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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지 못한 과학자의 삶] 적재, 그리고 적소
Bio통신원(암바사맨(필명))
<모든 사람은 천재다. 하지만 물고기들을 나무 타기 실력으로 평가한다면, 물고기는 평생 자신이 형편없다고 믿으며 살아갈 것이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했다는 유명한 말이다.
연구자들은 이런 말을 보면 레퍼런스가 맞는지 확인하는 버릇이 있다. 나 또한 그렇다. 그리고 간단한 구글링을 통해서 이 경우 또한 유명인의 이름을 갖다 붙여서 그럴싸하게 만든 가짜 레퍼런스임을 확인했다*. 애석하다. 그 자체로도 정말 좋은 말인데, 가짜 레퍼런스로 되려 그 가치가 훼손되어 버린 것 같다. 어찌 되었건 나는 이 말을 참 좋아한다. 그 의미를 이해하면 많은 사람들이 절망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발걸음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들은 적재적소의 쓰임이 있다. 사람 또한 그러하다. 나를 비롯해서, 연구가, 최소한 연구실 생활이, 적성이 아닌 학위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과학을 좋아했고, 잘했다. 그래서 연구 또한 나의 적성이라는 착각을 했다. 이런 착각이 더욱 고약한 까닭은 겪어보지 않으면 적성에 맞는지 아닌지 알 수가 없는데, 그 경험에 따르는 대가가 상당히 크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긴 시간을 바친 뒤에야 비로소 ‘연구는 내 적성이 아니었구나’라는 결론에 이를 수 있었다.
적재, 그리고 적소. 적재인 것도 중요하지만, 적소 또한 능력을 펼치는 데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하다. 이를테면 주변 환경이다. 하나마나한 이야기지만, 나는 종종 동기로부터 ‘네가 우리 연구실에 왔다면 아주 잘했을 텐데’라는 말을 듣곤 했다. 그 연구실의 지도 교수님과 내가 하고자 하는 연구 스타일이 일치한다는 이야기다. 우리 연구실은 전반적으로 나와 잘 맞지 않았다. 성실하고 반듯한 모범생들이 잘 적응할만한 곳이었다. 그에 반해 나는 다소 자유분방한 스타일이었다. 랩미팅에서 연구 가설을 세워서 발표하면 핀잔을 듣곤 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라는 거다. 같은 내용을 다른 교수님이 하시는 수업에서 발표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또 인사이트가 좋다며 엄청 칭찬을 들었다. (그때 그냥 다 그만뒀어야 했다.)
앞에서도 적었지만, 당시 나에게 있어서 내 성과의 지표는 지도 교수님의 평가뿐이었다. 나는 범인도 되지 못하는 모양이었는지, 그때는 숲을 보기는커녕, 숲 속의 나무 한 그루만을 보며 온 세상을 유추하곤 했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서서히 죽여갔다.
타고난 성향, 특히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여러 데이터들을 펼쳐놓고 이리저리 맞춰보고, 빈 조각을 찾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방식이었다면, 교수님이 요구하는 방식은 1번 뒤에 반드시 2번이 와야 했고, 2번을 찾기 전에 3번을 가져오면 안 되었다. 미칠 노릇이었다. 내 방식대로 해서 들고 가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요구하는 방식대로 하려니 잘 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그 어떤 외적인 압박보다 나 자신의 무능을 거듭 확인하고, 확신해 가는 과정이 너무도 괴로웠다. 과학이 좋아서, 생물이 좋아서 연구를 하고 싶다며 진학한 나는 없었다. ‘나도 연구를 잘할 수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그러니 나는 계속 연구를 해야 한다’ 라며 비뚤어진 아집을 키워갔다. 결국 마지막엔 교수님이 직접 부러뜨리셨는데, 당시에는 야속했지만 차라리 잘 되었다 싶다.
졸업을 하고 나는 운이 좋게도 적소를 찾았다. 한 번도 내 자리일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는 곳에서 나는 누구보다 즐겁게, 잘, 일했다. 학위 과정 내내 거듭 확인했던 내 무능함은 이곳에서 사실이 아니었다. 그때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이 능력을 발휘하는 데에 있어서 환경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이 깨달음은 이후에 내가 사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큰 도움이 되었다.
환경에는 사람, 장소, 시간, 분위기 등 다양한 요소들이 포함된다. 우리는 이 모든 요소들을 고려해서 내가 가장 우수한 성과를 낼 수 있는 환경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 앞서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작업이 있다. 바로 ‘나 자신’에 대한 파악이다. 환경적 요소들은 파악의 대상이 아니라 선택의 대상이고, 무엇을 선택할지는 자신을 파악했을 때, 그 답을 얻을 수 있다. 나는 누군가가 적성과 진로에 대해서 고민을 토로하면 이렇게 조언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우선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 어떤 분위기, 어떤 장소, 어떤 환경이 내가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게 하는지’를 고민하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환경과 사람을 파악해서 피하는 것’이다.
타의 평가라는 것이 그렇다. 온전히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여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면,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많다. 과학 관련 대회에 종종 심사를 가곤 하는데, 이 경험들이 쌓일수록 앞서의 생각이 더욱 공고해진다. 심사평을 말할 때 늘 하는 이야기가 있다. 심사의 결과가 참가자 자신의 능력 전체에 대한 평가라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을 꼭 덧붙인다. 심사위원들이 본 건 고작 30여분의 발표와 몇 장의 발표 자료뿐이고, 앞으로 어떻게 발전하고, 어떤 방향으로 성장할지는 전혀 알 수 없다. 그리고 모든 정성적 평가에는 심사자의 취향이 반영된다는 사실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대학원생들 중에, 예전의 나처럼 스스로의 무능함을 거듭 확인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앞서 한 이야기들의 의미를 꼭 기억하고 지도교수의 평가 또한 그렇게 받아들이기를 바란다. 생각해 보면, 일반적으로, 한 사람이 교수라는 직업을 가지게 되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세상은 상당히 좁고 제한적이다. 지도교수가 대학원생을 평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 평가의 정확성에 대한 신뢰도가 얼마나 높을지는 알 수 없다.
참고문헌
USA TODAY | https://www.usatoday.com/story/news/factcheck/2021/04/27/fact-check-einstein-never-said-quote-fish-climbing-trees/7384370002/ | 04/2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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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생물을 좋아했습니다. 연구자가 되는 것이 평생의 꿈이었습니다. 목표로 하던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연구를 계속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던 상황에서 궁여지책으로 시작한 영업직이 의외로 적성에 잘 맞았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방향의 삶을 통해, 학위 기간의 상처를 회복해 가며 창업에까지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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