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솟아날 구멍]
기대를 품고 떠났던 독일에서의 첫 포닥 생활 1년은 기대한 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했다. 4년 계약 기간을 한참이나 남겨두고 HR 팀에 사직 의사를 표하는 것은 심적으로 어려운 결정이었다. 그러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HR 팀과의 미팅이 있기 전에 호주에서 리서치 인턴으로 있었던 연구팀의 PI와 Skype 통화를 하게 되었다. 이 PI는 글쓴이가 독일로 포닥을 지원할 때 추천서 (reference letter)를 써 주셨던 분 중에 한 분으로 떠나는 날 해준 말이 있었다.
“수호가 독일에서 좋은 결과가 있기를 응원할게. 연구를 하다가 다음 스텝으로 이 연구팀에 합류하고자 하면 언제든 환영해.”
친절하고 격려가 되는 이 지원군이 있는 것 같은 job offer가 떠올랐었다. 그렇게 연결된 skype 통화에서 지난 1년 동안의 스토리들을 공유하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 질문을 했다.
“혹시… 1년 전 job offer가 아직도 유효한가요? 하하하”
“당연히 유효하지. HR 팀과 협의해서 합류 일정을 알려줄게.”
긴장되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PI의 대답은 이러했다. 동시에 글쓴이의 얼어붙었던 마음을 녹이는 말을 해주었다.
“일을 하다 보면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구분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서는 배울 점이 있을 것이야. 그러니 마지막 근무일까지 배울 것만 배우고 나오길 바랄게.”
그 이후 독일의 연구소 HR 팀과 퇴사 날짜를 정했다. 그리고 호주의 연구팀 PI와 몇 번의 Skype 미팅을 더 거쳐서 다음 행선지에 대한 일정을 조율했다.
[두번의 비행, 그리고 포닥 생활 – 리뷰 논문 작성]
다음 행선지는 당연히 호주였다. 합류하기로 한 연구팀은 호주 브리즈번에 소재한 small Extracellular Vesicle (sEV) 연구팀이었다. 종양세포에서 유래한 sEV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곧 다시 비행기를 타야 했다. 그 이유는 PI가 홍콩에서 풍부한 연구비를 땄고, 여러 대학에서 좋은 연구 환경을 제안받은 상황이었다. PI와의 Skype 미팅 중에, 호주에서 홍콩으로 연구실을 이주할 계획을 듣게 되었고, 글쓴이는 연구팀 합류에 대한 확정을 통해 이 계획에 힘을 실어주었다. 글쓴이의 본격적인 연구는 6개월 후 홍콩에서 진행하기로 하고, 해당 연도에는 호주에서의 연구팀 정리를 도와가며 학생들의 연구를 지도하기로 했다. 그렇게 리서치 인턴으로 있던 연구팀에서 포닥 (호주에서의 직책으로 엄밀히 말하자면 Research Officer이다.)으로 일하게 되었다.
독일에서 첫 포닥으로 일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생각했던 점들이 있었다.
- - 포닥은 누군가의 지원 (연구비든, 연구 장소든) 하에 독자적으로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어야 한다.
- - 포닥은 연구 프로젝트의 내용과 전공 지식을 학생들이나 PI보다 더 잘 알아야 하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독일의 연구팀에는 Bioinformatics 팀이 작게 구성되어 있었다. 한 명의 포닥과 두 명의 학생이 속해 있어서 소위 말하는 dry-work를 담당하면서 wet-work를 진행하는 면역학 연구팀과 함께 연구를 완성해 갔다. 연구팀에서 bioinformatics 내용은 이 포닥이 제일 잘 알았다. 그래서 해당하는 연구는 이 bioinformatic 포닥이 이끌어 갔다. 글쓴이가 새로 합류하게 된 cancer sEV 그룹에서, 이와 같은 팀 구조로, 면역학을 담당할 예정이었다. 글쓴이에게 주어졌던 첫 일은 리뷰 논문 작성이었다. 특정 단백질 CD155와 관련된 sEV에 대한 리뷰 논문의 면역학적 섹션을 담당해서 작성하는 일이었다. 이 시간을 통해 스스로도 공부를 더 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메인 연구 주제를 PI와 다른 포닥들과 함께 상의하면서 선정할 수 있었다. 연구 주제를 선정하는 방법은 앞서 석사 과정과 박사 과정 때 선정했던 방법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연구팀에서 나온 기존 논문의 내용들을 바탕으로 종양 미세환경에서 일어나는 면역 반응과 종양세포의 변화를 이해하고 치료에 적용할 수 있는 연구를 고안했다.
