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일본 교토대 야마나카 신야 교수는 성체 세포를 역분화시켜 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 연구는 유도만능줄기세포 iPSC를 만드는 데로 발전하며 신야 교수는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금은 생명과학계 전반에 혁명적인 전환점으로 평가되지만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땐 역분화라는 것은 아주 특별한 경우의 예외적인 현상일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KAIST 조광현 교수팀은 암세포를 가역화(reversion) 해서 암세포로 변환되기 이전의 정상 세포와 유사한 상태로 돌려놓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몸속 정상 세포가 암으로 변환되는 것인 만큼 복잡한 세포 내 분자조절네트워크 상에서 만일 세포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어떤 인자를 찾아낸다면 암세포 이전 상태로 되돌리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연구는 시작되었다. 연구팀은 2020년부터 암 가역 가능성을 암세포 내 특정 분자 스위치를 찾아내고 이를 조절해 암세포가 실제로 가역화되는 현상을 실험을 통해 다양하게 증명해 내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예외적인 현상일 것이라는 시선도 여전히 공존한다. 조광현 교수의 연구가 암세포는 비가역적이지 않으며 조절 가능한 것이라는 걸 실험으로 온전히 반론의 여지 없이 증명해 낸다면 암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을까? 암 가역 연구자 조광현 교수를 만났다. |
Q. 안녕하세요. 교수님이 하고 계신 연구를 소개해 주신다면?
안녕하세요. 저는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의 조광현입니다. 우리 연구실은 시스템생물학을 통해서 크게는 세포의 운명을 제어하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비가역적이라고 여겨졌던 암과 노화된 세포의 상태를 다시 정상 세포 상태로 되돌릴 수 있는 가역화 기술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Q. 가역이라는 말을 국어사전에 찾아보면 물질의 상태가 한 번 바뀐 다음 다시 본디 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것(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이라고 나오는데요.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암세포, 또 노화된 세포를 원래의 상태를 되돌릴 수 있는 건가요?
제가 처음 암세포를 정상세포로 되돌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된 건 2010년쯤이니까 15년도 더 된 일인데요. 그 가능성을 테스트해 보기 위해서 여러 가지 연구를 수행하며 실험으로 증명하기 위해 그동안 고군분투해 왔습니다. 실험을 통해 실제 리버전(reversion)이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것은 2020년부터인데요. 지금까지 차례대로 여러 실험을 통해서 확인하고 있습니다.
2020년에 처음 발표했던 것은, 대장암 세포를 SETDB1이라고 하는 후성 유전학적 조절 인자를 조절하면 정상적인 대장 세포로 가역화하는 게 가능하다는 것을 실험으로 증명한 연구였습니다. 초기에 발표했던 SETDB1이라고 하는 후성유전학 조절 인자는 다섯 가지의 Transcription Factor(전사인자)의 Activity가 낮아져 있는 상태, 그러니까 해당 유전자의 발현은 높지만, 단백질의 활성 정도가 이 후성 유전학 조절 인자 SETDB1에 의해서 억제되고 있는 그런 종류의 대장암 세포에서 가역화 효과가 일어난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었어요. 적용 대상이 다소 제한적이긴 했지만요.
세포 내 분자 네트워크는 소우주라고 불릴 만큼 매우 크고 복잡해서 어떤 특정한 분자 스위치에 섭동(perturbation)을 가하더라도 대부분 큰 변화를 일으키지 않지만, 그중에는 아주 드라마틱한 변화를 유발해 내는 특정한 분자 스위치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 연구팀은 그들 가운데 세포의 운명을 극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분자 스위치(SETDB1 등)를 찾아내서 암세포를 죽이지 않고 정상 세포로 변환할 가능성이 있다는 걸 증명해 냈습니다. 그런 분자 스위치들은 유니크하지 않습니다. 또 저희가 발견해 낸 것도 아주 일부분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들 가운데 무엇이 최적일까, 우리가 실제 약물 치료제를 개발하고자 할 때 무엇이 가장 최선의 표적일까 이런 질문들은 여전히 남아 있고 그 문제를 계속해서 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분자 스위치 표적에 따라 암세포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정상 세포로 가역화되는지에 대한 메커니즘은 표적분자마다, 암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조광현 교수는 2010년부터 암 가역화 가능성을 실험으로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진제공 : KAIST]
