작용제와 독소의 종류가 나열돼 있다. 생물작용제는 인체·인수병원균, 동물병원균, 식물병원균으로 나뉘어 있다. 인체·인수병원균의 바이러스에는 크리미안-콩고 출혈열 바이러스(Crimian-Congo haemorrhagic fever virus)부터 우해면양 뇌병증 병원체(Bovine Spongiform encephalophathy agent) 등이 있다. 미생물에는 탄저균부터 홍반열 리케치아균(Rickettsia rickettsii) 등이 있다. 동물병원균의 바이러스에는 아프리카돼지열 바이러스(African swine fever virus)부터 아프리카마역 바이러스(African horse sickness virus) 등이, 미생물은 우폐역(Mycoplasma mycoides)이 있다. 식물병원균의 바이러스에는 감자구균(Potato Andean latent tymovirus)과 감자걀쭉병 바이로이드(Potato spindle tuber viroid(PSTVd))가 있고, 미생물에는 구름무늬병균(Xanthomonas albilineans)부터 도열병균(Pyricularia grisea / Pyricularia oryzae) 등이 있다. 독소에는 보툴리눔 독소(Botulinum toxins)부터 볼켄신 독소(Volkensin toxin) 등이 있다 [28].
생물무기금지협약 정보망에서 제공하는 BWC 모니터링 소식(N.106)을 보면, 방해국가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소다자주의가 눈에 띈다. 2014년부터 촉발된 분쟁으로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졌다. 전쟁으로 인해 BWC 평가회의에도 영향을 끼쳤다. 특히 러시아의 경우, 허위 정보 등으로 국제질서를 위협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5년마다 BWC 조약을 평가하는 회의의 주기가 너무 길다는 지적이다 [28].
아울러, BWC 평가회의가 일부 국가의 방해로 인해 합의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2001년 미국은 협상을 독단적으로 종료하기도 했다. 그래서 “오늘날의 생물학적 위협은 너무 다양하고 시급하고 복잡하여 지정학과 엄격한 외교규칙에 얽매일 수 없다”라며 즉각적인 대응이 요구된다고 지적된다. 그 방법은 BWC의 전통적인 다자주의를 소다자 접근방식(Minilateralism)으로 보완하자는 것이다. “소다자주의는 다자간 기구가 정치적, 법적 혹은 자원 제약으로 인해 수행할 수 없거나 수행하지 않을 실질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역량과 동기를 가진 '의지의 연합'을 결성하려고 한다.” [28]
4. 질병 X와 바이오안보의 현대화
4.1 기괴한 미지의 병원체 탄생
2018년 2월, 세계보건기구는 향후 전염병을 일으킬 수 있으나 알려져 있지 않은 가상의 병원체를 ‘질병 X’라고 부르고 시급히 다뤄야 할 감염병 목록 마지막에 넣었다.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의 전 소장이었던 앤서니 파우치는 질병 X의 개념은 세계보건기구가 지카바이러스 같은 개별 변종이 아니라 바이러스 전체 분류인 플라비바이러스에 집중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통해 예측하지 못한 변종에 대응하는 세계보건기구의 능력을 향상시킨다는 것이다 [29]. 코로나19야말로 질병 X이며, 우리는 제2의 팬데믹을 걱정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런데 과연 질병 X를 유발하는 병원균이나 미지의 바이러스는 어떻게 나타났을까? 생각해 보면 인간이 스스로 불러온 경우가 많다. 괴물 같은 새로운 바이러스를 만들어 내거나 꼭꼭 숨겨져 있던 미지의 바이러스를 인구가 집중해 있는 도시로 가져오는 경우가 있다. 생각해 보면, 모든 원인이 인류를 향하는데 섬뜩할 정도이다.
『감염병 인류: 균은 어떻게 인류를 변화시켜왔나』를 쓴 박한선·구형찬 공저자는 “인류를 괴롭히는 1400여 종의 병원체 대부분은 인류 스스로 불러들인 녀석들”이라며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인류의 진화사는 곧 감염병의 진화사”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들은 “감염성 질환은 전체 사망의 약 25%를 차지합니다”라며 “인류가 겪은 어떤 팬데믹도 단기간에 종결된 적이 없습니다. 짧아도 몇 년, 길면 수백 년을 유행했습니다”라고 적었다 [30].
