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논문이 소위 말하는 ‘억까’에 걸렸구나 싶은 건 2023년 5월이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친한 친구를 보기 위해 베네치아로 향하고 있었는데, 비행기가 베네치아에 도착하자마자 교수님께서 전화를 한 것이다. ‘사이언스에서 어제 논문 리뷰가 두 건이 들어왔는데, 둘 다 네가 하는 논문과 똑같은 유전자와 똑같은 기전을 다룬 논문이 들어왔어. ’라고. 일단 논문 리뷰를 거절했고, 교수님이 곧 어떻게 할 지에 대해서 소식을 업데이트해준다고 하셨는데, 이 날 바다를 바라보며 마신 캄페리 스피릿츠가 그렇게 씁쓸할 수가 없었다. 논문을 같이 쓴 공동 1 저자인 C는 ‘너 베네치아에 노트북 들고 갔어?’라는 왓츠앱이 왔고, 나는 그렇게 친구에게 수소문을 해서 노트북을 하나 급하게 구했다.
교수님은 이날 저녁 다시 나에게 연락을 해서, ‘에디터가 부활절 연휴를 감안해서 화요일 오전까지 서브미션을 할 수 있냐고 물었어. 일단 서브미션을 하면 우리 논문까지 해서 세 개의 논문을 플래그쉽 (일종의 스페셜 에디션)으로 고려하겠다고 했는데, 해 보자.’였다. 결국 나는 바다뷰가 아주 잘 보이는 호텔 갇혀 며칠 내내 논문 작업을 했고, C는 알고 보니 와이프를 보기 위해 뮌헨행 비행기를 탑승하려 했다가 결국 포기를 하고 브뤼셀로 돌아왔다고 했다. 그렇게 C는 이틀 내내 밤을 새우며 조직 이미지를 찍었고, 나는 며칠에 걸쳐 분석을 마무리하고 피겨 포맷팅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교수님도 같이 밤을 새우며 논문 텍스트와 레퍼런스를 완성해 냈다. 그렇게 우리는 기적같이 48시간 만에 논문을 제출했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논문이 시스템에 서브미션이 된 뒤부터는 에디터가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게 무슨 일일까. 2주 뒤에 이 논문은 보기 좋게 에디토리얼 보드에서 리젝이 났다. 문제라면 이 담당 에디터가 교수님의 문의에 대해 정말 애매하게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교수님께서 ‘왜 우리 논문이 에디토리얼 보드에서 리젝이 났는지, 기한 안에 논문을 내면 플래그쉽을 고려해 주겠다며 보낸 메일이 있는데 왜 해당 건이 지켜지지 않았는가’에 대해 피드백을 요구했으나, 그 메일을 이후로 이 에디터는 대놓고 교수님의 메일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혹시나 싶어 교수님이 리뷰를 받은 두 개의 연구실의 PI들에게 연락을 해 보니 그들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하지만 이 에디터가 하나 간과한 것이라면, 우리 교수님은 남의 편이고, 그 남의 편에게서 이해를 할 수 없는 일을 당하면 그때만큼은 물고 놓지 않는 미친개 그 자체라는 거다. 결국 교수님은 에디터 중에서도 시니어를 달고 있는 사람에게 연락을 해서 모든 메일을 첨부한 후 현재 벌어진 상황에 대해서 항의를 했는데, 시니어 에디터가 이에 대해서 피드백을 줄 수 없다면 에디토리얼 보드의 결정에 참여한 사람들의 피드백을 받아달라고 정말 다이렉트 하게 이야기를 했었다. 돌아온 대답은 ‘셋 다 기전이 애매하다’는 것이었고, 교수님은 이 피드백이 정확하지 않을뿐더러 플래그쉽과 관련된 기한이 실제로 에디토리얼 보드 안에서 사전에 합의가 된 것인지 등에 대해 꽤 오래 답을 요구했었다. 그리고 결국 백기를 든 편집팀이 왜 리젝을 주었는지에 대해 세 명의 PI에게 모두 다 회신을 보냈다고.
