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연구자를 직접 만나는 브만사 기획입니다. 신임 조교수를 만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연구비는 감소하지만, 연구비가 필요한 과학자는 증가해 압박을 받는 과학자가 늘고 있다.’ ‘젊은 과학자는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낮은 연구비 신청서를 준비하는데 연구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언뜻 보면 현재 과학계가 처한 현실 같지만, 이 내용은 10년 전인 2016년 10월 국제학술지 Nature에 ‘The plight of young scientists(젊은 과학자가 처한 곤경)’라는 제목으로 실린 글의 일부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젊은 과학자가 헤쳐나가야 하는 상황이 녹록지 않음에도 교수는 여전히 많은 젊은 과학자가 원하는 직업이다. 교수신문에 실린 한 기고에 따르면 박사학위 소지자 중 교수가 되는 확률은 단 3%라고 한다. 고단한 석박사 과정을 통과하고 포스닥을 거쳐 단 3%의 확률을 뚫고 신임 교수가 된 사람들을 만났다. 이들은 어떻게 교수가 되었고 또 어떤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있으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들어봤다. 지방거점국립대, 사립대(서울, 춘천), 과학기술특성화대학의 조교수를 한자리에서 만났다. |
연세대 최현규, 한림대 이선민, 충남대 김준, POSTECH 김성철 교수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
Q. 안녕하세요. 하고 있는 연구와 자신에 대한 소개 간략히 부탁드립니다.
이선민(이하 선민) :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한림대학교 바이오메디컬학과에 임용된 이선민입니다. 저는 발생학과 암 생물학, 후성유전학을 연구하고 있고, 현재 연구실을 셋업 하기 위해 다양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최현규(이하 현규) : 저는 24년에 연세대학교 생화학과에 임용되어 2년 차를 맞이하는 최현규입니다. 저는 기계생물학·생물물리학 실험실을 운영하고 있고 생화학, 생물물리학과 같은 다양한 융합 과학을 통해 암이나 자가면역질환 치료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준(이하 준) : 저는 23년에 충남대학교 생명정보융합학과 조교수로 임용된 김준입니다. 저는 크게는 유전체학 연구를 하고 있고요. 좀 더 디테일하게는 선충이나 진화를 주제로 연구하다가 다양한 동식물, 사람 희귀질환과 암세포에 관한 유전체 연구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선충에서 하던 분석 방법론을 사람에게 적용해 구조 변이를 살펴보는 일 등 다양한 방면으로 연구를 계속 하고 있어요.
김성철(이하 성철) : 저는 POSTECH 생명과학과에 지난해 9월에 부임해서 바이러스 및 분자유전공학 연구실을 운영하면서 크리스퍼 생물학, 바이러스와 숙주 간의 상호작용, 단일-분자 생물물리학 등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Q. 네 분은 어떤 준비 과정을 거쳐서 교수에 임용됐나요?
준 : 저는 취업을 준비하면서 브릭을 비롯한 교원 채용 공고 사이트를 살펴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꽤 오랫동안 꾸준히 지켜봤어요. 박사 졸업 직후에는 논문 편수가 부족해서 지원조차 하지 못했고요. 이후 2~3년간 포스닥을 하면서 2년차에 논문이 나와서야 교수직 지원 자격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는 연구비 선정을 위한 과제와 교수 임용직에 여러 곳 지원했습니다. 포스닥 시절엔 제 인건비가 3년 차까지만 보장되었기 때문에 이 일을 계속하기 위해선 연구비를 받거나 취업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곳에 지원했지만 번번이 떨어졌어요. 자리를 잡지 못하면 당장 내년부턴 인건비도 없고 소속될 곳이 없다는 생각에 불안과 스트레스가 컸습니다.
저는 전임 교원뿐만 아니라 연구소 포스닥, 스태프 사이언티스트 포지션에도 지원했는데 총 20~30곳은 지원한 것 같아요. 교수직 중에 면접까지 갔던 곳은 단 네 군데였어요. 감사하게도 포스닥 후에 한국생명연구원에 자리를 얻을 수 있었고 그곳에서 연구하다가 이후 충남대 교원 공고에 지원해 교수가 되었습니다.
