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스 백그라운드 문제로 벌였던 큰 해프닝 덕분에 나는 실험 과학자로서 무엇이 중요한지 어디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결코 교과서나 수업에서 배울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이 깨달음은 이후 나의 과학자 경력을 하나씩 쌓아나가는 데에 초석이 된다. 잊지 않고자 간략하게나마 여기에 기록해 두기로 한다. 이제 막 과학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분들에게는 약간의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말이다.

첫째, 실험은 정확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예상되는 결과를 만들려고 애쓸 게 아니라, 누가 봐도 신뢰할 만한 디자인과 방법과 결과를 위해 애써야 한다는 것. 정확하다는 건 단순히 틀리지 않는다는 걸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확한 실험은 과학자의 자세와 직결된다. 과학자도 과학자이기 이전에 인간이기 때문이다. 양심을 가지고 옳고 그름을 본능적으로 아는 인간.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양심도 윤리도 정의도 모두 버릴 수 있는 인간. 그러므로 실험 생물학자에게 정확한 실험이란 단순히 손이 좋다는 사실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의 그 무엇을 담지한다. 즉, 인간으로서의 제약을 넘어서는, 어떤 초월적 이미지마저 느끼게 하는 그 무엇이다. 성공한 실험 과학자는 많아도 신뢰할 만한 실험 과학자는 적다는 말은 뼈가 있다.
내가 만약 두 번째 실험 결과를 얻은 뒤 무언가 잘못됐음을 알고도 검증 실험을 실행하지 않고 개연성에만 의거하여 하지도 않았던 실수를 한 것처럼 믿어 버렸다면, 그리고 민수에게도 교수님에게도 정상 세포와 넉아웃 세포가 서로 뒤바뀌었던 거라고 말해버렸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그 뒷감당을 나는 과연 해낼 수 있었을까? 내가 그 해프닝 가운데 가장 잘했던 건 방사능원소를 이용하여 측정한, p value가 거의 0에 가까울 정도로 정밀했던, 세포 분열의 정도 비교가 아니라 어쩌면 내가 얻은 결과를 의심하고 그것이 정말 맞는지 스스로 검증하며 객관적인 답을 찾아낸 순간에 있지 않았을까? 실제로도 교수님의 나에 대한 신뢰도는 이 검증 실험으로 인해 급상승했다. 중요한 실험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었다. 실험 과학자에게 있어서 이보다 더한 신뢰의 표현이 또 있을까?

둘째, 정확한 실험을 수행하기 이전에 정확한 실험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 어떤 실험이라도 시작하기 이전에는 완벽한 준비를 갖춰야 한다. 나는 그 사건 이후 실험할 때면 언제나 시뮬레이션을 먼저 진행한다. 사고실험과 비슷하다. 머릿속으로 동선을 그려 보면서 가상으로 실험을 진행해 보는 것이다. 보통 한 자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움직이지 않고 실험하는 경우는 드물다. 적게는 옆 테이블로, 많게는 옆 실험실 혹은 옆 건물로 이동해야 할 때가 많다. 나는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실험에 필요한 각 장소에 미리 한 번씩 가본다. 내가 사용할 기계가 혹시 고장나진 않았는지, 내가 사용할 시약이 혹시 떨어지진 않았는지 미리 확인해 본다. 아무리 손이 좋아도 실험 시 사용될 재료가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천하의 마스터핸드도 아무런 결과를 도출하지 못한 채 시간과 돈만 낭비하는 꼴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이러한 준비과정은 아무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해내지 못하는 일 중에 하나이며, 지금은 베테랑이 되어 있는 나 같은 실험 과학자도 여전히 준수하고 있는 철칙 중 하나다.

