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염원하던 박사 학위를 얻었지만, 필자의 기쁨은 찰나였다. 졸업 준비 때문에 그동안 멀리했던 가족 친지들과의 만남도 소화했어야 했으며, 밤을 너무 많이 새운 탓에 쇠약해진 몸뚱이를 단련해야 했다. 그리고 결혼 적령기의 성인이었으므로 잠시 접어두었던 연애 사업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 학생 때는 학생이라서, 졸업하니 애매한 사회적 포지션 때문에 난감한 일들이 많았다. 이런 것들이 모두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이제 졸업했으니 일반인(?)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압박감이 대단했다.
그것뿐만 아니라 졸업 직후에는 별의별 생각이 들었다. 교수님께서는 경력단절이 되지 않도록 졸업 후의 제자들을 품어(?) 주셨지만, 우리에게 딱히 선택권이 주어졌던 것은 아니었다….^^ 애매한 능력의 애매한 fresh 박사였던 필자는 그렇게 연구실에 남아있게 됐다. 이상하게도 졸업과 동시에, 행여나 내가 연구실에서 존경받는 박사님 또는 드디어 졸업한 부러운 선배가 아니라, 퇴물(?) 취급을 받는 건 아닌지 두려움이 생겼다. 그렇게 졸업의 기쁨은 사라지고, 이상한 부담감만 생겨나기 시작했다.
졸업 후 얼마 뒤에는 연구실에 폐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며칠간 몰래 교수연구실을 청소하기도 했다. 내가 박사가 맞나? 박사 학위를 받을 자격이 있는 게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마음의 불안감을 열심히 일하며 잠재웠다. 하필(?) 당시 필자의 졸업 때문에 미뤄졌던 side work이 있었는데 졸업했으니 그것에 집중하여 마무리해야 했다. 그렇게 자연스럽고도 당연하게 졸업 심사 그다음 주부터 필자는 또다시 숱한 밤을 새야 했다(이제 와 보니 이런 미련할 정도의 책임감은 거의 병이다) 그 일을 끝내느라 한 해에 한 번 받는 휴가도 반납했다. 엿들은 거였지만, 분명 직전에 졸업한 선배에게는 졸업하느라 고생했으니 좀 쉬어야지 않겠냐며 물으셨었는데, 필자에겐 묻지 않으셨다. (…..눈물)
오기로라도 휴가를 가지 말까 헸지만, 그 전년도에도 자의 반 타의 반 휴가를 안 갔으니 분명 refresh가 필요했다. 열심히 일하고, 다 끝낸 뒤 연말이 되어서야 조심스럽게 휴가 이야기를 꺼냈다. 그마저도 가족 핑계를 대야 했다. 교수님께선 ‘과제 보고서도 써야 하고, 제안서도 써야 하는데….’라며 말끝을 흐리셨지만 돌아오는 날을 체크해 두시고는 갔다 오라고 하셨다. 야근은 물론이고 주말에도 나와서 열심히 했는데… 일주일 남짓한 휴가(라고 쓰고 ‘휴식’이라고 읽겠다)를 가겠다고 허락을 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니… 그것이 몇 번 지속되자 필자에게도 극심한 슬럼프가 찾아왔다.
슬럼프는 슬럼프고 이제는 필자 본인의 인건비를 충당하기 위해, PI로서 수행할 연구과제의 제안서와 예산을 짜야했다. 연구실에 평생 있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있는 동안에는 밥값 정도는 해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감이 있었다. 다행히도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제안서를 수월하게 썼으며, 큰 어려움 없이 과제에 선정되었다. 그렇게 국책과제를 수행하게 되었지만, 연구실에서 필자의 입지는 여전히 애매했다. 학생도 박사도 아닌 참으로 애매모호한 포지션이었다. 박사였지만 후배들에겐 여전히 그냥 선배였고, 교수님에겐 여전히 그냥 제자였다. 졸업만 했다 뿐이지 내외적으로 나아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늘어난 것은 책임질 일들 뿐.
AI tool을 이용하여 생성한 이미지
: 졸업하면 끝인 줄 알았는데(?)
박사니까 필자 본인의 인건비를 자급자족 해야 한다는 부담감. 그리고 더 이상 학생이 아니니 모든 면에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 그러한 것들 때문에 대학원 생활을 할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부모님은 언제 사회로 나가느냐고 타박하셨으며, 친구들은 졸업했는데도 여전히 밤을 새우냐며, 월급은 많이 주느냐고 궁금해했다. 졸업은 했지만, 여전히 임금은 적었고, 워라밸도 없었다. 그나마 근로계약서에 적힌 대로의 연차라도 받았으면 좋았으련만… 사실상 큰 의미 없는 근로계약서였다. 토요일 근무일에 결혼식을 가야 한다며 다녀오겠다고 말씀을 드릴 때면, 은근히 눈치를 주셨다. 실제로 토요일 랩미팅 때문에 친한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한 적도 있었는데 아직도 그 친구를 만나면 가지 못했던 그날의 에피소드를 늘어놓곤 한다. 그러한 근무환경은 필자의 사회적 정체성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때 이런 괴로움을 필자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 털어놓곤 했는데, 그때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필자야 왕관의 무게를 견뎌”
박사 학위가 왕관은커녕 그 무엇도 아니지만, 내가 선택한 길, 내가 선택한 삶이었다. 지인들에게, ‘연구실에 복지가 없고, 교수님이 너무 일을 많이 시키신다’라고 투덜댈 때면 결국 그만두라는 조언이 돌아왔다. 그렇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때는 그만둘 생각도 하지 못했다. 졸업하고 박사 학위를 받았음에도 아직 무얼 하고 싶은지 마음의 결정을 하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당장 눈앞에 있는 연구 핑계를 대며 취업도, 연애도, 자기 계발도 소홀히 했던 시절이었다. 지금 대학원생 후배들은 나름 자신의 미래를 계획적으로 잘 설계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혹시라도 아직 필자와 같은 고민을 하는 분들이 있다면 졸업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충분히 고민해 보시길 바란다.
졸업만이 전부가 아니다. 졸업 이후에는 또 다른 많은 시련(?)이 기다리고 있다. 대비하지 않는다면 필자처럼 허송세월을 보낼 수도 있고, 연구에 질린 나머지 원치 않았던 진로를 선택하게 될 수도, 결혼 후 경력단절의 삶을 보낼 수도 있다. 연구를 계속하고 싶은 분들에게는 더더욱 특정 분야의 스페셜리스트가 되기 위한 자신만의 테크닉을 개발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세상에 박사는 많다.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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