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이자 다자간 연구 혁신 프로그램인 호라이즌 유럽(Horizon Europe), 그중에서 서로 다른 베이스를 가진 연구자들이 함께 연구하며 혁신적인 연구 성과를 도출하길 기대하는 프로젝트 ERC(European Research Council) 시너지 그랜트. 이곳에 IBS 유전체 교정연구단장 구본경 교수가 속한 팀 클론이스케이프(ClonEScape)가 최종 선정되며, 영국, 독일의 연구자들과 함께 유럽 연구비를 받으며 암의 발생 과정을 밀도 있게 연구할 수 있게 되었다.
모자이크 유전학(Mosaic genetics, 유전자 변이로 서로 다른 유전적 구성을 갖는 세포들이 공생하는 현상을 연구하는 분야)에서 구본경 단장이 자체 고안한 방법을 통해 암 씨앗 세포를 추적, 관찰할 수 있는 방법이 핵심 기술 중 하나다. |
Q. 안녕하세요. 구본경 IBS 유전체 교정 연구단장님, ERC 시너지 그랜트에 최종 선정되신 것 축하합니다. ERC 시너지 그랜트의 선정 과정을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어떤 과정을 거쳐서 선정되었는지 들려주신다면?
ERC 시너지 그랜트에 지원해서 최종 심사 결과를 받기까지 1년이란 시간이 걸렸어요. 제가 이전에 ERC의 다른 그랜트(개인 과제)를 받을 때도 심사가 1년 정도 걸렸거든요. ERC는 기본적으로 심사를 굉장히 신중하게 합니다. 이 시너지 과제는 먼저 1차와 2차 심사가 있습니다. 1차에선 지원자의 절반 이상이 떨어지는데 통과하면 ‘eligibility check이 됐습니다’라고 연락이 와요. 결격 사유가 없으면 다음 단계로 간다는 얘기죠. 2차에서도 절반 이상을 떨어뜨리는데, 그럼 20~25% 정도만 남아요. 최종적으로 10% 정도를 합격시키니까 2차가 되어도 마지막 인터뷰 경쟁률이 2.5:1 정도가 되는 겁니다.
3차 인터뷰는 발표 10분, 질의응답 30분으로 총 40분의 시간이 주어져요. 우리 팀 ClonEScape은 영국인 1명, 스페인 출신 1명, 독일인 1명, 한국인 1명으로 구성되었는데요. 멤버 구성부터 모든 과정이 철저히 전략적이었어요. 정말 멋진 팀이 되려면 여성 연구자도 있어야 하고, 또 유명한 시니어도 있어야 하고 중견 연구자와 더 젊은 연구자도 있어야 하고, 비 유러피안이 있으면서 분야도 생명과학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의 전문가도 있어야 한다며 어떤 각도에서 봐도 다양성을 갖추도록 준비했어요. 또 4명의 PI 중에 발표를 한국인인 제가 하게 되었는데요. 비 유러피안이 유러피안을 데리고 유럽에 연구비를 지원해달라는 모습은 감동적이지 않나, 이런 의견들이 있어서 그래서 제가 발표를 하게 됐습니다.
구본경 단장은 ERC 시너지 그랜트를 통해 암 씨앗 연구를 이어 가겠다고 밝혔다. [사진=BRIC]