그리고 드디어 연구팀은 홍콩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PI가 먼저 홍콩으로 이동해서 연구비 관리와 연구소 공간에 대한 필수 업무들을 담당했고, 다음으로 글쓴이가 홍콩에 합류했다. 세명의 포닥을 포함한 모든 팀원이 시간차를 두고 줄줄이 홍콩으로 이동해 왔다.
[연구 주제의 실험을 위한 준비 1 – 실험실 구성]
1. 실험기기: 홍콩에 와서 가장 먼저 한 업무는 실험실을 구성하는 일이었다. 우리 연구팀에 주어진 연구실 실험 테이블에 호주에서 보내온 작은 기기들 뿐이었다. 연구에 필요한 실험기기들을 주문해야 했다. 연구비 예산 안에서 실험기기 [클린벤치 (Bio-Safety Cabinet), Centrifuge, Table centrifuge, CO2 incubator, 액체질소 탱크 (LN2 tank), 4℃ 냉장고, -20℃ 냉동고, -80℃ 초저온냉동고 등]들의 견적을 받아 주문하고, 실험실에 기기를 배치하는 일이 먼저였다. 동시에 연구소의 core facility에 존재하는 공동기기 [형광활성세포 분리기 (FACS), 유세포분석기 (CytoFLEX flow cytometry), Chemidoc, real-time PCR, Nanodrop, 공초점 레이저 현미경 (Confocal Laser Scanner Microscope), 투과전자현미경 (Transmission Electron Microscope) 등]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기기를 사용하기 위한 induction을 들었다. 그러나 글쓴이가 합류한 이 연구팀은 면역학 연구에 필요한 기기나 도구, 시약, antibody 등이 미비했다. 그래서 면역 세포를 분리할 수 있는 자성활성 세포 분류기 (MACS)와 충분한 세포수 획득에 어려움이 있는 면역 세포의 단백질 확인을 용이하게 하는 capillary system 단백질 분석기 (JESS)를 예산안에 구성해서 구매하였다. 그리고 이 연구팀에 필수적인 sEV 분리에 필요한 기기 [초고속원심분리기 (Ultracentrifuge), Tangential flow filtration (TFF) power, 고성능 액체 크로마토그래피 (HPLC), 고해상도 레이저 현미경 (ONi nano imager)] 들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한 시가 급한 포닥의 생활 동안 실험실을 구성하면서 공동 이익을 위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심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신설 연구팀에 필수적인 것이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면역학 연구를 하는 데 필요한 기기와 도구 등을 직접 준비하기에 좋은 시간이었다.
