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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학술지의 탄생과 발전] 4. 실제 연구와 재구성된 연구
Bio통신원(전주홍)
과학학술지의 탄생과 발전: 연구와 논문의 의미 되짚어보기
네 번째 이야기: 실제 연구와 재구성된 연구
들어가면서
로버트 보일(Robert Boyle)은 실험 결과를 실제 일어난 그대로 충실히 기록해야 한다는 신념에 따라 항상 자신의 실험을 세세하게 설명했습니다. 그는 지나치게 상세한 설명에 대해 양해를 구하면서도, 다른 연구자들이 자신의 실험을 재현하고 새로운 발견을 더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했다고 밝혔습니다. 보일은 과학적 진보가 개인이 아닌 집단적 노력의 산물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실패한 실험 역시 반드시 보고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실제 그는 폭발이나 장비 고장과 같은 사례도 성공한 실험과 동일하게 주의를 기울여 기록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보일처럼 그렇게 세세하게 논문을 쓸 수 있을까요? 실험을 수행한 그대로,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충실히 작성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이 시선을 끌 수 있는 이유는 오늘날에는 논문을 그런 식으로 작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는 연구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려면 ‘실험하기(연구 수행)’뿐만 아니라 ‘논문 쓰기(연구 소통)’라는 별도의 역량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도 일찍이 ‘실험적 능력’과 ‘추론적 능력’ 사이의 긴밀한 동맹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1]. 결국 과학자에게 논문 쓰기는 문제를 규정하고 연구 결과를 재구성하는 능력, 즉 생각하는 힘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연구 결과의 재구성과 연구의 의미를 살펴보며 본 연재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2].
과학 논문은 조작인가?
1960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피터 메더워(Peter Medawar)는 1963년 〈The Listener and BBC Television Review〉에 “과학 논문은 조작인가(Is the scientific paper a fraud)?”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글을 실었습니다 [3]. 물론 노벨상까지 받은 메더워가 과학 논문이 실제로 사기이거나 위조라고 주장할 리는 없습니다. 그는 단지 반어적 표현을 통해 논문이 과학적 발견에 이르는 과정을 왜곡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즉 과학 논문은 철저히 재구성된 산물이기 때문에 실제 이루어진 연구 과정과 논문에 서술된 과정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보일의 ‘충실한 기록’과 메더워의 ‘재구성된 기록’이라는 견해는 매우 상반되는 듯 보입니다. 이러한 견해 차이는 과학 연구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중요한 질문을 제기합니다. 과연 지난 400년 동안 과학 연구의 본질이 크게 달라진 것일까요? 실제 연구 과정과 논문에 서술된 연구 과정은 어떻게 다르며, 그 차이는 언제,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오늘날의 연구 현장은 보일의 생각에 더 가까울까요, 아니면 메더워의 생각에 더 가까울까요? 두 과학자 중 누구의 생각이 더 생산적인 과학 연구에 적합할까요? 이처럼 두 과학자의 상반된 견해는 오늘날 과학자에게 과학 연구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실제 과학 연구는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과연 논문에 제시된 것처럼 치밀하고 논리적이며 명료한 흐름으로 진행될까요? 가설을 도출해서 실험적 확증에 이르기까지, 과학자들은 단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엄정한 과학적 발견을 이루는 것일까요? 1922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닐스 보어(Niels Bohr)는 “전문가란 굉장히 좁은 분야에서 가능한 온갖 실수를 전부 저지른 사람이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논문에서 비춰지는 빈틈없는 과학자의 탁월한 능력은 정말 실수를 반복하다 보면 누구나 기를 수 있는 것일까요?
몇몇 저명 과학자들이 남긴 발언은 엄격하고 체계적인 과학의 전형적인 이미지와 크게 대조됩니다 [4]. 1921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나에게는 직감, 직관, 심상이 먼저 나타난다. 말이나 숫자는 이것의 표현 수단에 불과하다. 과학자는 공식으로 사고하지 않는다”라고 밝혔습니다. 1956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 시릴 힌셜우드(Cyril Hinshelwood)는 “과학이란 무수히 많고 흥미롭지 않은 사실들의 단순한 수집이 아니라, 이 사실들을 만족스러운 패턴으로 정리하려는 우리 마음의 시도이다”라고 말했습니다. 1983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바바라 매클린톡(Barbara McClintock)은 “과학적 방법으로 일한다는 것은 내가 직관적으로 알아낸 것을 과학의 틀 속에 집어넣는 것이다”라고 언급했습니다.