2012년 고위험성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Avian influenza A virus H5N1)의 포유류 전염가능성에 대한 두 가지 연구가 네덜란드와 미국에서 진행됐다. 네덜란드 실험팀은 H5N1 변종에 유전자 변형을 가한 후 흰담비에 지속적으로 배양시켰다. 이를 통해 포유류에 공기로 전파되는 유전자변형 바이러스를 만들어냈다. 미국 연구팀은 H5N1-H1N1 키메라 바이러스를 만드는 것도 모자라, 이 바이러스에 특정 유전자를 더해 공기로 퍼지는 유전자변형 바이러스를 탄생시켰다. 이 때문에 미국의 바이오안보에 관한 국립과학자문위원회는 두 연구의 중요한 내용에 대해서는 논문에 실지 않도록 권고했다. 이중용도 연구의 문제가 나타난 사례이다 [18].
아울러, 유전자가위(CRISPR-9) 시스템을 모기의 유전자에 삽입한 사례도 있었다. 그런데 몇몇 과학자들은 이러한 유전자 편집 기술이 생태계 교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하며 연구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말라리아 전파를 막기 위해 모기의 유전자를 개조해 자손에까지 유전자 교정을 일으키는 건 복잡계 생태 시스템에서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 그 누구도 모른다 [18].
민간 영역에서 기괴한 코로나바이러스 타입을 만들어낸 경우도 있다. 미국 보스턴대 과학자들은 정부의 자금을 사용하지 않았기에 규제를 받지 않고 실험을 진행했다. 이 때문에 자금이 어디서 왔는지 상관없이 위험한 병원체를 연구하는 어떤 기관이든 감독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11].
인류 스스로 미지의 바이러스를 도시로 가져오는 경우가 있다. 재앙을 스스로 만드는 셈이다. 미국은 질병 퇴치를 위한 미생물 연구에 그동안 78개국 10개 이상의 지역에 약 30억 달러(4조 65억 원)를 투자했다. 그중 한 곳이 태국 방콕의 쭐랄롱꼰대학교이다. 이곳은 2011년부터 연구자금 지원을 받았다. 태국의 과학자들은 외딴 동굴·숲은 매해 방문하며 박쥐의 피와 배설물 등을 대학교로 가져왔다. 방콕은 서울보다 인구가 많은 곳이다. 2016년에는 한 연구원이 박쥐에 물렸고, 2018년에는 실험실 환기 시스템이 고장 나는 사고가 발생했다 [11, 32].
전 세계에 고위험 연구를 진행하는 곳이 100군데 이상이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이중용도 연구의 위험성을 감지하고, 바이오안전-바이오안보를 한층 튼튼하게 하기 위해 18억 달러(약 2조 4천57억 원)를 요구한 바 있다 [11].
4.2 바이오안보의 현대화: 인실리코와 바이오컨테인먼트
인류가 생존을 위해 진화해 오며 공중 보건 차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강력하고 실시간 대응이 가능한 인프라였다. 이 때문에 미래의 전염병 위협에 좀 더 성공적인 대응을 위해 백신 등 국가 비축과 공급망의 ‘현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유전자 편집 기술, 생명공학과 정보기술 간의 융합 확대로 생물학의 정밀한 조작이 가능해졌다. 이로 인해 냉전 중 생물 무기 프로그램이 일상으로 번질 가능성이 생겼다 [33].
2001년 탄저균 테러로 미국에서 5명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이후, 바이오안보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2018년엔 국가 바이오방어 전략(National Biodefense Strategy)을 수립하며, 국방부와 보건복지부, 국토안보부와 농업부가 생물학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포괄적인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노력한다. 2022년엔 백악관에서 바이오안보를 위한 실행 계획(Implementation Plan)을 발표했다. 이 안의 주요 원칙은 다음과 같다 [33, 34].
