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흔해 빠진 게 박사, 널리고 널린 게 박사, 밟히고 밟히는 게 박사라 하던데”
내가 박사학위를 마칠 때 즈음, 당사자인 내가 아니라 우리 가족이 주변에서 많이 듣던 말이었다. 아마도 그들은 나를 직접 본 적은 없었어도, 박사 졸업 후 잘난 체라도 할까 나를 미리 누르고 싶었나 보다. 그 말을 들은 나의 가족들은 마음이 너무 아프다 말했다. 남들처럼 돈을 벌 수 있는 일도 아닌데, 그 흔해 빠진 것을 위해 내 청춘을 바쳐 열심히 일했고 밑도 끝도 없는 비아냥이나 모욕도 들어가며 눈물로 버티는 날도 있는 것을 가족들은 알았기 때문이다.
(여전히 나는
[과학자에게도 쉼표가 필요하다] 시즌 1에서 과학자들에게 두서없이 주절이 떠들었던 비판이나 불만과 위로를 조금 더 깊이 해 보려 한다. 내가 왜 이런 글을 쓰게 되었는지, 시즌 1을 보지 않은 분들은 먼저 읽어 보기를 추천한다.)
만나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물어볼 때마다 어느 기업에서 연봉 얼마에 어떤 일을 한다는 말 대신 “대학원생 ”이라는 말을, 최소 6년에서 거의 10년이 되도록 했을 가족들을 생각하면 오히려 내가 미안해졌다. 그리고는 위로했다. 괜찮아, 그 흔해 빠진 박사가 그 사람 가족 중에는 없나 보지. 사실 그랬다. 가족 중에 누구라도 대학원생이 있는 사람들은 그런 말을 쉽게 내뱉지 못했기 때문이다. 흔한 것도 아니고 흔해 빠지다니… 그냥 널린 것도 아니고 널리고 널리다니… 너무 많아 발을 내디딜 때마다 밟히는 게 박사라니… 내가 그들의 돈과 시간을 쓰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큰 죄를 지은 걸까… 그 당시 나는 그런 유치한 말에 똑같이 유치하게 생각하며 속으로는 상처를 받았었다.
흔한 것의 반대말은 귀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대학원을 진학하는 사람 중에 귀해지려고 대학원을 간 사람이 있던가? 특별해지기 위해 그런 선택을 한 사람은 없을 터인데 왜 그런 말을 들어야 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아가 “박사 졸업해도 손가락 빨며 살더라”라는 말까지 들었을 때는, 왜 그런 말을 하는지 궁금했다. 마치 그러기를 원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허나 나는 한 번도 부유해지기 위해 박사를 선택한 적이 없었다.
© iStock돈도 명예도 없는 과학자. 실로 그 길은 너무 외롭고 힘들었다.
박사 졸업하면 상황은 나아지느냐고? 아니다. 그래봤자 연구원이라는 말만 10년 넘게 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기간을 구분 지어 석사생/박사생 혹은 일반/주임/전임/선임/책임 연구원이란 수식어를 붙이는 것 또한 어느 순간부터 구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 눈에는 어차피 그냥 대학원생 혹은 연구원 일 테니. 아마도 그중 소수는 실력과 운을 겸비하여 교수나 사장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나 같이 흔.해.빠.진. 박사는 아마도 임종 직전까지 연구원만 하다 인생 종 치겠지.
어렸을 때 어른들은 “중간만 하라”라고 아이들에게 말한다. 그런데 막상 어른들끼리는 “중간이 얼마나 힘든 일인데”라고 말한다. 그 힘든 일을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쉬운 일인 것 마냥 포장해서 강요한다. 그래놓고 아이들이 막상 커서 흔해 빠진 사람이 되면 그때 돼서야 왜 너는 누구처럼 특별하지 못하냐며 나무란다. 중간, 수많은 사람들의 편차에서 평균 안에 드는 그룹이 된다는 것은 나를 부단히 깎고 깎아야 하는 너무도 힘든 일이었다. 그렇게 어쩌면 이미 빛나고 있는 각각의 보석에 우리는 흙을 계속 덧입혀 돌이 돼라 강요하고, 돌이 되고 나면 왜 너는 보석처럼 빛나지 않냐는 소리를 하는 것 같다.
내가 어린 시절 나는 양손잡이었고 나의 형제는 왼손잡이었다. 실제로 왼손잡이나 양손잡이가 많았던 외가의 배경 아래 보수적이었던 시절, 나의 형제는 부모님의 제안으로 끊임없이 연습 후 어느 순간부터 오른손잡이가 되었다. 군대에서도 왼손잡이는 밥 먹을 때 옆 사람의 팔과 자꾸 부딪혀 맞으며 고쳐졌다는 친척 동생의 이야기도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자식이 모든 것을 왼손으로 시작하는 것을 보고 나는 오른손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요즘은 왼손잡이가 흔하다 하지만, 그래도 무엇인지 모를 노파심의 걱정으로 말이다. 나는 양손잡이어서 편한 것이 많았다. 그래서 나처럼 악기 연주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의 형제에게 물었다. 그래도 오른손잡이어서 악기도 평범하고 편하지? 그때 나의 형제는 말했다. 아니. 내가 타고난 왼손으로 했으면 아마 지금 보다 훨씬 잘했을지도… 실제 한 예시로 그가 성인이 되어 배운 보드 타기는 왼발잡이로 선택해 수준급의 실력을 갖추었고 아직까지도 즐기며 살고 있다.
