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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학원은 어떨까?] ep.01 일본 박사과정-유학의 시작
Bio통신원(kira)
[머리말]
작년 연재에서 나는 일본 대학원에 합격했다. 그리고 입학한 지 벌써 1년 반이 지나갔다. 나는 운이 좋게도 대학원생이지만, 교수님이 운영하고 있는 바이오벤처의 신약 개발 연구도 같이 진행하고 있다 (물론, 보수를 받으며). 그래서 일본의 대학원 문화뿐만 아니라 기업 문화도 일부 경험할 수 있었다. 오래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 유학의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가깝고도 먼 나라, 비슷하지만, 다른 이곳의 생활을 전달하며 연구자 동료들과 교류하고 싶다.
(단, 이번 연재는 개인적인 경험만을 바탕으로 작성되기에 전부를 일반화하거나 대변할 수는 없습니다.)
[한국과 이별, 일본과 만남]
한국을 떠나기 한 달 전, 나는 재직 중이던 회사에서 퇴사했다. 맡던 일을 마무리 짓고 직장 동료, 상사로부터 많은 응원과 조언을 들으며 내 직장 생활이 정말 보람 있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직장이었고, 내가 박사 유학을 결심하게 된 긍정적인 이유이기도 했던 회사였다.
한국을 떠나기 일주일 전, 많은 친구를 만나고 사랑하는 가족/친척들과 시간을 보냈다. 주위의 모두가 나의 유학을 응원해 주었기에 너무 감사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멀지 않은 일본이니 다음 만남이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라 약속하며 헤어짐의 인사를 나누었다.
한국을 떠나기 하루 전, 일본은 여행으로 자주 갔었지만, 장기 거주를 위해서 가는 것은 처음이니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막막했다. 최대한 많이 챙겨가고 싶지만 그렇다면 수화물 무게가 상당히 초과될뿐더러 혼자서 옮길 수 없다. 한국처럼 택시를 타서 짐을 옮기고 싶지만, 살인적인 택시비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본에서 살 수 없는 물건이 아니라면 최대한 현지에서 사는 쪽을 선택해야 했다. 그렇게 나는 이민 가방 2개만 챙기기로 했다. 무거운 가방의 무게만큼 내 유학 생활의 무게도 무거우려나? 걱정이 된다.
한국을 떠나는 날, 가족과 함께 공항으로 향했다. 나에게, 공항은 항상 설렘이 넘치는 공간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설렘과 아쉬움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사랑하는 가족의 곁을 떠나며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고, 눈물을 흘리는 나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어른이 되었기에 이별의 의미를 알고 눈물을 흘릴 줄 알았던 것이 아닐까? 이 싱숭생숭한 기분은 쉽사리 표현할 수가 없다.
한국에서 도쿄까지 2시간이면 충분하다. 창밖으로 멀어지는 한국이 고작 2시간 전이었고, 금세 일본과의 만남이 찾아왔다. 여행과는 다르게 공항에서 장기 거주를 위한 재류 카드 발급이 이루어지고, 그 자격은 ‘관광’이 아닌 ‘학생’으로 표시되었다. 이 부분도 내가 일본 유학을 시작했음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공항을 빠져나와 일본의 하늘을 잠시 바라보며, 드디어 내 유학이 시작되니 열심히 해보자고 다짐했다.
소속 연구센터와
연구실
한국과 다르게 일본은 4월부터 학기의 시작이다. 4월의 첫날은 연구실도 따스한 햇살로 비춰주고 있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느낀 대학 캠퍼스는 참 반가웠다. 치열했던 사회에서 다시 청춘들의 학교로 돌아온 그 기분은, 아직 벚꽃이 채 피지 않았어도 마음엔 꽃이 핀 느낌이었다.
처음 일본의 연구실을 방문했을 때, 한국의 연구실과는 다른 시설과 구조에 신선함이 느껴졌다. 내 자리를 배정받고 기본적인 연구실의 규칙과 시설/연구 장비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일본은 프로토콜의 나라다. 회사에 입사하던지, 대학원에 입학해도 그 조직에 대한 모든 것을 하나하나 프로토콜에 따라 교육한다. 한국에 비해 시간이 오래 걸려도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엄격히 교육하는 편이다. 이런 면은 한국에 비해 배울 점이 있는 것 같다.