선민 : 김준 교수님 말씀처럼 저 역시 포스닥 시절 전환(Transition) 단계에 놓였던 적이 있어요. 기존 랩에 맡았던 프로젝트는 거의 마무리되어 저를 계속 고용해 줄 수 없고, 그렇다고 새로운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는 시기가 애매했습니다. 만약 그 상태에서 고용이 이어진다면 제 입장에선 포스닥 계약기간이 너무 길어지고 그사이에 제 논문은 채용 과정에서 유효기간이 끝날 수도 있는 상황이어서 마음이 굉장히 복잡하고 불안정한 시기를 보냈어요.
저는 브레인풀(Brain Pool) 프로그램으로 영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프로그램 기간이 2년 정도였습니다. 거의 끝나갈 무렵 다행히 한림대로 갈 수 있었지만, 만약 반년이라도 쉬는 공백기가 있었다면 생계가 어려웠을 겁니다. 그런 불안 속에서 자존감이 많이 낮아졌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때 저는 교수직 공고 사이트를 즐겨찾기에 넣어두고 매일 들어가 모든 공고를 다 확인했어요. 보통 한 학교에서 한 학기에 한 번 정도 공고가 올라오는데, 실제 구인이 필요하고 또 저랑 딱 맞는 포지션의 자리가 그렇게 많진 않아요. 그래서 저는 구직 여정이 좀 길어질 수 있겠다고 마음먹었고, 논문이 채용 과정에서 인정받는 기간 동안은 계속 지원해 보자는 마음이었어요.
참고로, 논문 자체에 유효기간이 있는 건 아니지만, 채용 과정에서 논문을 평가할 때 인정해 주는 기간이 있거든요. 보통 최근 3년에서 5년 정도 사이의 성과가 가장 중요한 평가 대상이 됩니다. 그래서 CNS(Cell, Nature, Science)와 같은 저명한 국제 학술지에 낸 논문이 있다면, 그 논문이 인정되는 기간 동안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어요.
성철 : 저는 네덜란드에서 포스닥을 하던 시절 좋은 논문이 나와서, 그때부터 한국 대학 교수직에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1년 동안 꾸준히 지원했는데 결과가 잘 나오지 않았고, 결국 IBS RNA연구단(단장: 김빛내리)에 YSF(Young Scientist Fellow) 포지션으로 먼저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때는 마음이 좀 복잡했던 때이기도 했는데요. 나를 믿고 뽑아준 고마운 곳이니 더 열심히 논문을 쓰고 성과를 내고 나가야겠다는 마음과 함께 Nature와 Nature communications에서 출판된 좋은 논문들이 더 이상 무용지물이 되기 전에 교수직을 얻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주로 연구중심대학 위주로 지원했는데, 학위 과정 때부터 기초적인 분자생물학과 메커니즘 연구를 해왔기 때문에 임팩트 있는 연구를 계속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POSTECH에 지원하게 되었고 최종 단계까지 올라서 제가 임용이 되었습니다. 사실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데요. 저와 함께 최종까지 올랐던 훌륭한 후보가 한 분 계셨어요. 제 눈엔 학교가 그분을 선택할 것 같았어요. 그런데 제가 최종 선정됐길래 나중에 알아봤더니 개인 사정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덕에 제게 행운이 온 것도 같아요. 여러분! 살다 보면 내 경쟁자가 나보다 훌륭해 보이는 때도 많지만 예상치 못하게 이렇게 기회가 오기도 해요.
현규 : 제 에피소드는 너무 간단할 것 같은데요. 저는 사실 전임교원 지원 첫 해에 연세대 생화학과에 임용되면서 서른이란 이른 나이에 교수가 될 수 있었어요. 저는 학부 시절 물리학을 전공하고, 서울대 유전공학연구소에서 박사 과정을 보낸 후, 포스닥은 바이오 메디컬 엔지니어링, 즉 의공학과에서 했습니다. 다양한 과에 소속되어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면서 연구해야 해서 그 과정은 힘들기도 했지만, 교수 임용 공고에 지원할 수 있는 과가 정말 많았어요. 기계공학과, 바이오 메디컬 학과, 바이오 메디컬 엔지니어링, 물리, 화학, 생물학, 생화학과까지 사실상 생명과학과 관련된 전 분야에 지원할 수 있는 상태였어요.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 지원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로 마음이 편했던 것 같고, 운이 따라주어 빨리 자리를 잡을 수 있었어요. 저는 저의 이 경험을 통해 융합 학문을 하면 이렇게 기회가 넓어진다는 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Q. 교수의 역할은 크게 교육, 연구, 행정으로 나눌 수 있는데요. 실제 경험해 보니 어떤 부분에 가장 많이 시간을 쓰게 되나요?
