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진학을 할 필요가 있을까요?]
조금은 민감한 이야기지만, 진정 연구에 흥미가 있어서 대학원에 가는 학생들은 몇이나 될까? 아니면, 취업이 힘들어서 일단 대학원으로 도피하는 수단을 선택하는 학생은 얼마나 될까? 오늘은 일본 학생들의 취업에 관해서 이야기해 보려 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이공계 분야 학생의 대학원 진학률이 높다. 그러나, 석사까지의 진학률이 높을 뿐, 박사 진학의 비율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대부분의 학생에게 대학원은 취업 수단일 뿐인 것이다. 박사 진학에 대한 가성비가 굉장히 떨어지는 나라이기도하고 학문에 관심이 없는데 굳이 박사 진학까지 할 필요를 못 느끼는 분위기다. 이전 편에도 서술했지만, 일본의 대학원은 기본적으로 경제적 지원이 없다. 그러니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학생은 대학원 진학을 고려하기 힘들고 취업만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로, 일본은 대학 졸업생의 취업률이 98% 정도로 굉장히 높다(2024년 일본 후생노동성 발표 자료). 회사의 규모를 차치하고, 거의 모든 학생이 졸업 전에 입사 내정이라는 것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취업이 안 돼서 박사까지 진학하는 학생이 없다. 오히려 박사 진학은 취업의 문이 좁아진다는 것도 안다.
물론 양질의 일자리를 얻기 위해서는 석사 학위 취득이 큰 장점이 되기 때문에 이공계 학생들은 석사까지는 많이 진학한다. 특히, R&D 직무를 희망한다면 최소 석사 학위가 필요하다.
세 번째, 학/석/박사 학위 취득자 간 수입 격차가 크지 않다. 일본은 어떤 학위를 취득하든지 신졸 채용이면 신졸 기준으로 급여를 책정한다. 한국처럼 박사 졸업자들의 학위 기간을 경력으로 인정해 주는 경력직은 없다. 다 같이 동기가 된다. 물론 급여 차이가 있긴 하지만 한국만큼 크지 않다. 월 몇십만 원 차이일 뿐이다. 석사 학위자도 세후 월 200만 원대, 박사 학위자도 월 200만 원대로 상당히 격차가 없다. 그냥 회사에서 오래 일한 사람이 상사가 되고 대우도 많이 받는 것이다 (연공서열 문화). 그러니 고작 그 몇십만 원 차이를 위해서 내 인생을 대학원에서 희생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많은 것이다. 물론, 연차가 올라가고 승진에 있어서 박사 학위자들이 이점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승진을 못 해도 회사에서 쫓겨날 일은 없으니 욕심 없이 다닐 사람들은 신경도 안 쓴다. 만약 필요하다면 회사 지원을 받아서 사회인 박사를 해버리면 그만이기도 하다.
역설적으로, 일본인 박사 진학생들이 감소하고 있으니, 국가에서는 외국인 학생도 적극적으로 수용하려고 한다. 외화를 벌 수 있는 좋은 수단이기 때문에 외국인이 와서 돈을 좀 써달라는 말이다. 특히, 중국인 유학생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요즘 일본의 정책 방향이 자국 우선주의가 되어서 외국인을 한정적으로 수용하자는 말이 나오지만, 실질적으로 외국인 유학생이 없다면 대학 재정에 큰 타격이 있을 것이다.
[논문보다 취업이 더 중요해요]
일본은 아직도 입사 내정 시스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졸업 1~2년 전부터 취업 활동을 하고 내정을 받는다. 반대로, 이 시기를 놓치면 신규 졸업자(신졸) 내정 시스템을 활용할 수 없어서 취업이 어려워진다. 한국처럼 시험 준비나 스펙 준비하고 졸업 후 입사 지원도 해볼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다.
3~4학년에 부지런히 기업 설명회에 참가하거나, 인턴십에 참가해서 입사하고 싶은 기업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 상태로 지원한다. 취업처가 결정되면 4학년 때는 아무 걱정 없이 졸업만을 기다리며 열심히 논다. 일본 학생들에게 취업처의 퀄리티에는 고민이 있겠지만, 취업 자체의 스트레스는 높지 않다. 그리고 다수의 기업에 지원하고 내정을 받아서 오히려 본인이 기업을 선택하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기업들은 내정시킨 졸업자들이 다른 기업으로 가지 못하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묶어두려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구직/구인의 반대 입장이 되어 있다. 내 주변의 학생 중에 취업이 안 된 학생은 아직 보지 못했다.