셋째, 정확한 실험 계획과 준비 과정 이전에 정확한 실험 디자인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 아무리 실험 계획을 잘 세우고 준비를 완벽히 할 줄 알아도 잘못된 혹은 오류가 있는 실험 디자인으로는 그 어떤 성실함과 공교함도 신뢰할 만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 정확한 디자인이란 지식과 경험이 겸비되어야만 가능하다. 어쩌면 앞서 언급한 두 가지보다 더 상위의 능력이라 할 수 있다. 무엇을 증명해야 하는지 명확히 파악해야 하고(지식), 그것을 위해 어떤 실험이 가능한지 알아야 하며(경험), 그 실험을 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 어떤 한계를 가지는지,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이며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등을 줄줄이 꿰고 있어야 한다. 이 세 번째 능력은 독립연구자(Independent Principle Investigator)가 되어 한 랩을 책임질 지도자 혹은 리더가 되기 위한 필수 전제 조건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것은 지금 나에게도 여전히 부족한 자질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민수는 대학원생일 때부터 이미 이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몇 주 뒤, 민수도 자기가 맡았던 넉아웃 마우스를 만들어 낸다. 당시 랩 구성원들은 표적 유전자를 각자 하나씩 맡아 넉아웃 마우스를 만들고 있었다. 내가 넉아웃 시킨 유전자는 면역학에 관련된 녀석이었는데, T 세포의 세포막에서 단백질로 발현되는 유전자였다. 한편, 민수가 표적한 유전자는 발생학적으로 중요하다고 이미 알려져 있었고, 이미 다른 동물 모델인 제브라피시(Zebrafish)에서 표현형이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민수는 전통적인 넉아웃 방식 말고도 조직 특이적으로 유전자를 넉아웃 할 수 있는 마우스까지 동시에 만들었었다. 넉아웃 마우스가 태어나지 못하고 배아 상태로 죽을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이었는데, 나중에 확인된 바 민수의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그리고 동시에 만들었던 조건부 넉아웃 마우스(수정란에서부터 넉아웃된 상태로 발생하여 모든 세포가 넉아웃 세포가 되는 시스템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특정 조직에서만 넉아웃 되는 시스템이다)는 수개월 후 랩 구성원 절반에게 나눠져 각자가 다른 조직에서 그 유전자를 넉아웃 하게 된다. 나도 머지않아 그중 하나가 된다. 아, 이 조건부 넉아웃 마우스가 없었다면, 내가 속한 랩은 과연 연구비와 인력이 부족한 그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참고로, 내가 만든 넉아웃 마우스는 안타깝게도 너무나도 정상이었다. 생체 밖, 그러니까 벤치에서 이뤄지는, 배양된 세포 수준에서는 꽤나 비중 있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았으나(실제로 그랬고, 그랬기 때문에 넉아웃 마우스를 제작하게 된 것이었다) 생체 내에서는 ‘없어도 되는(dispensable)’ 유전자였던 것이다. 아니, 없어도 되는 유전자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없어도 되는 유전자는 없다. 그러나 막상 없어졌을 때 다른 유전자가 그 자리를 대신하여 충분히 기능할 수 있기 때문에 없어도 된다는 표현을 사용할 뿐이다. 다시 말해, 내가 그 유전자를 넉아웃 했지만, 무슨 일이 마우스 몸 안에서 벌어졌는지는 정확히 몰라도, 다른 유전자가 넉아웃 된 유전자의 기능을 대신하여 마치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은 것처럼, 마치 정상인 것처럼 시스템을 돌아가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몸은 이렇게 무언가가 결핍된 상태를 맞이하면, 과학자들도 여전히 잘 모르는 플랜 B 혹은 백업 시스템을 작동시켜 몸의 항상성을 유지한다. 생명의 신비다. 하지만 동시에 이를 밝히고자 하는 생물학자들에게는 고역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물을지도 모르겠다. 