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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연구실 실전편] 15. 교수님과 함께 쓰는 논문 - 파트는 나누면 금방 끝나요
Bio통신원(송유라)
벨기에와 다른 유럽 국가에서 일하는 연구자들과 이야기해 보면, 우리 교수님이 여러모로 독특한 분이라는 생각이 자주 들곤 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독특함은 어떻게 보면 비상함이라고 해석을 해야 할 수도 있고, 그 독특한 면을 통해 교수님에게 배울 점이 생각 이상으로 많다. 아마 앞으로 이 부분들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하게 될 것 같은데, 최근에 논문 투고와 관련된 부분에서 꽤 감탄할 만한 면이 있었던 터라 이 이야기를 먼저 가지고 왔다.
내가 속한 연구실은 유럽 내에서도 규모가 상당히 큰 편으로, 테크니션과 장비 매니저, 매년 새로 오는 석사생들까지 포함해 40명 이상의 인원이 함께 일하고 있다. 오죽하면 학교에서 우리 연구실을 위해 건물 한 층을 통으로 내어줘야 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다시 말해 연구실에서 진행되는 연구가 많다는 건데, 교수님은 이 프로젝트 각각이 어디까지 진행되었고 논문으로 갈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 파악을 다 하고 계신다는 거다. 그리고 실제로 논문을 쓰기 위한 준비가 시작되면, 교수님도 논문을 같이 쓰기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교수님은 논문을 쓸 때가 되면 꼭 같이 논문을 쓴다. 단순히 말로만 이래라저래라 하고 그치는 게 아니라, 논문의 개괄부터 작성까지 함께 한다. 주로 교수님은 품이 많이 들어가는 디스커션과 서론 작성을 주로 하는데, 필요한 참고문헌도 교수님이 찾아 둘 때가 더 많다. 심지어 논문을 쓰는 기간 중에는 교수님과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미팅을 여러 차례 하는 것은 물론, 필요하다면 같이 늦은 시간까지 연구실에 남아 작업을 함께 한다. 그렇지 못하는 경우, 중간중간 통화를 하며 진행 상황 체크는 물론 급하게 해야 할 일들에 대한 판단을 같이 하곤 한다. 업무 시간 중에는 해당 논문의 1저자를 불러 옆에 앉혀 놓는데, 짧게는 반나절부터 길게는 하루 종일 같이 프로젝트에 사용한 데이터들과 논문에 들어갈 최종 결과물들을 놓고 논문을 같이 쓴다. 누군가는 이게 너무 부담스럽지 않냐고 묻지만, 솔직히 이 방법이 생각 외로 괜찮은 결론을 가지고 올 때가 많다는 걸 올 해 두 편의 논문 투고와 한 편의 리비전을 해치우면서 깨닫게 됐다.
우리가 하고 있던 일이 스쿱을 당하게 생겼다는 걸 교수님이 인지한 게 5월 초순이었다. 문제라면 벨기에는 5월에 공휴일이 제일 많고, 그렇다 보니 초등학교와 고등학교(여기는 따로 중학교가 없이 고등학교가 6년 제다)도 그 시점에 부활절 봄방학이 끼어 있게 된다. 10대 아들 둘을 키우고 있는 교수님은 이 시점에 꼭 휴가를 내고 어딘가 가곤 하시는데, 가족과 함께하는 휴가 기간에는 메일함도 자동 응답기를 돌려놓고, 일과 관련된 메시지도 확인을 안 하시곤 한다. 그런 교수님이 갑자기 휴가 한중간에 전화가 와서 5분 내로 온라인 미팅을 하자고 하셨고, 같이 일하는 포닥 C와 나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미팅 링크를 열자마자 안부를 물을 새도 없었다. 교수님은 긴박하게 우리의 프로젝트가 당장 논문으로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로 미팅을 시작했다. 상황을 듣자 하니 Nature Genetics에서 리뷰 요청이 들어왔다는 것이고, 제목을 보고 있으니 우리가 하고 있는 프로젝트와 매우 유사한 기작을 다룬 논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당연하게도 이 리뷰 요청은 거절했고, 우리도 비슷한 주제가 있는데 한 번 백투백이나 플래그십을 만들어보는 게 어떻냐고 에디터와 이야기를 했다는 업데이트를 해 주셨다. 다행이라면 에디터가 상당히 이 제안에 호의적이었다는 것이지만, C와 나는 둘 다 ‘와 이제 우리는 4년을 날리게 생겼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우리의 넋 나간 표정을 본 교수님은 정신을 차리라며 우리의 이름을 부르고는, 일반적이지 않은 제안을 하나 하셨다.