이미지의 배반. 르네 마그리트. 1929.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Ceci n'est pas une pipe’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뜻으로, 그림과 문구의 모순을 통해 재현된 대상이 실제 대상과 동일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는 논문에 기술된 연구가 실제 연구 과정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File:MagrittePipe.jpg
이러한 발언들의 요지는 과학 논문을 아무리 읽어도 전혀 드러나지 않으며, 과학자들이 논문을 작성할 때 주로 고민하는 부분과도 상당히 다릅니다. 따라서 메더워가 지적한 논문에 기술된 연구와 실제 연구 과정 사이의 괴리는 분명 타당하고 정확하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학자들은 왜 실제 연구 과정을 있는 그대로 작성하지 않고, 오히려 솔직함을 억제하도록 훈련받는 것일까요? 이는 ‘실험하기’뿐만 아니라 ‘논문 쓰기’ 또한 과학자의 중요한 역량으로서 각각 별도의 특별한 훈련이 필요한 작업임을 상기시켜 줍니다.
실제 과학 연구와 연구 결과의 재구성
메더워가 제기한 논문과 실제 연구 사이의 괴리 문제는 최근에 나타난 현상일까요? 역사학자 피터 디어(Peter Dear)는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이 자신의 광학 논문을 실제 연구 과정 그대로 작성하지 않았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뉴턴은 왕립학회가 숭상한 베이컨의 주장, 즉 현상에서 이론으로 나아가는 체계적인 과정을 마치 정확히 따랐던 것처럼 보이도록 서술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이루어진 연구 과정이 논문 작성을 거치면서 재구성되는 현상은 최근에 나타난 것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실제 연구는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과학자들은 때로는 우연한 영감이나 행운에 기대거나 무모하게 다양한 시도를 반복하다가 돌파구를 찾기도 합니다. 여러 가설과 연구 전개 방향을 고민하다 가장 설득력 있게 보이는 가설과 연구 전개를 전략적으로 선택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논문에 제시된 연구 결과 역시 처음부터 순차적으로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 연구 마무리 단계에서 논문을 쓰다가 연구 결과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가설을 수정하거나 논리적 완결성을 높이기 위해 뒤늦게 추가 실험을 진행하는 일도 종종 벌어집니다. 학술지에 투고한 논문이 거절되면, 가설을 수정하고 실험 결과를 재배치하거나 새로운 실험 결과를 추가하여 다른 학술지에 다시 투고하는 일도 흔합니다.
논문에 제시된 연구 과정과 실제 이루어진 연구 과정. 과학 논문은 철저히 재구성된 산물이므로 실제 연구의 대부분은 공식적인 기록으로 보존되지 않습니다. 논문은 마치 가설이 선행 논문의 검토 속에서 명료하고 논리적 방식으로 도출되고, 이에 따라 엄밀한 실험을 아주 질서정연하게 진행하여 과학적 성취를 이룬 것처럼 잘못된 인상을 전달합니다.
출처: 전주홍. 챗GPT는 과학자를 대체할 수 있을까? 《포스트 챗GPT》(한빛비즈, 2023)
가설이 매력적일수록, 실험 결과가 치밀할수록 그 이면에는 수많은 우여곡절, 고민, 좌절의 시간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최초의 아이디어가 어떻게 나왔는지, 가설이 실제 어떻게 도출되었는지는 논문에 기록되지 않습니다. 연구 과정에서 맞닥뜨린 문제나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과학자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잘못된 판단, 황당한 실수, 치명적 실패, 엉뚱한 생각, 문득 떠오른 영감이나 직관과 같은 것도 과학 논문에서는 전혀 다루어지지 않으며, 과학자 개인의 가치관이나 세계관도 제대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논문은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성공한 역사만 담아내는 철저히 정제되고 재구성된 결과물입니다. 논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과학 연구의 비과학적 모습은 철저히 제거되고 논리와 이성의 승리로 포장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실험하기’가 대충 이루어지거나 무계획적으로 진행된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특히 연구 데이터를 임의로 수정하거나 조작하는 것은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연구부정행위입니다 [5]. 과학자는 해당 전공 분야에서 확립된 패러다임이나 엄밀한 연구 활동 규범에 기반해 실험을 설계하고 데이터를 생산합니다. 다만 ‘논문 쓰기’ 과정에서 발견의 신규성과 유용성을 강조하기 위한 스토리텔링이 이루어지면서 가설이나 내용 전개는 수정될 수 있습니다. ‘논문 쓰기’는 완벽하고 논리적인 세계를 구축하고 재구성하는 단계로, 이 과정에서 내용적 약점이나 허점이 보완되거나 치유됩니다. 이러한 점은 보어가 강조한 실수의 중요성에 더해 생각하는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시사합니다.
