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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의 망원경] 제프리 웨스트 편, ‘스케일’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 그리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몸의 보편적 법칙을 찾아서, 그리고 과학의 위로
Bio통신원(김민환)
제프리 웨스트 (Geoffrey West) 편, ‘스케일 (Scale)’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 그리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몸의 보편적 법칙을 찾아서, 그리고 과학의 위로
나의 고등학교 시절을 돌이켜 보면, 모두들 선망하는 친구들의 모습은 공부를 잘하거나, 농구를 잘하는 모습이었고, 난 그저 둘 다 잘하지 못하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리고, 가까이 지내던 반 친구는 어느 날 나에게 “넌, 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아님 못하는) 그런 사람 같다.”라는 말을 했던 기억이 나고, 그저 난 “나도 이런 거 저런 거 해보고 싶고, 또 잘하고 싶어…”라고 속으로 되새겼던 거 같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난 대학교 졸업 및 긴 대학원 (같은 실험실에서 석사 2년 반, 박사 5년) 생활에 들어갔고, 박사 한 3-4년 차쯤 (실험실 생활 5-6년째 즈음)이던 어느 날, 수영장에서 온몸이 물에 가라앉아 눈만 빼꼼히 내놓고 생각에 잠겼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같이 실험실에 들어와 동고동락하던 동료는 빠르게 학과 박사자격시험에 통과하였고, 또, 연구에 집중해 논문 출판 및 박사 졸업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태였다. 그에 비해 난, 2번의 박사자격시험에 불합격해, 마지막 한 번의 기회가 남았고, 이 마지막 기회에 통과하지 못하면, 실험실 5-6년의 생활을 접고, 석사 졸업으로 학교를 떠나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만큼 박사과정 연구 프로젝트도 당연히 지연되고 있었다.
수영에 관해서는, 예전 중학교 친구 따라서, 20대 중후반부터 동네 YMCA 수영장 가는 것을 좋아했다. 그냥 물이 좋았지만, 수영을 할 줄은 몰랐고, 초등학교 때 어머니가 잠시 보내준 YMCA 수영 강습 한번, 대학교 1학년때 교양 수업을 들었던 것을 제외하고, 강습을 제대로 받아본 적도 없었다. 호흡을 못하더라도, 수영장에서 어느 정도 놀 수 있고, 그냥 그렇게 다녔는데, 그날 수영장에서는 팍팍한 대학원 생활과 맞물렸는지, 기분이 많이 다운되어 있었고, 물속에 푹 잠겨 “야, 넌 뭘 해도 못하는구나. 어떻게 수영 좋아한다며 한 10년은 왔다 갔다 한 거 같은데, 자유형 호흡도 제대로 못하니. 공부는 무슨,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구나.” 자책했다.
내가 좋아하는 법륜 스님 [즉문즉설로 유명하신] 말씀처럼, 사실 우리는 (나 역시) 얻지 못한 결과에 집착하지만, 이미 끝난 일에 대한 이 집착은 “욕심”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현명한 사람은 이 실패한 결과에 연연해 불행해지지 않고, 그다음 할 일들, 다시 일어설 방법을 찾느라 분주해, 실망의 고통에 빠질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닌, “과정 및 그 속에서 변화된 태도,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우리가 잘 아는 답일 것이다.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들에게 흔한 게 묻는, 노벨상 받을 때가 좋았는지, 아니면 그 계기가 되는 연구 (혹은 과학적 발견)를 할 때가 좋았는지 물으면, 노벨상 받을 때가 더 좋았다고 말하는 과학자는 없을 것이다.
최근 R&D 삭감에 따라 연구비 수급의 어려움을 호소하시는 주변 교수님들 (또한, 나 역시)을 보면, 박사학위 받을 때 가장 좋았던 것들 중의 하나로 꼽히는, “난, 이제 시험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있구나”였는데, 연구비 지원, 평가, 당락의 삶은 계속되는구나하는 생각도 든다. 재미있는 건, “스케일 (Scale)” 책 저자이신, 샌타페이 연구소의 제프리 웨스트 (Geoffrey West) 교수님의 이 연구의 시작 또한 약간의 비슷한 상황이 있었던 것으로 책에 살짝 기술되어 있다. 전통적 물리학 주제인 기본입자물리와 장이론을 반 평생 (~50세) 연구해 오던 학자는 그가 기대했던 (그리고 그의 분야인), 당시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과학 계획 (~30억 달러 예산 투입 예정, 1993년 10월 미국 의회)이었던 초대형 가속기 (Superconducting Super Collider, SSC)의 설립계획에 대한 취소에 빌 클린턴 대통령의 합의 (p 123)가 있었고, 이 SSC의 몰락은 불가피한 예산 문제, 경제 상황, 장치가 건설되는 텍사스주를 향한 정치적 반감, 감동 없는 지도력 등의 정치 경제적 상황의 배경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저자는 오십이라는 나이를 넘기면서, 누구나 그렇듯이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여기서의 죽음은 아마도, 이 나이에서 느끼는 자신의 쇠약해짐, 지인 및 부모님의 죽음을 겪으면서 피할수 없는 생로병사에 대한 자각, 태어난 이상 죽을 수 밖에 없는 생명의 원리에 대한 의구심일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21세기의 주류과학이 생물학이 될 것이고, (약간의 오만 및 무지를 바탕으로 한) 생물학이 진정으로 성공을 거두려면 물리학을 그토록 성공한 과학으로 만든 정량적이고 분석적이고 예측적인 문화 중 일부라도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하에 생물계 연구에 뛰어든다. 쿼크와 끈이론 (모든 물리학 법칙을 합치는 대통일장 이론과 관련된)에 관한 연구에서, 세포와 고래까지 (생물과 생태계, 도시, 기업의 성장과 죽음까지)의 연구로 오십이 넘은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한 셈이다. 공동 연구 생태학자들은 거의 매주 금요일에 1시간 거리를 차로 이동해서 샌타페이 연구소로 방문했고 (p156), 오전 9시 반경에 만나서 오후 3시경까지 함께 매주 열심히 연구했다고 한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자신이 생각하는, 학자로서 중요한 질문 (deep question)을 던지고, 주변에 마음 맞는 연구자들을 찾아서 주기적으로 만나 함께 공부하고, 연구할 수 있다는 것. 남들이 알아주거나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지라도. 그렇게 저자이신 제프리 웨스트 교수님은 그의 나이 50대 초반에 새로운 생물계 연구를 시작해, 수많은 논문을 쓰고, 25년쯤 후인 70대 후반의 나이에, 일반인들을 위한 자신의 연구 분야 소개 책인 “스케일 (2017)”을 출간하게 된다.
