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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연구실 실전편] 14. 연구자 간 공동 저자 순서 싸움 – 타인의 공적을 무시한 자의 최후
Bio통신원(송유라)
연구실에서 느낀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어린 시절을 보낸 환경이나 학위를 취득한 기관에 따라 사람마다 성취를 추구하는 방향이 매우 다르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아무래도 전자라면 입시라는 문화가 사회 깊이 스며든 제도권이냐 아니냐에 따른 차이를 극명하게 보이고, 후자라면 어느 연구소나 어느 대학에서 어떤 식으로 연구를 해 왔는가에 대해서다. 결국 어떤 식으로 개개인이 과학자로서든 일개 인간으로든 어떤 가치관을 가졌는가의 문제가 아닐까라고 생각해 본다.
이렇게 말하면 다소 인종차별적으로 들릴 수는 있지만, 약간 우리가 소위 말하는 ‘국룰’이 아닐까 싶은 게 하나 있다. 특정 국적을 가진 연구자들, 특히 자신이 출신 국가로 돌아갈 계획이 있는 경우라면 이 저자 순서에 엄청나게 목을 매곤 한다. 교수님들이 아무리 3저자 이후의 순서는 교신 저자가 아닌 이상 이력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설명해도, 자신의 이름이 앞자리에 있지 않다는 사실, 혹은 박사 과정 학생이 자신보다 앞 순서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갈등이 생기곤 한다. 물론 우리 연구실의 박사 후 연구원 중 일부도 예외가 아니었다는 건데, 그때마다 우리 교수님은 엄청난 철퇴를 내리치시곤 했다. 무엇보다 남의 공적을 본인의 이득을 위해 후려치기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걸 알려줘야 하는 것도 교수의 역할이라 생각을 하셨고, 정말 공동 저자에 목숨을 걸 시간과 에너지로 연구에 집중하라는 뜻도 있었다.
나라고 아니겠는가. 연구실에 있으면서, 의도하지 않게 이 공저자 싸움에 두 번 휘말린 적이 있다. 다른 포스트에서도 이야기를 했지만, 나는 생명정보학자(bioinformatician) 포지션으로 연구실에서 일을 하고 있다. 아무래도 실험만 하는 동료들은 늦은 시간이나 주말까지 연구실에 남아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왕왕 있고, 무엇보다 출퇴근이 실험과 연계가 되어 있으니 상대적으로 일하는 시간이 많아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분석을 하는 경우라면, 계획을 잘 짜서 오래 걸리는 계산을 퇴근 전에 돌려놓고 집에 갈 수도 있고 굳이 연구실까지 나와 일을 할 필요가 없다. 문제라면 동료들 중 내 저자 순서에 불만을 표한 사람들은 생명정보학자의 업무 특성을 걸고넘어졌다는 것이다.
저자 순서와 관련된 첫 갈등은 인도인 박사(R이라고 하겠다)가 일으킨 갈등이었다. 당연히 본인이 일을 많이 하는 것도 알고 나는 그래서 ‘실험을 해 주고 데이터 생산에 기여한 R에게 고맙다’는 말을 항상 했었다. 그런데 R은 ‘생명정보학 하는 애들은 클릭질 몇 번이나 하면 될 걸 가지고 왜 그렇게 앓는 소리를 하냐’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내가 본인의 연구에 준 공적을 폄하하고 있었던 것이다. 항상 분석하는 사람들은 실험에 비해 일도 적고 트러블슈팅도 금방 하면서, 그렇게 어렵다느니 머리를 쓰느라 힘들다느니 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는 것. 항상 나는 R을 본인이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 과소평가하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그보다 더한 인간이었다는 걸 이 저자 순서 싸움에서 깨닫게 됐다.