더군다나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IMRAD 형식’이 과학 출판의 표준으로 자리 잡으면서 연구 결과의 재구성은 형식적 측면에서도 불가피한 일이 되었습니다 [6]. 오늘날의 논문 쓰기는 설득력 있는 구성, 치밀한 논리, 그리고 속도감 있는 전개를 요구하며, 이 과정에서 최소한 세 가지 중요한 요소를 충족해야 합니다. 첫째, 논문은 철저히 실험적 증거를 기반으로 해야 합니다. 둘째, 증거의 확실성, 정합성, 완결성을 강조하면서 연구의 신규성과 결과의 유용성도 부각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간결하고 정교하며 명확하게 작성하여 논증의 구조가 분명히 드러나고, 주장하는 바가 명시적으로 전달되어야 합니다. 이와 더불어 데이터의 시각화 등 예술적 요소 역시 논문 쓰기에서 빠트릴 수 없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7].
이쯤 되면 논문 쓰기는 연구 과정과 그 결과를 단순히 기술(記述)하는 작업이 아니라, 고도의 전략적 고민과 판단 및 선택이 요구되는 일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8]. 따라서 과학의 본성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과학 연구가 정확성, 객관성, 논리성을 근간으로 한다는 전형적인 인식의 속박이나 공유된 허구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ChatGPT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이 연구 파트너로 자리 잡아가는 현실에서,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강력한 수단으로써 논문 쓰기가 과학자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되짚어봐야 할 것입니다 [9].
나오면서
모든 지식은 그 지식을 낳은 시대와 사회에 어느 정도 구속될 수밖에 없으며, 과학 지식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따라서 단순히 추격하거나 패러다임에 갇힌 연구를 넘어 새로운 경로를 창출하거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연구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성찰을 통해 이러한 구속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아인슈타인도 로버트 손튼(Robert Thornton)에게 “역사적, 철학적 배경에 관한 지식은 대부분의 과학자가 겪고 있는 당대의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준다”라고 얘기해 준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더 나은 과학을 이루기 위한 길은 어디에 있고, 우리는 그 길을 어떻게 찾아야 할까요?
‘실험하기(연구 수행)’와 ‘논문 쓰기(연구 소통)’라는 과학 연구의 두 축을 고려할 때, 경쟁력 있는 과학자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 역량 모두 갖추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1965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프랑수아 자코브(François Jacob)는 “낮 과학은 엄격한 틀 속에서 논리적이고 정확하게 작동되는 규범적 활동인 반면, 밤 과학은 직관과 상상 등에 기대어 흐릿하지만 미래 과학의 재료를 만들어내는 창조적 활동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과학 연구는 암묵적이고 비정형적이며 비선형적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과학자로 성장하는 길을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과학은 다분히 미학적이면서도 묘한 감동을 주는 활동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4회에 걸쳐 ‘과학학술지의 탄생과 발전’을 주제로 연구와 논문의 의미를 되짚어봤습니다. 생각하는 힘을 기르지 않고서는 과학적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없으며, 설령 해결하더라도 그 결과를 원활하게 유통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변칙, 역설, 모순, 난제와 같은 복잡한 문제를 풀어내기 위해서는 생각하는 힘의 함양이 필수적이며, 이는 위대한 발견의 원천이기도 됩니다 [10]. 이러한 점에서 과학 연구는 ‘생각하는 훈련’이자 ‘성장의 이야기’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족한 글임에도 4회에 걸쳐 읽어주신 모든 독자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미주 및 추천도서
1. 이언 해킹 지음, 이상원 옮김. 《표상하기와 개입하기》(한울아카데미, 2005); 존 그리빈 지음, 권루시안 옮김. 《과학을 만든 사람들》(진선북스, 2021)
2. 본 연재는 필자(전주홍,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생리학교실)의 두 저서인 《과학하는 마음》(바다출판사, 2021)과 《논문이라는 창으로 본 과학》(지성사, 2019) 그리고 교내 수업인 ‘의생명과학연구의 융합적 이해’와 ‘의생명과학 논문의 이해’의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연구에 대한 보일의 생각과 자세는 “Bishop D, Gill E. Robert Boyle on the importance of reporting and replicating experiments. J R Soc Med. (2020) 113, 79-83”을 참고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3. 피터 메더워는 동일한 주제를 바탕으로 1964년 BBC 방송 프로그램에서 강의를 했습니다. https://www.weizmann.ac.il/mcb/alon/sites/mcb.UriAlon/files/uploads/medawar.pdf
