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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종합
[해외 연구실 생존기] 겸손과 경외, 모두를 존중하고 모두에게 너그러워지는 것
Bio통신원(미윤)
“미윤 씨는 박사 과정 중에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해요? 갑자기 나도 궁금하네.”
선배 연구자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생기면 나는 박사 과정 중 가장 중요한 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묻곤 한다. 보통은 이런저런 다양한 답변을 받게 되는데, 내가 오히려 이 질문을 되돌려 받으니 다소 당황스러웠다. 이제껏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기만 해왔지 나 스스로는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 고민해 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생각하기에 중요한 점은 세 가지가 있는 것 같았다. 첫 번째는 질투와 비교하는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 (나는 딱히 잘하고 있진 않은데, 질문을 던진 교수님 역시 본인도 매분 매초 남과 비교하면서 고통받고 있다며, 비교를 안 할 수 있는 방법을 당최 모르겠으니 혹시라도 내가 비법을 깨우치게 된다면 알려달라고 하셨다.) 두 번째는 무력감을 잘 견디고 다스리는 것 (다음 연재). 마지막은 이번 글에서 다루게 될 존중하는 마음이다.
연구실 생활은 여러 사람과의 협력이 필연적인 환경이다. 내 프로젝트라고 해서 온전히 내 것이 아니다. 하나의 프로젝트는 연구책임자인 교수와 실무자인 박사학생이 평균적으로 6년 동안 우려내고, 그 사이사이 1년씩 여러 명의 석사학생들이 프로젝트의 부분 부분을 맡아 돕는 공동작업물이다. 손이 많으니 갈등도 흔하다. 석사학생들과 처음 함께 일하게 되었을 때 힘든 순간이 참 많았다. 내가 하면 금방 끝날 것 같이 보이는 일들이 빨리빨리 진행이 되지 않는 것 같아서 속이 상했다. 나는 가르치고 학생은 배우며 해야 해서, 혹은 학생이 일을 하는 스타일이 나랑 다소 맞지 않을 경우 – 그냥 퇴근 시간 조금 늦추고 아주 조금만 더 하면 오늘 끝낼 수 있는데, 혹은 주말에 몇 시간 좀 더 나와서 일하면 끝내 버릴 수 있는 일을 미루는 게 답답하지도 않은지? – 스스로 조급해지고 화가 났다. 그러다 한 번은 석사학생이 실험을 크게 망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샘플은 매우 중요한 샘플이었고, 믿었기에 더 화가 났고, 게다가 그날은 석사학생의 잘못으로 포닥 선생님께 내가 대신 혼난 날이었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지적받은 내용은 그 전날 석사학생이 공동으로 쓰는 실험 기기를 쓰고 나서 뒷정리를 깔끔하게 하지 않은 채로 퇴근했다는 것이었다. 속이 상한 나는 지도교수님과의 면담에서 이 모든 상황을 최대한 부드럽게 돌려서 전달했는데, 찬찬히 내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듣던 교수님은 생각해 볼 만한 조언을 하나 해 주셨다.
교수님은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을 판단할 권리는 없다고 했다. 사람들은 각자 다른 삶의 목표가 있다. 나는 대학원 생활을 통해서 박사학위를 받고, 포닥이 되어 나중에는 어딘가에서 연구책임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며 연구에 전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박사학생은 (특히 요즘에는 매우 많은 수가) 학계에 남기보다는 회사에 취업하고 싶을 수 있다. 어떤 석사학생은 박사과정에 진학하고자 더 열심히 연구실 생활을 할 수도 있지만 또 어떤 석사학생은 이 과정을 얼른 마치고 회사에 취직하는 것이 더 중요한 목표일 수 있다. 그중 어떤 학생은 비싼 학비와 생활비를 감당하기 위해 파트타임을 해야 할 수도 있고. 지금 나와 일하는 석사학생도 수업과 연구실 이외의 많은 시간을 교내 파트타임에 할애하고 있다는 것을 나도 이미 알고 있지 않냐고 교수님은 내게 물었다. 학교 셔틀버스를 시간 맞춰서 타야지만 파트타임에 늦지 않을 수 있었고, 그래서 이번 딱 한 번 급하게 셔틀 시간에 맞춰서 제대로 뒷정리를 하지 못한 채 퇴근해야만 하진 않았는지 생각해 본 적은 없는지도. 어떤 학생은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것이 부끄러워서, 혹은 굳이 사정을 이야기하지 않는 학생도 있을 수 있고, 아니면 또 다른 어떤 개인적인 문제(건강 혹은 가족 등)로 고민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누군가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얼마나 충실히 살아가고 있는지 우리는 전혀 알 수 없다고, 그러니 내가 보는 다른 사람의 일부만 가지고 그의 삶이 어떤지를 판단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리고 교수님은 마지막으로, 본인도 지금은 이렇게 이야기하고는 있지만 자신도 박사과정 중에 똑같은 이유로 똑같이 분노에 차서 지도교수를 찾아간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니 누구나 겪는 감정이라고,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그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알게 될 거라고. 그러니 마음을 너그럽게 가지고, 이해하고, 판단하지 말고, 결론적으로는 남 생각 하지 말고 본인의 일에만 집중하라고 했다. 크게 부끄러워진 나는 교수님께 내가 완벽하지 못하고 부족한 점이 많아 죄송하다고 말씀드렸고, 교수님은 “네가 왜 완벽하지 않아? 모든 학생은 그 자체로 완벽해. 그리고 나는 항상 이 믿음을 가지고 모든 학생들을 가르친다”라고 했다.