▷ 생물학적 위협은 지속적이다.
▷ 생물학적 위협은 여러 원인(출처)에서 발생한다.
▷ 전염병은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
▷ 생물학적 사건은 중요한 기반 시설과 공급망에 영향을 미친다.
▷ 다분야·다자간 협력은 효과적인 바이오방어에 매우 중요하다.
▷ 원 헬스 접근 방식은 생물학적 사고의 발생과 그에 따른 영향을 줄인다.
▷ 과학과 기술은 전 세계적으로 계속 발전할 것이다.
아울러, 실행 계획은 능동적·효과적인 바이오안보를 위한 주요 목표 5가지를 제시한다. [35]
△ 바이오방어(biodefense) 기업 대상 위험 감지 정보 제공
△ 바이오방어 기업의 생물학적 사건 방지 능력 확보
△ 생물학적 사건의 영향력 최소화를 위한 바이오방어 기업 대응 능력 지원
△ 생물학적 사건의 영향력 최소화를 위한 정부 차원의 대응
△ 생물학적 사건 이후 공동체, 경제 및 환경의 회복력 증진 등을 제시함
위 내용에서 눈여겨볼 것은 원 헬스 접근 방식, 과학과 기술의 점진적 발전, 회복력 증진 등이다.
현대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인실리코(in silico) 기계 학습 알고리즘’이 제시된다. 인실리코는 가상·모의실험을 통해 예측하는 분석법이다. 이 알고리즘은 어떤 유전적 돌연변이가 인간에게 인수공통전염병으로 확산될지 혹은 가축이나 농업에 위험을 초래하는 종간 전염(species jumps)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다. 특히 인플루엔자 초기 분석 등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병원체 변경 관련 연구 등 실험실 내 임상실험을 대체할 수 있다. [33]
하지만 인실리코 기계 학습 알고리즘은 해킹에 취약할 수 있고, 정보가 악의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알고리즘을 통해 인간 또는 환경과 경제에 불리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바이러스의 우발적 방출 또는 실험실 감염을 최소화할 수 있다. 새로우면서 동시에 살아 있는 병원성 유기체를 생성할 필요성을 제거함으로써 말이다. 그 병원성 유기체는 나쁜 결과를 발생시킬 수 있는 형질을 획득할 수 있다 [33].
인실리코 알고리즘의 기술과 도구는 생물학적 공격이 의심되는 경우 국제 네트워크로서도 활용 가능하다. 진단 분석과 법의학 증거에 중점을 둔 자격 있는 실험실 네트워크가 최근 소집됐다. 이 네트워크에 최첨단 포렌식과 속성 분석 방법이 함께 하면 더욱 효율적일 수 있다. 이 때문에 생물학적 사건에 대응하여 일상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법의학 분석 도구 및 방법에 대한 표준을 선택하고 투자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33].
실험실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코로나19와 같이 인류를 위협하는 팬데믹을 초래할 수 있기에 바이오안전의 차원에서 바이오컨테인먼트(생물학적 봉쇄)가 더욱 주목받고 있다. 특히 중국에서 코로나19 발병 시기에 우한의 바이러스연구소에서 유출 사고가 있었다는 소식이 전해짐에 따라, 생물학적 병원체를 더욱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바이오컨테이너먼트의 종합적인 목적은 감염성 유기체와 독소를 가둠으로써 실험실 근로자나 실험실 외부의 사람들에게 노출될 가능성을 줄이는 것이다. 또한 환경에 우발적으로 방출될 여지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다. 바이오컨테인먼트는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안전을 도모한다. 1차는 기본 차단장치와 개인 보호 장비다. 안전 장비에는 생물 안전 작업대, 개인 보호 장비가 포함된다. 생물 안전 작업대는 감염원이나 독소를 담도록 설계된 1차 격리 장치로서 세포 및 조직 배양, 박테리와 및 바이러스 작업과 임상 샘플 조작 등과 같은 다양한 응용 분야에서 사용된다. 생물 안전 작업대는 방향이 고정된(directional) 공기 흐름이나 고성능 입자 공기 필터에 실험실 작업자가 직접 노출되지 않도록 설계됐다. 개인 보호 장비에는 마스크, 장갑, 보안경, 실험실 의복이나 보호복 등이 있다 [37].
