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포닥파닥입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연재를 작성하면서 처음 포닥 왔을 때를 다시 떠올리니깐 뭔가 기분이 새롭습니다. 이번 연재에서는 미국 포닥을 작년 9월 1일 자로 시작하고, 그달에 포닥으로써 첫 학회 구두 발표를 하게 된 이야기를 해드릴까 합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오기 전 지도 교수님과 함께 시카고에서 열리는 학회에 참석하기로 했습니다. 학회 시기가 9월 중순이기에, 저는 포닥으로 근무를 시작한 지 2주 뒤에 바로 참석하는 포닥으로써 첫 학회였습니다. 현재 PI도 같이 참석하는 학회이고, 포닥으로써 처음으로 구두 발표를 하는 자리이기에 준비를 철저히 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발표 주제는 제가 현재 진행 중인, 박사학위 본 심사 때 발표했던 내용이라 준비하는 데에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학위 심사 때 이미 발표했던 내용이라, 누가 갑자기 옆에서 지금 당장 발표해 봐! 해도 바로 술술 나올 정도로 숙달이 되어있었지만, 그래도 영어가 많이 부족한 만큼 영어 발표를 잘하는 데에 집중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9월 1일 자로 근무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연구실 환경과 대학 시스템에 적응함과 동시에, 당장 며칠 뒤에 있을 학회 준비를 하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드디어 학회 날이 되었습니다. 저는 시카고 공항으로 가서 전 지도 교수님을 모시고, 학회장으로 함께 갔습니다. 한국을 떠난 지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교수님을 뵙고 나니 괜스레 너무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큰 SUV를 끌고 선글라스를 쓰고 온 저에게 벌써 미국인 다 됐다며 농담하시기도 하였습니다. 시카고는 제가 살고 있는 도시와 꽤 가깝습니다. 차로 가면, 2시간 반 정도 걸리는 곳이라 제가 사는 동네 사람들은 시카고로 자주 놀러 가기도 합니다. 지금은 시카고를 수도 없이 많이 갔지만, 그날은 시카고를 처음 가보는 날이었기에 너무나도 설레었습니다. 학회는 시카고의 유명 박물관인 필드뮤지엄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다행히도 학회 참가자는 학회 기간 박물관 이용이 무료라서 학회 기간 내내 틈만 나면 박물관에 갔던 것 같습니다. 학회는 3일 동안 진행되었고, 제 발표 순서는 중간 정도였습니다. 학회장에는 논문으로 자주 뵈었던 교수님들, 연구원분들이 많이 계셔서 뭔가 친숙한 느낌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학회 중간에는 참가자들이 편하게 네트워킹할 수 있는 장소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간단한 다과와 커피가 준비되어 있고, 작은 스탠딩 테이블들이 여러 개 있어 누구와도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드디어 저의 전 지도교수님과 현 PI가 만나게 되었습니다. 두 분 다 유명한 연구자이기에 서로의 이름을 익히 들어서 알고 계셨지만, 실제로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저는 중간에 낀? 입장으로써 뭔가 어색하고 걱정되고 긴장되었지만, 역시나 고수들의 대화는 굳이 걱정할 필요가 없던 것 같습니다. 역시나 좋은 말 만 가득했고, 앞으로 저를 잘 부탁한다는 전 지도교수님의 훈훈한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또한, 현 PI는 전 지도교수님의 오랜 팬이었다는 말과 함께 당신의 제자는 벌써 적응을 잘하고 있고 앞으로가 많이 기대된다는 훈훈한 덕담과 함께 자리를 마무리하였습니다. 태생이 군대를 다녀온 한국인인 저는, 누구도 시킨 적 없지만 두 교수님을 학회 동안 잘 챙겨드려야 된다는 사명감이 있었습니다. 사실 현 PI는 외국인이라 한국의 그런? 문화가 익숙지 않지만, 그래도 모두를 서운하지 않게 해 드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습니다.
