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바이오 관련 동향 뉴스를 신속하게 제공합니다.
뉴스 오피니언
지구 열대화 시대, 유전자 환원주의 넘어 ‘공생진화’ 고민할 때
Bio통신원(김재호)
올여름은 무척이나 더웠다. 필자는 예약을 걸어두긴 했지만 처음으로 에어컨을 틀어놓고 잠을 청했다. 도저히 잠을 잘 수 없는 온도였기 때문이다. 요 며칠 늦더위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젠 지구 온난화가 아닌 지구 열대화 시대(global boiling)에 접어든 것 같다.
지난 1일(금) 저녁 7시, 기후위기를 질타하는 뜻깊은 피아노 공연이 펼쳐졌다. 피아니스트 문용의 일곱 번째 ‘연결공간’ 온택트 도슨트 콘서트였다. 청주시립미술관 분관 오창전시관의 ‘환경을 위한 디자인 행동주의’ 전시와 함께 열린 온라인 공연은 지구 열대화 시대에 기후행동 실천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필자는 한강을 산책하면서 피아노 선율을 감상했다. 그리고 천천히 환경위기를 되새겼다.
‘환경을 위한 디자인 행동주의’ 전시에서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문용의 모습이다.
저 멀리 벽면에 돌처럼 생긴 플라스틱이 보인다. 사진=유영균선지자들의 기후위기 경고와 그 대가
피아니스트 문용은 「호수」, 「기묘하고 낯선 곳」, 「미니멀」 등의 연주곡을 선보였다. 그는 “우리는 그동안 기후위기를 경고한 선지자들을 외면해 왔다”라며 “이제는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공연에선 「뉴 락 표본」(장한나)가 등장했는데, “자연으로 흘러 들어간 플라스틱이 풍화작용을 거쳐 돌의 모양으로 변한 것”이라고 한다. 조금은 섬뜩하기도 했다.
특히 이번 공연은 헌 옷 등을 재활용한 제로 웨이스트의 공연 의상을 활용해 의미를 더했다. 아울러, 특별 출연한 유튜버 ‘미니멀유목민’은 가방 하나로 이어가는 최소의 삶이 가능하다는 걸 전해주었다. 기후위기는 지구라는 환경을 무임승차하는 모든 이의 몫이다. 분명한 건 기존의 철학과 과학으로는 지구 열대화 시대의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극단의 효율성 추구와 무한 경쟁, 그리고 자연에 대한 지배적 사고와 행동은 문제를 더욱 부추길 수밖에 없다.
진화생물학자 린 마굴리스는 기존의 과학에 반하는 공생진화를 주창하고, 가이아 이론을 발전시켰다. 이미지=『린 마굴리스』의 표지
세포 간 공생과 창발의 가능성
공연을 보면서, 최근 읽은 『린 마굴리스』(컴북스캠퍼스)가 떠올랐다. 린 마굴리스(1935∼2011)는 미국의 진화생물학자로서 공생진화론을 주장하고, 가이아 이론을 발전시킨 장본인이다. 더 나아가 마굴리스는 행성 규모 차원에서 딥히스토리를 강조했다. 인류는 지금 린 마굴리스의 주장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제 유전자 환원주의와 자연선택의 신다윈주의를 넘어 세포 간 공생과 창발의 가능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린 마굴리스』는 과학철학과 과학사회학, 과학기술정책학 등을 연구하고 있는 손항구 동국대 다르마칼리지 초빙교수가 썼다. 손 교수는 마굴리스가 신다윈주의에 반하는 공생진화론을 펼쳤다고 적었다. “1970년대까지 핵 속의 염색체 물질이 유전과 진화를 결정한다는 신다윈주의 주장은 확고한 도그마와 다를 바 없었다.” 손 교수는 “이러한 상황에서 핵 바깥의 세포질에 위치한 미토콘드리아나 엽록체 내부의 유전 체계를 연구해 공생의 가능성을 제시한 마굴리스의 주장은 신다윈주의의 아성에 도전하는 반역과도 같았다”라며 “모든 것을 유전자의 관점에서 설명하려는 환원주의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 신다윈주의를 비난하고 조롱했다”라고 강조했다.