Q. 발표와 질의응답이 무척 중요했을 것 같아요. 발표 준비와 과정은 어땠나요?
먼저 발표는 10분 이내에 우리가 하려는 연구에 관해 설명해야 했는데요. 설명하다 보면 주요 타깃이 있어야 하는데 연구 분야가 다른 패널부터 우리 분야에 높은 전문성을 가진 패널까지 모두가 납득 할 수 있는 내용으로 발표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고 나면 정말 날카로운 질문들이 30분 동안 쏟아집니다. 답변은 4명이 합심해서 해야 했는데요. 이건 한 사람이 주도하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함께 합심해서 해내는 단체전 성격의 프로젝트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모두가 골고루 답할 수 있도록 준비했습니다. 그래서 태릉 선수촌에 선수들이 모이는 것처럼 영국과 독일, 저는 한국에서 출발해서 합숙하면서 예상 질문의 3~4배에 달하는 50여 개의 질문을 준비하고 거기에 대한 답을 달고, 그걸 서로 평가 리뷰를 하고 수정하고, 그렇게 준비한 최종 원고를 외워야 했으니 정말 쉽지 않은 과정이었어요. 거기에다 우리는 이 그랜트만 3번을 받기도 하고 리뷰어로도 활동하신 분을 섭외해서 그분하고만 리허설을 총 3번을 했어요. 굉장히 바쁜 분이었는데 그분이 도와주셔서 훈련이 많이 됐습니다. 이 그랜트가 150억 원 정도이고 4명이 150억을 6년에 걸쳐 나누어 쓰게 됩니다. 재밌는 건 ERC는 돈을 한 번 주기로 결정하면 이 돈을 한두 해에 다 쓰던지, 잘 남겨서 오랜 시간 걸쳐서 쓰든지 상관하지 않더라고요. 심사는 정말 진중하게 하고 나머지는 자율에 맡기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ERC 시너지 그랜트 선정을 위한 인터뷰 후 ClonEScape PI들과 함께 찍은 사진. 가장 왼쪽이 구본경 단장 [사진제공 : 구본경 단장]
Q. ERC 시너지 그랜트로 어떤 연구를 하게 되나요?
사실 우리 몸에는 엄청 많은 세포가 있는데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돌연변이는 생기거든요. 시스템이 거의 완벽한데 그런데도 한번 분열할 때마다 열 몇 개씩은 생긴다고 보고 있습니다. 물론 그 숫자를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이렇게 돌연변이가 끊임없이 생기고 있고요. 그중 일부는 암 발생에 관련된 유전자를 망가뜨립니다. 활성화될 수도 있고 비활성화될 수도 있는데 그 과정에서 암을 발생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돌연변이가 있을 수 있어요. 그리고 그게 정말 중요한 유전자에 생겼을 때 그 세포가 암이 될 수 있는 암 씨앗 세포(Cancer Seed Cell)가 됩니다. 암 씨앗 세포는 바로 암이 되는 건 아니에요. 많은 암 씨앗 세포가 대부분의 경우는 암으로 발전하기 전에 다 해결이 됩니다. 면역세포가 와서 죽이기도 하고 스스로 이상해진 자신을 노화 프로그램이나 자체 사멸로 없어지게 한다거나 하는 안전장치가 있어요. 이 시스템은 2중 3중의 수준이 아니라 그보다도 훨씬 세밀한 안전장치가 있고, 우리의 경찰이나 검찰 인력 같은 면역 세포도 있어요. 또 우리가 건강한 민주주의를 만들기 위해선 다수의 우수한 시민이 필요하잖아요. 세포도 마찬가지로 건강한 세포가 주변에 많이 있으면 이 세포들은 공간 경쟁을 하므로 암세포가 하나 생겨나도 건강한 수천수백만의 정상 세포 사이에 둘러싸여 있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조건에서 시작하는 거예요. 그중 아주 일부의 암 씨앗 세포가 궁극적으로 암이 되고 이 암에 의해서 시스템이 붕괴해서 사람이 죽게 되는 거죠. 근데 암이 생기고 시스템이 어떻게 붕괴하는지에 대한 연구는 많이 있어요. 그런데 암이 생기기 이전 단계인 이 씨앗 세포에서 암이 될 때까지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미지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어요.