1년 뒤인 2024년 5월, 우리는 사이언스지에서 받은 피드백을 기반으로 이 논문을 싹 뜯어고쳤다. 미국에 있는 대가 분과 같이 백투백으로 네이처 지네틱스에 논문을 냈는데, 여기서 또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리뷰어 세 명 중 한 명이 아파서 기한을 지키지 못하겠다며 리뷰를 포기했는데, 결국 대타를 구하지 못하여 두 명의 리뷰어만 배정이 된 거다. 문제라면 이 두 명의 리뷰어 모두 논문을 제대로 읽지 않았는지, 우리가 이미 보여준 실험과 분석 결과에 대해서 ‘저자들이 실험과 분석을 전혀 하지 않았다’며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소리로 논문을 리젝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문제라면 이 당시의 담당 에디터가 신입이었다는 것, 그리고 부당한 리뷰가 들어오면 에디터 선에서 단도리를 쳐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리뷰어들의 눈치를 본다는 것이었다. 결국 머리끝까지 화가 난 교수님은 나와 C에게 어필 레터를 쓰자고 이야기했고, 리뷰어의 모든 포인트들이 어디가 왜 잘못된 소리인지 하나하나 지적하는 문서를 하나 더 만들었다. 당시 어필 레터에는 ‘Groundless, totally biased, not correct’ 등의 표현이 들어갔었는데, 단순히 리뷰어들의 문제뿐 아니라 이 담당 에디터의 문제를 지적해서 시니어 에디터에게 어필 레터를 보냈다. 정말 다행이라면 시니어 에디터는 정상이었다는 것, 그리고 이 매운 항의에 대해서 억셉을 하고 논문 리젝을 철회해 주었다. 그렇게 꽤나 공정한 코멘트를 다시 받아 1년에 걸쳐 리비전을 두 번을 하게 되었고, 우리는 당연히 두 번째 리비전에 대해 논문을 제출하면서 ‘이제 끝 아닐까’라고 생각을 했다.
당시에 심지어 두 번째 리비전은 에디토리얼 차원에서 요구가 된 거라, 포맷을 맞추고 일부 표현을 수정하면 논문을 억셉해 주겠다는 메일을 받은 게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자신이 있었는데, 그런데 웬걸. 논문을 제출하고 이틀 뒤에 온 답은 ‘니네 논문 리젝ㅋ’이었다. 나와 C는 이게 뭔 미친 소리인가 싶어 한참 넋이 나가있었고, 백투백이 무색하게도 그 미국 팀의 논문은 억셉이 났다는 거다. 이 에디터가 백투백의 의미를 모르는 건가 하면서 한숨을 푹 쉬고 있던 찰나, 출장 때문에 벨기에 밖에 있던 교수님이 줌 링크를 하나 보냈다. 접속을 해 보니, 교수님의 첫마디는 ‘내가 진짜 이런 소리 하면 안되는데 개빡친다는 표현 밖엔 생각이 안 난다’였다. 알고 보니 학회장에서 그 에디터를 만났고, 우리 논문이 두 번의 리비전을 하고도 왜 리젝을 당했고 왜 미국팀은 억셉을 줬는가에 대해서 이유를 물어보셨단다. 참 가관이게도 이 에디터의 대답은 ‘몰라 ㅋㅋ 니네 논문이 갈수록 개노잼이라고 리뷰어들이 그러던데? 리뷰어들이 그렇다니까 그렇다 해야지 ㅋㅋ?’라더니 자기에게 학회가 끝날 때까지 제발 말을 걸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교수님께서는 이 날 네이처 지네틱스의 모든 에디터를 수신자로, 그리고 나와 C를 참조에 넣어 메일을 한 통 쓰게 된다.
논문을 두 번이나 리비전을 했고, 심지어 에디토리얼 차원에서 요구를 했다는 논문이 리젝이 났다. 문제는 이 담당 에디터가 우리에게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이유인 ‘논문에 흥미가 떨어졌다’는 근거를 대며 논문이 리젝난 이유를 설명하기를 거절했다. 이에 대해서 3일 내로 제대로 된 피드백이 들어오지 않으면, 나는 정식으로 이에 대해 학계에 문제 제기를 할 것이다. 내가 가는 학회, 내가 같이 공동 연구를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 네이처 지네틱스를 보이콧하라고 할 것이다.
뭐 결국 저 메일을 쓰고 이틀 만에 사과 메일이 왔단다. 결론부터 말하면 소위 말하는 4과문이지만, 뭐 위에서 얼마나 깨졌길래 그렇게 난 잘못이 없다는 태도로 도도하게 굴던 담당 에디터가 미안하다며 메일을 보냈을까 싶었다. 메일에는 본인이 잘못했지만 리뷰어들의 의견이 있으니 결정은 번복할 수 없고, 보이콧이나 타 연구실 PI들에게 이 상황을 알리지 말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했다. 들으면서 나와 C는 경악을 금치 못했고, 교수님은 ‘결정을 번복할 수 없는 건 아쉽지만 보이콧을 하든 다른 연구자들에게 알리는 건 내 자유 아니냐’는 대답을 하셨다고. 그러시고 실제로 공동 연구를 하는 컨소시엄 분들께 이 이야기를 제일 먼저 했다. 그 뒤로도 뭐 어디 갈 때마다 이야기를 하셨는지, 연구실에 초청받아 온 분 중에 이 이야기를 직접 나에게 물어본 분도 계셨다.
