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하게 대학원을 진학했을 때, 나는 화학을 더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시험 보면 막상 제일 낮은 성적을 자랑했던 유기화학을 호기롭게 선택했었다. 그렇게 석사를 하고 보니, 생각보다 내가 아는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더 공부를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박사까지 도전했는데, 막상 박사가 되고 강의를 하며 생각보다 내가 아는 것이 없는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출처: 아웃캠퍼스 그도 그럴 것이, 과학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과학 트렌드에 맞춰 각 연구그룹의 연구는 다채롭게 변화한다. 다양성이 끊임없이 증가하는 이 시스템을 마주하며 아는 것이 많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이상해지는 상황인 셈이다. 그래서 박사가 끝난 이후에도 내 공부는 끝날 수가 없었다.
그나마 연구를 하던 시절에는 과학 트렌드만 쫓으면 되었다. 최신 연구 동향을 살피며, 더 배울 것이 있는지, 내 연구에 접목할만한 것이 있는지, 혹은 기업에서는 새로운 연구를 기획할 때 적용할만한지 정도를 공부했던 것 같다. 전공 범주 내에서 아주 다른 것을 배울 필요는 없어 그나마 나았던 것 같다.
대표가 되니, 공부할 과목이 더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제는 전공을 뛰어넘어, 사업을 위해 필요한 다양한 경영, 행정, 세무, 회계, 법 등 얇게 필요한 정보를 모두 습득해야 하는 대 참사가 벌어졌다. 나는 창업 당시 운이 좋아, 동료가 있었다. 전편에서 소개한 것처럼 심지어 나와 다른 능력을 갖춘 문과 인재로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나는 기술을 담당하고, 동료는 행정 및 경영 관리 전반을 전담할 수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각자 잘하는 일을 전담하고 있기에 서로의 영역에 대해 배우느라 고생할 필요가 없이 각자 할 수 있겠다고 부러웠으나, 실상은 각자 하는 일을 서로에게 잘 알려주기에 매우 적합한 구조였다.
공부는 왜 끝나지 않는걸까? 이제 4년 반 기업으로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공부시키느라 여념이 없었다. 각자의 영역을 담당하되, 서로가 서로의 영역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많은 공부를 도왔다. 왜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공부시켜야 했을까? 그것은 대표가 반드시 알고 있어야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범주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표가 알아야 회사 운영이 가능한데, 공동대표가 각자 아는 것만 알고 있으면 서로 내용이 공유될 수 없고, 그러다 보면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체 그림을 보기 위해서 당연히 각자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을 서로 이해하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눈을 가리고, 코끼리의 다리 하나, 코끼리 코를 만지며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상상할 수 없지 않겠는가? 그런 맥락에서 기술 기반 기업의 대표는 회사의 근간인 기술에 대한 이해, 그리고 회사 경영에 필요한 서류를 만들고, 서류를 이해하는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야 중간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동료에게 기술을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동료는 나에게 서류를 보는 방법, 만드는 방법 또, 회계서류 읽는 방법 등 경영에 반드시 필요한 내용을 가르치며 함께 성장해 왔다.
군맹무상 (群盲撫象) 이미지 사실 이공계 대표에게 취약하다면 취약할 수 있는 부분은 회계, 세무, 법일 것이다. 실제 공동대표가 나에게 가장 많이 이야기하고 또 가르쳐주는 부분이 저 3개의 분야이기도 하고, 다른 스타트업 대표님들과 이야기하다가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 듣는 부분도 바로 저 분야인 듯하다. 이번 편에서는 대표가 꼭 알아야 할 몇 가지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먼저, 세무나 회계에서 가장 주의해서 봐야 하는 부분은 '자본잠식'이다. 낯선 단어인 '자본잠식'은 연구자이던 시절에는 면제항목이었으나, 회사에 소속되는 순간 신경 써야 하는 카테고리에 해당한다. 자본잠식이란 회사의 보유한 자산을 다 썼다는 것을 의미한다. 계속 적자가 나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자산이 싹 날아간 상태인 셈인데, 보통 초기 스타트업에서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초기 기업은 매출이 크지 않고 자본이 크지 않은데 지출이 많다. 그럴 때 지출이 자본을 뛰어넘으면 문제가 발생되는 것이다.
보통 자본잠식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한다. 자본잠식률이 100% 미만인 부분자본잠식, 그리고 자본잠식률이 100% 이상 되는 완전자본잠식. 완전자본잠식은 특히나 국가 연구개발과제나 관에서 진행하는 입찰 등의 활동에 제한을 받을 수도 있어, 많은 기업들이 재무제표를 만들 때 가장 신경 써서 관리하는 부분에 해당한다. 연구자들이 이 '자본잠식'을 체감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겪어본 적이 없어서가 대부분일 텐데, 학교, 출연연 등 정부기관은 '자본잠식' 조건에서 면제이므로 재무상황과 관계없이 모든 연구과제 신청이 가능하다.