성철 : 저는 반 이상을 행정에 쓰는 것 같아요. 작년 9월에 임용되었기 때문에 아직 온전히 학교나 연구비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해서 그런 면도 있겠지만 행정업무가 생각보다 정말 많더라고요. 실제로 많은 시간을 쏟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정작 제 연구에 집중하는 시간을 온전히 갖는 게 쉽지 않습니다. 현재 제 연구실에는 학생이 6명 정도 있는데 그러다 보니 학생 상담도 해야 하고, POSTECH의 경우 강의도 다 영어로 진행해야 해서 강의 준비하는데도 시간이 많이 들어갑니다.
준 : 저는 학기 중에는 확실히 강의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 같아요. 보통 국립대는 연간 18학점 정도를 맡는 편인데, 제 학과는 신설 학과라 연간 22~ 24학점을 맡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강의 시간만 최소 10시간 이상인 셈입니다. 또 강의 준비하는 시간까지 합치면 일의 절반 정도는 강의에 쓰는 것 같습니다. 확실히 포스닥 때보다 일은 많아졌어요. 강의 말고 다른 일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 일이 눈에 딱 보이는 게 아니어서, 정작 뭔지도 모르는 일로 하루에 한 4시간 이상을 쓰기도 하는 것 같아요. (웃음) 행정 업무도 만만치 않은데, 가끔은 ‘왜 행정봇이 없는 걸까. 챗GPT 같은 걸로 행정 업무를 자동화하면 얼마나 편할까’라는 생각도 합니다.
선민 : 저는 올해 임용된 신임 교원이라 아직 모든 게 낯설어요. 학과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한다고 연락이 오면, 그걸 어떻게 처리하는지 모르는데 이걸 또 어디에, 누구에게 물어봐서 해결해야 하는지도 아직 잘 모릅니다. (웃음) 그래서 선배 교수님들께 여쭤보고 여기저기 확인한 뒤에야 일을 진행하다 보니 시간이 좀 오래 걸리는 것 같아요. 다행히 강의는 신임 교원을 배려해 주셔서 올해는 9학점만 맡았고요. 내년부터 조금씩 늘어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연구실을 아직 세팅 중이라 연구 쪽은 준비 단계에 있습니다.
현규 : 저는 학기당 평균 두 과목의 강의를 맡았는데요. 개인적으로 너무 좋았어요. 강의를 준비하면서 저도 다시 공부할 수 있었거든요. 제 학부 전공이 물리학이라 고전역학, 전자기학, 통계역학, 양자역학 등 4대 역학 이라고 불리는 과목들을 배웠는데, 지금은 생화학이나 세포 생물학 교과서를 정말 꼼꼼히 정독하게 되었어요. 물론 연구하면서 제 연구 분야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모두 가지고 있었지만, 이번에 강의를 준비하면서 희미하게 알던 개념들이 선명해지고, 전체적으로 다른 분야의 세부 내용부터 큰 그림까지 깊이 이해하게 된 것 같아 너무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3년 이내 신임 교원을 연세대 과학원에서 만났다. [사진 = BRIC]
Q. 연구실 운영에서 연구비 확보가 정말 중요한데요. 초기에 연구실 세팅하고 연구비 신청하는 과정은 어떠셨나요? 생각만큼 순조롭게 진행되나요?
성철 : 다행히 POSTECH은 정착금 제도가 있어서 처음 연구실을 세팅할 때 필요한 장비나 필수 소모품을 연구비 수주 여부와 상관없이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속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연구비 수주가 꼭 필요하죠.
