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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의 망원경; Telescope in my brain] 리사 펠드먼 배럿 편,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리고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Bio통신원(김민환 )
난 어릴 때부터 고소 공포증이 심했다.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이 많았던 중학교 시절, 10층 정도되는 아파트에서 사는 제일 친했던 친구 집에 갈 때면, 난 허리쯤 오는 난간 절벽 반대편에 딱 달라붙어서 걸을 수밖에 없었다. 이 고소 공포증은 불혹이란 나이가 훨씬 지난 지금의 나이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난 최근 다시 알게 되었다. 내가 사는 도시에 “Space Needle”이라는 전망대에 한 20년 만에 다시 가족들과 올라가는 기회가 생겼고, 최근 전망대 보수 및 재수리 과정에서, 한 층의 바닥을 유리로 만들었다. 6살이 곧 되는 아들도 신나게 뛰어다니는 그 바닥을 난 한 발 내딛는 것, 그 이상 어떤 것을 할 수도 없었고, 주위의 시선과 상관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옆에서 그 광경을 보던 아내는, “아들이 위험에 처했다고 생각해, 얼른 뛰어 들어서 구하도록 해!”라며, 마인드 컨트롤해 보라고 말했지만, 실전이 아닌 이 상황에서, 주저앉은 나에겐 아무런 극복 효력을 주지 못했다.
하지만, 이 굴욕적인 나의 모습은 한 번 예외였던 적이 있었고, 군 복무 시절이었다. 산 중턱에서 두줄 타기 극기 훈련을 받았는데, 군기 빠진 말년 병장의 다리는 후들 후들거리며 줄이 흔들렸다. 난, 그런 말년 병장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고, 너무도 쉽게 거침없이 훈련을 마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철봉 20개도 거뜬히 하고, 하루 종일 연병장을 뛰어도(그동안 얼차려를 받지 않으니) 좋았던 체력과, 우리 소대, 분대원을 살릴 수 있다면 불속이라도 뛰어들 수 있을 거 같았던 상병의 군기 덕분이었던 거 같다.
또 다른 굴욕 관련 내 어릴 적 경험 중 하나는 엉덩이에 주사 맞는 것이었다. 커서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엉덩이에 주사 맞는 일이 거의 생기지 않았지만, 어릴 때는 많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평소에는 그냥 엎드려 누웠다가 간호원분이 엉덩이를 찰싹 때리면서 동시에 주사를 놓고, 그냥 따끔하구나 끝났었는데, 어느 날 하루, 침대가 두 개이고, 두 침대를 커튼으로만 가린 형태의 병실 안이었는데, 옆에서 어떤 누나가 주사를 맞는 소리를 내 차례를 기다리면서 듣게 되었다. 그런데, 그 누나는 너무나 아픈 듯 소리를 내면서 흐느꼈고, 내가 맞는 주사가 같은 것인지도 모른 체, 난 내 머릿속의 엄청난 상상으로 인한, 극심한 공포를 느낀 아이가 되었다. 그러면서, 어머니의 팔을 잡고, 절대 이 주사를 맞을 수 없다는 앙탈을 썼고, 옆에서 한심한 듯 간호원 분이 나를 쳐다보던 기억이 난다. 그 광경 속 어머니께서는, 사태를 수습하시느라 “이 아이가 평소에는 잘 맞는데, 오늘은 좀 이상하네요…”라고 말씀하셨다.
이렇듯 우리의 감정은, 그때의 상황과 경험, 상상과 훈련된 마음 상태에 따라서, 상당히 다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법정에서의 판사님들의 결정과, 신입 사원을 뽑는 면접 과정이, 점심을 먹고 난 후에, 더 후한 판결과 점수를 받는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 자꾸 아이의 마음이 되는 것 같기도 한 중년인 나에겐, 제 때 밥을 먹지 않으면, 예민해지면서 일 처리에 화를 내는 경향이 생기기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생긴, Hungry (Hunger + Angry) 란 말은 내가 일하는 일터에서도 서로 농담 삼아 자주 쓰곤 한다. 그리고, 각자 자신이 추구하는 생활 방식과 계획을 가지고 사는데, 갑자기 외부에서 예측 불가능한 일이 터지면, 나 스스로를 돌이켜 봐도, 순간 화부터 나는 것이 사실이이다. 부부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아내가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의견이나 해 주었으면 하는 일들을 갑자기 제안할 때, 난 보통 인상이 구겨지면서 화가 나지만, 가만히 혼자서 천천히 생각해 보면, 다 받아들일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임을 깨닫게 된다. 다만 천천히 곱씹으면서, 내 계획과 생활에 추가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걸리는 것이고, 그 시간을 이해해 주길 바랄 뿐이다.
