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바이오 관련 동향 뉴스를 신속하게 제공합니다.
뉴스 종합
[연구자와 연구행정가의 효과적인 소통 방법] <2회> 워크숍
Bio통신원(바이오행정가)
ⓒ Unsplash+ 밤잠을 설치게 만드는 습한 무더위도 어느새 시원한 바람과 함께 물러가고, 탐스럽게 잘 익은 열매가 생각나는 추수의 계절이 온다, 애쓴 보람과 풍성한 결실의 기쁨만 온전히 누릴 수 있다면 좋으련만, 어디선가 이내 찬바람이 스산하게 분다. 회사에서는 성과를 점검하는 시간이다. 미진한 점이 있다면 반성도 하고 앞으로 잘해보자고 다짐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업무시간에는 최대한 지장이 없게, 반면 가정의 시간에는 최소한의 희생이 불가피한 스케줄, 금요일 오후부터 토요일 오전까지, 1박 2일, 회사 워크숍 일정이 잡힌다. 나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이제 식상한 말이 되어버린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미안하지도 그리 좋지도 않은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집을 나선다.
연구자와 연구행정가가 일터 밖 편안한 장소에서 장시간 대면하며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눔으로써, 연구의 효율을 높여 연구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나서지만, 회사로고가 그려진 버스에 탑승하려니 왠지 마음이 무거워진다. 명사 초청강연, 주제발표, 분임토론, 매 시간 나름 진지하게 임한다. 이상하게도 후반부로 갈수록 마무리를 어찌했는지, 유익한 결론을 도출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커피와 달콤한 간식, 기름진 음식, 술, 또 술.... 연구자 A가 평소에 못 보던 모습으로, 목소리를 높이며 분위기를 주도한다. 연구행정가 B가 맞장구를 친다. 몇몇은 머뭇거리다가 이내 자리를 이탈한다. 나를 포함해 의무감으로 자리를 지키던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별 뜻 없이, 어쩔 수 없이. 분위기에 휩쓸린다. 모임은 정신없이 갑작스럽게 끝나버린다. 분명 유익한 시간도 있었는데, 무언가 꺼림칙하다. 겉모양은 괜찮았는데, 속에 중요한 알맹이가 빠진 느낌이다. 인지적으로는 문제가 없으나 감정적으로는 문제가 있다. 사람들 간의 진정한 만남과 교류란 어떤 것인가, 기분 내며 마시는 알코올은 소통에 도움이 되는 것인가, 왜 어느 연구자와 연구행정가는 워크숍 이후 친밀해지기는커녕 멀어지게 되었나, 이러한 형태의 인위적인 단체모임 없이도, 사람 간에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신뢰는 무엇에 연유하는가, 보다 세련되고 효과적인 소통방법은 없나, 또다시 원점이다. 다음날 찌뿌둥한 몸으로 일어나, 뒤숭숭한 꿈자리와 낯설고 불편한 잠자리를 탓한다. 마주치는 동료들과 뻘쭘한 인사를 나누고, 좀 허무하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온다. 몸과 마음의 피로는 어쩐지 회복이 더디다. 잠결에 아내의 잔소리가 들려온다.