저는 포닥을 외국에서 했고, 예전 지도 교수님이 작은 과제는 신청을 안 하셨던 분이어서 개인적으로 연구비 신청에 대한 경험이 적더라고요. 그래서 사람들이 어떻게 과제를 준비하고 팀을 구성하는지, 집단 과제는 어떻게 시작하고 진행하는지에 대한 걸 처음부터 경험하면서 배워야 했던 점이 힘들었습니다. 지난 1년간 연구비 확보에 많은 시간을 쏟았지만, 개인 연구 과제는 다 떨어졌고, 집단 과제에서 주관으로 선정된 게 있었어요. 아직 어떻게 해서 이 연구비는 잘 됐고 다 떨어진 개인 과제는 왜 실패했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 과정에서 다양한 대외활동의 필요성을 크게 느꼈는데요. 동료 연구자들에게 저와 제 연구를 알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느꼈습니다. 현대 과학은 혼자서만 할 수 있는 영역이 별로 없어요. 집단 과제를 위해서라도 자신을 알리고, 연구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영화 속 아이언맨처럼 혼자 골방에 갇혀서 연구하는 시대는 아니더라고요.
준 : 저도 박사과정 때 연구비를 지원해보긴 했지만, 제가 다닐 때는 지도 교수님이 집단 과제를 하지 않고 계셔서 사실 집단 과제가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웃음) 예를 들면 바이오·의료 기술 개발 사업과 같은 융합 과제가 많은데 잘 몰랐고, 그래서 그런 사업 지원에 꼭 필요한 요소, 제가 어떤 부분으로 참여할 수 있는지도 몰랐어요. 제 연구는 데이터 분석을 중심으로 하는 Dry 실험인데 데이터 분석만으로 집단 과제를 받긴 어렵거든요. 대부분 Wet 실험이 필수로 포함되어야 합니다. 이런 부분의 파트너를 구하고 공동연구를 제안하려면 서로의 연구와 능력을 알아야 가능하죠. 그런 제안이나 교류 없이 제가 혼자 글로만 제안서를 작성해 선정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저는 처음 과제를 쓸 때는 제가 해오던 선충 진화 연구 주제로 많이 제안했는데 거의 다 떨어졌어요. 2~3년 동안 거의 매 학기마다 썼는데도 다 떨어졌는데 그 과정에서 진화 연구보다 더 큰 파이가 있는 암 연구나 다른 질환 연구 쪽에 포커스를 바꾸어 갔습니다. 선충 데이터 분석하던 것도 사람 데이터로 바꿔서 분석하는 식으로 접근을 바꾸면서 저도 변화해 갔습니다. 덕분에 다른 교수님들에게 ‘같이 할 사업이나 프로그램이 있다’라고 불러주시기도 해서, 그렇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과제는 똑같은 걸 재활용하기 어려워요. 과제마다 RFP(Request For Proposal; 제안요청서) 요구사항이 다르기 때문에, 그 목적에 맞게 새로 작성해야 합니다. 과제에 선정되기만 하면 연구실 운영이 조금 안정되겠지만, 떨어지면 될 때까지 과제 제안서를 쓰고 또 쓰고 해야 하죠. 그렇게 시간을 쓰게 되면 연구나 논문을 쓸 시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는데 이런 것도 고민입니다. 솔직히 아직은 팀 짜는 것도 어렵고 연구비 제안서를 쓰면서 이게 될 과제인지 확신하는 것도 어렵고, 참 여러모로 어려운 게 많아요.
선민 : 연구비는 역시 큰 숙제예요. 저는 올해 신임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아직 첫 과제 선정이라는 숙제가 남아 있고요. 개인 과제에 지원해 놓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만약 떨어지면 연구비 없이 6개월을 더 기다려야 되는 불안한 상황입니다. 또 제 연구실에 들어오겠다는 학생들이 있는데, 그 학생들을 가르치려면 연구비가 필요한데요. 연구비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도 학생을 받아야 하나 받지 말아야 하나 이런 고민 하고 있습니다. 아마 과제에 선정될 때까지 이런 고민은 계속될 것 같아요.