2차는 시설 설계와 시공 차원의 격리이다. 생물학적 실험실의 시설 설계와 물리적 특징은 우발적으로 방출될 수 있는 감염원이나 독소로부터 실험실 밖의 사람, 동물, 환경을 보호하는 공학적 제어장치로서 장벽을 제공한다 [37].
한편, 존스홉킨스대학교 연구진 같은 경우는 의료진을 보호하기 위한 인공지능 로봇 시스템의 바이오컨테인먼트를 테스트하기도 했다 [38].
5.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의 바이오안보
5.1 제국의학과 제국 그리고 식민지
인류의 역사가 기록된 이후로 최초의 팬데믹은 ‘아테네 역병’으로 서술되었다. 기원전 430년 약 10만 명을 죽인 아테네 역병은 두 번이나 더 유행할 정도로 막강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초반이 유행한 아테네 역병은 “스파르타의 공격을 피해 아테네 시민들이 아크로폴리스에 몰려든 탓에 전염병이 창궐하기 좋은 조건이 된 것”이었다 [39]. 서로 먹고 먹히는 전쟁은 제국과 식민지를 탄생시킨다. 결국 아테네는 몰락하고 스파르타는 패권을 장악했다. 그런데 아테네 역병의 대표적 원인은 페스트였다.
역사적으로 페스트는 가장 무서운 감염병이었다. 우리나라도 페스트와 관련된 제국주의적 야망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페스트 제국의 탄생: 제3차 페스트 팬데믹과 동아시아』를 집필한 신규환 대구대 교수(역사교육과)는 “19세기말 20세기 초 페스트 방역대책의 수립과정에서 동아시아 각국은 근대국가 건설에 나섰으며, 서구 열강은 페스트 의학지식의 정립을 통해 제국의학의 권위와 의학적 헤게모니를 강화하고자 했다”라며 “당시는 페스트에 관한 의과학 지식의 정립 여부가 제국이냐 식민지냐를 결정하는 단적인 지표로 작용할 수 있던 시기였다”라고 지적했다 [40].
일본은 제국주의적 야심에 차 있었다. 그 방편은 제국의학이었다. 일본은 콜레라에 맞서며 근대국가로 성장했고, 페스트에 대응하며 세계의 중심에 서고자 했다. 중국은 의학적 지식을 쌓아가며 근대국가와 식민지의 기로에 서 있었다. 조선과 대만은 페스트 유행으로 일제의 식민지배 속에 더 세게 빨려 들어갔다. 페스트 발병의 원인에 대해선 동아시아의 무역과 상품경제의 발달이라는 분석이 제기된 바 있다 [40].
5.2. 광의의 의미와 외교 차원
코로나19 이전에도 당연히 바이오안보에 감염병은 포함돼 있었다. 코로나19 이전의 바이오안보를 보면, 광의의 의미에서 “생체, 생물학적 시스템, 유전체 또는 그들로부터 유래되는 물질들로부터 다양한 행위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정의했다. 특히 외교·안보 차원에서는 “의도적 또는 우발적으로 살포되거나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병원성 미생물로부터 다양한 행위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규정했다 [18].
5.3. 뉴질랜드: 최초의 바이오안보법과 바이오안보 2025
1993년 뉴질랜드는 전 세계 최초로 「바이오안보법(Biosecurity Act)」을 제정했다. 바이오안보법에서는 해충 등 ‘원치 않는 유기체’를 “자연적 또는 물리적 자원이나 인간의 건강에 원치 않는 해를 끼칠 수 있거나 잠재적으로 일으킬 수 있는 것”이라고 넓게 정의했다 [12].