Q. 왜 암 씨앗 세포에서 암이 되기까지의 연구는 많이 없던 걸까요?
왜냐하면 암 씨앗 세포일 때는 정상 세포와 조금도 달라 보이지 않기 때문이에요. 대부분 정상으로 보이고 면역 세포가 보기에도 정상처럼 보이니까 얘들이 정상세포 사이에 숨어있을 수 있는 거예요. 그렇게 숨어있다가 본색을 드러내면서 점점 자기 Clone을 확장해 가는데 그 Clone이 확장되어 가다가도 중간에 발각되면 조치가 취해집니다. 면역 세포가 하기도 하고 주변 세포가 하기도 하고 다양한 조치가 취해지는데 이런 걸 Barrier라고 하거든요. 이런 장벽, 장애물을 만들어 두었는데 암 씨앗 세포는 어떻게 이런 것들을 극복하고 최종적으로 암이 되는가, 우리가 이 Barrier를 어느 정도는 이해했는데 좀 더 완벽하게 이해한다면 암 씨앗 세포가 암이 되는 걸 막을 수 있잖아요.
이 과정이 어떤 동물은 굉장히 잘 일어나고 어떤 동물은 잘 안 일어나요. 예를 들면 코끼리 같은 애들은 암으로 죽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해요. 그 이유가 인간의 몸에 암이 생겼을 때 뭔가 잘못됐다는 시그널을 주는 것 중에 P53이라고 하는 중요한 암 억제 유전자가 있는데 사람은 그게 한 쌍이에요. 엄마 아빠로부터 받은 거죠. 잘 받은 사람은 2개, 어떤 분은 한쪽이 망가져서 하나만 있는 경우도 있고, 어떤 분은 두 분 모두에게서 받은 것이 다 망가져서 아예 없는 경우도 있어요. 이런 경우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암이 막 생기기도 해요. 하나의 유전자만 있는 사람은 두 개가 다 있는 사람보다 암이 더 잘 생기게 되고, 이 녀석의 발현을 조절하는 주변 프로모터에 돌연변이(Mutation)가 있는 경우에도 암이 발생하는 빈도가 달라진다고 해요. 그런데 코끼리는 P53이 여러 개 있어요. 그래서 여기에 페토의 역설(Peto’s paradox)이 등장해요.
암은 세포가 분열할 때 돌연변이가 생겨서 암 씨앗 세포가 되고 그래서 암에 걸린다고 한다면 세포가 많으면 많을수록 암에 걸릴 확률은 늘어나잖아요. 그러면 생쥐보다 코끼리가 걸릴 확률이 훨씬 높겠죠. 코끼리 한 마리에 생쥐 수만 마리가 있는 셈이니까요. 그런데 코끼리는 암에 안 걸리고 오히려 생쥐가 더 많이 걸리더라. 이건 사실 암 컨트롤 능력하고 연관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 것들이 의문이고요. 이 의문을 생명과학으로, 원리적으로 풀어내는 다양한 시도들이 있는데 그 시도 중의 하나가 저희의 연구 주제입니다. 또 돌연변이가 생겨도 어떻게 그걸 시스템적으로 해결하느냐, 혹은 돌연변이가 어떻게 그 난관을 극복하고 암이 되는가 하는 연구입니다.
Q. 암 씨앗이 어떻게 몸속의 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최종적으로 암이 되는지, 이걸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제가 다른 유럽의 과학자들과 이 프로젝트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모자이크 유전학(Mosaic Genetics)에서 저희가 가지고 있는 기술을 통해 암 관련 돌연변이를 찾아서 추적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구본경 단장이 모자이크 유전학과 자신이 고안한 암 관련 돌연변이를 관찰할 수 있는 기술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BRIC]
지금 보이는 저 세포들 중에서 빨간색 세포가 아까 말씀드렸던 암 관련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세포들입니다. 나머진 정상 세포고요. 저 빨간색 세포를 추적 관찰하면서 노란 세포나 파란 세포에 비해 빨간 세포가 다르게 행동하는 것을 추적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첫 번째 씨앗 세포부터 우리가 놓치지 않고 관찰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암 씨앗 세포는 정상세포와 달라 보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까진 몰랐는데, 우리가 유전적으로 일부러 씨앗 세포를 만들고 색칠을 해놔서 세포 단위에서 추적할 수 있는 기술이 생긴 겁니다. 달리 말하면 첫 번째 암 씨앗 세포부터 암이 되는 전 과정을 연구할 수 있는 시스템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 그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Q. 구본경 단장님이 ERC 시너지 그랜트에 지원하고 최종 선정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많은 연구자도 이 그랜트에 새롭게 도전해 보고 싶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는데요. 올해부터 우리나라가 호라이즌 유럽의 준회원국으로도 가입되었기 때문에 혹시 유럽 연구비에 도전하고 싶은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 같은 것이 있을까요?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신 분은 제게 연락하셔도 됩니다. 도울 수 있는 한 도와드리겠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는 이유는 저희도 ERC 그랜트를 세 번 받으신 분이 저희를 도와주셔서 많은 훈련이 됐고 잘 준비할 수 있었거든요. 저도 이제 개인 과제 한번, 그리고 이번에 집단 과제까지 이렇게 두 번을 받았고, 지금까지 총 4번을 도전해 봤으니까요.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드리겠습니다.