그리고 교수님이 대처를 해 준다 하지 않았나. 저 말 같지도 않은 이유를 들은 날, 바로 학회장에서 네이처 캔서와 네이처 셀 바이올로지의 시니어 편집장들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메일을 쓰셨다고. 그리고 네이처 캔서에서 일단 그러면 리젝 난 메일과 우리가 진행한 리비전까지 싹 다 첨부를 해서 트랜스퍼를 할 수 있냐고 물어봤단다. 지금 물불을 가릴 때가 아니라서, C가 바로 요청받은 것들을 다 정리해서 트랜스퍼를 해 뒀다. 일단 하나 불은 껐구나 싶은 마음으로, 4월 18일 아침 일찍 나는 친구들을 보기 위해 프랑스 툴루즈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 날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은 다들 대학원을 나오거나 지금 박사를 하고 있다)을 만나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면서, 이 말도 안 되는 2년짜리 드라마를 쭉 풀었다. 친구들은 고생했다며 이 날 내가 마신 술을 본인들끼리 계산했고, 나는 반쯤 취해서 친구 집에서 잠이 들었다. 토요일 아침, 한 아침 아홉 시 즈음 느즈막이 일어났고, 친구가 커피를 내려 주고 있었다. 잠이 반쯤 덜 깬 상태에서 핸드폰이 울렸고, 발신자는 교수님이었다. 또 휴일 주말에 뭘 시키시려나 싶어 전화를 받아보니, 교수님께서는 ‘유라야 잘 들어. 논문이 억셉됐다. 어제 치프 에디터랑 따로 온라인 미팅을 했는데, 거기서는 예외적이지만 그동안 네이처 지네틱스에서 진행한 리비전이 충분하다고 생각해서 그냥 억셉을 해 주기로 했어. 그러니까 일단 부활절에 친구들 만나서 잘 놀다 오고 화요일에 보자’였다. 그렇게 친구들과 또 먹고 마시고, 즐거움을 한가득 나누며 부활절 휴일을 보냈다.
연구실에 돌아오니 교수님이 아침부터 나와 C를 불러 이야기를 했다. 네이처 캔서의 치프 에디터와 벨기에 시간으로 월요일 저녁 (이면 그쪽은 월요일 오전이라고 한다),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고 했다. 연구의 독창성을 주장하려면 네이처 지네틱스에 억셉 된 논문보다 우리의 논문이 먼저 나가야 한다고 어필을 했는데, 그 에디터가 그러면 한 달 안에 모든 작업이 가능한 지 물어보았다고 했다. 교수님께서는 조금은 빠듯하더라도 최종 교정과 관련 파일 준비를 좀 맞춰주는 게 좋겠다고 이야기를 하셨는데, 뭐 대수인가. 저 2년 간의 미친 저주를 풀고 논문을 낼 수만 있다면 내가 그리도 징그러워하는 황소개구리의 발바닥도 핥을 수 있는 걸 싶은 마음이었다. 저 빠듯함은 거짓이 아니었는데, 파일 수정이나 최종 교정 등을 몇 시간 내로 해달라는 요청 사항이 있었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시간 개념을 요구받았지만, 다시 말하지만 이게 문젠가. 논문이 나갈 수만 있다면, 그리고 스쿠핑 소리를 안 들을 수만 있다면 에스프레소 네 샷을 밤 11시에 마시고 밤도 새울수 있었다.
그렇게 6월 23일 오전에 이 논문이 세상에 나오게 됐다. 정말 온갖 역경과 말도 안 되는 후려치기를 여러 번 겪었고, 교수님은 그때마다 ‘내 편이면 신, 남의 편이면 악마’를 자처했다. 논문이 나오고 집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2년 간의 드라마를 곱씹었는데, 정말 내 편이면 참 좋지만 남의 편인데 뭔가 공격받을 일이 생기면 참 무서운 게 교수님이다 싶었다. 도끼질로 끝나지 않고 정말 끝을 보는구나 싶은. 한편으로는 내 편이고, 나와 같이 일하는 사람이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참고로 교수님은 여전히 저 네이처 지네틱스 이야기를 잘하고 계시고, 되도록 비슷한 레벨의 다른 저널로 가는 걸 추천한다고 이야기를 하신다. 그뿐일까, 미국 팀에서 백투백 논문을 썼던 포닥을 통해 듣자 하니, 생각보다 상황이 많이 꼬였구나 싶었다. 그 논문은 7월 말 즈음 해서 공개가 될 예정이었는데, 네이처 캔서에서 이렇게 먼저 움직여버린 바람에 논문 레퍼런스와 디스커션 일부를 수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그래서 그 팀 PI도 담당 에디터에게 여러 번 항의를 한 모양새였다.
정말 논문이 잘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교수님은 ‘내 편이면 캐리건, 남의 편이면 임페스티드 캐리건’이 맞다. 그리고 내 편이라서 다행이라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