학회 첫날이 끝나고, 둘째 날이 되었습니다. 그날은 제 발표가 있는 날이라 일찍부터 학회장에 도착해서 발표 피피티 파일을 업로드하는 등 발표 준비에 만반을 다했습니다. 학회에서 제공하는 노트북을 이용해야 했지만, 다행히도 발표자가 보는 화면에 제가 미리 작성해 놓은 영어 대본을 같이 띄워 놓을 수 있어서 마음이 한결 편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영어 발표를 할 때, 충분히 연습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본이 옆에 있다면, 여차하면 대본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훨씬 안정되는 편입니다. 그렇게 제 발표 시간이 다가왔고, 발표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전 지도교수님께서는 저에게 너무나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두리번거리다가 현 PI와 눈이 마주쳤는데, 저를 보더니 아주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고 이제야 긴장이 풀어지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발표가 끝난 뒤부터는, 이제야 학회를 즐길 수 있는 상태가 됩니다. 발표 전에는 아무 발표도 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발표가 끝난 뒤에는 다른 발표자에게 질문도 스스럼없이 할 정도로 달라집니다. 이러한 이유로, 학회 초반에 발표 일정이 잡히기를 항상 바라지만, 그것은 제 뜻대로 할 수 없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죠. 학회 마지막 날 전날 저녁에는 모든 참가자가 참석하는 연회가 있습니다. 필드뮤지엄 반지하에는 이러한 연회를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8명 정도씩 앉을 수 있는 큰 동그란 테이블이 연회장에 수십 개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코스 형태로 음식을 주는 형태였고, 연회장 중간마다 놓인 바에서는 무료로 칵테일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즉흥에서 라이브로 연주를 해주는 등 제가 지금까지 겪어봤던 학회 중에서 연회는 거의 최고였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학회 마지막 저녁을 마무리했고, 다음 날 학회는 오전 세션만 남아있었습니다.
오전 세션은 2개 정도의 발표 일정과 폐회식이었습니다. 오전 발표를 다 듣고, 폐회식 순서가 되었습니다. 학회 측에서 여러 이야기를 했고, 마지막 순서로 학회 관련 수상자를 발표하였습니다. 원로 위원들을 위한 감사패 증정, 학회에서 후원하는 장학금 수상자 발표, 포스터 수상자 발표가 있었고, 마지막으로 구두 발표 수상자 발표가 있었습니다. 한 명 한 명 나올 때마다 부러움을 느끼며 열심히 박수를 쳤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마지막에 한국 이름이 나오길래, 응?? 누구지? 했는데, 다시 들어보니 제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우왁! 하며 소리를 질렀고, 번쩍 일어나 무대로 향했습니다. 제가 우왁! 하며 단상으로 향할 때 사람들이 웃으며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상을 받고 자리로 돌아오는 길에 지도 교수님과 현 PI 모두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모두 환하게 웃으며 저를 축하해 주셨고, 현 PI가 엄지를 치켜세우며 축하해 주는 모습에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해외 학회에서 구두 발표로 상을 받은 것이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그것도 전 지도교수님과 첫 포닥으로써의 PI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 수상을 했다는 사실은 저에게 너무나도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학회를 마치고, 지도 교수님을 공항까지 바래다 드린 뒤에 저는 집으로 차를 돌렸습니다. 공항까지 들렀기에 집 가는 데에 3시간은 더 걸리지만, 이번 학회에서 얻은 것들을 생각하며 가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갈 수 있었습니다. 이제 갓 시작한 미국 포닥 생활이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너무나도 많이 남았지만, 그날 학회에서 상을 받은 것은 앞으로의 미국 포닥 생활이 잘될 거라는 응원과 격려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분야를 좀 많이 바꾸었고, 신생 랩에 포닥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 만큼 가시적인 결과를 내려면 다른 분야 혹은 다른 연구실보다 조금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해외 포닥은 계약직이고, 비자가 마냥 연장될 수 없는, 언제 이곳을 떠나야 할지 모르는 불안정한 상태입니다.
심지어 저처럼 가정이 있는 경우에는 이러한 불안정성이 더 막중한 부담감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상에 안 불안정한 것이 어디 있을까요? 이 길은 제가 좋아서 선택한 길이고, 절대 이러한 것들을 모르고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도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연구를 하고, 경험하고 싶었던 미국 생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인생은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지만, 그때그때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한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아지지 않을까요? 사실 지금도 아주 행복한 미국 포닥 생활을 하고 있긴 합니다. 그렇게 저만의 방향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면, 언젠가는 더 행복한 곳에서 더 재밌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예전에 친한 친구에게 대학원 생활의 고된 점을 한탄했을 때 친구가 저에게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너는 아직도 꿈을 가지고 그걸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정말 멋지고 부러워.”
(친구가 나는 돈 잘 버는 너가 더 부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