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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실험실 이야기] 실험을 대하는 마음 가짐
Bio통신원(hbond)
저의 글은 정확한 지식이나 권고를 드리기 위해 쓰인 것이 아닙니다. 제가 연구실에서 경험한 것을 여러분과 글로 나누고, 일에 매진하시는 우리 연구자들에게 잠깐의 피식~하는 웃음 혹은 잠깐의 생각, 그 이상은 바라지 않습니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시면(3초 이상) 안 그래도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여러분의 뇌세포가 안 좋아지니, 가볍게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Pixabay
학과 사무실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아이스크림 파티를 하니까 와서 먹으라고 합니다. 여름이 시작할 즈음이면, NMR 담당 교수님이 주최하는 연중행사입니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체리 타르트(tart)를 올렸더니 생각보다 맛있는 아이스크림이 되었습니다. 한참을 먹고 있는데, 제 옆자리에 앉은 총각이 말없이 아이스크림만 먹고 있습니다. "너는 어느 연구실에서 일하니?" 제가 물으니, NMR 교수님 밑에서 일하는데, 자신은 대학생이고, 여름 리서치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오늘이 첫날이라고 합니다. 서로 통성명을 하니, 제게 무슨 일을 하냐고 묻습니다. "나는 항암효과가 있는 화합물을 합성하고, 그에 따른 생화학 실험들을 하고, 동물실험도 하고, 타깃 단백질을 분리하는 일을 한다."라고 말해주니 매우 흥미롭게 여기며 대화를 이어 나갔습니다. 그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서 저는, 과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새로움에 대한 강력한 호기심과 관심을 유지해야 하는 절대 필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면 그 일이 그 일 같고, 이 일은 이 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초심을 잃게 됩니다. 그래도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다시금 마음을 바로잡게 됩니다.
우리 연구실의 대학원 학생이 제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다양한 온도에서 화합물의 NMR 스펙트럼을 얻고 싶은데 도와줄 수 있냐고 묻습니다. '당연히 도와야지.' 대답을 하고는 함께 일을 했습니다. 보통 새로운, 약물 효과가 있는 화합물을 합성하면, 논문 심판(referee)들은 다양한 온도에서 화합물이 안정한 지를 보기 원합니다. 실온에서 시작해서 점점 온도를 올려가면서 NMR 스펙트럼을 찍고, 비교하여, 화합물의 구조적 변화를 감지합니다. 구조가 변하면 덜 안정한 것이고, 변하지 않으면 안정합니다. 대략 1시간도 안 되는 시간에 실험은 끝났고, 논문에 실은 수 있는 품질의 데이터를 얻었습니다. 대학원생이 말하길, "생각보다 빨리 끝나는구나"라고 합니다. 하지만, 실험을 하는 사람들은 다 압니다. 가끔은 그런 날도 있다는 것을요. 생각보다, 일이 쉽게 끝나고, 결과도 좋을 수 있다는 것을 말이죠. 하지만 그것은 그냥 '운이 좋은 날’일 뿐입니다. 다양한 실험을 하다 보면 그런 날도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날도 있습니다.
바로 그날 오후였습니다. 오전에 성공적으로 NMR 실험을 마치고, 점심시간이 지나서 수의학과에서 일하는 어떤 박사님이 제가 일하는 연구실을 방문하셨습니다. 한 달 전부터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셨던 분입니다. 동물에게서 채취한 혈청에서 어떤 성분을 보고 싶은 신데, 그 성분만 분리하길 바라셨습니다. 저에겐 생소한 일이어서, 그 프로젝트에 대해서 상세한 설명을 요청하고, 질문하여, 대략의 내용을 이해한 뒤, 새로운 실험 방법을(추가로) 그 자리에서 제안하니, 좋다고 하십니다. 혈청을 받아서 분석을 하는데, 이상하게도 LCMS가 협조를 안 합니다. 웬만하면 쓸 만한 결과가 나와줘야 하는데, 봉우리(peak)의 위치가 자외선(uv) 스펙트럼의, 너무 가장자리에서 발견이 됩니다. 다시 매개변수들(parameters)을 조정하고 기계를 돌리니, 갑자기 이번엔 용매가 부족하다고 합니다. 용매를 보충하려고 하니,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이동상 첨가제(mobile phase additive)가 똑 떨어진 것입니다. 옆방에서 빌리려고 하니, 공교롭게도 다들 없습니다. 주문하려고 하니, 회계연도의 끝자락에 걸렸고, 우리 연구실의 생화학 실험을 하는 친구들이 돈을 너무 많이 써서 다음 회기까지 주문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정말, '앞에는 강물, 뒤에는 철조망'의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냥 다른 첨가제를 사용하는 것으로 하고 실험을 다시 돌리니, 이번에는 소프트웨어가 오작동이 나서 파일이 엉망입니다. 연구를 하시는 분들은 이런 상황을 이해하실 것입니다. 이쯤 되면 화도 나지 않습니다. 그냥 자신을 돌아봅니다. '혹시, 내가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는데 동참한 적은 없는지,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쁜 짓을 일삼지는 않았는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일이 없는지..' 나의 업보(karma)가 아닌지를 조용히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음을 진정시키고, 하늘을 향해 진심으로 마음으로 절을 올리고, 용서를 구한 뒤, 다시 기계 앞에서 섭니다. 정말 이때의 마음은 고/요/함/,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겸손함을 배웁니다. '정말 이 세상에는 당연한 것이 없다. 모든 것이 우주의 섭리이다. 인간은 나약하고 보잘것이 없다..' 등등의 명상의 마음으로 살며시 기계를 작동시킵니다.
이번에는 기계는 올바로 작동을 하는데 결과가 별로입니다. 또 가만히 모니터와 대화를 시도합니다. '네가 원하는 게 뭐냐?', '내가 잘못했다, 다음엔 잘할게', '제 정성이 부족했습니다'..., 문득 모니터에 살며시 묻은 먼지를 발견하고는 그동안 나의 무심함을 자책하며 깨끗하게 닦아줍니다. 그리고 어떤 계시를 기다립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러는 사이, 제 마음에 우주의 음성이 들립니다. '용매를 바꿔서 용리력의 변화를 주어라.' 마치 제가 보리수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뭐 그런 느낌입니다. 매일같이 LCMS를 사용하시는 분들이 이 글을 보시면 저의 우매함에 혀을 차실지도 모르겠지만, 매일 같이 다양한 일을 하다 보니 이런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실험을 하다 보면 겸손함을 배웁니다. 정말이지 당연한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제가, 실험을 할 때. 겸손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P.S. 이 글은 지난여름에 작성되어서 배경이 여름입니다.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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