그 말은 들은 후 나는, 나의 자식이 왼손으로 무엇인가 하려고 하면 굳이 막지는 않았다. 나 또한 흔한 어른이 되어 그렇게 보석에 흙을 덧입히고 있었던 것이 미안했다. 물론 그 시절의 나의 부모 세대를 탓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지금 세대를 살고 있는 나는, 나의 자식 세대를 위해 좀 더 넓게 생각하고 각자가 가지고 있는 특별함을 지켜주고 싶었다. 무조건적으로 지켜야 하는 사회적인 규범이나 질서 등을 가르치고, 다른 사람들과 균형을 이루며 서로 함께 어울려 성장하는 법을 가르쳐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하지만 그 외의 개인적인 선택과 역량은 그들만의 개성이라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과학분야에서도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연구 외에 다른 주제는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흔히 오타쿠라 불리는 사람들은 본인이 하고 있는 연구 주제 외에도 궁금해서 많이 찾아보고 그 분야의 대가가 누구인지도 아는 것이 신기했다. 그런 나도 한 분야에서만 20년쯤이 되고 나니, 궁금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보고 듣는 것들이 많아져 여러 분야의 다른 주제들도 아는 것이 많아졌다. 이런 것을 “짬”이라고 했던가... 그런데 나의 배우자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세상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었다. 본업에서는 흔히 그쪽으로 서로 다른 전문인 5명쯤이 해야 하는 몫의 넓은 지식과 경험, 그리고 많은 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이미 배워서는 가질 수 없는 타고난 여러 능력에 더불어 재미있어서 늘 공부를 한다고 했다. 타고나기까지 했는데 노력에 즐기기까지 하는 오타쿠였으니… 학생들은 물론이고 교수님들의 신망까지 독차지하는 신기한 사람이었다.
그 반짝이는 보석과 결혼을 하고 나서야 세상은 공평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능력이 100이라면 나에게는 그 능력들이 어느 정도 균일하게 분배되어 있었지만, 그에게는 바로 그 분야 쪽으로만 모든 100의 능력이 몰빵이었기에, 반대로 본업 외의 모든 일에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돌의 모습을 많이도 발견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집에서는 그저 답답한 돌 취급을 받던 그도 그 분야에서는 반짝이는 귀한 보석이었음을 더러 잊고 살았다. 사실 보석들도 처음 채굴할 때는 보석인지 돌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다. 나아가 돌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느 각도에서는 반짝이는 보석과 같은 부분이 있다. 어디를 보는지 나름이고, 어떻게 다듬어지기 나름인 그들만의 개성인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에디슨이나 헬렌 켈러 등 유명한 위인이 된 과학자들을 보라. 그들의 학창 시절은 오히려 평범하지 못해 녹록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믿어주고 이해해 주고, 제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발전시켜 나갈 수 있게 도와주는 부모님이 있었다. 그런 조력자가 없이, 누군가 그들의 끝없는 질문과 도전 과정에서 억지로 흙을 계속 덧입혔더라면, 아마도 위인전의 목록에서도 사라지고 심지어 평범하지도 못한 모난 돌이라 불렸을지도 모른다. 또한 비록 당신이 보석인지도 모른 채 그저 돌이 되려고 노력을 하며 살고 있다 할지라도, 각 지고 모난 돌이 바닷가의 파도, 그리고 다른 돌들과 끊임없이 부딪쳐 매끈한 돌이 되듯, 그 엄청난 노력은 그 자체로 당신의 모든 장/단점을 다듬어가고 있는 과정일 뿐이다. 이러한 시선으로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고 훗날 자식 세대를 바라보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개인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 수 있는 디딤돌이 되길 바란다.
사람은 그 어떤 동물들보다 다양하다고 한다. 그 다양성을 구분하고 싶어 혈액형별 성격, 별자리별 성격, 이젠 MBTI별 성격도 있지 않은가. 이 다양성들이, 때로는 확실히 구분 짓기 어렵고 상황마다 바뀌기도 하며 스스로 자기 계발 후 바뀔 수도 있게 된다. 그 흔해 빠진 박사 모두도, 하고 있는 연구는 다 다르다. 비슷할 수는 있어도 아예 같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자신만의 반짝이는 장점이 있고, 임종 직전까지 흔해 빠진 연구나 할지라도 이루어 낸 업적은 모두 다 다를 것이다. 그러니 그저 이유 없이 질투하는 사람들의 말 따위는 꼭 흘려듣기를 바란다.
당신의 직업이 흔하다고, 실적이 중간이라고, 그렇다 할 만한 업적이 없다고 당신의 삶 혹은 당신 자체가 아무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당신이 이루거나 실패한 것이 그 어떤 것이든 노력해서 부딪히고 있는 이 모든 일들은, 당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그 특별함을 더욱 단단하고 매끄럽게 만들고 있는 과정인 것이다.
흔하다고 상처받지 말고, 중간이 되려고 꼭 노력하지도 말며, 동시에 이미 특별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흔해 빠진 오늘도 다시는 오지 않을 특별한 날인 것처럼...
흔해 빠진 박사, 당신은 이미 그 자체로 특별하다.
다음 편 [2] 생각하지 않는 생각을 하라.
*본 원고는 지극히 개인적인 불만과 위로이므로, 공감이나 또 다른 경험과 의견을 함께 댓글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