일본 학생들은 학점 관리나 스펙 관리에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대신에, 아르바이트 경험, 동아리 경험에 굉장히 많은 노력을 쏟는다. 일본 기업의 채용 시스템은 포텐셜(potential) 채용이다. 공부만 열심히 해온 학생보다 조직 생활의 경험이 있고, 그 속에서 어떤 경험을 했고, 활약을 펼쳐왔는지가 중요하다. 기업 지원서에도 반드시 동아리 활동과 조직 경험을 적게 되어있다. 이런 활동을 하지 않은 학생들은 오히려 왜 하지 않았는지 질문받고 조직 적응력에 대해 의심을 받는다. 전문직이 아니라면 당신이 가진 자격증은 크게 의미가 있지 않고, 영어 성적도 있으면 좋지만 없다고 경쟁조차 못 할 상태는 아니다 (외자계는 당연히 영어 성적이 필요하다).
대학원생도 졸업 논문이 나오기 전에 취업이 내정되기 때문에 딱히 논문의 impact factor나 편수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논문의 우월성이 대기업 합격의 열쇠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박사 졸업자 취업 시에도 거창한 연구 발표 대신에 구두로 자신의 연구를 설명하고 질의응답 시간을 간단하게 가진다.
이런 채용 문화는 일본 기업 특유의 인재 육성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다. 일본은 입사하면 모두가 ‘0’ 상태에서 시작한다. 나의 능력은 회사에서 교육한 대로 키워지는 것이지, 쌓아온 능력에서 발휘될 수 있는 것이 적다. 이직이 많이 없는 문화이기 때문에 인재의 내부 육성에 굉장히 공을 들인다. 그래서, 준비된 인재를 반기는 것이 아닌, 준비시킬 수 있는 인재를 원한다. 포텐션을 중요하게 보고, 경력직 신입이라는 상충적인 말이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경력직 신입은 백지상태에서 사내 교육으로 길들이기 어렵다고 보고 꺼리는 경우도 있다.
요즘은 기업들이 우수한 인재를 하루라도 빨리 채용하기 위해서 취업 시기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 심지어 2년 전에 채용해 두는 경우도 종종 있어서 놀라울 따름이다. 대학원생들도 이 시기에 맞춰서 본인의 연구보다 취업 활동에 집중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석사 2년, 박사 3년 과정인 일본이기에, 석사라면 1학년이 지나고 곧장 취업 활동을 하게 되고, 박사라면 2년 차부터 취업 활동을 시작한다. 그래서인지, 아카데미로 나아가고 싶지 않은 학생은 자신의 논문 퀄리티나 편수에 관심이 없고 최소 기준만 만족해서 졸업하고 싶어 한다. 대신에, 기업의 적성검사 준비는 참 열심히 하더라.
또한, 경제적 지원을 받지 않는지라 출퇴근이 자유로운 것을 활용하여 활발한 인턴 활동 참여, 기업 설명회 참여를 통해 취업의 기회를 높이기도 한다. 졸업한 선배들은 매년 모교를 방문해서 기업 설명회를 열고 학생들 모집에 힘을 쓰고 있다. 이걸 OB방문이라고 부르고 굉장히 오피셜 한 취업 문화 중 하나이다. 학생들은 기업들이 개최하는 이러한 행사에 참여하여 정보를 얻을 뿐만 아니라 회사 관계자에게 눈도장을 찍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다. 면접 때도 자사에서 개최한 행사에 참여한 것이 있는지 물어봐서 지원 기업에 대한 관심도를 평가하기도 한다.
일본은 아직도 기업의 종신 고용 문화가 남아있다. 퇴직금도 의무가 아니기 때문에 기업에 따라 장기 근속자에게만 지급하는 시스템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 비해서 이직 시장이 경직되어 있고, 한 회사에서 정년까지 마무리하는 사회인도 적지 않다. 이직이 잦은 사람은 고용하길 꺼리는 기업 문화도 있다. 즉, 내가 재직하면서 경제적 이득을 최대한 보려면, 첫 직장을 잘 골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 학생들은 첫 직장에 굉장히 공을 들인다.
이런 일본의 취업 현상 때문에 낮은 박사 진학률을 매년 기록하고 있고, 남아 있는 박사 과정생들은 정말 학문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만 있게 되었다. 취업을 못 해서 대학원 가는 현상은 없다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학문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만 박사 과정에 진학하고, 그곳에서 본인의 흥미에 따라 연구를 펼치니 지속적이고 창의적인 연구가 많이 나오기도 한다.
[맺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