나름 규모가 있는 연구실이라 교수부터 부/조교수까지 여럿이 있고, 몇 개의 팀이 존재하며, 건물의 한 층을 모두 쓸 정도라 조금 놀라긴 했다 (한국에서는 드문 경우이기에). 그리고 안전 수칙을 굉장히 철저하게 지키고 있었다. 한국과 큰 차이가 있다면 교수님의 개인 비서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모든 교수가 개인 비서를 고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시스템에서는 잘 없다 보니 신기했다. 덕분에 학생들도 행정적인 일에 시간을 투자할 일은 없다.
첫날은 연구실 소개와 동료들을 소개받으며 짧게 끝이 났다. 일본어를 전혀 못 하는 내가 일본으로 유학을 와서 걱정했지만, 연구실의 공식 언어는 영어라서 다행이다. 또한, 연구실에 한국인 유학생이 2명 있어서 자세한 정보를 들을 수도 있었고, 이들의 도움으로 정착에 필요한 과정을 계획할 수 있었다. 계획하다 보니,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무작정 일본으로 왔던 것이다.
[시간이 멈춘 일본의 기숙사]
일본은 일찍 선진화되었고, 여전히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 와 있으니, 학교의 시설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다. 기숙사는 모두 1인 1실이었고 가격도 한국에 비해 비싸지는 않았다. 입사(入舎) 신청 후 방을 배정받고 문을 열었다. 문을 열었을 땐 군대의 생활관이 훨씬 형편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열악한 시설이었다. 침대와 책상 외엔 아무것도 없는 작은 방. 몸 뉠 곳만 있으면 된다지만 한국과는 다른 기숙사의 모습에 적잖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곳의 시간은 기숙사가 건설되었던 1970년대에 멈춰있는 듯했다. 한국에서는 흔한 기숙사 식당도 없었다. 무더운 여름이 다가오기 전, 서둘러 에어컨과 냉장고도 구매해서 살림을 꾸려야 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가난한 유학생에겐 이마저도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문득 다른 학교의 기숙사 시설이 궁금해지는 건 왜일까?)
[학생에서 사회인, 사회인에서 다시 학생이 된다는 것]
몇 년 전까지 학생일 땐 사회인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내가 배운 지식과 기술을 이용하여 연구자로서의 꿈꾸며 노력했던 그때의 간절함이 아직도 기억난다. 사회인으로서의 목표도 있었고, 만족하던 내 직업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했던, 삶을 이어가기 위한 월급. 내가 원하는 삶을 누리기 위해 중요했던 그 가치의 달콤함에 한 번 빠지게 되면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이 인간의 욕심이다. 이런 욕심을 가지는 것이 속물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므로 사회인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 절대 쉽지 않았다. 다시 학생이 된다는 것은 소유하던 차를 포함한 물질적인 것은 물론이거니와 사회인이 되면 성취하고 싶었던 비물질적인 목표까지도 잠시 미뤄야 한다.
그렇지만, 오랜 고민 끝에 욕심을 잠시 버려두고 인생에서 새롭게 그려보고 싶었던 목표를 위해 다시 학생이 되었다. 가난한 학생일지언정 꿈만은 가난하지 않은 학생이 되고 싶다. 포기했던 것들을 후회하지 않게 나의 유학을 값지게 만드는 것은 나 자신일 것이다. 이르지 않은 나이기에 남들보다 간절함이 더 클지도 모른다. 간절함과 긍정적인 생각을 이어가며 앞으로의 유학 생활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게 노력할 것이다.
사람은 저마다의 목표가 있다. 누군가는 현실적인 이유로 목표를 위한 과정을 고민할 때 나의 이야기가 힘이 되면 좋겠다.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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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면역학을 전공 중인 박사과정 2년 차 학생입니다. 지난 "일본 대학원 도전기"에 이어, 어느새 2년 차 박사과정생이 된 저의 '일본 대학원' 경험을 전달드립니다. 한국과는 사뭇 다른 일본 대학원 문화와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재밌는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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