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자료란 무엇인가.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간결하게 표현하고, 효과적이며 인상적으로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시각자료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우리는 초등학생 때부터, 지금은 유치원생일수도 있지만, 파워포인트라는 다방면으로 활용 가능한 프로그램을 사용해 왔다. 그러니 발표자료쯤은 아주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다른 학생들에 비해 생각보다 발표자료를 많이 만들어보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이공계열, 그것도 자연계열의 대학생이었고 흔히 말하는 조별과제와는 거리가 먼 대학생활을 했었다. 학부생 때 만들어봤던 PPT는 고작해야 하얀 바탕에 글과 사진만 띄워져 있는 아주 기본적인 게 전부였다. 그러고 추후 입학한 랩실은, 매주 랩미팅에서 돌아가며 논문미팅을 하는 곳이었다.
앞서 발표에 대해 글에 언급했듯이, 발표 역시 익숙하지 않았던 내가 발표자료를 오롯이 혼자 만든다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웹하드에서 선배들이 작업한 내용을 다운받아 하나하나 열어보고 더듬더듬 만들었다. 당시에는 PPT에 포함되어야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걸 간결하게 표현하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는지 하나도 알지 못했다. 보고 따라 하기에 급급했기에 디자인 역시 지금 보면 촌스럽기 그지없었다.
첫 논문 미팅 때 만들었던 PPT의 제목 페이지와 내용 일부. 발표자 명과 연구실 이름은 지웠지만 애매한 색상의 배경이 지금 봐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우리 랩실의 단점은 돌아보면 장점이었으니, 매주 돌아가면서 모든 연구실원들의 발표자료를 볼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기회였다. 학회장에 가더라도 많은 발표를 들을 수 없는 게 사실 현실인데, 연구실 미팅만 열심히 참여해도 많은 발표를 볼 수 있다니..! 실제로 입학해서 졸업하기 전까지 총 12편의 논문 미팅을 했고, 학회 구두발표 한 번과 졸업발표 한 번을 포함하면 다른 랩실과 비교했을 때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건 반박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경험들 덕분에 더디지만 점차 나아진 발표자료를 만들 수 있었던 것 같다.
게다가 우리 연구실에는 굉장한 선배가 있었다. 박사 언니는 내가 본 모든 사람들 중에 가장 발표자료를 잘 만드는 사람이었다. 디자인, 색상, 가독성, 내용까지. 무엇 하나 빠지는 것 없는 완벽한 자료에 매번 감탄했다. 박사과정을 하면서, 게다가 연구실장의 자리에 있으면서 어쩜 저런 자료들을 만들어내는지. 그 선배가 가독성이 좋은 폰트, 그리고 제목과 내용의 배치 등을 알려주어 배운 적이 있었는데, 그 모든 것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몇몇 발표자료를 만들면서 깨달은 점은, 페이지에 필수적으로 포함되어야 하는 요소는 큰 제목, 소속된 회사나 랩실의 로고 혹은 명칭, 페이지 번호 이렇게 세 가지 라고 생각한다. 나머지 내용과 관련해서는 개인의 취향이나 혹은 발표하는 자리의 분위기에 따라 자료가 우선적이 될 것인지, 혹은 글이 우선적이 될 것인지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제목이 분명히 나타나지 않으면 그 페이지를 본 사람이 무엇을 설명하는지 명확하게 알기 어렵고, 명칭이 각 페이지마다 조그맣게라도 표시되지 않으면 관객이 그 장면을 찍거나, 혹은 기록했을 때 소속에 대해 빠뜨리기가 쉽다. 마지막으로 페이지 번호는 추후 질의응답이 이어질 때, 몇 페이지의 무슨 내용에 대해 질문하는 사람이 언급하기 쉽고 추후 발표자도 대답하거나 자료를 보충하기에 용이하다.
그렇게 발전을 거쳐 지금은 조금 더 괜찮은 발표자료를 만들 수 있는 수준이 된 것 같다. 사실은 이 마저도 괜찮은 탬플릿을 보고 카피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예전에는 그걸 보고 따라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면 요즘은 약간이나마 따라 하거나, 괜찮은 색조합으로 표현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된 것 같다. 무엇보다 다 만들고 눈으로 보았을 때 어색한 점이 있다면 고쳐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정도가 되었으니... 갈길은 멀었으나 이 수준까지 온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해당 PPT는 봄 학회에서 구두발표한 자료이다. "피도리(@peedori_, instagram)” 님의 공공기관 템플릿을 이용하여 수정해서 제작하였다. 회사의 로고는 삭제하였으며, 위의 발표자료와 비교하면, 많은 점이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구두발표자료와 포스터는 또 결이 다르다. 포스터를 대학원에 진학하고 처음 만들게 되었을 때, 파워포인트로 이런 작업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놀라울 뿐이었다. 게다가 크기는 기본적으로 A0(900*1200) 사이즈에서 시작하기에 처음 만들어보는 사람이라면 글자 크기를 어떤 기준으로 잡아야 하는지부터 고민이 될 것이다. 게다가 그림은 어떤 사이즈여야 하는지, 들어가는 내용은 글자의 비중이 얼마만큼이 되어야 하는지 감으로 알기 어려운 점들이 많다. 더불어 포스터는 연습 삼아 만들어 볼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단점이었다. A4 종이에 인쇄하여 비율적으로 구성이 괜찮은지 확인만 하면서는 확신이 서지 않는 점들이 꽤 많았다.
포스터는 랩실마다, 분야마다, 학회마다 추구미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당시 환경공학회와 생물공학회에서 포스터의 차이를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는데, 환경공학과는 가독성을 최우선으로 하여 상대적으로 큰 글씨와 간결한 모식도가 바탕이 되었다면, 생물공학회는 특성상 방대한 자료와 그 자료를 설명하고 뒷받침하는 내용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 내용이 많고 적고가 수준을 평가하는 기준이 아니라, 분야와 발표자가 속해있는 단체에 따라 포스터의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포스터의 경우 가독성도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다. 글자가 겹치지는 않는지, 글 간격이 부담스럽지 않은지, 각 섹션이 겹쳐지는 부분이 없는지, 기본적인 것들의 확인이 필수다. 한 번은 Material and Method, Result, Discussion이 겹쳐진 포스터를 본 적이 있는데 보자마자 아... 하는 탄식이 들었을 정도였다. 한눈에 파악하기 쉬운 가독성이야말로 포스터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싶다.
사실 여러 학회를 다니다 보면 생각보다 교수님, 박사님들은 디자인에 큰 관심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당장 나만해도 디자인과 가독성에 전전긍긍한 건 나였지, 한 번도 디자인이나 색상에 대해 다른 말을 얹었던 분은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정말 말도 안 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들 그 안에 내용과 연구의 중요성, 혹은 향후 연구의 활용성을 진실된 눈으로 더 주의 깊게 바라봐주었다. 하지만 나는 자료의 디자인이란, 내 연구 성과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내 연구를 바라볼 때 더 편하게, 알아보기 쉽게, 그리고 이해하고 공감하기 쉽게 해주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다음 발표자료는 이전보다 더 좋게 되기를 바라며 수정하고 또 수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