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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원숭이가 읽어주는 오늘의 과학기술] CRISPR와 고지혈증 '백신'
Bio통신원(여원)
저는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편입니다. 학부와 대학원을 다닐 때는 학생건강검진을 매년 받았고 졸업한 이후에는 직장에서 종합검진을 받고 있는데, 항상 저밀도 지질단백질(LDL) 수치가 동년배 대비 높게 나왔습니다. 알고 보니 부모님도 LDL 수치가 높아서 스타틴을 복용하고 계셨습니다. 약간의 가족력인 셈이지요. 저는 아직 젊고 운동량도 많은 편이라 병원에서도 당장 스타틴을 복용할 필요는 없다고 했지만 건강검진 때마다 수치가 나빠지지는 않는지 관찰해 보기로 했고요.
고지혈증은 혈중 지방 농도가 높은 상태를 말하는데, 일반적으로는 LDL 수치가 높은 이상지질혈증을 가리킵니다. 현대에 고지혈증은 아주 흔한 질환입니다. 2020년 기준으로 한국 성인 네 명 중 한 명이 콜레스테롤 수치에 이상이 있다고 해요.[1] LDL 수치는 관상동맥질환의 주요 위험인자로 꼽히고, 심장질환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망 원인 중 1~2위를 다투고 있습니다. 높은 LDL 수치 자체가 사망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긴 하지만 심장질환을 거쳐서 간접적으로 상당히 많은 사망에 기여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자연히 스타틴처럼 콜레스테롤 수치를 조절하는 약제에 대한 수요도 높습니다. 스타틴은 미국에서만 4천만 명 이상의 환자에게 처방되고 있다고 해요. 2021년 스타틴의 시장 규모는 약 150억 달러 수준으로 추산되며, 2023년에는 220억 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됩니다.[2]
MIT에서 출판하는 격월간지인 테크놀로지 리뷰(Technology Review)에서는 매년 초 “올해의 10대 혁신”을 발표합니다. 2023년 1월 선정된 10대 혁신 중 첫 번째가 바로 LDL과 관련된 내용이었는데요, CRISPR를 이용한 유전성 고콜레스테롤혈증의 치료였습니다.[3] CRISPR를 사람을 치료하는 데 사용한 최초의 사례는 2020년의 겸성적혈구빈혈증 치료[4]였고, 이후로도 선천성 흑암시(Leber congenital amaurosis) 치료[5]에도 사용되었지요. 이번에 소개할 고콜레스테롤혈증 치료 연구는 미국의 바이오 기업인 버브 테라퓨틱스(Verve Therapeutics)에서 진행 중인 연구로, 최근 뉴질랜드와 영국에서 임상시험 단계에 진입하기도 했습니다.
고지혈증의 원인은 다양합니다. 최근 2~30년 동안 세계적으로 고지혈증이 증가한 원인은 식습관 변화와 운동 부족이라고 보기는 합니다만, 유전적으로 간에서 콜레스테롤 대사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가족성 고콜레스테롤혈증 환자도 국내에 10만 명가량 있다고 추산됩니다.[6] 가족성 고콜레스테롤혈증 환자의 경우 어린 시절부터 LDL 수치가 높아지기 때문에 특히 위험합니다. 혈액검사를 정기적으로 받지 않는 유소년·청년기에 고콜레스테롤혈증을 진단받지 못하여 관리를 하지 못한 탓에 30대 이전에 심장마비를 겪는 경우도 있다고 해요.
고지혈증을 진단받은 환자에게는 우선 생활습관 개선을 권유하고, 여전히 LDL 농도가 관리되지 않는다면 보통 스타틴 등의 약물치료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사회적 여건이 바뀌지 않는 와중에 개인이 생활습관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것은 매우 힘들지요. 정기적으로 처방약을 받아서 꾸준히 복용하는 것 역시 일정한 노력이 필요한 일이고요. 때문에 CRISPR를 사용하여 혈중 LDL 농도를 반영구적으로 낮추는 치료법이 제안된 것입니다.
이번 CRISPR 연구의 목표는 1번 염색체에 위치한 PCSK9 유전자입니다.[6] PCSK9은 LDL 수용체의 재사용에 관여하여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를 조절하는 동명의 단백질에 관한 유전자입니다. PCSK9 억제제는 기존에도 고지혈증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었는데요, 스타틴 등 일반적인 치료제를 허용 최대 용량으로 사용해도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가 낮아지지 않는 위험군 환자들에게만 사용하는 최후의 수단이었습니다. 현재까지 출시된 PCSK9 억제제는 모두 주사제 방식이라 투약이 불편한 편이기도 했고요.
