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바이오 관련 동향 뉴스를 신속하게 제공합니다.
뉴스 종합
[대학원생이 후배를 맞이할 때] 후배가 ‘나’를 닮으면... 웃기고 무서운 순간들
Bio통신원(추락주의)
내가 처음 실험실에 들어왔을 때, 사수는 나보다 열 살 넘게 많은 선배였다. 직급도 포닥이었고, 나는 석사 입학 첫 학기. 당연히 비교도 안 되는 레벨이었다.
그리고 나는 군필이었고, 그 선배는 당연히 말년 병장, 아니면 짬이 가득 찬 중사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난 ‘시키면 해본다’가 아니라 ‘시키면 반드시 마무리한다’는 마인드가 박혀 있었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내가 한 일이 많아 보이는 게 아니라 객관적으로 그때 당시에 한 일들이 지금 다시 생각해도 많았다. 그렇지만 당시엔 시키는 일이 아무리 많아도 무조건 했다. 이게 미래의 나에게 도움 될 거라 믿었다. 그리고 그때 그 훈련(?)의 강도는, 실험실 생존법의 기준점이 되었다.
그렇게 2년 동안 단련된 나는, 어느 순간 ‘당연히 이 정도는 해야 우리 실험실에서 기본은 하는 거지’라는 기준을 갖게 됐다. 아무도 시킨 적 없는 기준이지만, 나는 그걸 꽤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2020년, 후배가 들어왔다.
처음엔 나도 긴장했고, 후배도 어색해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실험이 쌓이고, ‘이건 같이 하자’고 했던 일들이 늘어갔다. 내가 후배한테 맡긴 일은 사실, 예전의 ‘나’라면 혼자 다 했을 정도의 양이었다. 나는 내가 도와줄 테니 같이 하자고 했고, 솔직히 말해 배려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후배의 입장은 달랐다. 나중에 알게 됐는데, “XX 선배랑 일하면 기본 패시브가 할 일이 많다”라는 말이 실험실 말고도 과에 돌고 있었다고 한다. 들었을 땐 당황하고 어이없었다.
‘내가 왜 일만 많이 시키는 사람이 되어버린 거지?’
나는 진짜, 그 어떤 일도 혼자 시킨 적 없었는데. 내가 했던 일의 절반만 해도 많이 줄인 건데. 그런데도 후배는 내가 일이 많아서, 자기에게 떠넘긴다고 생각했나 보다.
사수가 시킨 일을 하기 위해 샘플 개수만큼 e-tube 준비하고 찍어둔 사진 - 처음엔 이렇게 많아서 찍었지만 나중엔 일상이 된다. 그때 처음으로, 내가 후배에게 나를 투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했는데, 너는 왜 못 해? 그 정도 자세에, 이것도 못하면 실험실에 안 들어오는 게 나았을 텐데’
이 말은 직접 말하지 않았지만, 내 표정이나 태도에서 은근히 묻어 나왔을 거다. 내가 무의식 중에 후배를 나처럼 행동하게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후배가 실험 일정 조금만 늦춰도 불편해졌고, 뭔가 모자라 보이면 속으로 한숨 쉬고 있었다.
그 후배가 실수했을 때, 예전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한 번에 되겠냐"며 다독이는 척했지만, 속으론 "나는 저 나이 때 안 그랬는데"라는 생각이 이미 뿌리처럼 자라 있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받았던 방식, 내가 참아냈던 강도, 그걸 그대로 물려주고 있는 나 자신. 그 순간이, 참 웃기고도 무서웠다. 어쩌면 가장 닮고 싶지 않았던 모습이 되어가고 있다는 자각. 후배가 나를 닮아가고 있다는 건, 결국 내가 그 모습을 계속 보여주고 있다는 뜻이다.
한편으론 진짜 웃긴 순간들도 있었다.
내가 했던 실수들을, 후배가 나도 모르게 똑같이 따라 할 때. 내가 딱히 가르쳐준 적도 없는데, 그 실수까지도 나처럼 하는 걸 보며 묘한 감정이 들었다.
예를 들면 이런 일이 있었다.
어느 날, 나는 급하게 약속이 있어 실험을 빨리 마무리하고 나가려던 중이었다. 마지막 단계는 오토클레이브에 넣은 실험용품들을 소독한 뒤, 건조를 위해 60도 오븐에 옮기는 일이었는데, 문제는 오토클레이브 온도가 85도 근처에서 좀처럼 식지 않는다는 거였다. 80도 아래로 내려가야 열리는데, 그걸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그때 문득, 예전에 선배한테 들었던 '강제로 여는 방법'이 떠올랐다.
일종의 비공식 스킬 같은 거였는데, 나도 한 번쯤 써봤고, 그땐 잘 넘어갔던 기억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 방법을 그대로 써봤다.