추운 겨울의 차가운 공기는 또한, 어느새 다가온 포근한 봄바람에 자리를 내준다. 마음을 짓누르는 무거움이 잠시 사라진다. 그 틈에 어디서 왔는지 모를 설렘이 자릴 잡는다. 어디론가 나들이를 가야 할 시즌이다. 그런데 회사도 덩달아 들썩인다. 춘계 전 직원 등반대회. 당연히 토요일이다. 토요일 아침 일찍, 출근하듯이 직원들이 등산로 입구에 모인다. 군대에 여러 단결활동이 있는 것처럼, 회사에는 등산활동이 있다. 함께 오르지만 남/여, 노/소에 따라 속도 차이가 나기 마련이라 서서히 간격이 벌어진다. 몸이 힘드니 말은 사라진다. 옆에는 어느덧 단결해야 할 동료들은 사라지고, 처음 보는 등산객이 보조를 맞춘다. 여하튼 묵묵히 정상 목표를 찍고, 하산하여 지정된 식당에 모인다. 몸은 지친 데다 배고픔까지 더해져, 대화는 제쳐두고 다들 음식을 입에 가져가기 바쁘다. 어색한 공식적인 일정은 곧 마무리되고, 개인적으로 삼삼오오 후속 모임을 하려는 사람들을 피해 얼른 집으로 향한다. 그래도 따지고 보면, 육체적인 힘의 방향을 한 곳으로 맞추어 함께 산에 오르고 먹었으니, 단결활동이 맞다.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면 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마음의 방향이다. 경치 좋은 산과 맑은 공기는 누가 원한 것인가, 산은 꼭 올라야만 하는 것인가, 산 위가 아니라 산 아래 근사한 곳은 어떤가, 닭은 백숙이 아니라 치킨이 더 맛있지 않나... 어느 해, 나는 아내와 육아의 짐을 나누어지려는 갸륵한 마음과, 아이에게 자연을 경험하게 하는 것은 부모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라는 기특한 생각으로, 과감히 다섯 살 첫째 아이를 데리고 회사 등반대회에 참석한다. 회사 동료들이 귀엽다며 아이에게 용돈도 주면서 환영해 준다. 아이와 함께 정상에 오른 후 나는 흐뭇해서 미소를 짓지만, 아이는 기분이 별로다. 벌레가 너무 싫다, 산이 그렇게 좋으면 아빠나 많이 가라, 대학생이 된 아이는 지금도 산에 가지 않는다.
2009년 여름 어느 날, 나는 미국 NCI(National Cancer Institute)에서, 연구자로서 오랜 연구경험을 쌓은 이후 연구행정가로 전향한 한 연구프로그램 책임자(PD, Program Director)와 대화를 나눈다. 내일 회사 워크숍이 잡혀있어 우울하단다. 영문을 잘 모르는 내가 왜 우울한지 물어본다. 금요일인데도 집에 일찍 못 가고, 오후 3시부터 7시, 그렇게 늦게까지, 회사 일로 붙잡혀있어야 하니까 우울한 게 당연하지 않겠냐, 아 그러네요, 안 됐어요, 나는 어색한 맞장구를 치며, 서둘러 화제를 돌린다.
<작은 아씨들>에 나오는 주인공 아이들 넷과 그 부모, 그리고 하녀 한 명은 거의 매일이 워크숍이다. 살아가면서 겪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 나간다. 가난한 가정의 문제들이라면 오죽하랴. 어떤 문제는 운명처럼 영영 풀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함께 머리와 마음을 모으는 과정 속에서 서로의 인생에 대한 지평을 넓히고, 자연스럽게 다른 이의 감정까지도 배려할 줄 알게 된다. 워크숍이 매번 심각한 것만도 아니다. 기쁜 일이 있을 때 함께 모여 축하하기도 하고, 크리스마스에는 가난한 자기 자신들보다 더 가난한 이웃을 돕는 이벤트도 한다. 함께 연극 무대를 꾸며 공연하고, 노래를 부르며, 이 세상 어느 가정보다도 행복한 모습을 연출한다. 어쨌거나 애쓰는 삶, 참 아름답다.
삶이여 용감한 음악을 울려라,
영혼을 휘젓는 후렴구처럼,
영혼이여 즐거이 솟아올라 노래하라,
비 온 뒤의 기나긴 햇빛 속에서.*
1박 2일의 주말 회사 워크숍, 토요일 전 직원 등반대회, 모두 까마득한 옛날 일이 되어 버렸다.
※ 참고
* 루이자 메이 올컷, <작은 아씨들>, 강미경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p948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기사 오류 신고하기]
바이오분야 공공연구기관에서, 이십여 년 넘게, '연구 행정'을 업으로 삼고 있는 행정가입니다. 그간 좌충우돌 헤매며 연구자분들과 소통했던 과거를 반추하며, 연구자와 연구행정가의 다소 먼 심리적 거리는 무엇에 기인하며, 어떻게 하면 그 거리를 좁힐 수 있을지, 상생의 효과적인 소통 방법은 무엇일지, 에 대한 힌트가 될 수 있는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다른 연재기사 보기
전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