2016년 11월, 뉴질랜드 정부는 ‘바이오안보 2025’을 선언한 바 있다. 향후 10년 동안 더욱 회복력 있고 미래 지향적인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서였다. 바이오안보 2025는 다섯 가지를 전략적 방향으로 설정했다. △4백70만 명의 바이오안보 팀(그 당시 뉴질랜드 인구수): 전 국민의 공동 노력 △내일을 위한 도구 상자: 과학과 기술을 활용한 바이오안보 수행 방식의 변화 △스마트하고 자유롭게 흐르는 정보: 사용 가능한 풍부한 데이터로 지능체계를 구축 △효과적인 리더십과 거버넌스: 모든 시스템 참가자가 역할을 수행하는 포괄적인 리더십과 거버넌스 △내일의 기술과 자산: 유능하고 지속 가능한 인력과 세계적 수준의 인프라 [42].
바이오안보 2025를 위해 뉴질랜드는 사례 분석을 실시했다. 예를 들어, 뉴질랜드는 2015년 퀸즐랜드에서 원치 않는 유기체인 초파리에 대응한 사례가 있다. 초파리는 원예 관련 해충이 될 수 있어, 시민과 시장 상인, 살충제 전문가 등이 협력해 퇴치한 바 있다. 아울러, 뉴질랜드 전역의 항만 회사가 곤충이나 토양 등 수입되는 컨테이너에 대한 바이오안보 대응을 하고 있다 [42].
바이오안보 2025에서 눈에 띄는 건 ‘포식자로부터 자유로운 2050’(Predator Free 2050)이다. 가장 큰 피해를 주는 쥐, 주머니쥐, 담비를 근절해 토착 생물다양성과 경제적 이점을 늘린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장기간 총 1억500만 달러(현재 기준으로 약 836억 원)를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42].
뉴질랜드의 바이오안보 노력은 코로나19라는 거대한 팬데믹 이전에 나온 것이다. 주로 물리적 환경에서 해충이나 포식자 등 사회적·경제적 이득을 위한 목표 설정과 실천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고 감염 경로 파악이 힘든 바이러스 대응이 누락됐다. 그 이유는 이 보고서가 쓰인 시점과, 뉴질랜드가 가진 지리적 특성 때문일 것이다.
6.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의 바이오안보
6.1. 바이오안보 언급 횟수의 변화: 펍메드
1987년, 미국 국립생물정보센터 의학데이터베이스인 펍메드(PubMed)에서 ‘바이오안보’가 처음 언급됐다. 1990년대에 바이오안보라는 용어는 매해 평균 5건이 출판되다가, 점차 늘어나더니 2000~2010년에는 127건, 2011~2020년에는 680건이 됐다. 아래 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2000년 이후 바이오안보가 언급된 출판물의 숫자가 급격히 늘어나는 걸 알 수 있다 [10].
코로나19가 발생한 2019년 11월 이후의 변화를 알아보자. 2020년 이후 펍메드에서 ‘바이오안보(biosecurity)’가 언급된 횟수를 확인해 보면, 2023년 8월 6일 기준 2020년 1024회, 2021년 1734회, 2022년 1717회, 2023년 1390회이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2021년과 2022년은 2015년과 비교하면 약 3배 이상 많이 바이오안보가 적시됐다. 그만큼 팬데믹에 대한 두려움과 연구가 많아졌다는 증거이다.
6.2. 바이오안보 유형과 위험요인
바이오안보의 유형은 △식품 안전 △인수공통감염병 △인간-동물-식물의 보건·건강 △침입외래종 △생물학 무기 등이 있다. 각 부문별로 위험과 위해성에서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주요 내용과 정의는 아래 표를 참조하면 된다 [10].
6.3. 항균제 내성과 팬데믹 조약
항균제 내성은 바이오안보에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영역이다. 그동안 인수공통감염병뿐만 아니라 내성 병원균으로 인해 전염병이 20%나 발생했다. [18] 그만큼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게 바로 항균제 내성이다. 아래에서 항균제는 인공 합성 항균물질 등을 포함해 미생물에 대항해 작용하는 모든 약제로서 넓은 의미로 간주하고 서술했다. 항생제는 미생물이 만들어낸 항생물질로 정의된다.