Q. 메커니즘이 어떻게 다를까요?
예를 들어 아까 설명해 드렸던 SETDB1과 같은 후성 유전학 조절 인자의 경우에는 다섯 개의 중요한 전사인자 집합이 있는데 대장암 세포에서는 이들이 정상 세포와 비슷하게 존재하지만 활성이 억제되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SETDB1이 이들을 억누르고 있던 것이지요. 그래서 SETDB1을 억제했더니 다섯 개의 핵심적인 전사인자의 활성이 정상화됐습니다. 그랬더니 타깃했던 정상 대장 세포의 유전자 발현이 회복되어서 다시 정상 세포처럼 되돌아간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었어요.
이후에 발견한 여러 다른 인자들도 각각 역할이 달라서 기전 자체는 모두 다릅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정상 세포에서 여러 유전자 돌연변이와 후성 유전학적 변화가 축적되어서 임계점에 도달하면 더 이상 정상 세포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암세포 상태로 천이가 일어나게 되는데요. 이렇게 변화된 암세포 내에 예를 들면 유전자 네트워크를 다시 리와이어링(rewiring)해서 재조직화해 변화시킨다면 정상 세포와 유사한 상태로 되돌릴 수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정상 세포가 암세포로 변화하는 순간의 유전자 조절네트워크 다이내믹스를 분석해 암세포를 다시 정상 세포로 되돌릴 수 있는 '암 가역화(reversion)' 유도 분자스위치를 찾은 겁니다. 결과적으로 세포 내에서 세포의 상태를 결정짓는 분자 네트워크의 와이어링(wiring)을 바꿔줌으로써 정상세포 상태와 유사한 상태로 되돌려진다는 기전을 바탕으로 한 현상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Q. 이 연구에 대해 암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여러 상황이 복합적으로 맞을 때 일어나는 특별하고 예외적인 현상이라고 보는 시선도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런 목소리에 대해선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요?
여러 유전적 변이와 후성유전학적 변화의 축적에 의해 암세포가 되었는데 분자스위치 하나를 조절함으로써 정상세포와 유사한 상태로 되돌려질 수 있다는 건 사실 기적 같은 현상입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암을 연구하는 분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암세포는 정상 세포에 여러 유전적 변이가 축적되어서 마치 우리 몸에 상처나 타투처럼 각인된 변화가 존재하는데(비가역적) 그 상태에서 어떻게 정상으로 되돌려지는 게 가능하냐는 것일 겁니다. 그게 가능한 이유에 관해 설명해 드릴게요.
예를 들면 최근 보고된 일련의 연구들인데요. 암이 없는 건강한 일반인의 눈꺼풀 조직을 샘플링해서 유전자 시퀀싱을 해보니까 피부암 환자들에게서 발견되는 유전자의 주요 돌연변이가 가득하다는 것이 밝혀진 바가 있습니다. 그 이야기가 시사하는 바는 역으로 유전자 변이가 그대로 존재하는 상태에서도 정상으로 되돌리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같은 맥락의 연구들이 여럿 있습니다. 암이 없는 정상인의 식도 상피세포(Epithelial cell)에도 식도암 환자에게서 발견되는 수준의 다량의 유전적 변이들이 발견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유전적 변이를 가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정상적인 상피세포 조직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또 자궁 내막 샘에도 자궁암 환자만큼의 유전자 변이가 정상인에게도 가득하지만, 대부분은 여전히 암이 없고 건강합니다. 최근의 이런 발견들이 시사하는 바는 암이 발생 된 이후에도 그 유전자 변이가 아까 처음에 소개해 드린 타투나 스카처럼 지워질 수 없는 흔적이라고 하더라도 그걸 그대로 유지한 채 얼마든지 정상 세포 상태로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중요한 것은 암으로 변하는 데는 유전적 변이가 굉장히 중요한 원인인 것은 맞지만 그것만으로 암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추가로 후성 유전학적 변화가 동반되어서 전체 유전자 네트워크가 한 번 큰 변화를 겪어야 비로소 암세포 상태라고 하는 새로운 운명을 얻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그 유전적 변이의 축적이 이 세포의 상태를 변화시키는 데 있어서 어떤 결정적인 걸림돌은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의 발견이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며 암 세포 상태는 우리 연구를 통해 증명되었듯이 인위적인 제어를 통해 정상 세포 상태로 가역화가 가능하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조광현 교수는 암가역화는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진=BRIC]
