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개발은 수많은 후보 물질 가운데 실제 치료 효과를 가진 물질을 빠르고 정확하게 선별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약물이 우리 몸에서 제대로 작용하려면 특정 표적 단백질과 정확하게 결합해야 한다. 문제는 구조가 매우 비슷한 저분자 약물들의 경우 단백질과 결합한 상태의 미세한 차이를 구별하고 분석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이번 연구는 나노포어(nanopore)라 불리는 수 나노미터(㎚, 10억분의 1m) 크기의 초미세 구멍을 활용한 센서를 개발한 것이다. 이 구멍은 머리카락 굵기의 수만 분의 일 크기로 단백질이 통과하거나 머무를 때 전기 신호가 미세하게 변하는 특징이 있다. 연구팀은 이러한 신호를 정밀 분석해 단백질과 약물의 결합 상태를 판별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연구팀은 암 등 다양한 질병의 발생에 관여하며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중요한 단백질이자 항암제 개발의 핵심 표적인 BRD4(Bromodomain-containing protein 4)를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나노포어 기술로 BRD4에 결합하는 다양한 약물을 분석한 결과, 약물 종류에 따라 전기 신호 패턴이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확인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러한 신호 분석을 통해 질량 차이가 단 2.5 Da(달톤)에 불과한 매우 유사한 약물들까지도 완벽하게 구별해냈다는 것이다. 이는 수소 원자 약 2~3개 정도의 질량 차이에 해당하는 극미세한 차이로 나노포어 기술을 이용한 단백질 분석 중 세계 최고 수준의 해상도다. 기존 나노포어 기반 단백질 분석 기술이 약 88~116 Da(달톤) 수준의 차이를 구별하는 데 머물렀던 것과 비교하면 이번 연구는 수십 배 더 높은 정밀도를 구현한 초고해상도 분석 성과다. 또한, 기존 기술로는 단백질 구조가 크게 변해야만 식별이 가능했으나 이번 기술은 구조적 차이가 매우 미세한 약물 결합까지도 찾아낼 수 있었다.
연구팀은 이러한 높은 정밀도를 구현하기 위해 표적 단백질이 나노포어 센서 내부에서 보이는 위치 변화, 움직임, 전류 신호 패턴 등 다양한 특성을 동시에 분석하는 다중 파라미터 분석 기법을 개발했다. 이를 통해 단백질-약물 결합을 약물별로 구별할 수 있는 고유한 전기적 지문을 확보했으며 별도의 형광 표지 없이도 매우 적은 양의 시료로 단일 분자 수준에서 빠르게 분석할 수 있는 기반을 제시했다.
향후 이 기술이 활용되면 수만 개의 신약 후보물질 중 최적의 물질을 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선별할 수 있어 신약개발의 기간을 단축하고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책임자인 지승욱 박사는 “이번 연구는 원자 수준에서 단백질-약물 결합을 분석할 수 있는 나노포어 센서 기술 개발 성과로서 세계 최고 수준의 고해상도를 달성한 의미가 있다”라며 “본 나노포어 기술은 고효율 신약 발굴을 가속
한편 이번 연구성과는 4월 27일 세계적인 과학저널인 ACS Nano(IF 16.1) 온라인판에 게재되었으며, (논문명:
Nanopore Discrimination of Protein–Small-molecule Drug Complexes at Near-Atomic Resolution / 교신저자: 지승욱‧정기백 박사 / 제1저자: 김진식 박사, 조준혁 UST KRIBB 스쿨 박사과정 / 공저자: 황성보 박사) 생명연 주요사업, 과기정통부 개인기초연구사업의 지원으로 수행되었다.
연구결과개요
□ 연구배경
○ DNA·RNA·단백질 등 생체분자 간 상호작용은 세포 기능과 질병 발생, 치료 반응을 좌우하는 핵심 과정으로, 이를 정밀하게 분석하는 기술은 신약개발과 정밀의료 분야에서 중요하다. 특히 표적 단백질과 약물 간 결합을 정확하게 구별하고 특성화하는 기술은 신약후보물질 발굴에 필수적이다.