다만 호라이즌 유럽에는 연구 분야가 필라(Pillar) 1, 2, 3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우리나라가 준회원국으로 가입한 부분은 필라 2에 해당합니다. 필라 2 프로그램 신청이 가능한데 이 경우는 산업체와 연계해서 하는 연구가 많아서 대한민국은 이 부분에 강점이 있기 때문에 필라 2에 도전해 보면 좋을 것 같고요. 제가 그랜트를 받은 시너지 그랜트는 필라 1에 속해 있는데요. 시너지 그랜트의 경우 비유럽권 PI가 한 명 들어와도 괜찮기 때문에 팀을 잘 구성한다면 이 그랜트 도전도 좋을 것 같습니다.
Q. IBS 유전체 교정 연구단 2기를 이끌고 계십니다. 2년이 되었는데요. 지난 시간을 어떻게 보십니까?
단장은 리더십이 정말 중요하고 연구만 해선 안 되고 행정력도 있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꼭 필요한 능력 중 하나가 규정을 빨리 습득하는 겁니다. 그래서 지난 2년은 그런 규정을 익히고 규정이 허가하는 내용 중에 행정의 묘가 있을 수 있는 것들을 습득하느라 바빴고요. 연구단 속에 단순히 하나의 실험실이 아니고 여러 개의 소규모 팀을 만들 수가 있어요. 유전체 교정 연구단은 저를 포함 내부적으로 5명의 팀 리더가 있고요. 그다음 외부에서 특히 조교수급 연구 책임자들에게 제가 포스텍 교수를 겸직하듯이 그분들한테 IBS 유전체 교정 연구단 소속으로 겸직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 연구단에 이분들이 대학원생을 보내서 함께 연구할 수도 있게 됩니다. 대외적으로는 리서치 플레이 그라운드라고 하는데, 지금은 IBS가 있는 자리가 조금은 딱딱해 보이는 연구 시설로 바뀌었지만, 예전엔 엑스포공원이었고 여기서 과학자를 꿈꾸면서 놀던 아이들이 커서 다시 여기에 모여 과학을 하는 거죠. 그래서 리서치 플레이 그라운드라고 부르고요. 과학자들이 편하게 와서 함께 연구하고 지식을 나누고 또 필요할 때는 밤새워서 같이 공부하고 연구하는 그런 공간으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도전은 벤처들이 시행착오를 없애기 위해 공유 오피스에서 시작하는데 왜 과학은 공유 오피스 제도가 없을까 했는데 외국에선 이미 시행 중이거든요. 생명과학 장비들이 비싸잖아요. 젊은 과학자가 처음 한국에 와서 실험실을 세우려고 할 때 연구비를 받기 위해 준비하고, 받은 연구비로 기기 사고 설치하고 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거든요. 유럽에서 제가 놀랐던 장면 중 하나는 유럽 실험실의 기본적인 레이아웃은 공유제라는 겁니다. 모든 것이 갖추어진 연구실 빈자리에서 저도 일을 시작했는데, 마치 큰 교수님 방의 일부를 제가 세 들어 사는 느낌인데 또 독립성이 있어요. 그래서 어디에 취직하면 첫날부터 실험할 수 있어요. 그래서 그런 시스템을 도입했고요. 물론 우리 연구단에 들어와서 함께 활약할 수 있는 사람인지 또 충분히 주니어여서 도움이 필요한 상황인지 등을 고려해서 연구자를 선정합니다. 내부에 다섯 분, 외부에 열 분, 총 열다섯 분 정도를 우리 연구단에 모셨는데 이 중에서 저보다 뛰어난 NEXT BK(구본경)가 한 분 나올 수 있다면 성공이고, 만약 너덧 분 나온다면 정말 대 성공이잖아요. 이런 제도를 통해 저를 훨씬 뛰어넘는 분들이 나오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Q. 연구 인생 중에 Eureka Moment가 있다면 언제일까요?
