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졸업식 날 기쁜 마음으로 연구실 식구들과 사진을 찍었다. 유난히 풍성한 박사 학위 복을 펄럭이며 졸업의 기쁨을 만끽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기대하던 총장님과 악수는 하지 못했다.(보통 박사는 학위수여식에서 총장님이 직접 학위증을 전달해 주신다) 코로나 때문이었다. 그래도 졸업의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 주말에 가족을 따로 불러 기념사진을 또 찍었다.
졸업식 시즌에는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호객행위를 하는 사진사들이 어슬렁거리곤 하는데, 당연히 넘어가지 말라고 가족들에게 신신당부를 해뒀다. 그런데도 부모님이 홀라당 넘어가셨다. 그렇게 장장 45만 원짜리 코스로 촬영을 하게 되었다. 그때 굉장히 다퉜던 기억이 난다. 밤새며 실험하느라 부모님 댁에 잘 가지 않았을 때도 단 한 번도 위문(?)을 오지 않으셨으면서, 왜 그 돈으로 촌스러운 앨범 사진을 찍느냐며 말렸는데 부모님께서는 박사 학위 받는 것이 자랑스러워 개인소장을 하고 싶다며 뜻을 굽히지 않으셨다. 그렇게 찍은 사진이 잘 나왔을 리 없다. 기쁜 날이었지만, 독사진 속 필자는 표정이 굉장히… 어둡다 😠.
그 사진 사건 이후 연구실 동료가 학위복 반납 전에 스튜디오에 가서 따로 독사진을 찍자며 필자를 꼬셨었는데.. 이미 낸 45만 원이 아까워 따라가지 않았다. (지나고 보니 딱 그때뿐인 기회였던 것 같아 사진을 남겨 놓을 걸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국내 포닥의 평균 임금은 얼마나 될까? 누군 가는 많이, 누군 가는 적게 받겠지만 절대적으로 박사 임금은 적다. 박사 학위복을 빌리는 것도, 독사진 찍는 비용을 내는 것도 부담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임금이 적다.
학교에는 포닥 임금 상한선이 정해져 있다. 하한선은? 당연히 최저임금이다. 필자의 지도교수님은 그래도 박사라고 없는 살림에도 이것저것 챙겨주시려 하시긴 했지만 월급을 쉽사리 올려주시지는 않았다 (학교에서는 퇴직금뿐 아니라 국민연금, 건강보험료와 같은 사회보험금도 교수님이 부담하셔야 한다). 당연히 실제로 받는 임금은 절대적으로 적었는데(거의 최저임금이었다), 필자의 지도교수님은 박사들의 퇴직금까지 본인이 지급해야 한다는 것에 굉장히 부담을 느끼셨기 때문에, 아무리 과제 사정이 여유로워도 흔쾌히 입금을 올려주지 않으셨다. 아마 임금을 올려줬다가는 나중에 깎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어차피 돈 벌라고 박사 하는 것은 아니니… 초반의 필자는 그 부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 고된 삶에서도 나름대로 scientist라는 자부심 하나로 버텨온 것이었기 때문에, 임금을 올려달라 하고 돈 밝힌다고 오해받는 것이 끔찍이도 싫었다.
하지만 필자의 어머니는 아니었다. 그 돈 받으려고 공부했냐면서 면박을 주셨고, 그럴 거면 공무원 시험이나 보라며 조롱하셨다. (아니 고생은 내가 했는데… 왜… 😪) 박사후연구원은 어떤 PI 밑에 있으냐에 따라 처우가 극과 극이다. 다행인지 대학이 아닌, 정부출연연구소에 소속된 연구원들은 연차 휴가 정도는 정상적으로 제공받는다고 들었다. 누가 들으면 필자의 지도교수를 악덕업주라고 그냥 도망치라고 하겠지만, 그래도 Boss의 마음을 이해해 보자면 지도교수가 바라보는 졸업한 제자는 직장인이 아니다. 대부분의 지도교수는 제자의 발전을 위해 제자들이 졸업 이전보다도 더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실 것이다.
부모님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필자의 부모님은 졸업과 동시에 필자를 사회인이자 직장인이라고 인식하셨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필자가 돈도 잘 못 벌고 unstable 한 계약직 처지에, 포스닥 기간이 길어도 나중에 보상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늘 불안해하셨다. 필자의 졸업 이후, 그동안 못 보냈던 가족 휴가도, 필자의 연애와 결혼도 이제부터라도 준비해 보자며 나름 기대하셨을 터인데, 졸업 전보다 나아진 것도 없이 나이만 먹어가는 자식을 보며 오죽 답답했을까.
