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백질 합성 ‘백업 시스템’ 규명으로 재생의학·항암 연구 전기 마련
국내 연구진이 세포가 영양 부족이나 산소 결핍 등 극한의 스트레스 상황에 처했을 때도 줄기세포가 어떻게 단백질 합성을 유지하며 끊임없이 분열할 수 있는지 그 비밀을 풀었다. 이번 연구는 줄기세포 생물학의 기초 지식을 확장하는 동시에, 암세포의 생존 전략을 저지할 새로운 항암 치료 기술 개발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한국연구재단(이사장 홍원화)은 장지원 교수(포항공과대학교)와 김윤기 교수(한국과학기술원) 공동 연구팀이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줄기세포가 계속해서 분열할 수 있게 하는 새로운 단백질 번역* 메커니즘을 규명했다고 밝혔다.
* 단백질 번역(Translation): 세포 내 설계도인 mRNA의 유전 정보를 읽어 실제 단백질을 합성하는 과정.
이번 연구 성과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추진하는 개인연구사업의 지원으로 수행됐으며, 생명과학 분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즈(Science Advances)’에 4월 30일 게재됐다.
일반적인 세포는 스트레스 환경에 노출되면 에너지를 보존하기 위해 단백질 생산을 급격히 줄이고 성장을 멈춘다. 하지만 줄기세포는 조직의 유지와 회복을 위해 어떠한 상황에서도 생존하고 증식해야 하는 특수한 임무를 가진다.
그동안 줄기세포가 열악한 환경에서도 기능을 유지하는 구체적인 원리는 베일에 싸여 있었다. 연구팀은 줄기세포만이 가진 ‘특별한 단백질 제조 방식’이 존재할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연구에 착수했다. 이는 재생의학의 안정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스트레스 환경에서 무한 증식하는 암세포의 원리를 파악하는 데도 필수적인 과정이다.
인간 배아줄기세포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스트레스 상황에서 평소 가동되던 ‘eIF4E’* 중심의 단백질 생산 경로가 차단되면, 줄기세포는 즉시 ‘CBC’**라는 단백질 복합체와 ‘eIF2A’* 인자를 이용한 대체 경로를 활성화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특히 이 백업 시스템을 통해 세포 증식의 핵심 단백질인 ‘YAP’***이 지속적으로 생산되면서 줄기세포는 멈춤 없이 분열할 수 있었다. 위기 상황에서 가동되는 이 대체 경로는 세포의 생존을 책임지는 일종의 비상 발전기 역할을 한다.
* eIF4E/eIF2A: 단백질 합성을 시작할 때 mRNA에 결합하여 과정을 돕는 번역 개시 인자들.
** CBC(Cap-binding complex): mRNA의 시작 부분(캡)에 결합하여 단백질 합성과 RNA 가공을 돕는 단백질 복합체.
*** YAP 단백질: 세포의 증식과 장기의 크기를 조절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신호 전달 단백질.
이번 연구는 줄기세포의 독특한 생존 전략을 규명함으로써 재생의학 및 세포 치료 기술의 신뢰도를 높였으며, 암세포가 악조건 속에서도 증식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
장지원 교수는 “이번 연구는 세포가 상황에 따라 단백질 생산 방식을 전환한다는 사실을 규명한 데 의의가 있다”며, “향후 이 번역 경로를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기술을 통해 줄기세포를 활용한 재생의학은 물론, 암세포의 성장을 억제하는 새로운 항암 치료 전략 개발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주요내용 설명
<작성 : 포항공과대학교 장지원 부교수>
논문명 The nuclear cap-binding complex safeguards stress-resistant protein synthesis and proliferation of stem cells
저널명 Science Advances
키워드 Integrated Stress Response(통합 스트레스 반응), Human embryonic stem cell(인간 배아줄기세포), 캡 결합 단백질(cap binding protein), eIF2A, YAP
DOI 10.1126/sciadv.aea6630
저 자 장지원 교수(교신저자/포항공과대학교), 김윤기 교수(교신저자/한국과학기술원), 오세윤 (제1저자/포항공과대학교), 장지윤 (제1저자/한국과학기술원),
1. 연구의 필요성
○ 배아 발생과정의 줄기세포는 빠르게 증식하며 자신을 유지하는 동시에,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 반응해 다양한 세포 운명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줄기세포는 화학적, 기계적 스트레스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며, 이러한 스트레스는 세포 증식과 분화를 조절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 세포는 스트레스 환경에서 통합 스트레스 반응(integrated stress response, ISR)을 활성화하여 전반적인 단백질 합성을 억제하고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한다. 이 과정에서 번역 개시 인자인 eIF2α의 인산화가 유도되며, 대부분의 단백질 합성이 중단되고 세포 주기가 정지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인간 배아줄기세포(human embryonic stem cells, hESC)는 이러한 스트레스 반응이 활성화된 상태에서도 지속적인 증식과 자가재생(self-renewal)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기존 패러다임으로 설명되지 않는 특징을 보인다.
