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읽은 ‘크리스퍼 드래곤 레시피’는 폴 뇌플러와 줄리 뇌플러가 공동 집필한 책으로, 현대 생명공학의 최전선에 있는 유전자 가위 기술과 합성생물학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크리스퍼(CRISPR) 기술의 발전에 기여하고 TED 강연으로 유명한 캘리포니아대학 세포생물학 교수 폴 뇌플러와 그의 딸 졸리 뇌플러로 딸의 학교 숙제로 용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흥미진진한 과정을 책으로 펴냈다. 첨단 기술을 이용해 진짜 용을 만드는 방법을 알아보려고 하는 중학생 딸 졸리의 학교숙제 ‘용 만들기 프로젝트: 재미 혹은 세계 정복을 위해’라는 주제로 시작하게 되었고 부녀가 함께 대화하는 중에 용을 만드는 방법에 관한 책을 쓰게 되었다고 책 서두에 설명하고 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같은 첨단 생명공학 기술로 이론상 무엇이 가능할까?"라는 도발적인 질문은 독자들에게 흥미를 갖게 하면서 유전자 가위를 활용해 드래곤을 창조하는 독창적인 레시피 제시를 통해 과학적 근거와 상상력을 결합시켜 전개되고 있다. 따라서 과학자들 뿐만 아니라 과학에 관심있는 일반인 그리고 중고등학생들 중 첨단 바이오분야나 생명공학에 관심 있는 청소년들에게 과학적 호기심과 첨단 바이오기술을 소개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된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가술을 세우고 이를 입증하려는 모습은 전형적인 과학자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또한 하나의 주제로 끊임없이 탐구하면서 수많은 가능성을 고려하고, 사실에 기반해서 이야기하는 점이 실제 현장이 과학자들의 탐구모습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거기다, 중학생 딸과의 대화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다 보니, 표현이 재미있고, 가벼움과 무거움의 균형이 잘 맞춰져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창의력과 유머표현 중에 "유전자 가위 3큰술, 창의력 2큰술, 최첨단 과학 풍자 1/2큰술"과 같은 재치 있는 표현과 용을 만드는 레시피는 과학의 매력을 일상 요리하는 레시피처럼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접근방식이 과학에 대한 대중의 두려움을 해소하고, 좀 더 쉽게 책을 읽을 수 있고, 더 많은 사람들이 과학에 관심을 가지게 만드는 데 큰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상의 생명체인 용을 게임이나 영화에 나오는 용처럼 실제로 만들 수 있다면, 마법을 쓰는 것까지는 아니어도 반려용으로 용을 만들 수 있다면, 어떤 기술을 사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논의하고 가설을 세우고 토론하면서 최첨단 생명공학기술을 적용하는 방법 등은 어려운 과학적 접근을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게 전개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용을 만들기 위해 용에 대한 기본적인 정의와 이미지를 구체화하면서 필요한 생명공학 기술, 첨단바이오 기술, 특히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기술에 대한 원리와 그 활용 가능성을 설명하고 있다.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기술은 2012년 스웨덴 우메오 대학의 에마뉴엘 샤르팡티에(Emmanuelle Charpentier) 교수, 미국 UC버클리의 제니퍼 다우드나(Jennifer A. Doudna) 교수는 크리스퍼를 이용해 유전정보가 들어 있는 모든 DNA를 정교하게 잘라낼 수 있음을 입증했으며 2020년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1) 이 기술은 유전자를 정밀하게 편집할 수 있어, 최근 희귀질환이나 유전에 따른 질병 치료에 활용하기 위해 연구가 활발하다 크리스퍼 기술은 특정 유전자를 잘라내고, 새로운 유전자를 삽입할 수 있기 때문에 치료뿐만 아니라 유전자 조작을 통해 생명체의 특성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생명체 창조에도 활용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이 기술을 적용해 용을 만드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고, 이는 단순한 공상과학 소설이 아니라 실제로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들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용의 이미지를 생각하면서 만들고 싶은 용에 대한 정의를 구체화하기 위해 동서양 문화 속의 다양한 용들을 조사해 본다. 백악기 공룡인 케찰코아틀루스에서의 용의 날개와 코모도 왕도마뱀에서 성체가 된 용의 크기와 다리 개수 등을 상상한다. 언제든 불을 내뿜기 위해 조류에 있는 모래주모니(근위)를 부싯돌로 이용하거나 전기뱀장어 전기 발생세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자가발전을 떠올리기도 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불을 내뿜는 용을 그려지고 있다. 또한, 날개 달린 용을 만들기 위해 용의 크기와 무거운 질량을 고려하여 어떻게 하늘을 비행할 수 있게 할 것인지, 그리고 용의 여러 기관 중 언제든 불을 입으로 뿜어 나올 수 있게 할 것인지 상상을 하면서 기술을 접목할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저자가 만들고 싶었던 용은 반려동물인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용‘을 꿈꿨다. 그래서 뇌과학까지 동원하면서 너무 똑똑해서 사람한테 피해를 주거나 도망가지 않는 ’적당히 똑똑한‘ 용을 만들기 위해 유전자를 조작하고, 비상 상황을 대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용에 대한 설계과정에서 역사학, 생물학, 화학, 유전공학, 인공 뇌과학까지 다양한 학문이 융합되어지는 것을 책을 읽으면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저자는 용을 만드는 것보다 중요한 생명윤리를 마지막에 언급하고 있다. 실제 용을 만들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위기 상황을 나열하면서 정말 우리에게 용이 필요한지 물어보고 있다. 더불어 코모도왕도마뱀 멸종 위기에 우리가 어떤 책임을 질 수 있는지 등 현실적인 질문도 한다.
