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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종합
[나의 박사 일지] #10. 석박통합 6년 차 - 축하합니다, 박사님
Bio통신원(만다린(필명))
[ 졸업의 문턱에서 ]
“졸업심사 프로세스를 진행하세요”
간절히 듣기를 기다렸던 교수님의 한 마디에, 끝이 어딘지도 모르고 시작했던 박사과정의 여정이 결말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선배분들께서 예심과 종심을 준비하시는 과정을 지켜보며 부러워하고, 나의 순서가 오기를 그토록 기다렸지만 막상 졸업 문턱에 서니 잠시 설렘은 잠시 스쳐 지나가고 꽤나 묵직한 두려움이 남았다. 박사학위를 취득하기 위한 졸업 심사는 두 번의 예비심사와 한 번의 종결심사로 진행이 되었다. ([대학원생 S-17 다이어리] #02. 코카콜라와 척척박사님: https://www.ibric.org/s.do?rWxPYZwTxq) 심사 준비를 하면서, 지난 5년 간 내가 남겨온 발걸음들을 엮어 하나의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신입생 시절과,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시간들, 그리고 내가 정말 박사의 자격이 있는지 고민했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대학원생 S-17 다이어리] #03. 내가 박사가 될 상인가? https://www.ibric.org/s.do?WkOVGUbIYw) 종결심사를 앞두고 완성된 발표자료를 보니 그동안 나름 의미 있는 연구를 해온 것 같은 생각에 뿌듯하기도 하면서도, 이 연구가 세상에는 얼마만큼의 의미를 가져왔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했다.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연구를 하고 싶었던 나의 원대한 포부와는 달리, 나의 졸업논문은 한 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 박사과정 정산하기 ]
시간은 빠르게 흘러 종결심사 날은 어김없이 다가왔다. 긴장하며 종심 발표를 마치고 교수님들께서 회의를 하시는 동안 나는 잠시 발표장 밖에서 대기했다. 졸업의 문턱에 서서,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지난 5년간의 박사과정을 돌아보았다. 10시간 같았던 몇 분이 흐르고 다시 들어간 발표장에서 감사하게도 나는 박사논문에 대한 긍정적인 피드백들과 많은 칭찬을 받았다. 물론 갓 졸업의 문턱을 넘은 신생아 박사를 위한 격려의 칭찬과 피드백이 대부분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축하합니다, L박사님” 나의 이름 뒤에 처음으로 박사라는 호칭이 붙는 순간이었다. 이 날 마무리를 하며 교수님들께서 차례대로 악수해 주시며 박사님이라 불러주시던 벅찬 순간을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다. 아직도 나는 교수님들께서 박사라고 불러주실 때면 실감이 나지 않고, 스스로를 박사라고 칭하기에도 어색하다. 발표장을 정리하고 희로애락이 가득했던 연구실 자리로 돌아와 부모님께 심사 결과를 전하고, 한 동안 멍하니 앉아 지난 5년 간의 박사과정을 정산해 보기 시작했다. 박사 과정 동안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는지. 잃은 것도 분명했고, 얻은 것도 분명했기에 한참을 득과 실을 따져보다가, 이내 그럴 필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박사 과정을 완주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어떠한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성취이자 성과였기 때문이다. 박사학위는 한 분야에서의 전문성에 대한 증명이기도 하지만, 고뇌와 인내의 시간들을 견디며, 가설로 시작한 연구를 마무리 지을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증명이었다. 박사 과정을 마치기 위해서 내가 치러야 했던 대가들은 많았지만 그것들을 뛰어넘을 만큼의 큰 것들을 배웠기에, 나는 다시 5년 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박사 과정을 시작하는 선택을 할 것 같다.
[ 가장 최적화된 길 ]
하지만 한편으로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지난 나의 박사 과정 생활에서 내가 정말 최선을 다 했는가, 혹은 더 쉬운 길이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까지 이르렀다. 박사학위를 받기까지의 길이 그리 순탄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학위를 시작할 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고민과 역경들이 나를 찾아왔고, 나 혼자만 잘한다고 해서 그 길이 순탄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예상치 못했던 코로나도 겪었고, 내가 하는 연구는 나만의 것일 수 없었으며, 연구에 얽혀있는 수많은 이해타산 속에서 중심을 잡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우연하게도 내가 종결심사를 마치고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을 즈음, 허준이 교수님께서 필즈상을 수상하신 것이 화제가 되고 있었다. 그리고 입국장에서 하신 말씀은 내가 스스로에게 물었던 질문에 답을 내려주었다. “지금 다 돌아와 생각해 보니까 제가 걸어온 길이 구불구불하기는 했지만 저한테는 그게 가장 좋고 빠르고 최적화된 길이었던 것 같아요.”
빠르게 성과를 내어야 한다는 조바심에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다. 그 모든 시간이 나에게는 가장 최적화된 길이었음을 깨달았다. 먼저 길을 걸어가신 교수님의 눈에 나는 얼마나 서투른 모습이었을까 하는 생각에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감사하게도 졸업식에서 허준이 교수님을 멀리서나마 뵐 수 있었다. 그리고 교수님께서 졸업식 축사로 해주신 말씀은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소중한 나의 이정표가 되어주고 있다.
"제 대학생활은 길 잃음의 연속..." 졸업생 감동시킨 필즈상 허준이 졸업식 축사
“여러 변덕스러운 우연이, 지쳐버린 타인이, 그리고 누구보다 자신이 자신에게 모질게 굴 수 있으니 마음 단단히 먹기 바랍니다. 나는 커서 어떻게 살까, 오래된 질문을 오늘부터의 매일이 대답해 줍니다. 취업 준비, 결혼 준비, 육아 교육 승진 은퇴 노후 준비를 거쳐 어디 병원 그럴듯한 일인실에서 사망하기 위한 준비에 산만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무례와 혐오와 경쟁과 분열과 비교와 나태와 허무의 달콤함에 길들지 말길, 의미와 무의미의 온갖 폭력을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 그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아무 아쉬움 없이 맞이하길 바랍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내가 박사학위를 받은 지 딱 2년째 되는 날이다. 나는 박사 과정을 마치고 해외 포닥이라는 길을 선택하여 걸어가고 있다. 그리고 허준이 교수님의 축사 말씀처럼 여러 변덕스러운 우연이, 지쳐버린 타인이, 그리고 누구보다, 나 자신이 나에게 모질게 구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내가 앞으로 걸어갈 길 또한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며, 어쩌면 더 힘든 순간들이 많이 찾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지금껏 걸어온 길이 나에게 있어서 가장 최적화된 길이었듯이, 앞으로 내가 걸어갈 길 또한 나에게 최적화된 길 일 것임을 믿는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다 보면 아마도 그 길에서 나는 또, 내가 지나온 길들이 나에게 가장 빠르고 최적화된 길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다시 한번 마음을 단단히 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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