연구 인생 중 여러 유레카 모멘트가 있었는데요. 제가 지금 연구단장 자리에 있게 해준 유레카 모멘트가 가장 뜻깊지 않을까 싶어요. 이게 사실은 과학적 발견은 아니고 어떤 기회였어요. 한스 클레버스 교수님 연구실로 가면서 인간 오가노이드 컬처를 처음 배웠어요. 그땐 전 세계에 이런 연구를 하는 실험실이 몇 개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2013년 1월에 유전자 가위에 대한 논문이 나왔어요. 그 내용이 크리스퍼라는 게 있는데 특정 시퀀스만 바꾸기 위해 크리스퍼라는 유전자 가위로 그걸 자른다는 어떻게 보면 엄청 단순한 내용이었거든요. 사람 세포, 물고기 세포 이렇게 포유동물이나 척추동물에서도 가능하다, 이렇게 증명해 주는 분들이 나타난 것이죠. 논문을 읽다가 이걸 오가노이드에 처음 시도해서 성공한다면 진짜 대박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그해 4월에 제가 케임브리지 대학 그룹리더로 가기로 이미 계약이 돼 있던 상태여서 굳이 이 실험을 지금 해볼 이유는 없었어요. 근데 그 생각이 떠나지 않는 거에요. ‘이건 어쩌면 내가 드물게 해 보는 세계 최초의 것일 수 있겠다’ 그러니까 크리스퍼를 처음 개발한 사람은 아니지만 이걸 오가노이드에서 최초로 한 사람이 되면 그건 또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요. 그리고 실험을 진행했는데 오가노이드에서 돌연변이를 만들 수 있다는 결과가 한 달 만에 나와서 그걸 한스 클레버스 교수님께 보여드렸죠. ‘너 뭘 한 거냐 대단하다’고 말씀하시면서 그 분은 한발 더 나아가 ‘우리 연구실에 낭포성 섬유증(Cystic fibrosis) 오가노이드를 키우고 있으니 그걸 받아와서 낭포성 섬유증을 이 기술로 고쳐보면 너무 좋을 것 같아’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저는 곧 떠나야 한다는거 알고 계시죠?’라고 물어봤더니 클레버스 교수님이 ‘이런 건 기회가 왔을 때 해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정말 좋은 스승이죠. 그리고 그걸 제가 해냈습니다. (웃음) 제가 떠나고 나서 실험의 후반부는 다른 분이 도움을 주었고 함께 공동 1저자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 유레카 모멘트를 소개한 이유는 사실 줄기세포 분야 전공자인데 어떻게 유전체 교정 연구단장을 하느냐는 학계의 오해가 있을 수 있는데, 저는 처음으로 성체 줄기세포에서 유전자 교정을 했고요. 동시에 오가노이드에서도 최초로 유전자 교정에 성공했습니다.