생명공학의 발전은 빠르게 발전되고 있고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기술은 부작용 없이 암세포를 죽이는 방향까지 발전하면서, 우리 삶을 보다 윤택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최근 합성생물학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용을 이론적으로 설계할 수 있고 심지어 용의 탄생까지도 가능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기술의 발전은 항상 긍정적인 모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으로 새로운 동물에 대한 시도를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실제로 2018년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이용해 ’유전자 편집 쌍둥이 아기‘ 루루와 나나를 출산시킨 중국의 허젠쿠이박사는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용인되지 않으면서 전 세계 비판과 처벌을 받았으며 유전자 편집 기술을 활용한 생명체 탄생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2) 유전공학 발전의 획기적 성과는 한편으로 인류를 비롯한 생명체에게도 언제든 조작이 가능하다는 불편한 진실을 보여준다. 노벨화학상을 받은 수상자들은 이 기술이 잘못 사용될 수 있음을 우려하면서 유전자 편집 기술을 현명하게 사용해 줄 것을 기대했다. 이 책의 저자도 기술의 발달로 새로운 생명체 생산이라는 판도라 상자가 이미 열렸을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러한 불편한 진실은 저자인 폴 뇌플러의 TED 강연에도 있다. 이 책은 생명공학 발전 특히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같은 기술로 온전한 새로운 생명체를 만드는 관심에 대해 고민을 던져주고 있다.
“이 책의 목적은 진짜로 용을 만들려는 것도, 만들려는 사람들을 도와주려는 것도 아니다. 여러분과 함께 새로운 과학 분야를 살펴보며 지나치게 과장하는 과학을 풍자하고 전 세계의 사람들이 생명윤리를 지키면서 과학에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하게 해주는 것이 목적이다. 이 책이 그 목적을 조금이라도 이뤘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
-크리스퍼 드래곤 레시피 내용 중-
이 책을 읽으면서 마지막으로 전개될 때 어딘가 섬뜩해지는 생각이 든다. 용이 멋있고 용을 만드는 게 재미있다는 말은 어쩌면 단순한 재미로만 접근했지만 실제로 용을 만든다면 당연하 윤리적인 문제에 접근할 수 있다는 복선이 깔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멋있고 재미있다는 이유만으로 몇몇 사람들이 용이나 유니콘 등을 만들기 시작한다면, 세상은 지금 세상과 다르게 더 많이 혼란해질 것이다.
과학기술은 단순한 기술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윤리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저자가 이야기하듯이 첨단 과학기술을 활용하는 과학자들은 유전자 편집기술이 용을 만들 수 있다는 상상의 가능성과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지만 그 행위와 결과물에 대한 책임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우리는 생명공학의 발전 등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 주고 상상력을 자극하고 탐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기술들은 과학자들에게 더욱 흥미와 도전을 시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생명과 기술활용에 대한 책임감을 더 많이 고민해야 건강한 생명공학이 발전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 책은 과학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 과학 경계를 넘어서는 상상력의 중요성,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과학 발전과 인류에게 긍정적인 방향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참고문헌
1) 이강봉 기자(2020.10.18.), 노벨화학상, 유전자가위 개발한 두 여성과학자 수상, 사이언타임즈.
2) 이혜리 기자(2019.12.31.), 유전자 편집아기, 中 허젠쿠이 징역 3년, YTN 사이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