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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와 연구행정가의 효과적인 소통 방법] <6회> 카톡
Bio통신원(바이오행정가)
ⓒ Fathema Khanom 제작 아이콘
신임 팀장으로 발령받자마자, 나는 무려 다섯 개의 업무 관련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이하 단톡방)에 초대된다. 단톡방의 주요 발언자는 직속 상급자인 연구자 A다. ‘지금 그 보고 사항은 바로 단톡방에 올려주세요’. 구두 보고를 한 사항도 직원들과의 신속한 내용 공유를 위해 단톡방에 업로드해야 한다. 단톡방을 이용하면, 직원들이 특정 사안을 동시에 빠르게 공유함으로써 정보 전달력을 높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의견도 교환할 수 있어 원활한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하지만 그가 내세운 장점은 그대로 단점이 되곤 한다. 보고 체계를 통해 순차적으로 보고가 이루어짐으로써 완성도를 높여가야 할 사안이, 초반 설 익은 상태에서 그대로 노출, 공유됨으로써 구성원들 사이에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아직 최종 결정 전임에도 불구하고) 아니, 직원 의견 수렴도 없이 누가 이런 의사 결정을 했지?’, ‘현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방안이로군’. 비록 비대면의 온라인 공간이라 할지라도, 대면 공간과 맞먹는 민감도를 가진 단톡방에서는, 공개적으로 의견을 피력하는 일에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하릴없이 다수는 침묵을 하고, 입을 열어야 할 책임이 있는 자와 권력을 지닌 소수만이 발언을 하게 된다. 으레 업무하달의 모양새가 되기 십상이다. 단점은 더 이어진다.
카톡은 시도 때도 없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온다. 알림 소리와 진동을 꺼 놓더라도, 카톡이 오면 말풍선 표시가 핸드폰 화면 상단에 표시된다. 중요한 일을 하고 있을 때나 사적인 용무를 보고 있을 때에는, 잠시 그 표시를 무시하기도 하지만,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듯한 찜찜함이 계속 남아, 이내 표시를 내려 확인한다. 혹여 급한 일인지, 사적인 연락이 온 것인지, 공적인 업무 카톡인지 여부라도 알아야 안심이 된다. 잠시 핸드폰에 손가락을 갖다 대고, 위에서 아래로 살짝 내려 보며 시급성이 없는 것은 옆으로 날려버리면 되지만, 이것도 여러 번 하게 되면 육체적, 정신적 피로도가 상당히 높아진다.
요즘 같은 시대, 애당초 핸드폰을 놓고 다른 일에 집중하기란 쉽지가 않다. 퇴근 이후의 시간이나 주말, 휴일의 소중한 시간도 침해 당하기 일쑤다. 연구자 A는 늦게 출근하여 늦게 퇴근한다. 타인의 일반적인 업무시간 고려는 별로 없이, 저녁 늦은 시간 카톡을 보내는 경우가 잦다. 주말에 연락이 오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카톡이 없던 시절, 다수로 확장되기 전 소수의 심도 있는 논의를, 빠른 속도보다는 느린 성숙을, 동시 공유보다는 순차적 진행을, 수시 대화하기 전 적시 대화 하던 것을 한 번 쯤 돌아 볼 일이다.
업무 단톡방에서 꼭 업무 지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좋은 일에 대해 축하하는 다소 ‘어색한’ 풍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난이도 있는 업무의 성공적 추진 등을 치하하기 위해 상급자가 하급자인 부서원들의 수고를 묶어 칭찬하는, 축사에 가까운 톡은 그래도 가볍게 넘길 수 있다. 하지만 상급자 개인의 승진이나 포상에 대한 축하 톡은 그 무게가 다르다. 톡을 확인한 사람들은 침묵의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가는 오해받기 딱 좋은 처지가 되고 만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챈다.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이 없다 하더라도, 부지런히 댓글을 달아야 한다. 늦더라도 간단한 축하의 메시지 톡 잊지 않기. 물개박수와 같다.