Q. 2020년부터 매년 성과가 나오고 있는데요. 이 연구는 얼마나 진척이 되었고 앞으로 어떤 방향을 생각하고 계신가요?
저희 연구는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 수준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여전히 많은 질문이 남아 있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저희가 발굴해 낸 암 가역화 분자 타깃이 유일한 것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더 좋은 타깃이 있을까 무엇이 최선일까? 그래서 어떤 타겟을 표적으로 해서 실제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연구하고 있습니다. 근데 앞의 질문처럼 여전히 많은 연구자가 이를 흥미롭게는 여기지만 이 가역화 현상은 굉장히 예외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암 연구하는 분들은 예외적인, 아주 특별한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일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지금 우리의 목표는 가까운 시일 내에 이걸 온전하게 증명하는 겁니다. 아주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라 우리가 인위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현상이고 그리고 이게 우연한 발견이 아니라 저희가 Systematic 하게 이 표적을 발굴해 낼 수 있고 이것을 온전한 실험으로 증명해서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도록 증명하는 것, 그게 우리가 당면한 과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아직 발표하지 않았지만 저희가 굉장히 의미 있는 놀라운 결과들을 많이 얻고 있습니다. 여러 고형암종에서 그리고 또 최근에는 아주 희귀한 소아암에서도 놀라운 결과들을 계속 확인하고 있기 때문에 올해 말과 내년에 걸쳐서 그 결과들을 정리하여 발표할 예정입니다.
결국 최종 목표는 실제 암 환자에게 쓰일 수 있는 치료제를 개발하는 것인데 대학의 실험실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기초 연구 단계에서의 첫걸음 첫 단추를 끼우는 거고 실제 치료제로 개발하고 임상시험을 하는 것은 이제 대학의 실험실에서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얼마 전에 우리 연구실 졸업생들과 함께 바이오리버트(주)라고 하는 실험실 벤처 기업을 설립했습니다. 저희가 이루어낸 이런 기초 연구 성과를 기술이전해서 실제 치료제를 개발하고 임상시험을 추진하려는 목표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Q. 연구의 다음 스텝이 기대되는데요. 이 연구를 2010년에 처음 생각했다고 하셨는데 결과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한 것은 2020년이었습니다. 10년이란 시간 동안 준비하신 건데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셨나요?
이 연구가 진척이 굉장히 더뎠던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무엇보다도 우리 실험실 학생과 연구원을 설득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입니다. 어떤 주제에 관해서 연구를 시작하려면 모든 연구가 그렇듯 질문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어떤 질문에 대해 답을 찾기 위한 노력이 결국 연구라고 정의할 수가 있는데요. 그래서 연구자라면 처음 연구를 시작할 때 제일 먼저 관련된 논문을 찾는 것으로 시작할 겁니다. 선행 연구가 얼마나 있고 얼마나 진척되어 있는가를 보는 건데요. 당시에는 암 가역 연구에 관해선 선행 연구가 거의 없었거든요. 그러니까 학생들은 당연히 불안한 거예요. 답이 없는 질문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저와의 큰 차이점은 저는 선행 연구가 이미 있으면 실망하는데 학생들은 없으면 실망하는 거죠.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학생들과 연구원을 설득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또 이런 연구 결과를 잘 정리하여 국제 저널에 제출해서 여러 심사위원의 심사를 받고 검증이 끝나면 국제 저널의 논문으로 게재가 되는데 그런 과정에서 여전히 이런 개념이 기존의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훨씬 더 까다롭고 많은 증명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더 많은 실험으로 증명해야 하고, 그러려면 더 많은 자원이 있어야 하는데 제한된 자원과 상황 속에서 필요 이상으로 많은 요청에 따른 증명을 해내야 하는 과정들이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지금까지 저희가 처음에는 세포주에서 증명하고 다음에는 오가노이드에서 증명하고 이제는 많은 동물 실험에서 증명해 내고 있습니다.
