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피는 나팔꽃, 밤이 되면 향기를 내뿜는 꽃들은 마치 시간을 아는 듯하다. KAIST 연구팀이 식물이 곤충 행동에 맞춰 ‘생체시계’를 통해 꽃의 개화와 향기 방출 시점을 정교하게 조절하는 원리를 분자 수준에서 밝혀냈다. 이번 연구는 개화 시간와 향기 조절 기술로의 확장 가능성을 제시한다.
KAIST(총장 이광형)는 생명과학과 김상규 교수 연구팀이 식물 생체시계의 조절을 받는 유전자가 꽃이 열리는 시간과 향기 방출의 일주기 리듬을 통합적으로 조절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27일 밝혔다.
식물은 하루 주기에 맞춰 스스로 시간을 인식하는 ‘생체시계’에 의해 생리 현상이 조절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꽃이 실제로 어떤 과정을 거쳐 열리며, 이 과정이 생체시계 유전자와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밤에 꽃을 활짝 열고 향기를 방출하는 식물인 ‘코요테담배(Nicotiana attenuata)’를 모델로 연구를 진행했다. 코요테담배는 미국 유타주 사막 지역에 자생하는 식물로, 밤에 활동하는 꽃가루 전달자를 유인하기 위해 야간에 꽃을 열고 향기를 방출하는 특징을 가진다.
이러한 현상에 착안해 생물학자 린네는 서로 다른 시간에 꽃이 피고 지는 식물들을 한곳에 모으면 꽃의 개화 상태만으로도 시간을 알 수 있을 것이라 보고, ‘꽃 시계(flower clock)’를 제안하기도 했다.
기존 연구는 꽃의 발달과 관련된 유전자 발현 변화를 분석하는 데 주로 초점이 맞춰져 있었으나, 실제 꽃이 열리는 현상과 이를 조절하는 유전자 기능을 직접 규명한 연구는 제한적이었다. 연구팀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생체시계 유전자에 변이가 있는 돌연변이체를 분석하고, 분자생물학적 접근을 통해 꽃의 개화와 향기 방출이 어떻게 조절되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연구팀은 특정 생체시계 유전자가 꽃이 열리는 시점과 향기 방출의 리듬을 조절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는 식물이 자신의 생존과 번식에 가장 유리한 시간대에 꽃을 열고 수분 매개자를 유인하도록 생체시계를 정교하게 활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연구는 꽃의 개화와 향기 방출을 조절하는 유전자 네트워크를 생체시계의 관점에서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아울러 식물의 시간 조절 전략과 생태적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김상규 교수는 “이번 연구는 식물의 생체시계가 꽃의 개화와 향기 방출 시간을 어떻게 연결해 조절하는지에 대한 단서를 제시했다”며 “식물이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번식 전략을 최적화하는 원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초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생명과학과 최유리 박사, 강문영 박사가 제1저자로 참여한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더 플랜트 셀(The Plant Cell)에 1월 29일 자 게재됐다.
※논문명: CONSTANS-LIKE 5 facilitates flower opening and scent biosynthesis in Solanaceae
https://doi.org/10.1093/plcell/koag016 한편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합성생물학 핵심기술개발사업, 중견연구자지원사업 및 농촌진흥청 차세대농작물신육종기술개발사업의 지원을 받았다.
□ 연구개요1. 연구 배경
꽃의 개화 시간과 향기 방출은 식물 번식의 핵심 전략
꽃이 언제 피고 언제 향기를 내는지는 식물의 번식 성공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많은 식물들은 특정 시간대에 활동하는 꽃가루 전달자(pollinator)에 맞추어 꽃을 열고 향기를 방출한다. 예를 들어 어떤 식물은 낮에 활동하는 벌을 유인하기 위해 낮에 꽃을 피우고, 다른 식물은 밤에 활동하는 나방을 유인하기 위해 밤에 꽃을 연다. 이러한 현상은 식물이 내부에 가지고 있는 생체 시계(circadian clock)에 의해 정교하게 조절된다.
꽃의 일주기 리듬을 조절하는 분자 메커니즘은 아직 제한적으로 이해됨
식물의 생체 시계는 잎의 광합성, 줄기 성장, 잎의 움직임 등 다양한 생리 현상을 조절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연구에서는 꽃의 개화 시간과 향기 방출 역시 이러한 생체 시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실제로 야생 담배(Nicotiana attenuata)에서는 LHY나 ZTL과 같은 시계 유전자가 꽃의 열리는 시기와 향기 방출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가 보고된 바 있다. 그러나 꽃이 실제로 열리는 과정과 향기 생합성이 어떤 유전자 네트워크에 의해 연결되어 있는지는 거의 밝혀지지 않았다.
