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출산 직후부터 내 몸은 예전 같지 않았다. 특히 계속 겪었던 증상은 뼈 마디 시림이었다.
뼈와 뼈가 만나는 관절 사이로 바람이 슝슝 통과하는 듯한 통증이 있었는데, 가장 심하게 느껴지는 부위는 손가락 마디 사이였다.
시린 증상만 있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을 구부려 주먹을 쥐는 일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러한 증상은 일상생활에서 다양하게 불편함을 일으켰다.
숟가락이나 젓가락을 쥐고 밥을 먹으려 할 때, 펜을 쥐고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 컴퓨터로 문서를 작성하거나 키보드를 두드릴 때도 손가락 마디에 통증이 심했다. 그뿐만 아니라 운전을 할 때 핸들을 감싸 쥐려고 해도 손가락 사이가 아팠고, 문손잡이를 쥐고 돌리며 문을 열려고 하는 행동조차 통증을 일으키니, 새삼 모든 것이 조심스러워졌다.
가장 힘들었던 시간은 실습수업이었다. 우리 학과는 작은 기구들을 손에 쥐고 세밀한 작업을 해야 하는 특수한 전공 분야인데, 작은 기구를 손으로 쥐려면 손가락을 정해진 형태로 구부려 잡아야 했고, 다섯 개의 손가락을 주먹을 쥐듯 가운데로 오므려야 했다.
명색이 실습을 담당하는 교수인데, 학생들 앞에서 기구를 손에 쥐는 간단한 시범조차 쉽게 보일 수 없으니 답답했다. 또한, 손에 쥔 기구를 이용하여 세밀한 작업을 하는 것이 너무 힘드니 실습수업을 맡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당연히 작년보다 학생들이 수업을 잘 따라오지 못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했다.
엄지와 검지를 기구 위에 어떻게 위치시키는지, 중지와 약지는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새끼손가락은 어떤 모양을 취해야 하는지를 직접 보여주지 못하니, 결국 화이트보드에 보드마카로 일일이 그림을 그려 설명했다. 또한, 학생들 한 명 한 명을 1:1로 봐주며 손가락의 위치를 조정해주어야 했다. 수업은 당연히 배로 오래 걸렸다. 원래라면 기구 하나를 설명하는데 1시간 30분이면 충분했을 일이, 이제는 3시간도 부족했다.
병원에 내원하여 증상을 설명하고 상담도 해보았지만, 의사 선생님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고, 최대한 손가락을 사용하지 말고 쉬어야 한다는 말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워킹맘이다.
실습수업은 내가 꼭 해야 할 중요한 본분이다. 또한, 실습수업을 마치고 나면 각종 행정서류, 보고서 작업 등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퇴근 후 집에 돌아가면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 아이를 돌보고, 빨래도 하고, 건조기에서 꺼낸 세탁물을 개켜 정리도 해야 한다. 나의 하루는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멈출 틈 없이 흘러갔다. 나의 하루가 멈추지 않는 만큼, 내 손가락도 멈추지 않고 바삐 움직였다. 손가락이 쉴 수 있는 시간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게 손가락의 통증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엔 손목 통증이 찾아왔다. 아기를 안고 수유를 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손목에 무리를 주었던 것 같다.
수유 시간은 길고 반복적이었다. 수유 쿠션을 무릎 위에 받치고, 발받침을 사용하여 무릎을 높인 뒤 아이를 안고, 우유병을 들고, 오랜 시간 자세를 고정하며 버텼다. 이 과정이 매일 반복되다 보니 손목에 부담이 되었던 것 같다.
손목 통증은 실습수업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작은 기구를 손에 쥐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손목을 주기적으로 돌리며 사용해야 하는데, 손목 통증 때문에 손목을 돌리지 못하니 자연스러운 시범을 할 수 없었다. 점점 더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날이 늘어갈수록, 화이트보드 위에 그려지는 그림의 개수는 늘어만 갔다.
손목 통증은 어느새 팔로, 그리고 오른쪽 어깨로 퍼져갔다. 손가락이 아프니 손목을 더 쓰게 되고, 손목이 약해지니 팔로 부담이 가고, 결국 어깨까지 통증이 연쇄적으로 번져간 것이다.
수유 자세 역시 통증의 원인이었다. 아무리 수유 쿠션과 발받침을 사용해도, 한 손으로 아이를 안고 다른 손으로 젖병을 들어야 하는 자세를 오래 유지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았다. 아이가 천천히 먹는 날에는 30분이 넘도록 같은 자세를 유지해야 했고, 다 먹은 뒤 트림을 시키기 위해 안고 있는 시간은 또 이어졌다. 이 고정된 자세는 결국 내 오른쪽 어깨에 지속적인 압박을 주었다.
결국, 판서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고민하다가 왼손을 사용하는 방법을 터득하기 시작했다. 왼손 손가락 마디가 시리긴 했지만, 오른쪽처럼 어깨까지 통증이 이어지진 않았으니, 오히려 왼손을 사용하는 것이 수월했다.
마우스를 왼손에 쥐고 클릭하는 연습을 했다. 화이트보드 위에 간단한 그림은 왼손으로 그리며 수업을 이어나갔다. 어색하고 느린 손놀림이지만 원활하게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렇게 아이들의 실습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2.
법적으로 정해진 90일의 출산 휴가 후 별도의 회복 기간 없이 바로 복직했다. 그 후 2학기 실습수업을 온전히 맡아 운영했다. 주 4일 수업에 더해, 수시로 진행되는 추가 실습 평가까지 병행하다 보니, 몸이 회복될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학생들의 입장에서도 정말 중요한 실습수업인 만큼, 내가 아프다고 해서 나 몰라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노력한 만큼 학생들이 좋은 결실을 얻게 될 것이고, 학생들의 좋은 결실은 내게 행복을 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교수라는 직업을 택한 이유이다.
내가 처음 교수가 되고 생각했던 것을 떠올리니 이 정도 아픈 것은 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길다면 긴, 짧다면 짧은 2학기를 지내는 동안, 기구를 하나하나 점검하고 수업을 준비하고 추가 실습 평가를 거치며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퇴근 후에는 육아와 집안일이라는 제2의 인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나에게 소중한 가족을 만들어주셨음에 감사하며 버텨냈다.
일하는 엄마, 워킹맘이라는 이름 아래 감당해야 할 일들은 참으로 많고 무거웠지만, 결국 이 또한 지나가더라.
바쁘고 고된 한 학기를 보내고 방학이 찾아왔고, 비로소 나에게도 숨을 쉴 틈을 허락해 주었다. 아팠던 손가락 마디가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고, 팔과 어깨의 통증도 서서히 가라앉았다. 육체적으로 느껴지는 통증이 서서히 옅어지며 마음에도 여유가 함께 찾아왔다.
이제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출산을 겪은 엄마들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수 있는 일일지 모르지만, 막상 그 고통의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가볍거나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는 말이 맞기는 하지만, 그 시간을 버텨내기는 절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지금 나는 감사하게도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 짧지만 힘들었던 시기를 지나왔기에, 오늘 하루가 더 소중하고 감사함을 알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나와 같은 고통을 겪고 있을 누군가, 혹은 앞으로 그런 시간을 맞이하게 될 예비 엄마, 또는 워킹맘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언젠가는 정말로 지나가요. 결국, 시간이 해결해 주더라고요. 잘 이겨낼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