한참 연구를 하고 나서야 생각하는 거지만 연구할 때 제일 중요한 건 궁극의 질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그런 궁극의 질문을 가지고 있으면 도달하려고 하는 곳의 좌표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질문이 있느냐 없느냐 이건 작아 보이지만 매우 큰 차이가 있어요. 어떤 차이가 있냐 하면 그냥 그때그때 흥미 있는 연구를 하게 되면 연구는 늘 잘 안되기도 하고 어쩌다 한번 잘 되기도 하고 이러기 때문에 끊임없이 흔들릴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 궁극의 질문을 간직하고 있으면 일희일비 안 할 수 있게 됩니다. 어떨 때는 기대했던 결과가 나올 수 있지만 어떨 때는 잘 안 나올 수도 있고 그런 거를 그냥 받아들이고 이제 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연구자가 평생을 몰두해 풀 수 있는 궁극의 질문을 찾으면 좋겠습니다.
암가역화라는 궁극의 질문을 함께 풀어가고 있는 연구실원과 조광현 교수 [사진제공 : KAIST]
Q. 암 치료제 개발로 이어지기 위해선 임상시험이 필요할 텐데요. 임상 계획이 있을까요?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올 연말이나 내년 초에 적어도 첫 번째 임상시험을 실시할 계획이 있습니다.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이 암 가역 치료제는 그 목표 중 하나가 암 환자에게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이거든요. 암세포의 사멸을 유도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정상적인 세포에 미치는 부작용이 당연히 아주 적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제가 이 암 가역 치료를 처음 생각하게 된 배경에도 대부분의 말기 암 환자가 마지막 단계에 이르게 되면 암 그 자체보다 항암 치료의 부작용으로 큰 고통을 겪기 때문에 삶의 질을 유지하면서 치료할 방법이 없을까 하는 고민도 이 연구를 하게 된 아주 중요한 축이었거든요.
그래서 암 가역 치료제가 실제로 치료제화 됐을 때 암 환자에게 미치는 부작용이 아주 적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고, 기존의 어떤 항암제에 비해서도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어서 규제 기관의 승인 과정에서 유리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삶의 질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암을 마치 만성 질환처럼 잘 관리할 수 있는 질환으로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게 암 가역 치료제가 지향하는 방향인 만큼 이른 시일 안에 임상 시험에 도전해 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Q. 교수님 연구에 있어서 Eureka Moment가 궁금합니다.
우리 몸속 2만여 개 유전자들은 복잡한 유전자 조절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유전자 하나의 발현이 높아지거나 낮아지거나 하는 것을 관찰하지만 실제로 a라는 유전자의 발현이 높거나 낮을 때 이웃한 다른 b, c 유전자의 발현에도 영향을 줍니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지요.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평형 상태에 도달하는데 그 평형 상태를 우리가 끌개(attractor)라고 부르고 결과적으로 그 유전자 발현이 끌개라고 하는 평형 상태에 도달했을 때의 전체 유전자의 발현 정도가 특정한 세포의 상태를 결정짓습니다.
그런데 하나의 세포 내 유전자 네트워크에 있어서 이런 끌개가 다수 존재합니다. 처한 환경이나 초기 상태 또는 주어진 여러 가지 여건에 따라서 외부에서 들어오는 신호나 이런 요소에 따라서 수렴되는 세포의 끌개 상태들이 변화되는데 그 각각의 끌개는 세포의 특정한 표현형을 나타냅니다. 예를 들어 정상적인 세포도 호르몬 자극이 들어와서 성장해야 할 때는 세포가 분열하기도 하고 어떤 상황에 처해서 세포의 세포 주기를 멈춰야 할 때는 셀 사이클 어레스트 상태에 도달하기도 하고 또 더 이상 복구할 수 없는 유전자의 손상이 발생했을 때는 스스로 사멸하라고 하는 의사결정을 내리기도 하고 이 모든 것들이 각각의 끌개 상태로 대변되는데 유전자 네트워크에서 큰 Question은 정상 세포가 변형되어서 암세포가 되는 것이므로 ’암세포도 하나의 세포 상태인데 암세포를 나타내는 끌개 상태가 혹시 원래 정상세포에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이었을까‘라는 질문입니다. 즉, 애초에 잠재된 끌개 상태였지만 정상일 때 상태천이가 막혀있던 것이 유전적 변이와 후성 유전학적 변화로 인해 막혔던 장벽이 허물어지면서 도달하게 된 것일까 하는 것이죠.