초기 실험실 세팅은 쉽지 않습니다. 설령 세팅을 마치더라도 처음부터 학생들을 가르치며 2~3년 안에 연구 성과를 내는 것은 쉽지 않아요. 게다가 조교수에게 요구되는 논문 개수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이 성과를 채워나가면서 연구과제도 신청해야 하고 또 학생들을 지도하고 가르치기 위해 많은 시간을 쏟다 보면 제가 진짜 하고 싶어 하는 연구, 계속 이어가고 싶은 연구는 자연스럽게 늦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이런 고민에 대해 답을 찾아야 할 것 같아요.
현규 : 저도 지난 1년 반 동안 연구비 신청을 정말 많이 했어요. 1년에 10개 이상 연구비 신청에 도전했던 것 같고 그렇게 썼을 때 겨우 하나 된다고 할 정도예요. 사실 대부분 떨어졌습니다. 이렇게 연구비 받기가 쉽지 않다는 걸 인정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아요.
제가 지금까지는 운이 좋은 편이었거든요. 지도교수님의 훌륭한 지도 아래 첫 논문도 운이 너무나 좋게 Science에 출판되고, 교수 임용도 시도 첫 해에 성공했으니 저를 포함해 모든 분들이 보시기에 큰 실패 없이 그야말로 순탄한 과정을 겪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연구비 신청에 계속 실패하는 것에 속으론 충격이 엄청 컸던 것 같아요. 실패에 내성이 없었던 거예요. 발표까지 하고 나면 이번엔 될 것 같다는 기대가 생기는데, 막상 결과 발표 메일을 열어보면 ‘귀하의 건승을 빕니다’라고 적힌 탈락 통보여서 충격이 꽤 컸어요. 처음 연구비 신청에서 떨어졌을 때가 생각나는데 너무 충격이 커서 선배 교수님들께 ‘내 세상을 잃었다’라고 얘기하기도 했어요. 그 모습을 본 선배 교수님들께서 ‘떨어지는 사람이 절대 다수예요’라고 말씀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연구비에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어도 ‘아 그렇구나. 다음 과제는 언제 쓰지?’라고 담담하게 넘길 수 있게 됐어요.
Q. 세 분은 포스닥을 외국 대학에서 하셨어요. 선진국에서 계속 연구할 기회도 있었을 텐데, 한국에서 교수직을 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성철 : 저는 네덜란드에서 포스닥 생활을 했는데요. 현지 대학에도 충분히 지원할 수 있었지만 내가 은퇴할 때까지 이곳에서 살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이방인으로 계속 지내야 한다는 게 지치기도 하고 싫다는 마음이 분명하게 들었습니다. 제가 살아왔던 환경, 더 깊고 넓게 연구할 수 있는 분위기에서 연구도 하고 일도 하고 싶어 한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어요. 외국 생활이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 보면 그렇지만은 않거든요.
또 한편으로는 애국적인 마음도 있었어요. 외국에서 좋은 걸 배우고 경험했으니, 이제는 한국의 후배들에게 이 경험과 지식을 전해주고 싶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받은 좋은 교육과 혜택을 잘 갚아 나가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었습니다.
선민 : 저도 영국에서 포스닥 생활을 했는데, 브렉시트로 상황이 어려워진 데다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연구 환경이 힘들어졌습니다. 무엇보다 해외에서 외국인으로 산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고요. 영국이라는 나라의 사정과는 별개로, 은연중에 차별도 분명히 있었고요. 영국인이 아니고 그 Society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면 연구비를 확보하고 자리 잡는 게 쉽지 않아요. 솔직히 말하면 올라갈 수 없는 천장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또 영국 조교수들의 삶을 보면 사회나 학계에서 요구되는 의무나 기준점은 굉장히 높은 데 반해 생활은 포스닥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어요. 심지어 PI가 되더라도 주위에서 갑자기 짐을 싸고 연구실을 정리해야 하는 상황이 오는 경우도 많이 봤습니다. 연구비가 끊긴다거나 Tenure가 되지 못했거나 하는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불안정해 보였어요. 이런 모습을 보면서, 저는 한국에서 자리를 찾는데 더 맞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현규 : 저도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미국에서 포스닥을 했는데요. 출근을 못 하고 격리도 해야 하는 등 상황이 좋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악착같이 실험해서 매년 논문을 낼 수 있었어요. 근데 저는 외국으로 나갈 때부터 돌아올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딱 J1비자 기간 동안 있다가 돌아왔습니다. 3년간의 포스닥 생활에서 제가 내린 결론은 이거였어요. 사람의 인격은 10대 때 형성되고, 그때 어떤 문화 속에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10대 시절을 한국에서 보냈으니 한국에서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Q. 연구실 학생 모집할 때 어려움은 없나요? 또 어떤 점이 아쉽나요?