○ 기존 연구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일부 유전자들이 선택적으로 번역된다는 사실을 제시하였으나, 특정 단백질 합성이 어떻게 유지되는지에 대한 분자적 기전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2. 연구내용
○ 인간 배아줄기세포에서는 통합 스트레스 반응(ISR)이 자연적으로 활성화되어 있으며, 이에 따라 eIF2α가 비활성화되고 전반적인 단백질 번역이 억제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배아줄기세포는 지속적인 세포분열과 증식을 유지하며, 이 과정에서 eIF2α를 기능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 번역 개시 인자인 eIF2A의 발현이 보상적으로 증가함을 발견하였다. 또한 eIF2A 매개 번역이 인간 배아줄기세포의 자기재생능력(self-renewal)과 다분화 능력(pluripotency) 유지에 필수적임을 규명하였다. (*eIF2α와 eIF2A는 서로 다른 단백질임)
○ 세포 내에서 mRNA가 생성되면 초기에는 5′-캡(5′-cap)에 cap-binding complex(CBC)가 결합되어 있으며, 이후 eIF4E로 교체된다. 흥미롭게도 eIF2A는 eIF4E가 아닌 CBC에 결합된 mRNA의 번역을 선택적으로 조절함을 확인하였다.
○ 스트레스 조건에서 eIF4E에 결합된 mRNA의 번역은 억제되는 반면, CBC에 결합된 mRNA는 eIF2A를 통해 선택적으로 번역됨을 다양한 생화학적 분석, polysome profiling, ribo-seq 등을 통해 입증하였다.
○ Ribo-seq 및 CLIP-seq 분석을 통해 인간 배아줄기세포에서 eIF2A에 의해 번역이 조절되는 표적 유전자들을 규명하였으며, 특히 세포주기 조절 유전자들이 eIF2A 의존적 번역의 주요 표적임을 확인하였다.
○ 특히 줄기세포 인자이자 세포 증식의 핵심 조절 인자인 yes-associated protein(YAP)이 eIF2A의 주요 표적임을 밝혔으며, eIF2A가 YAP mRNA의 5′UTR에 존재하는 GC-rich motif에 결합하여 스트레스 조건에서도 YAP 단백질의 번역을 유지함을 규명하였다. 이를 통해 인간 배아줄기세포가 스트레스 환경에서도 지속적으로 분열하고 증식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5‘UTR: 5’ untranslated region.)
3. 연구성과/기대효과
○ 본 연구는 기존의 eIF4E 중심 번역 조절 모델을 넘어, 스트레스 환경에서 작동하는 새로운 번역 경로(CBC-eIF2A 축)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학문적 의의가 크다. 이를 통해 세포가 극한 환경에서도 생존과 증식을 유지하는 근본적인 원리를 이해할 수 있다.
○ 줄기세포 생물학 발전: 스트레스 환경에서도 줄기세포가 증식할 수 있는 분자적 기반을 제시함으로써, 줄기세포의 유지 및 분화 조절 메커니즘 이해뿐만 아니라 새로운 줄기세포 배양 기술 개발에 기여한다.
○ 질병 및 암 연구로의 확장: 종양 미세환경에서도 저산소, 영양 결핍 등 스트레스가 존재하는 만큼, 본 연구에서 제시한 번역 조절 기전은 암세포의 스트레스 적응 및 증식 메커니즘 이해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
○ 재생의학 및 치료 전략 개발: 스트레스 조건에서 선택적 단백질 합성을 조절하는 기술적 기반을 제공함으로써, 향후 줄기세포 기반 치료 및 조직 재생 전략 개발에 활용될 수 있다.
○ 결론적으로, 본 연구는 스트레스 환경에서의 선택적 번역 조절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며, 기초 생명과학뿐 아니라 의생명 분야 전반에 걸쳐 중요한 파급효과를 가질 것으로 기대된다.

(그림1) 인간 배아줄기세포에서 대체 번역개시인자 eIF2A의 발현 양상
인간 배아줄기세포 콜로니의 중심부에서는 통합 스트레스 반응(ISR)이 활성화되어 전반적인 단백질 번역(puromycin signal)이 감소되어 있다. 이와 동시에 해당 부위에서 대체 번역 개시 인자인 eIF2A의 발현이 유의미하게 증가함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스트레스 조건에서 eIF2A의 보상적 발현 증가는 줄기세포의 분열과 증식을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림설명 및 그림제공 : 포항공과대학교 장지원 부교수
(그림2) 인간 배아줄기세포에서 일어나는 스트레스 저항성 단백질 번역 메커니즘 통합 스트레스 반응에 의해 eIF4E에 결합된 mRNA의 번역이 억제된 상황에서, CBC(CBP20/80)에 결합된 mRNA는 대체 번역 개시 인자인 eIF2A를 이용해 YAP 단백질의 번역을 유도한다. 이를 통해 줄기세포는 스트레스 환경에서도 지속적인 분열과 증식을 유지할 수 있다. 그림설명 및 그림제공: 포항공과대학교 장지원 부교수
연구 이야기
<작성 : 포항공과대학교 장지원 부교수>
□ 연구를 시작한 계기나 배경은?
장지원 교수는 eIF2A라는 스트레스 저항성 번역 개시 인자의 기능을 인간 배아줄기세포에서 연구 중이었고, 김윤기 교수는 eIF2A가 어떻게 스트레스 상황에서 번역을 수행하는지에 대한 분자적 메커니즘을 독립적으로 연구 중이었다. 우연한 자리에서 현재 진행 중이던 연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에 이와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와 같은 공동연구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 이번 성과, 무엇이 다른가?
세포가 스트레스 상황에서 어떻게 특정 단백질을 선택적으로 번역하는가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알려진 바가 매우 적은 상황이다. 이번 성과에서는 스트레스 저항성을 보이는 새로운 단백질 번역 기전을 찾았고, 이 기전을 통해 줄기세포가 스트레스 상황에서 계속 분열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