○ 기존 핵자기공명분광법(NMR, nuclear magnetic resonance), 표면플라스몬공명(SPR, surface plasmon resonance), 등온적정열량계(ITC, isothermal titration calorimetry) 등 전통적인 생물물리학 분석기술은 단백질-약물 상호작용을 분석하는 데 널리 활용되고 있으나, 고가의 장비가 필요하고 고농도·고용량 시료를 요구하며, 표지(labeling), 표면고정화(immobilization), 비특이적 결합(non-specific binding) 등의 제약으로 신약개발 현장에서의 분석 효율성 제고가 요구된다.
○ 최근 DNA 인코딩 라이브러리(DEL, dna-encoded library)와 같은 혼합물 기반 약물 스크리닝 기법이 효율적인 신약발굴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으나, 실제 결합한 약물을 식별하기 어렵고, DNA 표지가 필요하다는 한계가 있다.
○ 나노포어 센싱(nanopor지(label-free), 극미량, 단일분자 분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차세대 바이오센서 기술로 주목받고 있으며, 실제로 DNA 서열분석 분야에서는 분석 효율을 크게 높여 상용화에 성공한 바 있다.
○ 지난 10년 간 나노포어의 직경과 막 두께 조절, 효소 매개 전위 속도 제어 등을 통해 DNA 분석 해상도는 크게 향상되었으나, ‘자연상태 단백질’을 고해상도로 분석하는 것은 여전히 난제였다. 단백질은 DNA와 달리 크기·모양·표면 전하가 매우 다양하여 기존의 DNA 분석 시 활용되는 통과기반 원리를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전기삼투 흐름(EOF, electro-osmotic flow)을 이용해 표면 전하에 관계없이 단백질을 나노포어 센서 내부에 가두는 ‘포획(trapping) 기반 나노포어’ 기술이 제안되었다. 이를 통해, 단백질-리간드(ligand) 결합을 단일 분자 수준에서 직접 분석할 수 있게 되었으나, 이 역시 한계가 존재했다.
○ 기존 기술은 리간드 결합에 따른 단백질의 큰 구조 변화가 있을 때에만 주로 검출이 가능해, 미세한 단백질-리간드 결합 차이를 정밀하게 구별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 한편 BET(bromodomain and extra-Terminal) 계열 단백질인 BRD4는 브로모도메인을 통해 아세틸화된 히스톤 단백질을 인식해 DNA 전사와 복제를 조절하기에 주요 항암 표적으로 연구되고 있다. 이에 따라, BRD4-히스톤 단백질 간 상호작용을 억제하는 다양한 약물들이 개발되고 있으나, 약물의 결합 특성을 정밀하게 구별할 수 있는 분석기술은 부족한 실정이다.
□ 연구내용
○ 본 연구팀은 예르시니아 엔테로콜리티카(Yersinia enterocolitica) 박테리아에서 유래한 독소 단백질인 ‘YaxAB 나노포어’를 활용하여, 단일분자 수준에서 표적 단백질과 약물 간의 상호작용을 초고해상도로 측정하는 혁신적인 감지 플랫폼을 개발하였다
○ YaxAB 나노포어는 입구가 넓고 출구가 좁은 깔때기 모양의 비대칭 구조를 가지며 강력한 전기삼투 흐름(EOF)을 생성한다. 이러한 특성으로 표적 단백질의 표면 전하에 관계없이 최대 125 kDa 크기의 자연상태 단백질을 나노포어 내부에 안정적으로 포획할 수 있다. 또한 이온이 고밀도로 존재하는 좁은 구조는 약물 결합에 따른 미세한 변화를 이온전류 차이로 감지하여 서로 다른 단백질-약물 복합체를 구별할 수 있다.