요즘, 특히나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 2”의 개봉에 의한 영향인지 감정에 관한 뇌과학이 더욱 주목받는 것처럼 느껴진다. 뇌과학자인 나로서도, 감정에 관한 뇌과학 연구의 역사와 그에 따른 이론들은 참 흥미롭게 느껴진다. 내 분야가 아닌 만큼, 미디어를 통해서 유명한 책들의 저술가로 잘 알려진, 이 분야의 셀럽은 아마도, 안토니오 다마지오(Antonio Damasio), 조지프 르두(Joseph LeDoux), 리사 펠드먼 배렛(Lisa Feldman Barrett) 박사님들이 아닐까 싶다. 한 두해 정도 전에 읽었던,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Seven and a half lessons about the brain)” [1]의 저자인 리사 펠드먼 배렛 교수님은 기존의 전통적인 뇌과학적 믿음의 오류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설명하면서, 자신의 관점을 펼치는 형태의 글쓰기 방식을 보이시는데, 읽는 동안에 많은 수긍이 가고, 그렇구나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 그래서 맨 처음 말했던 뇌과학적 믿음은 전부 틀린 것인가 하는 생각도 개인적으로 조금은 남아 있었다. 아마도, 이 책 보다 먼저 출간된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정말 대단한 제목을 가진 책에서도 비슷하게, 기존의 전통적인 뇌과학적 믿음으로서의 감정 해석이 얼마나 큰 오류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자신이 평생 바쳐 온 감정 연구와 다른 문헌들을 통해서 반박하고, 그에 따른 자신의 이론(구성된 감정 이론: Theory of constructed emotion, 뇌는 우리가 깨어 있는 매 순간 개념으로 조직된 과거 경험을 사용해 우리의 행동을 인도하고 우리의 감각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때 관련 개념이 감정 개념이면, 뇌가 감정 사례를 구성하는 셈이다.)을 펼치고 있다 [2,3].
자신의 대학원 학위 시절 전통적인 감정 이론(감정의 범주화, 동일한 감정의 성질을 가진 부류나 범위로 묶을 수 있으며, 특정 뇌 부분이 이 범주화된 감정을 나타낼 것이다라는 이론, “본질 주의”) 을 믿고 실험하였으나, 끊임없이 실패하면서 간신히 학위 수여를 받고 졸업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그녀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더 파고들어 기존의 감정 이론인 “본질 주의”의 문제점이 무엇이며, 이 이론을 반박하기 위해서 자신의 연구실에서 어떠한 연구를 수행했는지를 설명하면서, 자신의 연구를 바탕으로 기초적 감정도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심리적 구성 이론, 혹은 “구성된 감정 이론"이 본질 주의 이론보다 더 타당한지 설명하고, 주장하고 있다.
아마도, 행동 연구에 지겹도록 쓰인 공포를 담당하는 영역으로 잘 알려진 편도체(Amygdala) 영역을 기반 연구들 역시 실험의 용이성 등과 관련한 “본질 주의” 적 연구 쪽에 더 가깝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해 본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공포 영역으로 알려진 편도체가 주목받은 타당한 이유도 있지만, 이 편도체가 제거된 뇌를 가진 사람에게도 어떤 특정 공포에 대한 공포를 제외한 다른 여러 형태의 공포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려져 있다. 그만큼, 베렛 박사님 쪽의 “구성된 감정 이론”은 더 복잡한 회로의 다양한 활성에 기반할 것으로 여겨지고, 이는 동물 실험자들에게 많은 실험적 제한이 있으리라 예측되고, 동물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측정을 통해서 읽어내는 것 또한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책에서 저자는 다윈의 “종의 기원"과 더불어 출판된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이라는 책에 관한 실랄한 비판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요지는, 생물의 다양성, 우연성을 기반으로 한 반-본질주의적인 종의 기원 책의 기본 정신은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이라는 감정에 관한 책에서는 보이지 않고, 오히려 “본질 주의”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기술되어 있다고 한다. 즉, 감정에 관한 한 다윈의 생각은 자신의 종의 기원 책에서 보이는 자연선택이라는 근본정신을 배제한 체, “본질 주의" 적 이론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다윈은 자신의 최대 업적으로 “종의 기원” 보다는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이라고 주장했다니 아이러니하다(페이지 302). 