유전자를 꼭 그렇게 어렵사리 넉아웃을 해봐야 그 유전자가 ‘없어도 되는지’ 알 수 있냐고. 나의 대답은 이렇다. 유일한 방법은 아닐지 몰라도 넉아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그러므로 내가 제작한 넉아웃 마우스가 너무나도 정상이었던 것은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던 일이었으며, 어렵게 넉아웃을 했기 때문에 그 유전자가 생체 내에서는 ‘없어도 된다는‘ 사실을 밝혀낼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똑같은 노력이 들어갔지만, 어떤 넉아웃 마우스는 태어나지도 못한 채 배아 상태로 죽어버리고(이 경우 그 마우스를 제작한 과학자는 할 수 있는 실험이 별로 없어 난감해하며, 그 유전자의 자세한 기능을 밝혀내지 못하게 된다), 또 어떤 넉아웃 마우스는 정상 마우스와 다를 바 없는 상태로 태어나기도 하는 것이다(나의 경우처럼 몇 가지 실험을 정성 들여해 보지만 결국 밝힐 수 있는 건 그 유전자는 ‘없어도 되는’ 녀석이었다는 사실밖에 없다). 두 경우 모두 그 넉아웃 마우스를 제작한 과학자들에게는 커다란 허망함을 안겨주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 같은 마우스 유전학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넉아웃 마우스는 태어나긴 태어나지만 성체(태어난 지 두 달이 되면 마우스는 임신 가능한 성체가 된다)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질병이나 암으로 죽어나가는 경우라 할 수 있다. 할 수 있는 실험의 수도 많고, 그 많은 실험을 통해 구체적인 유전자의 기능을 밝혀낼 수 있으며, 동시에 그 유전자는 없어서는 안 될(indispensable), 굉장히 중요한 녀석이었다는 사실까지 증명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선택은 과학자들이 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서는 일들일 경우가 많다. 예측은 어느 정도 가능하나 절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했던가. 넉아웃을 해봐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들도 있다.
그 이후, 랩에서 넉아웃 마우스들이 줄줄이 만들어졌다. 총 일곱 라인이 제작되었는데, 그중 세 라인은 배아 단계에서 죽어서 태어나지도 못했고, 나머지 네 라인은 ‘정상’ 마우스와 다를 바 없었다. 랩 구성원들 모두가 이 년 넘게 공을 들였던 일들이 별다른 성과 없이 허망함만을 남긴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 가운데 민수가 추가적으로 만든 조건부 넉아웃 마우스만이 랩의 유일한 희망으로 자리 잡게 된다.

여기서 시철이의 일화를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언급했듯 시철이가 만든 넉아웃 마우스도 태어나지 못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하는 건 어미의 뱃속에서 그것들이 언제 죽는지를 밝히는 일이다. 마우스는 3주 임신 기간을 갖는다. 상식적으로도 알 수 있듯이 넉아웃 마우스가 임신 후반부에 죽는다면 그나마 할 수 있는 실험들이 생겨나게 된다. 비록 배아 상태이지만 상대적으로 크기도 크고 대부분의 장기가 고루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수정란 형성 후 넉아웃 마우스의 죽는 시기가 이르면 이를수록 과학자들이 할 수 있는 실험은 점점 더 사라진다. 불행하게도 시철이의 넉아웃 마우스가 딱 이런 경우에 속했다. 수정란 형성 후 단 6일 만에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때 6일이라 함은 수정란이 2의 제곱승으로 세포 분열을 겪다가 겨우 어미의 자궁에 착상을 한 직후를 의미한다. 즉, 시철이가 표적 한 유전자는 착상 전에는 없어도 별 문제가 없지만, 착상 후에는 발생과정을 거치지 못할 만큼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던 것이다. 시철이의 넉아웃 마우스는 우리가 쉽게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는, 그나마 마우스의 배아 형태를 띠기도 전에 죽어버렸다.

