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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연구실 실전편] 01. 박사 학위 펀딩이 끝났을 때 - 너 내 동료로 남아라!
Bio통신원(송유라)
대부분 유럽 국가들이 그렇듯, 벨기에에서는 박사생들은 교직원이나 다름이 없다. 물론 당연히 학생 신분으로 학교에 재학을 하고는 있지만, 입학 전에 채용 절차를 우선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또 그뿐만인가, 벨기에의 경우에는 박사생들이 최소 재학 연한인 4년간 필요한 인건비를 직접 수주해야 한다. 운이 좋다면 교수님이 따 놓은 인건비에 박사생들을 배정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 경우에도 박사생 신분으로서 인건비를 받을 수 있는 건 계약일을 기준으로 정확히 4년이다.
문제는, 우리 학교의 경우에는 일정 수준 이상의 논문에 1저자로 투고를 한 뒤에 디펜스를 할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이다. 그리고 지금 일하고 있는 연구실의 연구 주제는 절대 4년 안에 끝낼 수 없는 것이 다른 문제다. 그 말인즉슨, 대부분 학생들이 박사 학위 청구를 하기 전에 인건비가 끝난다는 이야기다. 벨기에 법에서는 박사 학생 신분으로 학생을 오래 묶어 두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법이 있는데, 이 법에 속해 있는 조항 중 하나는 “박사생이 4년을 초과하여 박사 학위 펀딩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박사생들이 자신의 계약서가 만료되는 시점이 다가오면, 연구실의 행정원은 상당히 바빠진다. 코로나 때는 예외적으로 학교가 나서서 인건비 계약이 종료된 박사생을 대상으로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직접 계약을 하는 형태로 인건비를 마련해 줬다고 하지만, 그것도 2023년 하반기부터는 해당이 없는 이야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연구실 행정원 선생님은 이런 상황인 학생들의 인원 수가 어느 정도 파악이 되면, 어느 연구비에 누구를 연구원 신분으로 재채용을 할 수 있는지를 계산하게 된다. 물론 우리 학교에 있는 대부분의 연구실은 연구원 신분으로 채용할 수 있는 인원을 연구비가 시작되는 시점부터 최대한 채우기 때문에, 박사생의 재채용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의 경우에는 벨기에 프랑스어권 정부에서 4년간 인건비를 받았고, 2023년 3월에 내 박사 인건비 계약서가 끝나는 경우였다. 유럽 시민권자라면 이런 걱정을 할 이유가 없겠지만, 한국은 유럽연합 회원국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벨기에에 체류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내 체류 자격을 보증해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학교에서 계약서를 미리 작성하여 노동 허가증을 보증해 주는 방법이든, 아니면 일반 기업을 찾아서 박사 수료 신분으로 일을 구하든. 행정원 선생님께 계약서 만료 시점 기준으로 6개월 전에 이 상황에 대해 말을 해 두었고 교수님께서 이 문제에 대해 상관없다고는 했지만,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나서 인사팀에서 convention d’accueil이라고 하는 채용 확정 서류를 보내주기 전 까진 보장이라는 게 전혀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교수님은 하반기 업무를 시작하는 9월 초가 되자마자 날 본인의 오피스로 불렀다. 사실 나의 지도교수님이 이렇게 누군가를 오피스로 불러서 이야기를 하겠다는 건 좀 진지한 이야기를 하겠다는 뜻인데, 교수님이 내려놓은 커피를 나눠 마시며 박사 펀딩 계약이 끝난 뒤에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됐다. 당연히 내 박사생 신분의 계약서가 만료되기 전에는 논문 청구가 어려울 것이라는 건 논문 진행 상황상 확실했고, 교수님께서 일반 기업을 통해 직접 체류 자격을 알아서 구하라고 해도 할 말은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는 펀딩 계약이 종료되면 무엇이 되었든 연구실과의 업무 계약은 종료가 되는 것이 맞다.
교수님께선 커피를 한 모금하시고 운을 떼셨다. 그리고 교수님이 하시는 이야기는 내 예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교수님께선 그동안 비유럽권 국적의 박사생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런 상황과 이런 문제가 벌어질 거라고 생각을 못 하셨다고 대답하셨다. 그도 그럴 게, 유럽연합국 시민권자는 소득이 없어도 타 EU 국가에 체류하는 데 문제가 없었기에 그 누구도 이런 이야기를 사전에 논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뭐 경험이 없으면 그럴 수 있지 싶어,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시며 다음 문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교수님께서 물어본 질문은 “졸업 후에도 벨기에를 떠날 생각이 없다면 졸업할 때까지는 연구원 신분으로 근무하고, 졸업한 다음 날부터는 박사후 과정으로 연구실에 남을래? 그러면 너는 벨기에 체류 자격에 문제가 없고, 나는 굳이 다른 사람을 뽑아서 처음부터 필요한 걸 트레이닝 시킬 필요가 없으니까 결국 모두에게 윈-윈이잖아.”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 말을 듣자마자, 만화로 봤던 원피스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좋은 동료들, 배울 것 많은 박사후 연수생들, 그리고 교수님과 친분이 있는 다른 교수님들의 콜라보를 더한 이 근무 환경이 너무나도 달다 못해 이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멍한 정신을 다시 가다듬고, 교수님에게 나도 그 아이디어가 좋다고 생각한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연구실 행정원 선생님을 불러 이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필요한 서류를 구비해서 인사팀에 미리 보내 두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해 놓으셨다.
물론, 나에게는 좋은 일이다. 벨기에 체류를 위한 비자를 받는 데도 어려움이 없고, 그냥 달라는 서류만 챙겨서 제출하면 체류 자격이 알아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안정적인 월급도. 그리고 박사 논문과 다른 프로젝트들을 마무리하는 데 있어서 연구실에 끝까지 붙어 내 밥그릇을 챙기는 데 있어 가장 확실한 방법이 되었으니까. 또 당장 디펜스를 하고 나가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질 필요가 없어진 것도 정신적으로 여유로워진 데 한몫했다고 볼 수 있게 됐다.
물론 이 일이 다른 동료에게도 일어났으면 참 좋을 일이었을 지도 모른다. 특히 같이 박사를 하고 있는 동료들 중 아직 디펜스를 하지 못했고, 따로 직업을 구할 상황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더욱이 이런 일이 있기를 바랬다. 하지만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들면서 을씨년스러운 날이 계속 되던 어느 한 주, 나와는 반대로 한 명의 박사생과 한 명의 박사후 연구원은 겨울 한파보다 매서운 칼바람을 맞게 되었다는 걸 돌고 돌아 듣게 되었다. 그 상황을 알게 된 뒤로, 나는 이 일을 무작정 좋아할 수 만은 없게 되었다.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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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 같을 줄만 알았던 벨기에 연구실 생활. 학생 신분으로 모든 걸 누리던 때는 좋았겠지만, 더 이상은 아니라면? 연구실 안에서는 박사 수료 후 디펜스만 남겨 둔 연구원으로, 기관 밖에서는 비유럽권 노동자로 살아남는 것 자체가 미션이라는 것을 매콤하게 깨닫고 있다. 사탕 같지만 실제론 도저히 넘길 수 없는 맛을 가진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간식인 dropjes 같은 이 생활. 해외 연구실 생활의 로망에 예방 주사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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