자본잠식이 얼마나 위험하냐면, 정부기관과 하는 모든 일을 할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실제 이전 기업에서 연구개발 과제를 수주하던 시기, 전 대표자가 재무제표를 신경 쓰지 않아, 완전자본잠식에 빠져 심각한 상황에 처했던 적이 있다. 자본잠식이 발생되면, 연구과제, 입찰, 용역 등에서 서류가 접수될 수 없다. 잠식 상태이므로 정부 보증 대출이나 은행거래도 어려워진다. 잠식 상태이므로 투자도 불리해진다. 반드시 관리를 잘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지출이 많은 상황에서 자본잠식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당연히 처음부터 담당 세무 혹은 회계사무소와 수시로 소통하며 데이터를 잘 정리해야 한다. 재무제표는 한번 픽스되면 수정이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과제나 용역 등은 기업의 신뢰도를 바탕으로 수행되기 때문에 3개년 재무제표를 검토한다. 따라서 내용은 어렵겠지만, 대표자가 되었다면 수시로 돈 출입에 대해 담당자와 소통을 자주 해야 한다. 잘 모르는 말이 있다면 물어보고 확인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말이다. 나는 동료 덕에 이런 내용을 접하고 공부할 수 있었다. 동료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면, 관련된 교육을 창업자를 대상으로 해주고 있으니 그럴 때 참여해서 공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된다. 물론 전문자격증을 가진 이들에 비해 우리가 공부해서 알 수 있는 내용은 매우 제한적이므로, 해당 내용을 바탕으로 소통에 적극 활용하는 것을 더 추천한다.
또 다른 사항은 노동시간, 노동강도가 관여된 근로기준법에 대한 이야기이다. 보통 많은 연구자들이 그러하듯, 연구하는 사람들의 특성상 야근을 당연시하는 문화가 없지는 않다. 특히 wet 실험의 경우, 실험이 내가 원할 때 끝나고 시작되고 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기 때문에, 일이 있으면 스스로 일을 한다 라는 개념이 굉장히 당연하다. 그런데, 이 당연함은 나에게 당연할 뿐, 다른 이에게 강요할 수 없다. 직원이 야근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생각만 해야 한다. 절대 계약하지 않은 내용을 입 밖으로 내뱉으면 당신은 근로기준법을 어기는 것이 돼버린다. 근로자에게 대표자의 생각을 강요해서도 안되고, 근로자에게 채용 계약에서 합의한 내용 이외의 것을 시키는 것도 문제가 된다. 근로기준법을 대표자가 잘 알고 있으면 발생되지 않고, 잘 모를 때 발생될 수 있는 다양한 이슈가 이러하다.
재무제표 같은 어려운 일은 회계사나 세무사의 도움을 받는데, 그렇다면 노무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좋은 것은 매년 업데이트되는 고용법에 대해 직접 공부하는 것인데, 인터넷에 고용노동부 홈페이지나, 블로그만 보더라도 고용주가 알아야 할 내용들이 쉽게 잘 정리되어 있어 공부가 크게 어렵지는 않다. 특히 모든 기업은 취업규칙이 존재해야 하는데, 이런 취업규칙 역시, 고용노동부에서 잘 안내해주고 있고, 매년 업데이트도 해주고 있으니 평소 관심을 가지고 잘 찾아보기만 해도 큰 문제없이 지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행정이나 경영 관련 내용들이 물론 어려울 수 있다. 특히 연구개발에 더 특화된 생활에 익숙한 연구원들이 갑자기 행정 서류를 보고, 법적 이슈를 검토하고, 회계 숫자를 맞추는 것이 절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에 익숙해지지 않는다면, 그리고 이런 내용이 어렵다고 계속 피한다면, 회사의 문제가 쌓이는 것을 피하기 어려워지고, 문제가 쌓인 뒤에 해결은 늦는다.
최근 나와 동료는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고 있다. 이번에는 둘 다 낯선 분야인 투자분야이다. 작년 첫 투자를 받기 전부터 계약서 보는 방법을 비롯하여, 펀드를 보는 방법,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어떤 부분을 준비해야 하는지 등, 계속 공부하고 있는데 늘 그렇지만 쉽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년간의 통합형 공부를 해온 덕으로 잘할 수 있으리라 믿고 직진 중이다. 공부를 했다고 해서 엄청난 능력이 생기는 것은 아니겠지만, 최소한 우리가 우리의 계약에 더 많은 관심을 쏟고 꼼꼼하게 볼 수 있는 기회는 가질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