성철 : POSTECH은 포항이란 서울에서 보면 먼 지역에 있지만 학생들이 오고 싶어하는 학교이긴 합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교수 입장에서 성적표만 보고 어떤 학생이 연구실에 들어와 실험과 연구를 잘할 수 있을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는 거예요. 사실 학부 때부터 인턴 등을 통해 교수와 학생이 서로 잘 맞는지 생활하면서 살펴보고 싶은데, 지방에 있는 대학의 경우는 그런 점이 어렵습니다.
POSTECH은 자대생 숫자도 워낙 적어요. 한 학년 재학생이 300명 정도인데, 생명과학을 선택하는 학생은 1년에 스무 명 남짓입니다. 그런데 교수님이 서른 분 정도 계시니까 자대생을 인턴으로 받는 건 정말 하늘의 별 따기 수준으로 어려운 일이거든요. 자대생이 아니더라도 타지에서 오고 싶어 하는 학생을 인턴처럼 연구실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교수도 학생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고, 학생도 자기가 하고 싶은 연구와 이 연구실의 방향성과 사람들이 잘 맞는지 입학 전에 서로 확인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어요.
준 : 충남대는 학생들이 열심히 하고 대학원에 진학하려는 경우도 꽤 있어요. 다만 박사학위까지 충남대에서 하려는 학생은 많지 않아요. 저뿐 아니라 다른 교수님들도 공통으로 말씀하시는 게, 학생들이 대부분 석사까지만 하려고 하니까 연구를 꾸준히 진득하게 맡기고 긴 텀으로 함께 가고 싶은데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겁니다.
충남대의 강점이자 단점은 주변에 연구 기관들이 꽤 많다는 점입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기초과학연구원(IBS), 카이스트 등이 모두 가까이 있고 서울도 멀지 않다 보니, 학생들이 여러 선택지를 놓고 비교할 수 있어요. 당연히 여러 가지를 고려해 보고 자신에게 가장 나은 곳으로 가려고 하겠죠. 그런데 저는 학생들에게 가더라도 제발 좋은데 찾아가라는 말을 많이 해줘요. 여기서 말하는 좋은 데라는 건 단순히 이름난 학교, 유명한 교수님이 있는 연구실이 아니라 본인이 하고자 하는 연구 주제와 일하는 방식이 잘 맞는 곳이에요. 아무리 좋은 교수여도 자신과 맞지 않으면 힘들 수 있으니까요.
또 하나의 문제는 아마 지역에 있는 대학들이 다 비슷할 텐데요. 대학원에 진학한 학생들 가운데 결혼을 해서 가족을 이루고 함께 살고 싶어 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런데 가족이 지역으로 함께 와도 일할 자리가 마땅치 않아서 고민하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결국 학생 개인의 선택뿐 아니라 가족의 삶과도 연결되는 문제라서 더 복잡한 것 같아요.