버브의 CRISPR 치료는 단일염기 편집 기술(base editing)을 사용하여 PCSK9 유전자의 염기 한 개를 편집하여 불활성화시키는 것이 목적입니다. 유전자가 불활성화되면 PCSK9 단백질이 합성되는 양도 줄어듭니다. PCSK9 단백질의 양이 줄어들면 세포 내에서 LDL 수용체가 재사용되는 효과가 나고, 자연히 세포막의 LDL 수용체 양이 늘어나면서 혈중 LDL 농도가 떨어지는 효과를 내는데요, 쥐와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는 수 일 이내에 콜레스테롤 농도가 50~60% 정도 낮아지는 효과가 관찰되었습니다.[7] 유전자 편집이라는 특성상 1년 이상 추적관찰하는 동안 콜레스테롤 농도는 일정하게 유지되었다고 합니다.
재미있게도, CRISPR 치료는 코로나19 백신과 관련이 깊습니다. CRISPR를 목표 기관으로 전달하기 위해 mRNA 백신이 쓰이고 있기 때문이에요. CRISPR 시스템을 직접 기관에 주사하는 게 아니라 단백질 서열을 기록한 RNA를 지질나노입자에 담아 주사하고, 이 RNA가 목표 기관에서 번역되어 DNA 서열을 편집하는 방식입니다. 지질나노입자는 간에서 처리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LDL 대사 이상처럼 간이 주로 관여하는 질환을 타깃 하는 데 특히 효과적입니다.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mRNA 백신 기술이 크게 발전하여 대규모 양산도 가능하게 되었지요. 이 기술이 CRISPR 치료법으로 횡전개되면서 당초에 기대한 것 이상의 발전을 하게 된 셈입니다.
버브에서는 자사의 이번 임상시험이 장기적으로는 고지혈증 ‘백신’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도 이야기합니다. 심장질환을 이미 겪었거나 가족성 고콜레스테롤혈증 환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저처럼 LDL 농도가 정상치보다 살짝 높은 사람들에게도 예방적으로 PCSK9를 불활성화하여 LDL 농도를 낮출 수 있다는 거죠. 실제로 LDL 농도를 다루는 각국 심장학회의 슬로건 중 하나가 “낮을수록 좋다(the lower, the better)”이기도 합니다. 유전자 편집인만큼 1회 접종으로 반영구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고, 상황에 따라 ‘부스터 샷’을 접종할 수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유전자 편집이라는 기술의 특성상 광범위한 예방접종에는 조심스러워하는 의견도 많습니다. 현재 뉴질랜드에서 임상시험이 진행 중인 환자 40명의 경우는 모두 가족성 고콜레스테롤혈증 환자입니다. 심장질환을 이미 겪은 환자들도 많고, 증상 자체가 일반적인 고지혈증 환자에 비해 심한 경우이지요. 그러나 최후의 치료법이 아닌 예방책으로써 대규모 유전자 편집을 수행하는 데에는 아직 학계의 합의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특히 유전자 편집은 되돌리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생활습관 개선이나 스타틴 복용 등으로 증상을 개선할 여지가 있는 상황에서 비가역적인 치료법을 적용하기에는 아직 장기적인 영향을 평가한 자료가 부족하긴 하니까요.
*참고 자료
[1] 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 이상지질혈증 팩트 시트 2022
[2] Persistence Market Research, Statins Market Size to Hit US$ 22 Billion By 2032, Owing To Increasing Investments in Healthcare Sector Globally (Mar. 02, 2023)
[3] MIT Technology Review/Jessica Hamzelou, CRISPR for high cholesterol: 10 Breakthrough Technologies 2023 (Jan. 09, 2023).
[4] NPR/Rob Stein, Sickle cell patient's success with gene editing raises hopes and questions (Mar. 16, 2023).
[5] NPR/Rob Stein, A Gene-Editing Experiment Let These Patients With Vision Loss See Color Again (Sep. 29, 2021).
[6] MIT Technology Review/Antonio Regalado, Edits to a cholesterol gene could stop the biggest killer on earth (Jul. 12, 2022).
[7] R. G. Lee et al., Circulation 147, 242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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