자기가 만든 넉아웃 마우스가 배아 상태에서 죽을 줄 몰랐던 시철이는 첫 잡종 교배의 새끼들의 DNA를 검사하고는 넉아웃 마우스가 없다는 사실을 두 번 연거푸 확인을 했고, 수정 후 18일부터 3일씩 거꾸로 15일, 12일, 9일, 6일까지 올라가서야 넉아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꿋꿋하게 알아냈다. 3일씩 거슬러 올라가는 동안 시철이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져 갔고 말도 없어졌다. 늘 사람 좋아 허허 대며 랩의 윤활제 역할을 하던 녀석이었는데, 그랬던 시철이가 한 주간 입을 다문 것이었다. 시철이는 점점 작아지는 배아의 크기에 한숨을 쉬었고, 현미경이 없으면 도저히 볼 수 없는 상태까지 이르러 간신히 넉아웃의 존재를 발견하였을 땐 거의 울상에 가까웠다. 아직도 시철이의 한이 맺힌 한 마디가 아련하게 떠오른다. “영웅아. 너무 작아. 너어어어무 작아.” 그런데 이미 이런 단계를 거친 민수가 옆에서 한 마디 거들었다. “그치, 너어어어무 작지. 흑흑.” 그 옆에 서서 넉아웃해도 멀쩡한 마우스를 만들었던 나도 한 마디 했다. “차라리 작았으면 좋겠어. 내 건 너무 정상이야.” 그날 우리 돼지 삼형제는 1차로 통집과 2차로 여우웃음을 찾았다. 눈치 빠른 여우웃음 사장님은 우리 돼지 삼형제를 보시고 서비스로 막걸리 한 사발씩 내오셨고, 우린 각자가 만든 넉아웃 마우스에 대해 하소연을 하염없이 늘어놓았다. 모두가 아름답고 근사한 표현형을 기대했건만, 우리 중 아무도 도와주지 않은 하늘을 원망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여우웃음 사장님이 뜬금없이 왕경태 얘기를 꺼내시는 거였다. 월드컵 포르투갈전 하루 전날, 왕경태와 지욱이가 여우웃음에 들렀다는 얘기였다. 이상하게도 막역하게 보였던 그 둘의 관계를 잘 아는 우리들은 그러려니 하고 듣고 있는데, 사장님이 그날 안주를 가져가자 지욱이가 대뜸 이런 말을 건넸다는 것이었다. “사장님, 내일 포르투갈전에서 우리나라가 이기면 어떻게 되는 줄 아세요? 이기면 좋겠죠?” 대형 스크린이 있어 포르투갈전을 대비해 미리 맥주와 소주 등을 많이 준비해 놓은 사장님은 그걸 왜 묻냐는 듯이 당연하지 않냐고 별생각 없이 웃으면서 되물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 있던 지욱이와 그 옆에 있던 왕경태는 갑자기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는 거였다. 그리고 알다시피 그로부터 이틀 채 지나지 않아 그 둘은 죽음을 맞이했다. 사장님은 지금까지도 그 둘의 모습이 자꾸만 마음에 남아 꿈에서도 여러 번 나온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던 우리 돼지 삼형제는 왕경태와 지욱이 얘기가 나와 사뭇 진지해졌지만, 그날 사장님의 말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고, 마침 영업 마치는 시간이 되어 우린 각자 기숙사로 돌아갔다. 기숙사에 돌아온 나는 자기 전 언제나처럼 내가 만든 홈페이지를 확인했다. 그런데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던 쪽지 하나가 와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지욱이가 포르투갈전 하루 전에 보낸 것이었다. 갑자기 심장이 쿵쾅대며 나는 그 쪽지를 클릭했고 단숨에 읽어버렸다. 그 쪽지의 내용은 마침 여우웃음 사장님이 들려주셨던 지욱이의 질문과 같았다. “형, 포르투갈전에 우리나라가 이기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 줄 아세요? ㅋㅋㅋ ㅜㅜㅜ.” 내 눈은 ㅋㅋㅋ와 ㅜㅜㅜ에 꽂혔다. 마치 여우웃음 사장님의 꿈에서 나온 왕경태와 지욱이의 울 것 같은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너무 피곤한 나머지 쪽지의 내용이 궁금하면서도 잠이 들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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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의사생활’의 패러디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것이 담아내지 못하는, 아니 어쩌면 그것이 담을 수 없었던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했다. 