그리고… 정말 '퓌시이이이이이익' 소리가 났다.
내부 압력이 미처 빠지지 않은 상태에서 열어버렸던 거다.
순식간에 오토클레이브 안의 배지들이 터졌고, 나도, 실험실 바닥도 그 잔해를 그대로 맞았다.
결국 약속은 취소, 실험실 정리만 한 시간 넘게.
그때 느꼈다. 급할수록 돌아가야 한다는 말, 진짜 맞는 말이라는 걸.
그리고 나중에, 그 실수를 후배가 똑같이 하려는 걸 보게 됐다.
그 친구도 똑같이, ‘이거 빨리 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던데요?’ 하면서 내가 했던 그 '비공식 팁'을 말한 거다.
그 순간, 소름 반, 웃음 반이었다.
아, 이걸 내가 흘렸구나. 내가 농담처럼 얘기했던 그 장면이, 누군가의 실험 습관이 되어가고 있구나 싶었다.
또 어떤 날은, 후배가 내가 늘 쓰던 스프레드시트 양식을 그대로 따라 만든 걸 보여줬다. 그런데 오류가 나서, “선배 이거 왜 안 돼요?”라고 물었다.
파일을 열어보니, 내가 예전에 만들다가 포기한, 그 ‘실패 버전’을 그대로 복사해 온 거였다.
한숨이 나오는 동시에, 약간 웃겼다.
정말, 말 그대로 나를 닮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 순간들.
실험할 때 손버릇, 문서 정리할 때 폴더명, 심지어 디스포저에 쓰레기 버리는 방식까지도 내가 하는 걸 따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닮는다’는 건 신기한 일이다.
내가 기준이 되고, 내가 모델이 된다는 건 누군가에게 영향을 준다는 뜻이니까.
그런데 문제는, 내가 스스로를 얼마나 점검하고 있는가 하는 거였다.
후배가 나를 닮을 수 있다는 전제는, 내가 ‘지금 제대로 하고 있어야 한다’는 부담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 나도 아직 갈팡질팡 중이다.
그걸 간과하고 있었다.
후배가 나를 닮아간다는 건, 단순한 귀여움이나 자랑스러움이 아니라, 거울 앞에 선 느낌이다.
내가 그동안 부정하고 외면했던 내 모습까지도, 후배를 통해 다시 마주하게 되는 순간들.
후배가 힘들어할 때, 예전의 나처럼 괜찮은 척하려 할 때, 그게 결국 내가 물려준 방식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게 무서운 거다.
내가 누군가에게 어떤 영향력을 주고 있다는 사실.
내가 불편했던 문화나 관행을 모른 채 답습하고, 그걸 자연스럽게 다음 사람에게 넘기고 있었다는 것.
후배가 닮아가는 모습을 보며, 결국 나 자신에게 부끄러워졌다.
내가 진심으로 싫어했던 모습, 피하고 싶었던 방식조차 흘러나가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요즘은 조금 달라졌다.
내가 예전에 힘들었던 방식은 일부러라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내가 시킨 일엔 명확한 이유를 붙이려고 하고, 그 일이 진짜 도움이 되는지, 같이 고민하려고 한다.
무조건 ‘예전엔 다 했어’ 같은 식으로 접근하지 않으려 애쓴다.
후배가 나처럼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내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걸 배웠다.
이제는 조심스럽게 하나씩 내 행동을 되돌아본다.
내가 흘리는 말 하나, 행동 하나가 누군가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가끔은 스스로를 이렇게 다독인다.
‘닮아간다면, 좋은 모습부터 닮게 하자. 그게 진짜 선배다.’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기사 오류 신고하기]
이번 연재에서는, 대학원생이 선배로서 후배를 맞이할 때 겪는 복잡한 감정과 상황들을 솔직하고 유쾌하게 풀어낼 예정입니다. 처음으로 책임을 지게 된 순간의 당황스러움, 후배에게 기대와 실망이 교차하는 오묘한 감정, 그리고 ‘좋은 선배’가 되기 위한 끝없는 시행착오까지—연구실이라는 작고 특별한 사회 안에서 누구나 한 번쯤 마주했을 법한 이야기들을 다룰 것입니다. 진학을 앞둔 인턴 후배부터, 친목질만 하는 후배, 너무 적극적인 후배까지. 그들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성장하고, 실망하고 지쳐가면서도 다시 다정해지려는 대학원생의 이야기입니다. 누군가에게는 공감이, 누군가에게는 대비가, 누군가에게는 그저 웃음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비 대학원생, 대학원 신입생,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독자들이 연구실 속 관계에 너무 지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른 연재기사 보기
전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