연구직 박사로서의 숙명(?)과도 같은 이런 삶을 가족들에게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것도 필자의 몫이었다. 졸업 후에는 나름 부모님 댁에 정기적으로 다녀왔었는데, 당시 부모님은 필자의 얼굴만 보면 한숨을 절로 내뱉으셨다. 한 때는 우리 집에 박사가 나왔다고 기뻐하셨었는데, 그 근래에는 ‘발에 채이는 게 석사고 개나 소나 하는 게 박사네…”라며 별소리를 다 하셨다. (이 정도면 45만 원짜리 앨범은 역시나 찍으면 안 됐던 것 같다^_^;;)
안 그래도 힘든데 정말 괴로웠다. 그리고 필자만 겪는 문제도 아니었는지 주변에서도 다들 난리였다. 박사들끼리 모이면 가족들이 스트레스를 준다며 그렇게 한탄을 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박사는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 아니다. 그리고 연구직 박사는 그리 안정적이지도 않다. 상당수가 계약직이다. 젊고 능력 있는 PI를 만나면 어떻게든 그분의 정년까지 함께할 수 있지만, 어쨌거나 사정이 좋지 않으면 잘리기 십상이다.
이런 미래가 불 보듯 뻔해서였을까? 필자는 언젠가 갑자기 충동적으로 주식을 시작했다. 가만 보니 월급만 가지고는 수도권에 전셋집도 못 얻을 듯하고, 이래저래 재테크는 언젠가 반드시 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학생이라 seed가 많지는 않았으나 오히려 좋았다. 부담이 없고, 혹시 잘못되더라도 치명적이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필자는 주식을 시작했고, 주식 외에도 갖가지 트렌디한 투자를 시도했다. 그렇게 안 하느니만 못한 투자는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고… 슬프게도 필자는 돈을 never ever 벌어본 적이 없다 😂. (빚 없는 것이 다행이다)
속은 쓰리겠지만, 돈을 잃게 되더라도 필자는 반드시 재테크를 경험해봐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를 적극 권장한다. 물론 빚을 내서 투자하라는 것이 아니다. 부담 없는 선에서 즉, 남은 생활비 또는 용돈으로라도 조금씩 재테크를 경험해야 늦은 나이에 사회로 나가더라도 뒤처지지 않을 수 있다. ‘나는 절대 주식 같은 것은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시는 분들에게는 이율 좋은 적금이라도 정기적으로 들라고 조언하고 싶다. 부디 대학원생 임금을 흥청망청 쓰지 말고, 미래를 위해 조금은 저금을 해 두시길 바란다. (포닥의 월급은 적기 때문에..)
앞에 나열한 이런저런 이유로 졸업 이후에는 Stable 한 직업을 갖는 것이 간절해졌다. 더 이상 연구비 때문에 월급 깎일 걱정도, 논문이 아니라 제안서를 쓰느라 밤새는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연차 수당은 바라지도 않고, 연차를 제대로 쓸 수 있기만 해도 좋을 것 같았다. 실제로 필자는 졸업 이후였음에도 휴가를 못 간 적이 더러 있었다. 일이 바빠서 나 좋자고 안 간 부분도 있었지만, 은근히 일하라고 압박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사회인임에도 최소한의 복지도 보장받지 못하는 이런 부분이 필자를 괴롭게 했지만 Boss에게 당당하게 휴가를 달라고 하기도, 월급이 너무 적어 곤란하다고 말씀드리는 것도 하지 못했다. 필자의 고충을 굳이 미주알고주알 읊지 않아도 알아주실 거라 생각하며 참았고, 휴가도 반납하고 일하면 기특하게 생각해 주실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말을 안 하면? 절대 모른다. Boss와의 소통은 굉장히 중요하다. 전략적으로 Boss에게 임금에 대한 부분 혹은 처우에 대한 불만을 어필하는 것이 필요하다. 열심히 일해라 그리고 일한 만큼 당당하게 reward를 요구해라. 그럼에도 자신의 노력과 가치를 알아주지 못하는 Boss가 있다면, 과감하게 그를 떠나라!
AI tool을 이용하여 생성한 이미지
: Ph.D.의 가치는 내가 만들기 나름이다.
박사 학위에 가치를 매길 수 있다면 얼마쯤 될까?
졸업 후 박사 학위 논문 양장본 한 부를 부모님 댁에 가지고 간 적이 있었다. 양장본 제본에 돈이 많이 들었다며 투덜대고 있는 필자에게, 부모님은 '이 논문은 값을 매길 수 없는 것'이라며 그런 하드커버 제본비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하셨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 박사 학위를 받기까지 수년의 시간, 그리고 필자가 쏟은 열정과 노력, 부모님과 주변 지인들의 지원, 지도교수님과 연구실 동료들의 헌신 그리고 과제 또는 학교에서 지급받은 각종 장학금과 인건비, 이 모든 것들의 가치를 금액으로 환산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만큼 박사 학위를 받은, 혹은 받게 될 분들은, 본인의 노력 외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학위를 할 수 있었던 것임을 알길 바란다.
모든 박사는 각자 연구 주제가 다르다. 각자 어느 한 분야에 대한 학문적 성과를 발표하고 이를 통해 학위를 수여받게 된다. 돈을 많이 벌지 못하더라도, 사회적 지위나 안정성이 없는 job에 종사하게 되더라도 부디 자신이 가진 박사 학위에 자부심을 갖길 바라며, 박사 학위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길 바란다. 열심히 일하는 박사는 어디에서나 valuable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