1981년 마굴리스는 「세포 진화에서의 공생」 논문을 통해, “개체 간 합병과 융합을 통한 대규모 유전자 변이가 진화를 추동해 왔다”라는 공생진화론을 주장했다. 이에 대한 좀 더 쉬운 설명은 책 속의 다음 문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마굴리스가 생명의 최소 단위를 유전자가 아닌 세포로 본 것은 유전자에는 형용사적 특질인 상태 정보만 있을 뿐 배치의 선과 속도를 결정지을 에너지와 감응에 대한 정보가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생명의 도약을 가능케 하는 탈주와 가로지르기의 동사적 능력은 유전자 이동, 세포 융합, 공생의 행위성을 통해서만 드러날 수 있다.”
손 교수에 따르면, ‘세포내공생이론’은 “엽록체와 미토콘드리아의 DNA가 핵 속의 DNA와 다르다는 확고한 증거가 제시되면서 기원이 다른 개체들이 세포 내부로 포획되어 공생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는 공생 발생 주장이 주류 학계에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라고 한다. 아울러, 손 교수는 “한 세포 안에 위치한 엽록체 DNA와 세포핵 DNA의 염기서열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이 1970년대 초 조류(algae)에서 확인되었다”라며 “2005년에는 미토콘드리아의 1만 4027개 염기 서열이 모두 밝혀지며 미토콘드리아 게놈이 박테리아 세균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라고 적었다.
진핵생물인 회조식물의 엽록체에는 세포벽을 형성하는 펩티도글리칸 층이 있다. 이러한 사실은 회조식물의 엽록체가 시아노박테리아로부터 내부 공생을 했다는 증거이다. 이미지=위키피디아
공생의 장내 미생물 이식과 후성유전학
마굴리스는 공생적 관점의 새로운 세균론도 주창했다. “무균 상태는 건강한 것이고 세균에 감염된 상태는 그 반대라는 세균론 교리를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손 교수는 “당시 세균이 숙주 조직에 유익한 역할을 하거나 새로운 계통 형성에 기여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기존의 세균론과 양립하기 어려운 새로운 패러다임이었다”라며 “마굴리스의 새로운 세균론에서는 포유류도 미생물과 상호 연결된다”라며 “새로 태어난 새끼는 어미의 몸속에서 전달된 미생물과 마이크로바이옴을 구성해 낯선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통합적 존재로 설명된다”라고 밝혔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장내 미생물 이식(FMT)이나 후성유전학 연구도 이러한 공생적 관점이 작용한 것이다.
손 교수는 『린 마굴리스』를 통해 새로운 스토리텔링과 반역의 과학을 제안한다. 기존의 서사와 순응하는 과학으로는 현재의 기후재난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뜻이다. 오늘도 무척이나 덥다. 이제 이상한 기후는 전혀 이상하지 않은 지구 열대화 시대이다. 과연 인류는 어떠한 과학적 사고와 실천을 이어가야 할지 고민이 깊어진다.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기사 오류 신고하기]
학부에서 수학을,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학술기자, 탐사보도 연구원 등으로 일했다. 지금은 과학커뮤니케이션 차원에서 자유롭게 글을 쓰고 있다. 환경과 생태의 차원에서 과학철학에 대한 고민이 많고, 영화와 연극, 음악을 좋아한다. <동아일보>에 '과학에세이', <포스코투데이>에 '과학의 발견'을 연재한 바 있으며, '학술문화연구소(http://blog.naver.com/acacullab)'를 운영하고 있다. 《레이첼 카슨과 침묵의 봄》,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지배한다》,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성공 방정식》, 《다시 과학을 생각한다》(공저), 《인공지능, 인간을 유혹하다》(공저), 《자유롭게 김광석 이야기》 등을 집필하였다.
다른 연재기사 보기
전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