한스 클레버스 실험실 멤버들과 함께 찍은 사진, 두번째 줄 중앙이 구본경 단장 [사진 제공 : 구본경 단장]
Q. 연구자로 살면서 실험을 통해 실패를 밥 먹듯 하는 게 연구자의 삶인데 실패가 지속될 때 어떻게 견뎌내나요?
저는 이 질문이 연구자들에게 진짜 중요한 것으로 생각해요. 저도 아직 젊지만 살아보니까 가장 불확실성이 큰 건 인생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젊은 과학자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은 건 과학의 영역은 실패하더라도 컨트롤이 되는 영역에서 실패합니다. 말도 안 되는 그런 일은 없어요. 과학은 많은 것을 컨트롤하기 때문에 뭔가 잘못되면 잘못된 이유가 있고요. 잘되면 잘된 이유가 있어요. 예전에 어떤 대가가 자기가 하는 연구에 대해 뭐라고 말했냐면 ‘Let the nature tells what is right or not.’ 즉, 자연에게 무엇이 맞는지 말하게 두라는 얘기죠. 사실 과학계는 컨트롤드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좀 더 예상이 되고 안전하다고 느껴집니다. 학생들은 성공에 대한 갈망이 있으니까 더 빨리 멋지게 더 높은 성공을 바라기는 하지만 세상에 그렇게 빨리 되는 것은 없고 유일하게 빨리 되는 방법은 열정을 가지고 가능하다면 좀 더 시간을 써서 진짜 진중하게 임했을 때 그때 길이 열리는 게 많다는 겁니다. 이 얘길 꼭 해주고 싶어요.
Q.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요?
연구단장 입장에선, 제가 의도했던 대로 젊은 과학자들이 여기 플레이 그라운드에서 마음껏 실험하고 다양한 호기심을 충족하면서 거목으로 성장했으면 좋겠고요. 유전체 교정 연구단 3기를 맡을 후임이 나타나면 좋겠습니다. 저도 전 김진수 단장님이 저를 후임으로 생각하고 계시면서 후보 등록을 해서 지원해 보라고 말씀해 주셨거든요. 저도 이제 저보다 젊은 분 중에 넥스트 라이징 스타를 발굴 해 내야 하는데, 제가 지금 모시고 있는 분들 중에서도 나올 수 있고, 다른 곳에 계신 분들 중에서도 나올 수 있는데 항상 채널을 열어놓고 눈여겨 보고 있습니다.
또 사람 구본경으로선 연구가 컨트롤드 된 시스템이어서 조금은 안정된다고 말씀드렸는데, 연구단을 이끌게 되면서 사람도 많이 만나고 여러 가지 변수가 많았어요. 그러면 걱정거리가 되게 많아져요. 그래서 최근에 취미 생활로 관상어 키우기를 시작했어요.
구본경 단장이 키우고 있는 금붕어 [사진=BRIC]
금붕어, 열대어를 키우다 보니까 일주일에 한두 번은 물을 갈아줘야 하는데 물 교체 시간이 1시간 정도 걸립니다. 그때 다른 생각을 전혀 안 하게 되더라고요. 머리가 잠깐 텅텅 빕니다. 그러면 굉장히 평화로워요. 일에서 오는 어떤 생각이 잠깐 멈춰질 수 있는 차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 취미로 찾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요즘은 어떻게 이 물고기를 좀 더 재밌게 잘 키워볼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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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경 IBS 유전체 교정 연구단 · POSTECH 겸임 교수
EDCATION
2002 – 2006 Ph.D., Div. of Molecular Life Science, POSTECH, Republic of Korea
2000 – 2002 M.S., Div. of Molecular Life Science., POSTECH, Republic of Korea
1996 – 2000 B.S., Dept. of Life Science, POSTECH, Republic of Korea
CURRENT AND PREVIOUS POSITIONS
2023 – Present Director, Center for Genome Engineering, IBS (Institute for Basic Science), Daejeon,S.Korea
2021 – 2023 Associate Director, Center for Genome Engineering, IBS (Institute for Basic Science),Daejeon, S.Korea
2017 – 2023 Group Leader, IMBA (Institute of Molecular Biotechnology), Vienna, Austria
2013 – 2017 Group Leader, Cambridge Stem Cell Institute, Univ. of Cambridge, Cambridge, UK2009 –
2013 Postdoctoral fellow, Hubrecht Institute, KNAW, the Netherlands
2006 – 2009 Postdoctoral fellow, Pohang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 (POSTECH)and Seoul National University
취재 : 생물학연구정보센터 박유미