일주일 만에 논문을 완성해 보자. 미친 소리인 거 잘 알고, 말 같지도 않은 이상한 소리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 셋이 같이 논문을 쓰면 안 될 것도 없다고 본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고, 갑자기 없던 논문을 만들라 해서 미안한데, 이번에는 조금씩 셋 다 고생 좀 하자.
나는 휴가 중이지만, 남은 일정을 포기하면 된다. 그리고 지금부터 역할을 나누자. C는 실험을, 유라는 분석 결과를 논문으로 적어서 오늘 저녁 중으로 나에게 보내주면 된다. 그리고 오늘 중으로 방법론도 정리를 해라. 그러면 나는 이걸 교정을 보고, 오늘 밤 중으로 다시 주겠다. 내일은 그러면 내가 서론과 디스커션을 완성할 테니, 그 사이에 유라는 논문 결과를 보고 논문에 들어갈 피겨를 만들면 된다. C는 내가 이 논문을 내일 중으로 전해주면, 참고문헌을 논문사에서 요구하는 양식에 맞춰 붙이는 걸로 하자. 그리고 모레에는 피겨 최종 수정을 하고, 논문을 우리 셋이서 교정 보면 3일 만에 논문을 완성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게 다 끝나면 내가 공동연구팀에 연락을 해서 최대한 빠르게 피드백을 받고, 일주일 만에 논문을 내면 된다.
이 말을 듣고, 이 사람이 진짜 휴가지에서 벼락이라도 맞고 어딘가 돌아버린 걸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계속할 수도, 이 상황을 더 이상 회피할 방법도 없다는 게 현실이었다. C와 나는 한숨을 쉴 새도 없이, 딱 죽었다 생각하고 일주일만 고생해 보기로 했다. 약속한 대로 우리는 결과를 정리해서 보냈고, 교수님은 약속한 대로 저녁 열 시쯤 해서 메일로 회신을 보내주셨다. 그 뒤로 도대체 일주일을 어떻게 보냈는 지도 모른다. 세 명 모두 원래 있었던 주말과 휴가 계획을 다 반납하고 눈 가린 새처럼 앞만 보고 달렸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는 일주일 만에 논문을 만들어 투고까지 하는 미친 레이스를 완주했고, 이 글이 올라가는 시점인 지금은 마이너 리비전을 하고 있다.
정말 이상적인 조별 과제를 벨기에에서, 그것도 나의 지도교수와 논문을 쓰면서 하고 있다는 생각을 꽤 자주 한다. 논문 파트는 나누면 금방 끝나고, 고통도 나누면 정도는 모르겠지만 기간은 짧아지는 게 맞다고 본다. 물론 당장 내일 또 논문 피겨를 뽑아 교수님 오피스에 갈 생각을 하면 또 이게 아닌가 싶긴 하지만 말이다.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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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 같을 줄만 알았던 벨기에 연구실 생활. 학생 신분으로 모든 걸 누리던 때는 좋았겠지만, 더 이상은 아니라면? 연구실 안에서는 박사 수료 후 디펜스만 남겨 둔 연구원으로, 기관 밖에서는 비유럽권 노동자로 살아남는 것 자체가 미션이라는 것을 매콤하게 깨닫고 있다. 사탕 같지만 실제론 도저히 넘길 수 없는 맛을 가진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간식인 dropjes 같은 이 생활. 해외 연구실 생활의 로망에 예방 주사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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