추석 연휴, 편안한 쉼을 누리고 있는 저녁. 단톡방에 톡이 하나 뜬다. 이번에도 연구자 A다. 산책하다가 하늘에 뜬 유난히 밝고 둥근 보름달이 너무 멋져 보여서 사진을 찍어 보낸단다. 검은 하늘에 하얀 달. 감동보다는 달콤한 평온함이 깨져버린 아쉬움만 가득하다. 곧장 옆으로 날려버린다. 개인적인 인간관계로 묶여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가입된 사적인 단톡방도 예외는 아니다. 자신이 감동한 글은 다른 사람도 당연히 감동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카톡으로 그것을 전파하는 일을 인생의 사명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다. 매일 아침, ‘좋은 글’을 단톡방에 올린다. 그 방을 ‘나가기’ 할까, 하루에도 열 두번 더 고민한다. 감동과 사랑은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인사 발령이다. 연구자 B가 총괄하는 부서로 전보다. 연구자 B는 나의 근심하는 눈을 보고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역시 업무 단톡방을 하나 만들자고 말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필요에 따라, 단톡방은 하나 둘 늘어난다. 둘 보다는 셋 이서, 셋보다는 다섯 이서, 동시에 얘기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냐고 한다. 억지웃음으로 동의한다. 그래도 다행이다. 대부분 업무 시간에 톡이 온다.
수년 전 업무 협의차 담당 부처 공무원을 만나러 출장을 갔을 때의 일이다. 당연히 시간 절약을 위해 버스나 자동차 보다 빠른 KTX 기차를 이용한다. 목적지 역에 내리니, 왠지 높고 파란 가을 하늘이 아름답다. 잠시 감상하고 있노라니, 갑자기 슉하는 칼바람이 불어와 머리칼을 흩트리며 시샘을 한다.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쳐다본 핸드폰에는 어느샌가 불쑥 카톡 표시가 떠 있다. 심상치 않은 내용임을 확인한 나는, 서둘러 버스로 환승하여 청사로 향하는 내내 카톡으로, 이메일로 급히 업무를 처리한다.
사무실에 도착하여 안으로 들어서려는데, 벽면에 붙은 포스터 문구 하나가 눈길을 끈다. ‘카톡 업무 지시 금지’. 공무원 행동강령을 담은 홍보 포스터다. 그때까지 카톡으로 정신없이 업무를 보고 있던 나는 실소를 금치 못한다. 그간 내가 경험한 카톡 업무 지시는 기관 내 상급자 못지않게 감독기관인 주무부처의 공무원들로부터도 자주 받았었는데.... 탁 트인 사무실 공간에 빼곡히 자리를 잡고, 컴퓨터 자판을(아마도 핸드폰 카톡 자판도), 두드리며 무심히 일하고 있는 이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일상에서 목격한 이율배반의 진풍경이다.
바야흐로 인공지능, 빅데이터 시대, 연구소 공간 개편을 통해, 사용하지 않던 공간 하나를 새로운 분석실로 배정한다. 주인 없이, 오래 방치되어 있던 물건들을 치워야 하는 번잡스러운 일이 발생한다. 어디까지가 연구행정업무인가, 의문이지만,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 고 애써 스스로를 위로하며 과감히 팔을 걷어붙인다. 아무도 하지 않으려고 하는 일을 해내고 나니, 나름 보람되다. 새로운 분석실 책임자인 연구자 C는 깔끔하게 치워진 공간을 보고,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거듭 전한다. 저녁에 개인 카톡 하나가 온다. 카톡 선물하기_치킨세트교환권. 저녁에 삼겹살에 소주 한잔 하자 했으면 싫었을 것이다. 점심 한번 사겠다, 했으면 고민했을 것이다. 선물을 실물로 받았으면 좀 부끄러웠을 것이다.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주는 것 일뿐만 아니라, 업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없는 선물이므로 청탁금지법에도 위배됨이 없다. 뭘 이런 것까지.... 손사래를 침과 동시에 감사, 에 해당하는 댓글을 달고, 흐뭇한 마음으로 살며시 선물을 다운로드 한다. 카톡, 마음을 전하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도 있다.
“....그대들은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수는 있지만, 그대들의 생각까지 줄 수는 없습니다. 그들에겐 그들의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 참고
* p23, <예언자> 칼릴 지브란 지음, 정창영 옮김, 물병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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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분야 공공연구기관에서, 이십여 년 넘게, '연구 행정'을 업으로 삼고 있는 행정가입니다. 그간 좌충우돌 헤매며 연구자분들과 소통했던 과거를 반추하며, 연구자와 연구행정가의 다소 먼 심리적 거리는 무엇에 기인하며, 어떻게 하면 그 거리를 좁힐 수 있을지, 상생의 효과적인 소통 방법은 무엇일지, 에 대한 힌트가 될 수 있는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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