선민 : 한림대도 비슷한 것 같아요. 박사 과정으로 들어오려는 학생은 많지 않아요. 학생들은 학력을 좀 더 올리고 싶어 하니까요. 당연히 이해도 되는 부분이고요. 춘천은 서울과 물리적으로 멀지 않다 보니 학생들에게 선택지가 많고, 자연히 경쟁해야 하는 학교가 많은 것도 사실이에요. 우리 학교는 많은 대학원생들이 등록금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있는데요. 이런 제도가 학교와 학생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현규 : 연세대는 서울에 있지만, 학생들과 면담을 해보면 대학원 진학시 서울대, POSTECH, KAIST 이렇게 세 학교를 우선순위에 두는 경향이 확실히 있는 것 같습니다. 소위 자대생의 경우, 학부 시절부터 인턴을 한 경우이거나 특정 연구 분야 및 기술의 선호도 때문에 진학하는 경우가 있지만 진학을 고려하는 큰 흐름은 확실히 그런 것 같아요. 이러한 학생들을 응원하고 격려하지만, "본인이 관심있는 분야와 하고 싶은 연구가 무엇인지가 제일 중요하다"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성철 : 저는 여기서 조금만 덧붙이자면 몇몇 학생들이 학교 이름만 보고 진학하려는 경우가 있는데요. 그러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저에게도 많은 이력서가 오는데요. POSTECH이란 이름만 보고 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지 않고 지원하는 경우가 있어요. 이걸 어떻게 알 수 있냐면 아마도 챗GPT 같은 데서 검색해 보고 쓴 것 같아요. 챗GPT는 때로 거짓말을 하기도 하는데, 실제로 제가 쓴 적 없는 논문을 인상 깊게 읽었다며 적어 보내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제 연구실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제가 쓴 모든 논문과 그 링크까지 나와 있거든요. 교수에 대해 알아보려는 작은 노력도 해보지 않고 지원한 거죠. 그런 경우 대학원엔 왜 오려고 하는 걸까 물어보고 싶더라고요. 진정성 있게 어떤 한 분야를 깊게 연구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은 학교 이름보다는 교수의 연구 주제와 방향을 보고 찾아옵니다. 그래서 저도 학생을 볼 때 출신 학교나 성적보다는 그 학생의 열정과 진정성을 알아차릴 방법을 늘 고민합니다. 그런 진정성 있는 학생을 뽑아서 좋은 연구자로 키워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준 : 맞습니다. 우리 실험실은 다른 분야보다 흔히 말하는 노동력이 덜 필요한 편이긴 하지만 진짜 열심히 하고 잘하는 학생 한 명이 열 명의 몫을 해내기도 합니다. 교수로선 그런 학생이 너무 귀해요. 그래서 학생 스스로도 자신에게 맞는 연구 주제와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지도 교수를 찾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저는 연구실 홈페이지도 없는데, 그럼에도 간절한 외국인 학생들은 어떻게든 저를 찾아서 연락을 해와요. 논문을 보고 연락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Q. 교수님들 10년 뒤엔 어떤 모습일 것 같나요?
성철 : 10년 뒤에 저는 그냥 몸만 안 아팠으면 좋겠어요. 연구라는 게 결국 계속하다 보면, 그리고 버티다 보면 괜찮은 직업이니까요. 여기서 ‘버틴다’라는 건 단순히 시간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논문을 계속 꾸준히 내면서 그 일을 이어간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몸이 아프면 그마저도 힘들어질 수 있잖아요. 그래서 요즘은 10년 후쯤 지병이 생길까 봐 걱정입니다. 아직 젊은 교수님들은 덜하겠지만 지병 조심하세요. (웃음)
선민 : 저는 선순환을 만들고 싶어요. 학생들도 매년 꾸준히 연구실에 들어오고, 그 학생들과 함께한 연구 성과도 계속 나오고, 또 그 결과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연구비도 확보해서 다시 연구실을 잘 운영해 나가는 그런 흐름이요. 많은 선배 교수님이 말씀하시길 연구실은 결국 이 선순환이 잘 돼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저 역시 선순환을 꿈꾸며 10년 뒤쯤엔 안정화되어 있길 바랍니다.
준 : 저는 10년 뒤에는 학령 인구 감소가 심각해질 것 같아서 지금과 연구나 교육 환경 자체가 크게 달라져 있을 것 같아요. 특히 대학원이나 연구실에는 외국인 학생들이 훨씬 더 많아질 수밖에 없을 거예요. 아직은 분명히는 모르겠지만 이 친구들이 한국에서 일자리를 찾거나 아니면 자국 돌아가서 자리 잡을 수 있을 만한 환경이 되어야 할 텐데 사실 지금은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안 가요.