미생물과 연관된 항균제 내성으로 유럽에서만 매일 100명이 사망하고(2020년), 매년 80만 명이 항균제 내성균에 감염된다. 특히 가축이나 반려동물, 토양과 물, 식물에도 항균제 내성균이 존재할 수 있어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44].
코로나19와 항균제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미국 노스웨스턴대는 코로나19 사망자 중 대다수가 2차 세균 감염인 폐렴을 항균제로 치료하는 가운데 발생한 것으로 분석했다. 이 때문에 항균제 내성을 막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45].
그런데 ‘팬데믹 조약’에서 항균제 내성을 빼려는 시도가 일자 반발에 부딪쳤다. 2021년 12월 세계보건총회에서 미래의 팬데믹을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해 ‘팬데믹 조약’을 체결하자고 논의했다. 항균제 내성은 포도상구균 감염, 폐렴, 약물 내성 결핵 등을 퍼뜨린다. 현재도 세균 감염으로 8명 중 1명이 사망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전 세계가 국제협력의 차원에서 항균제의 개발에서부터 평등한 분배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45].
세계보건기구는 항균제 내성이 전 세계 모든 국가에서 누구에게나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항균제 내성은 오늘날 세계 보건, 식량 안보와 개발에서 가장 큰 위협 중 하나라는 것이다. 항균제 내성은 자연적으로 발생하지만, 인간과 동물의 항균제 오용으로 그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내성으로 인해 폐렴, 결핵, 임질, 살모넬라증과 같은 치료에 항균제의 효과가 점점 떨어지고 치료가 어려워지고 있다. 항균제 내성은 의료 비용과 사망률을 증가시키고 있다 [46].
6.4. 백신 민족주의와 기술 독점
코로나19가 쏘아 올린 팬데믹은 국경 폐쇄와 자국 중심주의를 견고히 했다. 외국인과 수입품들에 대한 검역이 훨씬 더 강화됐으며, 백신 불평등은 심해졌다. 각 나라별로 코로나19에 대해 종식을 선언했지만, 여전히 그 여파는 상당하다. 바이러스는 언제 다시 변이 할지 모르지만, 인류는 물리적 장벽과 의심하는 경계의 벽을 허물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심미랑 한국지식재산연구원 박사는 “최근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는 바이오안보를 위한 국제적 협력보다 자국 중심주의 국가 간 의약품, 보건·의료 역량 확보 경쟁이 일어났다”라며 “백신 민족주의가 나타나면서 백신 특허권을 가진 선진국들이 의약품의 해외 의존도를 축소하고 국내 제조를 늘렸으며, 의약품을 해외에서 조달할 경우에도 위협이 낮은 동맹국 또는 소수의 파트너 국가에 의존을 추진하였다”라고 비판했다. 특히 바이오안보가 신흥안보로 떠오르며 기술 독점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사스나 코로나19처럼 국경을 초월하며 전파하는 바이러스 대응은 과학기술에 기반 한 정보집약적 특성을 띠고 있다는 지적이다 [12].
2021년 백신 불평등으로 인해 24초마다 살릴 수 있던 사람들이 사망했다. 백신이 좀 더 공평하게 배포되었더라면 2021년에 사망한 사람은 약 130만 명이 줄어들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아무리 국제 협력을 촉구해도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남반구에 위치한 선진국이 백신 관련 등 지적 재산을 공유하지 않으면서 북반구에 있는 후진국으로부터 엄청난 이익을 창출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제약 업계는 가난한 국가에서 백신 수요와 소비할 능력이 거의 없다고 반박했다 [47].
6.5. 바이오안보 인식 조사
제2의 팬데믹과 바이오안보에 대한 인식 조사를 진행했다. 인식 조사 결과, 코로나19의 재확산이 제2의 팬데믹이 될까 가장 우려스러웠다. ‘바이오안보’ 하면 생물-화학테러나 실험실 바이러스 유출이 떠올랐다. 바이오안보 대응을 위해선 국가 정책과 제도 및 백신이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48].