2. 프로토콜: 연구를 하다 보면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프로토콜인 듯싶다. 한 연구팀이 사용하고 있는 프로토콜을 소화해 가면서 연구자 본인이 가지고 있는 프로토콜을 융합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래서 실험실을 구성하는 동안 프로토콜을 정리해 갔다. sEV 분리에 필요한 실험기기들을 이해하면서 프로토콜을 숙지했고, 글쓴이가 가지고 있는 면역학적 프로토콜은 공유했다. 면역학 프로토콜을 실험실에 세팅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시약과 antibody, inhibitor 등을 구매해서 보관해 두었다. 배움의 길은 끝이 없는 것 같다. 석사 과정 동안 기본적인 생물학 실험을 배웠고, 박사 과정과 포닥 생활을 하면서 동물 및 사람 샘플을 이용한 면역학 실험들도 익혀왔는데, sEV 연구라는 새로운 분야에 입문하게 되니 또 관련 실험들을 배워야 했다. 그러나 포닥은 이 배우는 기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사진. 연구실에 비치한 실험기기들 (왼쪽 위부터)
① Flow Cytometry (CytoFLEX nano): 특별히 아주 작은 sEV particle의 단백질들을 형광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기, ② Capillary system 단백질 분석기 (JESS): 적은 양의 단백질 양으로도 4시간 안에 효과적으로 단백질을 확인할 수 있는 기기, ③ Ultracentrifuge (Optima XPN-100): sEV particle을 분리할 수 있는 초고속 원심분리기, ④ HPLC (LC-40D): 많은 sample 수의 sEV를 동시에 대량으로 분리할 수 있는 기기, ⑤ Nanoimager (ONi): sEV를 형광으로 찍을 수 있는 현미경, ⑥ Nano tracker (ZetaView): sEV의 particle 농도와 크기를 측량/측정할 수 있는 기기
[연구 주제의 실험을 위한 준비 2 – 프로젝트 제안서 작성]
연구를 할 때에는 연구 윤리가 중요하다. 특히 in vivo나 ex vivo와 같은 동물 실험이나 환자 샘플을 가지고 진행하는 실험을 할 때에는 이 연구 윤리에 부합한 실험이어야만 한다. 그래서 실험에 앞서 연구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필요한 실험에 대한 타당성을 연구 윤리팀에 제안해야 한다. 이 과정을 동료 포닥과 함께 연구팀 프로젝트에 해당하는 제안서를 작성했다. 예를 들어, 동물 실험의 경우, 프로젝트 별로 어떤 실험을 진행할 것이며, 각 실험마다 필요한 마우스의 개체 수를 요청하고, 예상 소요 기간 등을 작성해서 신청했다. 동물실험 윤리 위원회의 허가가 나고, 본격적으로 동물 실험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진행 중인 포닥 생활]
새로운 생물학적인 사실을 발견하고 발표하는 것의 매력에 빠져 입문했던 연구의 시작이었던 석사과정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왔다. 그동안 매 과정마다 연구 주제를 변경했고, 그 주제들을 논문으로 여러 번 게재하면서 마무리하기도 했다. 해당 연재의 글에서는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박사과정, 독일에서의 포닥 과정, 그리고 지금의 연구팀까지 세 번의 연구실 장소 이전의 이슈도 있었다. 그 안에 한 번의 쓰라린 포닥 경험도 있었지만, 그 경험을 토대로 효과적인 항암 면역치료요법을 알아내는 연구를 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연구 주제를 서술할 수는 없었지만, 이야기하고 싶었던 경험은 모든 과정 동안의 경험이 새로운 자리에서의 포닥 생활에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전 단계의 경험과 지식을 발판 삼아 다음 단계의 연구 주제를 선정할 수 있었고, 익혀둔 실험 방법들로 연구 주제의 가설을 증명할 수 있었다. 모든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다. 지금도 그렇게 한 단계 한 단계 나아가고 있다.
이번 4화로 글쓴이의 연구 주제 변경에 대한 이야기는 마무리하려고 한다. 하지만 다음 마지막 화에서는 여러 나라에서 온 포닥 동료들이 연구 주제를 선정할 때 어떤 방법을 활용했고, 시행착오를 극복했던 방법들을 소개함으로써 연구 주제의 선정에 다양한 경험을 소개하고자 한다.
To be continue…
[추가: 포닥 과정 동안 담당하는 업무] 모든 포닥이 다음과 같은 업무를 담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 이런 업무를 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 메인 연구
- 공동 연구
- 학생 연구 지도
- 리뷰 논문 작성
- 리뷰어 활동 참여; 투고된 다른 논문을 읽고 비평
- 연구실 유지 운영
- 연구실 실험안전 (safety) 지도
- 프로젝트 제안서 및 보고서 작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