성철 : 맞아요. 사실 이런 변화는 선진국으로 가는 길에서 대부분의 나라나 겪는 일이기도 합니다. 인구가 정체되고 산업 성장을 바탕으로 외국인이 들어올 수밖에 없을 거에요. 지금도 우수한 해외 학생들이 과거엔 미국이나 유럽의 몇몇 선진국만 바라보다가 이제는 한국도 선택지 중 하나로 늘어났어요. 이는 곳 한국이 외국인 연구자를 수용할 만한 능력을 어느 정도 갖추었다는 의미기도 합니다. 다만 여전히 부족한 부분도 많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도, 또 한국 교육계 전체적으로도 이런 변화를 미리 잘 준비해서 좋은 인재를 많이 유치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지금 교수를 꿈꾸는 후배 연구자들이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가요?
현규 : 저는 BRIC을 통해 이 인터뷰를 보는 독자라면 아마도 생명과학과 관련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교수를 꿈꾸는 학생들이 있다면 ‘꼭 열심히 해서 교수도 되고, 다른 원하는 것이 있다면 모두 이루라’고 말하고 싶어요. 또 저 역시 교수를 꿈꾸고 교수가 되었고, 이곳에서 연구비 탈락의 슬픔도 겪고 포스닥 때보다 더 바쁘게 살고 있지만 더 열심히 해서 좋은 교수가 되고 싶다는 다짐도 함께 해 봅니다.
성철 : 저는 인간이 인간다운 이유가 한 세대가 가진 지식과 경험을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교수는 그 최전선에 서 있는 직업이죠. 교수가 하는 일이 많지만 결국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이 이 직업의 베이스라고 생각합니다.
또 단순히 지식을 전수만 하는 게 아니라 세상에 아직 없는 진리를 탐구하고, 자신의 탐구한 만큼을 후대에 전하는 역할을 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그 가치는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자신의 인생에서 얻은 노하우나 지식을 꼭 전수해 주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다면 교수라는 길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선민 : 저는 좀 더 실질적인 조언을 하자면 연구하면서 자신만의 아이덴티티, 즉 자신의 연구만 가지는 색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연구자가 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런 훈련을 하다 보면 나중에 자리를 구할 때도 자신의 아이덴티티나 연구의 강점을 잘 강조해서 자신과 하고 있는 연구를 인상깊게 각인시킬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논문은 단순히 내는 것뿐 아니라 언제 나오느냐도 전략이에요. 물론 마음대로 다 되진 않겠지만 타이밍을 맞춰서 여러 편이 비슷한 시기에 나오도록 속도를 조절한다면 여러 군데 지원할 때 도움이 될 겁니다. 노력은 기본이고 이런 전략까지 잘 세운다면 원하는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준 : 교수라는 직업은 직업 자체만 놓고 보면 확실히 좋은 것 같아요. 다만 되기가 어렵다는 게 문제죠. 저는 사실 문제를 푸는 것보다 새로운 질문 찾는 걸 재밌어하는 학생이었어요. ‘이건 왜 이렇지?’ 새로운 질문을 찾는 게 너무 좋았어요. 거기에 더해 문제들을 풀면서 논리적으로 글을 쓰는 걸 너무 재밌게 느끼던 사람이어서 지금 이 일이 제겐 너무 잘 맞고 만족스럽습니다. 물론 자리 잡기가 쉽지 않고 경쟁도 치열하지만, 저는 운 좋게 기회를 잡아 교수가 될 수 있었거든요. 언젠가 후배 연구자들에게도 제게 찾아왔던 좋은 기회와 행운이 찾아올 거라 믿습니다.
성철 : 덧붙이자면 저는 ‘운이 좋다’는 걸 이렇게 생각해요. 열심히 했지만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경쟁의 순간에 함께 있어서 원하는 학교에 교수로 가지 못할 수도 있죠. 그런데 교수가 되지 못해도 자기 직업에 정말 최선을 다하면 생각지도 못한 길이 열린다는 걸 제 나이쯤 되니까 알 수 있겠더라고요. 자기 분야에 사명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다 보면 그 과정에서 얻게 된 능력이나 경험 덕분에 또 다른 길이, 더 멋진 길이 생기는 거죠. 그걸 저는 ‘운이 좋은 것’이라고 말해 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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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철 POSTECH 생명과학과 교수
김준 충남대학교 생명정보융합학과 교수
이선민 한림대학교 바이오메디컬학과 교수
최현규 연세대학교 생화학과 교수
글 : 생물학연구정보센터 박유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