‘제2의 팬데믹이 걱정이시죠?’라는 제목으로 크라우드 리서치 커뮤니티 퀴노아(Quinoa)아에서 2023년 8월 2일부터 8월 8일까지 7일간 바이오안보에 대한 인식 조사를 실시했다. 총 문항 수는 5개였고, 32명이 응답했다. 이에 따르면, ‘코로나19 재확산과 제2의 팬데믹이 걱정이다’ 5점 척도 설문에서 43.7%가 4점을 답했다. 그만큼 우려가 되는 것이다 [48].
‘제2의 팬데믹 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르나요?’에 대해선 코로나19가 87.5%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기타 답변으로 새롭게 발견되는 질병, 신종플루 등이 있었다. ‘팬데믹 대응을 위해 바이오안보가 이슈입니다. 바이오안보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에선 50%가 생물-화학테러, 34.3%가 실험실 바이러스 유출을 꼽았다. ‘바이오안보 대응을 위해 필요한 것은?’에 대해선 46.8%가 국가 정책과 제도, 25%가 백신을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팬데믹 공포가 확산되는 이유는?’에 대해선 34.3%가 이상기후(지구 온난화), 28.1%가 의도적 바이러스 유출을 답했다. 기타 응답으로 정부의 무지, 정치적 이용과 건강 악화도 있었다 [48].
7. 바이오안보의 격차 줄이기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동안 관찰된 바이오안전과 바이오안보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 중 하나는 저소득·중하위 소득 국가에서 발생한 이슈들이었다. 특히 세 가지 문제들이 실험실 관리와 미래의 팬데믹 대응 차원에서 중요하다. 첫째, 자원이 제한된 조건에서의 바이오안전이다. 둘째, 바이오안전 측면에서 코로나19에 대한 교육과 커뮤니케이션이다. 셋째, 팬데믹 상황에서 바이오안보 문제이다 [49].
먼저, 자원이 제한된 조건에서의 바이오안전은 실험실과 관련이 있다. 실험실에서 미생물의 안전한 취급은 위험 분류와 위험 평가를 기반으로 한다. 그런데 현대화한 바이오안보를 위해선 건설과 유지 비용이 매우 비싼 실험실에 의지해야 한다. 이 때문에 많은 중저소득 국가는 선진국에서 제공하는 바이러스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4.2 바이오안보의 현대화: 인실리코와 바이오컨테인먼트’에서 언급된 차단과 격리가 어려웠던 것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는 실험실 관리자를 지원하는 온라인 도구인 ‘지속 가능한 연구소 이니셔티브 사전 평가 도구’(Sustainable Laboratories Initiative Prior Assessment Tool)가 제시된다. 이 도구는 자원이 부족한 환경에서 실험실을 가장 효과적으로 설립하거나 용도를 변경하는 방법에 대해 선진국과 대화를 하도록 유도한다. 아울러, 유럽연합이나 세계보건기구에서 운영하는 이동식 실험실 배치 등도 거론된다 [49].
다음으로, 교육과 커뮤니케이션은 독일 외무부가 자금을 지원하는 바이오안보 프로그램 ‘코로나19 디지털 이니셔티브’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 프로그램은 코로나19 정보 허브와 디지털 자습 모듈로 구성돼 있다.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3개 언어로 제공되는 총 7개의 모듈은 면봉 샘플을 안전하게 취급하고, 바이러스 RNA를 분리하고, WHO 승인 PCR 스크리닝을 수행하는 방법 등에 대한 기본 사항을 알려준다. 아울러, 네덜란드 국립 공중보건 및 환경연구소가 조직한 ‘조지아의 바이오안전/바이오안보 하이브리드 훈련 강사 프로그램’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험실의 기본적인 바이오안보, 바이오위험 평가, 이중용도 연구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한편, 공개적으로 사용 가능한 웹 기반 라이브러리 ‘바이오안보 센트럴’(biosecuritycentral.org)도 있다 [49].
마지막으로 팬데믹 상황에서 바이오안보 문제는 물리적인 측면과 사이버보안이 관련 있다. 미생물과 독소를 무기로 사용하는 것은 앞서 살펴본 BWC(생물무기금지협약)와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 결의 1540(UNSCR1540)에서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생물무기에 대한 개별 국가의 관심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유럽질병통제센터(ECDC)와 같은 국제기관들은 새로운 형태의 바이오안보 관련 테러리즘이 가장 큰 위협이라고 간주한다 [49].