(우리 완벽한 각자가 모여 완벽한 세계를 만듭니다, 사진 출처: Pixabay, shelley_shang)
누군가가 나를 너그럽게 봐주었으면 하고 바랄 때가 많다. 분명 최선을 다해서 하고 있는데 능력이 부족해서,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해서, 혹은 생각하지 못한 어떤 상황으로 인해서 해야 할 일을 완벽하게 해내지 못했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성을 다 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내 동료이자 상급자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나는 일전에 학회에 갔다가 나와 똑같은 연구 아이템과 방법론을 들고 나온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는데 – 우리 두 불쌍한 박사학생들은 서로의 앞에서 사시나무 떨 듯 벌벌 떨었다 – 사흘간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새벽에는 그나마 먹은 걸 다 게워내다 보니 당연히 랩미팅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 학회에 다녀온 내용을 정리해서 발표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허연 바탕에 이미지는 하나 없이 검은 텍스트로만 가득 찬 너저분한 슬라이드를 발표랍시고 했었다. 부족한 준비에 분명 한 소리를 듣겠거니 각오했지만 교수님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 문득 내가 교수님께 왜 그때 엉망인 발표를 지적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교수님은 내가 열심히 하는 학생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니까, 굳이 자신이 지적하지 않더라도 스스로가 부족함을 이미 너무 잘 알고 있었을 거라고, 안 그래도 부족한 발표와 겹치는 연구 주제로 정신건강의 이중고를 겪고 있을 내게 굳이 필요 없는 말을 얹지 않았을 뿐이라고 했다. 게다가 그런 상황에 있을 때 아예 발표를 포기하거나 미루는 학생도 있는데 나는 어찌 되었든 학회 내용을 정리하고, 맡은 발표를 피하지 않고 결국 다 해냈지 않냐며 그게 더 칭찬받을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상급자가 보기에 나는 항상 부족해 보일 것이다. 하지만 늘 그것을 지적받고, 노력하는 모습을 인정받지 못한 채 매번 평가만 당한다면 발전은 없거나 더딜 것이다. 나를 보는 누군가의 그 너그러운 마음이 내 발전에 가장 큰 도움을 주고 있었다.
포닥을 고용할 때 중요하게 보는 것들에 대해 물었을 때, 많은 수의 교수님들이 공통된 맥락의 답변을 주는 것 같았다. 학생이 박사과정 동안 얼마나 대단한 논문을 썼는지와 같은 논문 실적은 절대적인 요소가 아니다. 단지 right person이 right time에 right place에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즉, 박사과정 동안의 보여지는 실적은 학생 본인의 능력일 수도 있지만 운이 좋아 좋은 시기에 좋은 곳에 합류해서 좋은 사람들과 일하며 이뤄진 실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절대적인 실적을 가장 중시하는 연구책임자도 분명히 있고, 또한 연구책임자의 성향과 상관없이 후보자는 적당한 실적은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학생이 박사과정 동안 익힌 기술이 연구실의 연구 방향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fit”), 그리고 새로운 질문을 잘 찾아내서 그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한 방향을 잘 계획할 수 있으며, 그것을 얼마나 끈기 있게 밀고 나갈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더불어 혼자 이뤄낼 수 있는 연구는 없으므로 성격이 무던해서 연구실 내외의 다른 사람들과 잘 협력할 수 있는지도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결과적으로, 나의 성취는 결코 혼자 이뤄낸 것이 아니고 많은 멋진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며 운도 너무 좋았음을 항상 가슴에 새기고 겸손해야 한다.
내가 하는 일은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에 비해 특별히 우월한 게 절대 아니다. 똑같이, 다른 사람이 하는 일도 나를 하찮고 슬프게 만들어야 할 정도로 대단하진 않다. 누구나 가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 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너그러워야만 나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이제 천천히 깨닫고 있다. 누구든 존중을 받을 가치가 있다. 무엇보다 내가 존중을 받고 싶고, 잠시 어려워도 숨을 고를 수 있는 너그러운 기회를 받고 싶다면. 그 곳에서부터 우리는 힘들어도 다시 일어서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사람은 모두가 그 자체로 완벽하다. 이 완벽하고도 아름다운 개체로서의 사람들과 매시간 함께하고 있는 이 삶은 따라서 경이롭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경외와 마주쳤을 때, 나는 보다 더 겸손한 사람이 되고 싶고, 자연과 사람을 존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경이로운 사람과 자연 – 그러니 인생은 좋은 것, 사진: 직접 촬영)
별 탈 없는 일요일 저녁을 보내며, 지난 금요일 오후 로테이션 학생의 실험 결과를 확인했던 것을 떠올려 본다. 세 번의 반복실험 모두 결과가 매우 좋지 않았다. 하지만 괜찮았다. 다음 주에 다시 같이 해보면 되니까. 아무래도 의심스러운 단계들이 몇 있으니 다음 주에는 내가 옆에서 하나하나 체크해 주겠다고 했다. 나 역시 모든 실험을 망칠 때가 정말 많은 걸. 옆에서 이렇게 응원하고 도움을 주는 사람이 없었다면 내가 이때까지 잘 해낼 수 없었다는 걸,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없다면 앞으로도 잘할 수 없다는 걸 이제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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