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비연구직임에도 대학원 진학을 추천하는지에 대한 글로, 연재의 마지막을 장식해 보려 한다.
그래서, 대학원 진학 추천하나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단연코 YES이다. 대학교에서 실수한 사람이 대학원에 진학한다는 웃픈 이야기가 인터넷에 만연하고, 과연 석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들에게 대학원 진학을 추천하는지 물었을 때 몇 명이나 추천한다고 답할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실험실에서의 경험이 지금까지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작게는 교수님(상사? 윗사람?)을 대하는 방법이나, 실험실 선후배(직장동료)를 대하는 방법에서부터 논문을 찾고 이해하는 방법까지 실무적으로도 보탬이 되고 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학부를 원했던 학교를 가지 못했다는 생각에 학교에 정도 주지 않고 수업만 듣고 다녔다. 정말 학점 관리만 잘하고 그 외 동아리나 대외 활동같이 으레 대학 생활의 로망이라고 생각하는 활동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안 그래도 내성적인 성격에 사람들과 교류가 많진 않은 편이었는데, 대학원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자연스레 많이 배우게 된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아마 학부 졸업하자마자 바로 취업했으면 사회생활 꽤나 고생했을 것 같다). 그리고 사소할 수도 있지만 실험 데이터 정리하기, 학회 포스터 제작하기, 실험 발표 준비하기, 학위 논문 쓰기 등을 거치며 익혔던 MS 오피스 사용 능력도 꼽고 싶다.
대학원에 입학하자마자 내가 읽어야 할 논문부터 받았던 기억이 난다. 솔직히 말하자면 학부 시절에는 논문을 읽을 일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논문을 고르고 읽는 법은 커녕 어디서 찾는지조차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사수였던 선배에게 PubMed에서 논문 찾는 법부터 배웠던 것 같다. 그리고 그때는 논문을 잘 고를 줄 모르니 선배가 골라준 대략 10 페이지 정도 되는 논문을 읽는데 며칠은 걸렸다. 하나의 figure와 그에 대한 설명을 그대로만 받아들여서 실험값이 줄어들었다, 늘어났다 정도로만 이해하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무슨 실험이고, 어떻게 하는 실험이고, 무엇을 의미하는지 하나하나 찾아보느라 읽고 또 읽어서 오랜 시간이 걸렸던 기억이 있다.
내가 있었던 실험실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논문을 한 편 골라 발표하는 랩미팅 시간이 있었다. 나의 첫 랩미팅 발표를 앞두고, 주변 선배들로부터 교수님께 좋은 첫인상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발표를 잘해야 한다는 생각과 부담이 나의 온 머릿속을 가득 채웠었다. 당시 학교 기숙사에서 살고 있었는데, 랩미팅을 앞두고 거의 한 달 전부터 주말에는 노트북을 들고 학교 도서관에서 발표 자료를 만들었고, 랩미팅 당일에는 모든 실험을 접고 혼자 빈 강의실에서 발표 연습을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학부 때도 발표 수업은 절대 수강 신청하지 않았었는데, 교수님과 실험실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려니 엄청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첫 랩미팅 이후에도 분명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하는 건데 내 차례는 왜 이렇게 빨리 돌아오는지 졸업할 때까지 ‘또 내가 할 때가 왔다니’를 여러 번 생각했던 것 같다. 이렇게 힘든(?) 랩미팅 시간들이었지만 이 시간을 통해서 내가 배운 점은 좋은 논문의 중요성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교수님과 실험실 사람들 모두가 나의 발표를 위해 시간을 할애하여 한 자리에 모여주는 시간이다(물론 논문 교류의 의미도 있긴 하지만). 이 시간을 유익한 시간으로 만들려면 좋은 논문이어야 한다는 것을 몸소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처음에는 논문을 읽고 이해하는데 치중했다면 나중에는 논문을 고르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Impact factor가 높은 저널에 실린 논문을 기웃거려보기도 하고, 나 혹은 우리 실험실에서 해볼 수 있는 실험이 있을까 찾아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고민했던 경험들이 적절한 논문을 고르는 안목을 갖추는데 도움이 되었다.
또 다른 발표 시간으로 3개월마다 나의 연구 진행 상황을 발표하는 일명 리서치 시간이 있었다. 랩미팅은 그래도 다른 사람이 한 연구이고 이미 논문에 실린 내용이기 때문에 나만 이해를 잘하고 발표를 잘하면 됐다. 하지만 리서치는 내가 한 실험을 정리하고 발표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너무나도 힘들었다. 발표 준비를 하면서 분명 나는 3개월 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실험을 달렸는데 결과가 이게 다인걸까 현타가 온다. 교수님이 3개월 동안 한 게 뭐냐고 하시면 어쩌나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발표 끝 시간에는 Q&A나 피드백 시간이 연이어 주어지는데, 선배들로부터 데이터가 깔끔하지 않거나 다시 확인이 필요할 것 같다는 부정적인 의견을 들으면 과연 내가 졸업은 할 수 있을지 세상 모든 게 부정적으로 느껴질 뿐이다. 나는 성실하게 열심히 했는데 그동안 무엇을 했나 자존감도 많이 내려가고 그 순간에는 정말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모두 나를 위해서 해준 조언들이었고 그런 피드백이 없었다면 잘못된 길로만 가고 있었을 거라 모두 다 내가 성장할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그래도 어찌저찌 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학위 논문도 작성하고 교수님 세 분 앞에서 졸업 심사도 받고 석사 학위 졸업장을 받았다. 쓰다 보니 왜 이렇게 힘들었던 기억들만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경험이 모두 자양분이 되었다는 건 정말 진심이다.
개인적으로는 실험실에서 너무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지금도 좋은 일이 있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 의지하고 생각나는 사람들이다. 실험실에 있는 동안 교수님과의 관계, 실험실 사람들과의 관계, 졸업 걱정, 실험 고민 등등 좁은 공간에서 장시간 특정 사람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쌓인 정과 에피소드가 많아서 그런 것 같다. 연말이 다가오니 생각나는 에피소드인데 매 연말마다 마니또를 해서 송년회 회식날 마니또를 공개하는 연례행사(?)가 있었다. 마니또 활동이랑 선물은 뭐 할지 고민했던 아기자기한 추억도 있다. 크리스마스날 집에 놀러 가서 요리도 해 먹고 하루 종일 영화를 봤던 기억도 나고, 늦은 밤에 실험을 걸어두고 끝나기를 기다리며 같이 얘기하던 추억도 생각난다. 이렇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동고동락해서인지 졸업한 후에도 실험실 사람들과 종종 만나는데, 다들 같은 업계에 종사하다 보니 다른 회사 상황은 어떤지 서로 정보를 교류하기도 한다. 이 외에도 취업할 때 비연구직임에도 석사 학위가 좋게 작용한 건 사실이다. 업무 특성상 논문이나 임상적 가이드라인을 찾을 때 대학원 때의 경험이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연구자의 길을 걷고 있지는 않지만, 대학원 진학을 추천하는 사람으로서 앞으로도 멋진 연구자가 많았으면 좋겠고 항상 응원하고 존경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