역사 속에 과학자들은 늘 그렇듯이, 이와 같은 스케일 연구는 샌타페이 연구소의 제프리 웨스트 교수님 및 다른 연구원들 이전에 클라이버 법칙 (Max Kleiber, 1932), 즉 동물의 대사량은 체중의 4분의 3 제곱에 비례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즉, 쥐보다 100배 무거운 고양이는 쥐보다 31배의 대사율을 갖는 것이다. 이 책 말미에는 전통적 물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초끈이론, 대통일장 이론과 같은 (아마도 영향을 받은), 우리가 사는 도시, 기술의 발전에 따른 지속 가능성의 대통일 이론에 대한 의견을 펼치신다. 또한, 최근 빅데이터 기반 이론들이 늘 그렇듯이, “상관관계인지, 아니면 인과 관계인지”를 잘 살펴보아야 하며, 그 분포의 경향성을 보이는 물리학적, 생물학적 해석, 의미를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임을 강조하신다. 80이 넘은 연세의 저자는 이 책에서도 좀 다루고 있지만, 죽음에 대한 물리적 해석에 관심이 있으신 것 같다 (예를 들어, Why we die (2024), Venki Ramakrishnan와 같은 책을 바탕으로) [1].
나 역시 이 지구상에 태어난 수많은 생명체 중 하나이며, 다른 생물과는 다른 보편적 생물학적 크기 스케일을 가지고 20대까지의 성장곡선과 그 이후에 자연스러운 나이에 비례해서 선형적인 노화 및 쇠퇴를 겪게 되는 수많은 인간종 중 한 개체일 뿐이라는 걸 다시 깨닫게 하고, 삶에 대해서 다시 생각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는 과학이 주는 위로이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해 본다. 우리는 그렇게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그저 매 순간순간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마지막 장면처럼.
어린 시절 커다란 사각형 TV로 봤던 영화 “록키 1” (1976; 너무 남성 중심적 영화이지만)에서 주인공은 사랑하는 여인 에이드리언에게 이기고 돌아오겠다는 그런 싸구려 말을 하지 않는다. 마지막 라운드에 종이 울릴 때까지 링에서 쓰러지고 않겠다고 말할 뿐이다. 그리고 이 게임의 승부 결과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니까. 이에 못지않은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 (2005)” 역시, 더 잃을 것도 없는 절벽에 선 강태식 (39살)과 유상환 (19살)이란 두 인물의 신인왕전 경기 준비를 담고 있다. 이 두 인물들이 만들어가는 스토리와 준비과정을 본 관객에게 경기결과는 무의미한 것이다. 세상의 대부분 뉴스들은 결과만을 이야기하지만, 이는 어쩌면 별 의미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난 참 느린 사람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하고 싶은 일은 많은 사람이다. 다시 수영으로 돌아가면, 난 수영을 좋아해라고 말하고 다닌 지 한 20년 쯤 지난 몇달 전에 우연히 본 유튜브 수영 영상 댓글에 “호흡은 “음-파-음-파”가 아니고 “흥-헝-흥-헝” 입니다.”라는 우연한 큰 가르침에 자유형 호흡이 트였고, 지금은 1시간 정도는 계속 수영을 수영장에서 쉬지 않고 할 수 있게 되었다. 닳아서 죽고 싶지, 녹슬어 죽고 싶지 않다는 고명환 작가님의 말씀, 은퇴하시고 70-80대에 좋아하시는 붓글씨, 동양화를 열심히 그리셨던 우리 아버지, 혹은 모지스 할머니 [2] 역시 같은 궤 일 것이다. 둘째 출산 때맞춰서 샀던 기타는, 특이할 정도로 내가 기타 연습하는 것을 싫어하는 둘째 덕분에 전혀 늘지 않고 있다 (핑계일 수도 있다). 그래도 언젠가 한 20년쯤 후일지라도 아내 생일날 한곡 노래를 기타 연주와 함께 불러 줄 수 있지 않을까 꿈꿔 본다. 또한, 좋아하는 달리기 역시 그저 달릴 수 있어서 좋다. 그래도, 누가 옆에서 왜 뛰냐고 계속 물어보면, 한 20년쯤 후에 보스턴 마라톤 대회 70대 중 1위 그런 거 해보고 싶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렇게 꿈꾸고 행동할 수 있는 자유.
관련 자료 링크
[1] Geoffrey West: "Metabolism and the Hidden Laws of Biology" | The Great Simplification (https://www.youtube.com/watch?v=my9a9Ftr7ek )
[2]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류승경 역, 수오서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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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과에서 학부, 석박사 학위 후, 지금은 대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뇌과학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주로 뇌과학 관련, 가끔은 물리학 관련 책 소개 및 감상을 공유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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