○ 본 연구팀은 YaxAB 나노포어를 활용하여 자연상태 BRD4 브로모도메인 1(BRD4-BD1) 단백질을 표적으로, 히스톤 펩타이드 및 다양한 약물 복합체를 고해상도로 측정하였다.
○ 나노포어 전기신호 분석과 분자동역학(MD)시뮬레이션 결과, BRD4 단백질은 깔때기형 나노포어의 넓은 영역과 좁은 영역을 오가는 ‘진동 운동(oscillatory dynamics)’을 보였으며, 이 과정에서 안정적이고 재현 가능한 이온전류 신호가 생성됨을 확인하였다.
○ 본 연구팀은 단독 BRD4와 BRD4-히스톤 펩타이드 복합체, 그리고 다양한 BRD4 단백질-약물 복합체의 신호를 비교 분석하였다. 그 결과, 복합체에 따른 위치별 체류비(PO, open probability)와 이온전류 패턴이 서로 다르게 나타났으며, 이러한 차이를 통해 유사한 복합체를 구별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 특히 본 연구팀은 위치별 전류 진폭(IP, position-dependent current amplitude)과 노이즈(NF,,. noise fragmentation) 등 나노포어 내 BRD4 단백질의 체류 위치별 동역학 및 상태 전이를 반영하는 새로운 분석 방법을 개발하였다. IP는 단백질 복합체의 위치별 동역학을 반영했으며, 전체 약물 복합체 간 통계 분석 결과 64.3%의 구별 성능을 보였다. 여기에 전류신호를 40 밀리초(ms) 간격으로 분할해 분석한 NF 값은 기존 표준편차(SD, 42.9%) 및 전력스펙트럼밀도(PSD, 21.4%) 기반 분석법보다 높은 78.6%의 구별 성능을 나타냈다.
○ 본 연구팀의 분석 방법을 조합한 3차원 분석을 통해 질량 차이가 분자량 2.5 Da에 불과한 BRD4 단백질-약물 복합체를 단일분자 수준에서 식별하였다. 이는 나노포어 기반 자연상태 단백질 분석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해상도이다.
○ 또한 이번 연구는 고해상도 나노포어 분석이 단순히 분자의 크기 차이뿐 아니라, 나노포어 내부 위치에 따른 단백질의 미세한 진동 운동과 상태 전이를 정밀하게 해석해 단백질 복합체를 구별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즉, YaxAB 나노포어의 구조적 특성과 다차원 신호 분석을 결합해 기존 나노포어 센싱의 한계를 넘어서는 해상도를 구현하였다.
□ 연구성과의 의미
○ 단백질-약물 복합체를 초고해상도로 구별 가능한 나노포어 기술 개발
- 본 연구는 YaxAB 나노포어를 이용해 자연상태 단백질-약물 복합체를 단일분자 수준에서 판별할 수 있음을 입증하였다. 특히 분자량 2.5 Da의 미세한 질량 차이를 구별해 단백질-약물 결합의 초고해상도 분석 성능을 확인하였다.
- 이는 기존 포획 기반 나노포어 기술의 해상도 대비 약 150 배 이상의 해상도 향상을 달성한 것으로, 자연상태 단백질 분석에서 나노포어 센싱의 해상도 한계를 한 단계 끌어올린 성과로 볼 수 있다.
○ 무표지(label-free)·단일분자 기반 차세대 신약발굴 플랫폼으로 활용 가능
- 본 기술은 단백질과 약물의 직접적인 결합을 무표지 방식으로 측정할 수 있어, 표적 단백질-약물 결합 특성을 정밀하게 검증하는 데 유용하다.
- 또한 구조적으로 유사한 화합물들 간 결합 특성 차이를 민감하게 구별할 수 있어, 약물의 구조-활성 관계(SAR, structure-activity relationship), 결합 친화도 평가, 억제 효능 분석에 적용될 수 있는 기반을 제시하였다. 특히 “SAR-by-nanopore”와 같은 새로운 약물 스크리닝 접근법으로 발전 가능한 고효율 신약발굴 플랫폼으로서 의미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