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대학원에 진학했을 때, 가족들은 내가 학위를 취득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공부나 연구에 대해 거리가 굉장히 멀었었다. 그랬기에 얼마나 많은 사건사고를 몰고 다녔는지는, 앞선 글들에서도 볼 수 있지만 정말 하나하나 다 말할 수 없었다.
사실 학위과정을 도중에 멈추지 않은 것은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그중 가장 큰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때쯤 취업 준비를 하다가 최종면접에서 떨어지고 코로나로 인해 지쳐가던 시기였는데, 내가 실험을 좋아하고 잘하는 것 같다는 주변의 말에 실낱같은 희망을 가졌기 때문이다. 자존감이 떨어지던 시기에 잘하는 것 하나 있다는 건 굉장히 큰 힘이 되었다.
실험의 결과가 좋을 때면 스스로 자신감이 생겼고, 실패하거나 실수한걸 나름대로 수습하며 다음으로 넘어갈 때면 즐거움을 느꼈다. 물론 문제를 일으키면 혼이 났고, 또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이 한심하게 보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매번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즐거웠고, 혼자가 아닌 동료들과 함께 했으며, 실수해도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과제를 수행하면서 추상적인 것 같은 목표는 그걸 해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게 해 주었고, 긴장하던 랩미팅에서는 동료들의 다양한 의견을 통해 잘못된 길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주거나 다양한 의견을 모아 새로운 길로 향하는 지침서를 얻을 수 있었다.
힘들 때 같이 실험하고, 실수하면 같이 고민하고 행동했던 많은 사람들 덕분에 연구는 계속되었다.
이공계열을 선택한 이후로 적성에 맞지 않는 건 아닐까, 여러 번 고민했던 적이 있다. 공부는 어려웠고, 성적이 좋지 않으니 계속해서 실패를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똑똑한 사람은 세상에 너무나도 많고, 어떤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나를 도리어 이해하지 못했다. 그랬던 내게 눈으로 보이는 성공과 실패의 결과물이 나타나는 실험은 얼마나 값진 기회였는지 모른다. 몸으로 부딪히며 배운 것들을 이론에서 마주하며 더 확실하게 이해하는 순간이 늘어갈수록 이공계열을 선택한 걸, 앞으로 실험실에서 계속 연구하고 싶다고 생각한 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연구를 하다 보면 정말 수없이 많은 실수와 실패를 마주한다. 당장 매일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순간에서도. 표준물질의 범위를 계산에서 분석했지만, 그 이상이 측정되었던 시료가 있을 수도 있고, 기기 보수를 위해 펌프 오일을 갈기 위해 밸브를 열었지만 고순도 오일이 부족하여 창고를 뒤지고 엔지니어에게 전화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매번 하던 분석법 그대로 수행했어도 뭔가 다른 결과가 나올 때도 있다. 가끔 피크가 갈라져서 나올 때면, 두려운 마음으로 결과 파일을 여러 번 확인하며 어떤 게 잘못되었는지 걱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과측정된 시료는 그 측정값을 보고 희석배수를 결정해서 희석 후 재측정하면 되고, 새 오일에 폐오일을 약간 더해 최소량을 맞추면 되고, 기기의 method를 조정해서 재측정하여 정확한 물질의 피크인지 확인해 보면 된다.
오염된 배지를 보며 주저앉는 게 아닌, 시드(seed)를 먼저 확인하기 위해 다시 일어나는 연구원이 되고 있다.
이 탄력성이 생기는 순간들이 즐거워서, 나는 계속해서 실험을 하고 싶어진다.
계속해서 실험을, 연구를 할 수 있을지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 이제 시작일 뿐…
오늘도 나는 실험실에서 자잘한 실수를 한다. 당장 내일 실험실에서 일하지 않게 된다 하더라도, 오늘의 실수는 다른 일을 하게 될 나에게 또 다른 노하우를 알려줄 수도 있음을 이제는 잘 알고 있다. 어쩌면 앞으로 10년, 20년 후에 연구를 하고 있을 나 역시 하루에 한 번 정도의 실수를 가지고 지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자. 대부분의 연구원들은 사고를 한번씩은 치고, 우리는 그걸 수습하면서 새로운 걸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실수를 수습하고, 순간을 넘어가다 보면, 언젠가 지나온 그 순간들이 내 발밑에 쌓여 내 시야를 높여주고 넓혀주는 받침이 되어줄 것이라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실험실이 좋다. 오늘도, 그리고 앞으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