2020년 당시 우리 연구실에 있던 의사 과학자인 N이 1저자로 논문을 냈고, single-cell RNA sequencing 분석을 한 내가 3저자, R은 실험을 도왔다는 이유로 4저자였다. 문제라면 내가 휴가를 간 사이에 R은 교수와 N을 찾아가 나의 3저자가 정당하지 못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는데, 이유라면 나는 이 논문 외에도 다른 논문에 들어갈 데이터를 분석했고 본인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또 그뿐아니라 순수 노동 시간만 봐도 본인이 훨씬 길고, 본인은 본국인 인도에 돌아가 교수 지원을 할 생각이니 저자 순서를 바꿔달라는 이야기를 했다. 교수님은 내가 현재 휴가를 썼으니 그 내용은 내가 없는 자리에서 논의를 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R은 자신이 4저자인 것이 너무 납득이 가지 않는다며 내가 없는 사이에 팀 구성원들에게 정치질을 해 두었다. 내가 휴가에서 돌아온 날, 교수님은 나와 R을 불러 무슨 상황이 벌어진 지에 대해 설명을 했다. 그리고 교수님이 나에게 내가 4저자로 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물었고, 나는 3저자든 4저자든 별 신경 안 쓴다고 대답을 했다. 교수님은 그러면 저자 순서를 바꾸자고 한 뒤, 아래와 같이 입장을 이야기하셨다.
유라가 지금 R의 데이터들을 분석해주고 있나? 그게 이번에 논문이 될 거지?
그렇게 된 거 그럼 유라는 이제 분석 그만해라. 분석하는 사람들이 손가락 까딱거려서 데이터가 나오고 결론이 나온다고 생각하는 R이 직접 하면 되겠네. 네가 해보지 않은 일이고 그저 연구실에 나오냐 나오지 않냐 가지고 남의 공적을 쉽게 생각하는 것을 보니, 그냥 그 쉬워 보이는 일을 네가 직접 하면 될 것 같다. 하지만 그동안 해 둔 일이 있으니 유라는 네 논문의 공저자가 될 것이지만, 앞으로 어떠한 분석이 필요하든 직접 해라.
그렇게 R은 한 6개월 고생을 했고, 이 일에 대해서 결국 팀 미팅에서 공개적으로 이야기가 나왔다. 알고 보니 같이 공동연구를 하던 영국 대학에 있는 시니어 포닥 중 일부도 내가 겪은 일을 똑같이 겪었다는 것이고, 그중 한 교수님이 결국 이 일에 대해 우리 교수님께 직접 이의 제기를 했기 때문이다. R은 왜 그 사람들이 자신의 공을 나눠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며, 끝까지 사과를 하지 않았다. 심지어 논문에 들어갈 그래픽을 만들어 준 학생이 저자로 들어온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소리를 했던 R. 결국 2024년 9월, R은 계약 연장 없이 퇴사를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두 번째 드라마는 박사 후 연구원을 시작한 중국인 박사(는 C라고 한다)가 주연이었다. 다행이라면 사람이 고쳐졌다는 건데, 2023년 당시 공동 1저자로 논문을 투고할 때만 생각하면 ‘인간 실격’이라는 단어가 딱 맞다 싶은 생각을 하게 만든 사람이었다. C도 박사 후 연구원을 마치면 중국으로 돌아가 교수나 연구소 내 PI를 꿈꾸고 있는 사람인데, 당시에 느낀 가장 큰 단점이라면 동아시아권 문화에 푹 절여진 사람이었다. 그 소위 말하는, 내가 나이가 많고 학위가 있으니 내가 네 위에 있다는 걸 피력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당시 논문을 투고할 때만 해도, C는 그 논문에 들어갈 데이터를 생산하던 중에 계약 만료로 퇴사한 박사생을 대체할 인력으로 온 사람이었다. 그 말인즉슨 나와 다른 동료에 비해 논문에 기여한 정도가 적었고, 실제로 논문에 들어간 피겨 숫자만 봐도 C의 실험 결과는 몇 개 되지 않았던 거다. 교수님이 논문 투고 직전, 최종 컨펌을 하며 공동 1저자 간에 이름이 들어가는 순서는 논문에 들어간 결과에 기여도가 얼마인가에 따라 결정하겠다고 하셨다. 한참을 논문을 확인하던 교수님은, ‘퇴사한 다른 동료가 첫 번째, 유라가 두 번째, C가 세 번째’라고 공동 1저자 간의 순서를 정했다.