많은 부분은 의사라는 직업이, 특히 한국에서, 갖는 독특한 위상 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의사는 베이비붐 세대 이전부터 Z세대에 이르기까지 실질적인 부와 명예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직업이며, 시대를 초월하여 누구에게나 특권층으로 여겨질 만큼 선망의 대상이 되어왔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많은 감동과 공감을 불러일으켜 성황리에 막을 내렸지만, 그 성공의 비결 중 하나는 주인공들의 직업이 의사였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의사를 선망하면서도 의사가 되지 못한 우리들은 의사의 삶이 궁금했던 것이다. 우리와 다를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그들도 가정의 불화로 가슴 졸이며, 그들도 인간관계 때문에 속상해하는 등 결국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드라마를 통해 확인함으로써 잠시나마 그들과 연대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과학자라는 직업은 아이들의 ‘장래 희망란’에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그도 그럴 것이, 과학자들, 그중에서도 특별히 기초과학자들의 사회적 대우와 인식이 과거에 비해 현저히 낮아지기도 했다.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평균 연봉만 따져도 적게는 두 배, 많게는 열 배 이상의 차이가 난다. 의사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들여 공부와 연구의 끈을 놓지 않고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도 말이다. 설상가상으로 과학자의 경우,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오르기까지 훈련받는 기간은 의사의 그것보다 일반적으로 훨씬 더 길며, 훈련을 마치는 시기도 정해지지 않아 평생 불안정한 상태에서 직업 생활을 해야 하는 상황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우리 중 많은 이들은 다른 이름으로 불릴 뿐 평생 계약직 훈련생의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다. 의사의 경우, 의대만 나와도 개업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고, 레지던트 생활을 마치면 전문의로서 더 큰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과학자들의 상황과 극명한 대비를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박사 학위를 힘겹게 취득했다 할지라도 (생물학의 경우 보통 6년 정도 소요된다), 박사 후 연구원이라는 고되고 불안정한 과정을 견뎌내야 비로소 한 실험실을 책임지는 자리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놀라운 사실은 그렇게 힘들고 긴 기간을 거쳐 실험실 보스가 된다 하더라도 연구비 획득과 학생 및 연구원 고용 문제에 부딪혀하고자 했던 연구를 수행하기가 극히 어렵다는 것이다. 박사과정을 시작한 이후 10년에서 20년 정도 후에 겨우 조교수가 되었는데, 그마저도 불안정해서 본인은 물론 어느새 생겨난 가족들에게 죄책감을 느낄 정도로 고생의 길을 걷게 되는 경우가 왕왕 벌어지고 있다는 게 오늘날의 서글픈 현실이다. 이 글은 20세기말에 대학에 들어가 21세기 초에 대학원 생활을 하며 간신히 박사 학위를 취득한, 지금도 여전히 과학계에서 손을 떼지 못한 채 과학자라는 직업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와 동고동락하며 꽃다운 20대 후반을 함께 보낸 동료들의 이야기다. 모두 의사가 될 수 있었으나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기초과학에 몸을 싣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묵묵히 한국 기초과학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생물학자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현재 모두 가정을 가졌으며 모두 한 아이에서 세 아이의 엄마 아빠가 되어 있다. 많은 이야기들은 실제 있었던 사건에 기반한다. 그러나 절반 정도는 개연성 있는 허구를 동원해 각색을 가했다. 등장인물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며, 경우에 따라 두세 인물의 캐릭터를 한 인물 속으로 압축시킨 경우도 있고, 몇몇 인물은 현실엔 존재하지 않았던 인물이다. 기본적인 장소는 포항공대이지만, 그곳의 위치와 시설 등의 세부사항은 허구를 동반한다. 자, 우리들의 철없던 대학원생 시절의 이야기, 돌이켜보면 별 것 아닌 것들로 가슴 아파하고 상처받던 시절의 이야기, 그 와중에 밤을 새며 실험에 매진하던 시절의 이야기, 그 열정과 낭만의 이야기를 이제 시작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