꽃의 움직임과 향기 생합성을 동시에 조절하는 핵심 유전자에 대한 필요성
꽃의 개화와 향기 방출은 서로 다른 생리 현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꽃가루 전달자를 효과적으로 유인하기 위해 동시에 조절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 두 과정이 어떤 공통된 조절 인자에 의해 연결되는지를 밝히는 것은 식물의 번식 전략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연구 질문이다. 특히 이러한 조절 메커니즘을 이해하면, 꽃의 개화 시간이나 향기 방출을 조절하는 유전적 원리를 밝히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
2. 연구 내용
꽃의 일주기 리듬을 조절하는 핵심 유전자 COL5 발견
연구팀은 야생 담배(Nicotiana attenuata)의 꽃이 하루 동안 서로 다른 세 가지 리듬을 가진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 식물의 꽃은 일정한 시간에 꽃이 열리고 닫히는 개화 리듬, 향기 물질을 방출하는 향기 방출 리듬, 그리고 꽃이 수직상하 운동하는 리듬을 동시에 나타낸다. 연구진은 이러한 현상을 조절하는 유전자를 찾기 위해 전사인자 후보군을 분석하였고, 그 결과 CONSTANS-LIKE 계열의 유전자 중 하나인 COL5가 꽃의 일주기 리듬을 조절하는 핵심 인자임을 발견하였다.
유전자 기능 분석을 통한 꽃 개화 및 향기 생합성 조절 메커니즘 규명
연구팀은 COL5 유전자의 기능을 확인하기 위해 유전자 발현을 억제하거나 변형한 식물을 제작하여 분석하였다. 그 결과 COL5의 기능이 사라진 식물에서는 꽃이 정상적으로 완전히 열리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났으며, 동시에 꽃 향기를 구성하는 주요 물질인 벤질아세톤(benzylacetone, BA)의 합성도 크게 감소하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결과는 COL5가 꽃의 물리적인 개화 과정뿐만 아니라 향기 물질의 생합성까지 함께 특정 시간에 조절하는 중요한 전자 조절 유전자임을 보여준다.
꽃의 움직임과 향기 생합성을 연결하는 전사 조절 네트워크 제시
추가적인 유전자 발현 분석을 통해 연구진은 COL5가 향기 물질의 생합성에 관여하는 핵심 효소 유전자들의 발현을 조절하여 향기 방출 시점을 조정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꽃의 개화 리듬과 향기 생합성이 서로 독립적인 현상이 아니라 공통된 유전자 조절 네트워크에 의해 통합적으로 제어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양한 식물 종에서의 기능 검증을 통한 보편성 확인
연구팀은 이러한 유전자 기능이 특정 식물에만 국한된 현상인지 확인하기 위해 다른 식물 종에서도 유사 유전자의 기능을 분석하였다. 그 결과 페튜니아(Petunia axillaris)에서도 COL5와 유사한 유전자가 꽃의 개화 시기와 향기 방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는 COL5 계열 유전자가 꽃의 리듬과 향기 방출을 조절하는 보편적인 유전자 네트워크의 일부일 가능성을 보여준다.
3. 기대효과
꽃의 개화 리듬과 향기 방출을 연결하는 새로운 분자 메커니즘 제시
본 연구는 꽃이 언제 열리고 언제 향기를 방출하는지를 하나의 전사인자 COL5가 동시에 조절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꽃의 움직임과 향기 생합성이 서로 독립적인 현상이 아니라 공통된 유전자 조절 네트워크에 의해 통합적으로 제어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발견은 식물이 수분 매개자와 상호작용하며 번식 성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식물–수분 매개자 상호작용 연구의 새로운 접근 제시
꽃의 개화 시간과 향기 방출은 특정 시간대에 활동하는 수분 매개자를 유인하는 핵심 신호로 작용한다. COL5와 같은 핵심 조절 유전자의 기능을 이해함으로써, 식물이 곤충과 어떻게 정교하게 상호작용하는지에 대한 분자적 메커니즘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는 화학생태학(chemical ecology) 분야에서 식물과 곤충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기반 정보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작물 개화 조절 및 향기 특성 개량 기술로의 확장 가능성
꽃의 개화 시기와 향기 생산을 동시에 조절하는 유전적 원리를 이해하면, 향후 작물의 개화 시간 조절이나 향기 특성 개선에도 활용될 수 있다. 특히 관상식물이나 향기 작물에서 꽃의 향기 방출 패턴을 조절하거나, 수분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유전자 조작 기술을 응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AI생성 이미지, COL5 유전자에 의해 조절되는 코요태담배 꽃의 리듬 [사진=KA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