테러리스트는 생물학 테러에 대한 두려움을 도구화하여 시민들에게 대규모 공포를 일으킬 수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건, 잠재적인 위협을 제기하는 내부의 불량 미생물 과학자일지도 모른다. 사기의 의도가 있는 내부 생명과학자는 데이터베이스와 병원체 인벤토리에 대한 액세스 권한을 부여받았다. 이 때문에 정보를 조회하고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 병원체에 쉽게 액세스 할 수 있다. 그래서 국제 유전자 합성 컨소시엄(International Gene Synthesis Consortium)은 유전자 합성 회사 등이 합성 생산된 유전자 시퀀스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조화된 스크리닝 프로토콜’(Harmonised Screening Protocol)을 수립한 바 있다 [49].
더욱이, 바이오안보는 데이터베이스화와 연관돼 사이버안보 차원으로 확장된다. 데이터베이스 방화벽 뒤에 들어가기 위한 USB 사용이나 메일 첨부로 파생하는 피싱 프로그램 등은 위협이 된다. 한마디로 '사이버 바이오안보'다. 사이버 바이오안보는 “생명과학과 디지털 세계의 접점에서 귀중한 정보, 프로세스, 자료의 잠재적·실제적 악의성 파괴, 오용과 악용을 방지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예를 들어, 새로운 기술과 공개된 유전 정보를 통해 시퀀스 전체를 인위적으로 생성할 수 있다. 또는 위험한 병원균의 격리를 뚫기 위한 음압 병상 시스템에 대한 해킹 등도 사이버 바이오안보 차원에서 우려된다. 실제로 2020년 인도의 여러 병원에서는 환자 데이터 도용 등 운영을 방해하는 사이버 공격이 발생한 적이 있다 [49].
8. 결론
“재앙의 현실은 재앙을 평범하게 만든다.”
“붕괴는 우리에게 새로운 정상(正常)이 될 수 있으며 서서히 예외적인, 즉 재앙적인 특징을 잃을 수 있다.” - 『붕괴의 사회정치학』 중에서 [50]
붕괴는 특정 임계점을 넘어서면 금방 발생할 수 있다. 인류 사회는 마치 모래 위의 성과 같다. 생물무기나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언제든지 사회 시스템을 붕괴시킬 수 있다. 그래서 더욱 바이오안보에 대한 경각심을 깨울 필요가 있다. 그건 기존의 방법으로는 안 된다. 우리는 이미 코로나19를 통해 경험했고, 경험 중이다. 여기서 필요한 건 원 헬스의 통합적 시각과 인간 중심주의 탈피다. 더불어, 전 세계와 개인들이 무임승차해서 발생한 이상기후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
2014년 에볼라 바이러스의 경우, 전염이 시작된 지 6개월도 안 되어 서아프리카에서만 100만 명이 넘은 이들에게 기아의 위협을 가했다. 숲이 파괴하면서 생물 다양성이 사라졌고, 바이러스는 공중보건을 무시하며 급속도로 퍼졌다. 봉쇄 조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일자리를 잃었다. 기반 시설은 위기를 맞았고, 보건 시스템은 약해졌다 [51].
2006년 경제학자들이 시뮬레이션을 한 적이 있다. 1918년 독감이 현재 세계에 얼마큼의 영향을 끼칠지였다. 감염자 기준 사망률은 3%, 1억 4200만 명 사망이었다. 세계 국내총생산은 12.6%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런데 조류인플루엔자나 에볼라 바이러스는 감염자의 50% 이상이 죽을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52].
인류는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 올해 여름 겪었던 이상기후로 인한 폭염과 폭우, 가뭄과 대형 산불은 바이오안보 이슈를 더욱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 제도 개선과 인식의 변화가 동시에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리는 물론 후손들에게도 바이오안보 차원의 위험은 증폭돼 다가올 것이다.
9.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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