4.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미셸 루트번스타인 지음, 박종성 옮김. 《생각의 탄생》(에코의 서재, 2007);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지음, 권오현 옮김. 《과학자의 생각법》(을유문화사, 2017); 스튜어트 파이어스타인 옮김. 김아림 번역. 《구멍투성이 과학》(리얼부커스, 2018); 이블린 폭스 켈러 지음, 김재희 옮김. 《생명의 느낌》(양문, 2001); 피터 브라이언 메다워 지음, 조호근 옮김. 《젊은 과학자에게》(서커스출판상회, 2020); 스튜어트 파이어스타인 지음, 장호연 옮김. 《이그노런스》(뮤진트리, 2017)
5. 나라마다 연구부정행위의 범위가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위조(Fabrication), 변조(Falsification), 표절(Plagiarism)을 중범죄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학술진흥법」 제15조와 「국가연구개발혁신법」 제31조에서 연구윤리의 문제를 다루고 있고, 위조, 변조, 표절 외에도 부적절한 저자 표시 등을 연구부정행위의 범위에 넣고 있습니다.
6. ‘IMRAD’ 형식은 서론(Introduction), 방법(Methods), 결과(Results), 및(And) 고찰(Discussion)로 이루어진 논문 구조를 말합니다. 1972년 미국표준협회(ANSI)는 ‘IMRAD’ 형식을 과학 논문 출판의 표준으로 채택한 후, 1980년대 들어 대부분의 학술지가 IMRAD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7. 일찍이 내과의사 아르망 트루소(Armand Trousseau) “모든 과학은 예술에 닿아 있고, 모든 예술에는 과학적인 측면이 있다. 최악의 과학자는 예술가가 아닌 과학자이며, 최악의 예술가는 과학자가 아닌 예술가이다.”라고 한 바 있으며, 존스홉킨스의대의 최초의 의료삽화가 맥스 브뢰들(Max Brödel)은 “과학자에게 더 많은 예술을 가르치고, 예술가에게 더 많은 과학을 가르쳐야 된다”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8. 프랑스의 철학자 브루노 라투르(Bruno Latour)는 1977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로저 기유맹(Roger Guillemin)의 소크 연구소(The Salk Institute) 실험실에서 2년간 생활하며, 새로운 과학적 사실이 실험에 참여한 과학자들 사이의 치열한 논쟁과 토론 속에서 이루어진 타협과 합의의 산물이라는 점을 포착했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책이 《Laboratory Life: The Social Construction of Scientific Facts》이고, 개정판에서는 제목에서 ‘social’이라는 단어를 삭제했습니다. 랩미팅이나 저널 클럽과 같은 실험실 활동을 떠올리면, 실험의 질을 평가하고 추론의 타당성을 검토하는 과정 속에서 과학적 사실이 재구성된다는 점은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는 정치적 의미가 아닌, 학문 공동체의 패러다임 안에서 이루어지는 타협과 합의를 뜻합니다.
9. 논문 작성에 있어 논문교정 서비스 회사의 단순한 교정 도움을 받는 선이 아니라 전문적 작가의 지원에 의존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습니다[Sharma S. Professional medical writing support: The need of the day. Perspect Clin Res. (2018) 9, 111-112]. 1963년 이미 토스 멕베이(Thos McVeagh)는 과학자가 과학 연구의 전문가일지라도, 연구 결과를 효과적으로 소통하는 데에는 아마추어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며 전문 작가가 연구진 참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McVeagh TC. Medical authors and professional writers. Calif Med. (1963) 99, 104-105]. 실험하기에 전념하면 그만큼 연구력과 연구 생산성이 향상될 수 있다는 취지였습니다. 그러나 실험하기와 논문 쓰기가 별개의 문제가 아니며, 과학자의 연구 역량을 함양하는 측면에서 논문 쓰기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10. 생각하는 힘은 곧 ‘준비된 우연, 전환적 사고, 훈련된 직관, 꾸준한 열정, 묵묵한 성실함, 조직화된 호기심’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과학자로 성장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한 마디로 ‘과학적이고도 비과학적인 과학 하기’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참고,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014403.html).
전주홍(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생리학교실)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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