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포닥의 삶 – 진로 선택 연구 주제 선정, 전반적인 생활 및 고민” 관련 연재를 맡게 된 김포닥파닥 입니다. 현재 미국의 어느 대학교에서 포닥 생활을 1년 좀 넘게 하고 있는데요. 제가 꿈꿨던 미국 포닥 생활을 이렇게 기록으로 남길 수 있고, 다른 해외포닥을 꿈꾸시는 분들께 작게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이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막연하게 내 돈으로 미국 유학을 가보자!라고 생각을 했고, 생명과학을 좋아했던 저는 자연스레 해외 포닥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현재 제가 꿈꿔왔던 미국에 포닥으로써 자리를 잡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 커리어를 쌓고 있는 가여운 비정규직 그리고 언제 계약이 해지될지 모르는 슬픈 계약직 연구원이지만 꿈을 이루고 있다는 생각에 하루하루 행복하고 긍정적으로 지내려고 합니다. 이 연재를 통해서 제가 어떻게 이 분야를 결정하게 되었고, 앞으로 어떤 연구를 하고 싶은지 그리고 좀 더 가볍게 미국 포닥 생활은 어떤지에 대해서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이번 연재에서는 제가 어떻게 현재 PI 연구실에 포닥을 오게 됐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때는 바야흐로 대학원시절, 박사학위를 하던 연구실에서 도저히 언제쯤 본심사를 볼 것인지 감히 지도교수님한테 이야기를 꺼내기가 애매하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당시 지도교수님께서는 제 마지막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저널에 투고할 시기가 정해졌을 때쯤 본심사를 보고 졸업하기를 원하셨었습니다. 그리고 그 프로젝트는 거의 끝날 기미가 보였고, 대충 다 다음 학기에 본심을 보면 어떨까라고 이야기가 나왔었죠. 하지만, 운이 좋게도? 나쁘게도? 제 연구 주제는 파면 팔수록 재밌는 결과가 나오고 있었고, 교수님께서는 제 결과를 더 확장하고 싶어 하셨기에 그렇게 제 졸업은 기약과 끝이 없이 미뤄져만 가고 있었습니다. 물론 마지막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하고 졸업을 멋지게 하고 싶긴 했습니다만, 그러다가는 대학원에서 생을 마감할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습니다. 당장 마무리는 못하더라도 원래 나의 꿈이었던 미국에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조금이나마 에너지가 많을 때) 나가자!라는 생각에 본 심사 날짜가 정해지기도 전부터 미국 포닥 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주변에서 익히 들어서 알고 있다시피, 10개 지원해서 1개 답장만 와도 양반이라는 말은 사실이었고, 탈락의 고배를 마시기가 부지기수였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뒤, 어느 날 연구실 선배께서 해외 학회를 다녀왔는데, 돌아와서 저에게 아주 귀중한 정보를 알려주었습니다.
“김포닥파닥이 좋아할 만한 연구를 하시는 분이 내년 초부터 미국 XX대학에 교수로 부임했다네. 그리고 포닥을 뽑는다더군! 한번 이메일 보내봐도 좋을 것 같은데?”
그 이야기를 듣고, 그 교수님의 연구 내용들을 찾아봤습니다. 정말 제가 하고 싶은 연구를 그것도 아주 재미있는 방식으로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제 CV와 함께 교수님께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바로 다음 날 답장이 왔고, “너의 CV를 보아하니, 너는 내가 하려는 연구에 정말 적합한 사람이군! 날짜를 잡고 줌으로 인터뷰를 한번 하자고!”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너무나 벅찬 마음에 얼른 날짜를 잡고, 인터뷰를 준비하였습니다. 지도교수님 몰래 인터뷰하는 것이라 마음 한편이 불안했지만, 그래도 잡은 기회를 놓칠 수 없었기 때문에 일과 시간 이후에 짬을 내서 열심히 인터뷰 준비를 하였습니다. 인터뷰를 아주 만족스럽게 마친 뒤, 미국 교수님께서 저에게 언제쯤 졸업을 하고, 언제부터 포닥으로 일을 시작할 수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저는 지도교수님과 상의하고 알려준다고 했습니다.
다음 날 긴장되는 마음으로 지도교수님께 이런저런 상황을 전부 말씀을 드렸습니다. 교수님께서 처음에 살짝 당황하시긴 하셨는데, 한참 고민하시더니 그렇다면 다음다음 학기에 바로 본심을 보고 미국에 가라는 결정을 내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준비 중인 논문은 아직 갈 길이 머니 미국에 있는 동안 마무리하자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본심을 신청하고, 무사히 통과한 뒤에 졸업식 전날까지 논문 작업과 출국 준비를 하였습니다. 미국 교수님께서는 가능한 한 빨리 합류하기를 원하셨기에 저는 본심사가 끝나자마자 미국에 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아들을 박사까지 키워주신 부모님께 박사학위 모자와 가운은 씌워드려야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 졸업식 바로 다음 날로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습니다.
학사 졸업식 때는 사실 별로 감흥이 없었습니다. 졸업식도 남의 졸업식 같고, 별로 와닿지 않았었는데요, 이상하게도 박사 졸업식 때만큼은 기분이 정말 이상했습니다. 온갖 희로애락을 겪은 기나긴 대학원 생활들이 후루룩 지나가는 느낌과 함께 후련하면서도 서운한 감정들이 소용돌이쳤습니다. 그리고 당장 다음 날 출국이라는 사실은 믿어지지가 않았고요. 졸업식이 끝나고, 부모님과 헤어질 때 절대 울지 않으실 것 같던 어머니께서 펑펑 우시는 모습을 보고 꼭 안아드린 뒤 “왜 울어~ 나 금방 올게.” 하면서 저도 함께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아들이 벌써 보고 싶고 아쉬우셨나 봅니다. 그렇게 저는 다음 날 새벽 비행기로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향했습니다.
보통 인천공항에 도착하면 늘 여행에 대한 설렘으로 부풀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날은 비행기에 앉아서도 미국 공항에 내려서도 사실 이상하게 별 감흥이 안 났습니다. 하다못해 해외여행을 가거나 해외 학회를 갈 때도 항상 설레었었는데, 이상하게도 설레기는커녕 뭔가 먹먹하고 막연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급하고 정신없이 출국했고, 당장 닥쳐올 나날들이 감히 상상되지 않고 막연히 두려운 나머지 설렘이란 감정을 여행 가방 깊숙이 꼭꼭 숨겨놓은 것만 같았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다음 날 미국 교수님과 첫 만남을 가졌고, 1주일 뒤부터 미국 포닥으로 첫 근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연재를 쓰면서 첫 1주일은 어땠고, 처음 본 교수님의 인상은 어땠는지, 그리고 연구실 시설은 어땠는지 등등에 대해서 다뤄볼 예정입니다. 또한, 연구실 밖에서의 미국 생활은 어떤 지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아직 저는 미국에 온 지 1년 조금 넘은 초짜 포닥입니다. 그리고 혹여나 누군가는 지금이 제일 중요한 시기인데, 연구에 집중하지, 이런 글 쓸 시간이 어디 있니?라고 뭐라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나중에 돌이켜보면, 이 시기는 제게 있어 꿈을 이뤄가는 순간이고,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고 행복하게 살았던 날들일 텐데, 그것을 기록한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 아닐까요? 이렇게 좋은 기회로 이 시기를 기록으로 남길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 재밌고 다양한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