그만큼 우연성을 기반으로 한 자연선택, 생물의 다양성 이론은 그 시대에 받아들여지기는 힘들었으리라 상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의 진화적 측면에서 사실 보편적인/기본적인 감정의 특성은 공유(“본질 주의“ 이론에 가까운) 한다는 이론을 완전히 틀리다고 말할 수 없고, 여전히 이 두 이론이 대립, 논쟁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지 않나 싶다 [4]. 저자에 따른 기초적 감정도 만들어질 수 있지만(“구성된 감정 이론”), 이 기초 감정을 진화적 입장에서 다른 동물들과 공유한다(“본질 주의” 이론에 가까운)는 이론 역시 완전히 배제될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생각해 본다. 그런 면에서, “본질 주의" 측면에 조금은 더 가까운, 인사이드 아웃에서의 각 감정 캐릭터가 보여주는 감정의 범주화를 뇌과학적으로 아주 틀린 것이라고 말하긴 힘들 것이다 [4]. 하지만, 이 책의 주장대로 다양한 감정들의 본질을, 단순한 특정 감정 회로가 독립적으로 뇌에 존재한다거나,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감정과 이성이라는 상반되어 보이는 개념 역시 따로 나누어진 회로로 이루어져 있지 않음은 자명하리라 본다. 또한, 감정 관련 회로는 기억 회로와도 상당히 겹치는 것 역시 당연한 것이다.
그 보다는, 우리의 순간순간의 경험이 기억이라는 구슬 속에 담겨있고, 그 기억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나무들이 있으며, 그 사이로 의식이라는 강이 형성된다는 것은 멋진 애니메이션적 구현이었다고 본다. 2편에서 주인공의 사춘기 시절, 혼란과 불안 속의 수많은 신념(혹은 생각들) 들이 모여서 자아를 형성해 나가는 모습, 마지막 친구들 두 명과 마주 선 모습 속에서 주인공의 마음속에는 얼마나 많은 혼란 속에 용기를 내 일어서는 과정인지는, 누구나 겪지만, 누구에게나 특별한, 나의 사춘기 때의 모습도 다시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늘 비겁하고 이상한 행동을 했던 나에게, 집에까지 찾아와 진심을 다해 조언해 주었던, 고마운 곱슬머리 친구 동석이의 얼굴도 떠올랐다. “어디에선가 잘 살고 있겠지? 그러길 바래.” 생각하면서.
어린 시절 마냥 즐거웠던 기쁨(Joy)의 모습과, 불안(Anxiety)이 지배하는 사춘기 시절, 잠깐 나오지만, 슬픔(Sadness)이 자리 잡은 어머니의 모습과, 화(Angry)가 중심에 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서 변하는 우리의 뇌, 감정 변화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예전에 어떤 신문 4컷 만화에서 본, 아이스크림 하나에 세상을 다 얻은 듯한 감정을 느끼는 어린아이와, 같은 아이가 20-30대가 되면서 이성으로부터 받은 호감에 잠 못 드는 젊은이가 되기도 하고, 이 두 가지 모두에 큰 감흥을 얻기는 쉽지 않은 뇌를 가진 중년이 되기도 한다. 그 변화하는 뇌의 나이 듦에 따라서 생각하는 것이 달라지고, 그에 따른 가치관(혹은 행복 추구 방식)도 달라지고, 바라는 꿈마저도 조금씩 변형된다.
무더운 장마철 여름을 유난히 좋아했던 나는 수박과 함께한 모기향의 기억 덕분에, 지금도 모기향은 늘 기분 좋은 감정을 저절로 불러일으키게 만들어 준다. 또한, 가족에 대한 기억을 잃은 치매 노인의 너무나도 허무하고,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눈빛과 마주칠 때는, 누가 봐도 가슴 서늘하고, 아프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 많은 기억의 구슬들과 나무 사이에 놓인 의식에 강에는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관련 자료 링크]
[1]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Seven and a half lessons about the brain)”,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02831219
[2]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https://www.yes24.com/Product/Goods/49868405
[3] https://youtu.be/FeRgqJVALMQ?si=fnqBgqe10uVNpsIJ
[4] https://youtu.be/mXHlz9zRfwo?si=Qp7woZZ39dXgMeMS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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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과에서 학부, 석박사 학위 후, 지금은 대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뇌과학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주로 뇌과학 관련, 가끔은 물리학 관련 책 소개 및 감상을 공유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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