C는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뇌를 거치지 않은 듯한 대답을 하게 되는데, ‘유라는 아직 박사도 없는데 왜 내 앞에 이름이 들어가냐’라는 이야기를 했다. 교수님은 당황해서 C에게 이유를 설명해 보라고 이야기를 했다. C의 대답은 ‘얘는 데이터 분석만 해서 실험보다 일이 적었고, 문제가 생겼을 때 트러블슈팅에 하루도 안 걸려서 고생을 덜 했다. 그리고 얘는 아직 박사 디펜스도 안 해서 학위가 없는데 포닥보다 이름이 앞에 있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는 것이었는데, 이 대답을 들은 교수님은 한참 마른세수를 하더니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나는 네가 댄 이유들이 유라가 세 번째로 가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 못한다. 물론 리비전 과정을 거치고 네가 실험을 많이 해야 한다면 내 논리에 따라 네가 공동 1저자 세 명 중 첫 번째로 이름이 들어가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실제로 네 데이터는 1/3이 되지 않을뿐더러, 실험과 분석 계획은 네가 오기 전에 정리가 되어 있었다. 그 말인즉슨 실제 기여도는 네가 이 셋 중에 제일 적다. 그리고 데이터 분석이 실험보다 일이 적다는 건 어느 척도로 계산을 했는 지도 모르겠고, 문제 해결에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고 해서 유라가 일을 너보다 적게 했다는 결론을 낼 수 없다. 마지막으로 얘가 박사 과정이 끝나지 않았다고 해서 너보다 이름이 앞에 오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게 오히려 차별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적어도 내 연구실에선 학위가 공적에 대한 가중치로 적용되면 안 된다.
C는 그날 저 일이 벌어진 이후에, 자신과 같이 일하는 보조연구원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고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고 했다. 그 연구원은 R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었고, 생각보다 이 상황이 심각하게 여겨질 수 있다는 걸 느낀 C는 다음 날 바로 내 오피스에 와서 사과를 했다. 다행이라면 C는 이러한 발화가 자칫하면 정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논문 투고 후 들어온 리비전을 잘 마무리했다. 물론 내가 해결해야 할 부분보다 C가 해결해야 할 부분이 훨씬 많았고, 40여 개의 실험을 1년 만에 해치운 C는 바라던 대로 공저자 셋 중 첫 번째 순서로 갔다. 그리고 C가 2024년 10월 초에 이 리비전을 정리하면서, 나에게 한 말이 ‘나는 작년 일을 통해 남의 공적을 함부로 평가하면 안 된다는 걸 배웠다. 너에게 아직도 좀 미안한 마음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생각 외로 저자 순서에 대한 각자의 입장 차이는 꽤 있는 편이다. 그도 그럴 게 항상 남의 고통보다 본인의 고통이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고, 무엇보다 그 논문 저자 순서가 본인이 원하는 방향에 영향을 미친다면 더더욱. 하지만 남의 공적을 과소평가하며 본인의 공적을 올려 치기 하겠다는 건, 우리 교수님도 그 누구도 싫지 않을까 싶다.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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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 같을 줄만 알았던 벨기에 연구실 생활. 학생 신분으로 모든 걸 누리던 때는 좋았겠지만, 더 이상은 아니라면? 연구실 안에서는 박사 수료 후 디펜스만 남겨 둔 연구원으로, 기관 밖에서는 비유럽권 노동자로 살아남는 것 자체가 미션이라는 것을 매콤하게 깨닫고 있다. 사탕 같지만 실제론 도저히 넘길 수 없는 맛을 가진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간식인 dropjes 같은 이 생활. 해외 연구실 생활의 로망에 예방 주사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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