최근 일부 연구에서 그러한 암세포 상태의 끌개가 존재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단지 그리로 안 가고 있을 뿐이지 그리로 가는 것이 여러 후성 유전학적인 장벽이나 다른 이유로 잘 감춰져 있는 거지 그 암세포 상태라고 하는 것의 태초 기원은 우리가 원시 단세포 생명체에서 왔기 때문에 그 단세포 생명체의 운명이 축소되었을 뿐 환경이 갖추어지면 언제라도 그리로 세포의 운명이 바뀔 수 있는 잠재된 세포의 운명 상태일 수 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흥미로운 실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이야기를 좀 반대로 생각하면 그럼 암세포로 변환된 뒤에 원래 정상 세포에 해당하는 끌개 상태가 여전히 남아 있을까 라고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정상세포에 해당되는 끌개 상태가 암세포 내에 남아 있으므로 지금은 아주 이기적인 자기 증식만을 무한 반복하는 암세포 상태일지라도 어쩌면 잔존해 있는 정상 세포 상태의 기억을 되찾아서 그리로 상태 변환을 일으키도록 제어할 수 있다면 정상 세포 상태로 변환시켜 줄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된 거죠. 그게 지금 질문하신 유레카 모멘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껏 저희가 암 가역화 연구를 하면서 또 깨닫고 있는 것은 이 살아있는 생명체의 세포 상태는 우리가 통상 통념적으로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가변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암세포라고 해서 영원히 암세포이어야만 하는 운명은 아니고 마찬가지로 정상 세포도 현재 정상 세포라고 해서 영원히 그 상태를 불변으로 유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는 것이죠. 세포의 운명은 늘 가변적일 수 있고 우리가 제어할 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못 찾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Q. 후배 연구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제가 모비딕이란 소설을 좋아하거든요. 소설 속 전설의 하얀 고래를 찾아 떠나는 항해를 저와 연구진이 함께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지의 도착점이 어디일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좌표가 있고, 그 좌표는 우리가 가진 질문인 거죠. 수없이 많은 풍랑을 만나고 있지만 우리가 좌표를 우리 가슴속에 새기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가슴 뛰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이 모험에 참여하고 싶어 하는 생물학 전공한 학생들, 특히 실험을 통해 증명하는 일에 흥미를 느끼는 학생들이 우리 실험실의 문을 두드리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제가 은퇴하기 전에 이 암 가역 치료가 실제 암 환자에게 쓰이는 걸 보고 싶어요. 이게 단순히 저희 기초 연구 성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실제 문제를 푸는 데 적용된 사례를 만들어내고 싶고 지금은 그것에 많이 몰입해 있어요. 이런 연구 여정을 통해 생명체의 상태가 실제적으론 굉장히 가변적인데 우리는 대부분 경험적으로 암과 노화와 같은 현상이 시간의 축에서 비가역적이라고 여기잖아요. 이걸 가역화할 수 있다는 것, 그런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기 때문에 그 수수께끼를 풀어서 그 과정을 흥미 있는 이야기로 묶어서 책을 써보고 싶은데 쓸 수 있을진 모르겠어요.
조광현 교수가 직접 시간의 역행을 담아낸 그림 (위)Reversion1, (아래)Reversion2 [사진=BRIC]
또 저기 액자에 보이는 그림, 제가 그린 것인데요. 위의 그림이 리버전1이고 아래 그림이 리버전2인데, 시간의 흐름을 그림으로 어떻게 나타낼 수 있을까 하다가 모래시계는 위에서 아래로 시간이 흐른다는 걸 나타내잖아요. 산호랑나비의 메타몰포시스(Metamorphosis) 과정이거든요. 변태 과정. 근데 저 알에서 유충이 돼서 호랑나비로 변태하는 과정을 모래시계에서 거꾸로 시간의 역순으로 표현했고요.
위의 그림은 잠자리의 변태 과정인데 언덕 위의 크리스털 볼 안에 잠자리가 있고 저 볼의 운명은 높은 데서 아래로 떨어지는 반면 그 내부에서 일어나는 것은 시간의 역순으로 표현한 그림입니다. 나중에 은퇴하면 이런 연구를 설명하는 그림도 많이 그려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